[강간죄개정연대회의] 제3차 의견서: 국제법 및 해외입법례, 강간죄를 ‘동의’ 여부로 판단

강간죄개정_3차 의견서20190813.pdf120.9K

형법 제297조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동의여부로 개정할 것을 촉구합니다
국제법 및 해외입법례, 강간죄를 동의여부로 판단

1. 2018#미투 운동은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던 성폭력 문제를 공론장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러나 현행 형법 제297조가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 또는 협박으로 규정하고 있는 데에 비해, 현실의 성폭력은 지위나 권세, 영향력 등을 이용해 가해자의 물리적인 폭행이나 명시적인 협박이 수반되지 않는 다양한 유형으로서 발생하고 있어, 현재 성폭력 피해를 호소한 모든 피해자가 법적으로 적절한 구제를 받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법제와 현실간의 괴리로 인해 성폭력을 처벌하는 데 있어서의 법적 공백이 생겨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강간에 있어서의 폭행 또는 협박을 입증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저항 유무, 과거 성이력 등이 질문되는 등의 2차 피해가 일어나거나, 가해자들의 피해자에 대한 보복성 역고소가 비일비재해지는 등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2. 이에 208개의 여성인권단체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강간죄개정을 위한 연대회의>에서는 형법 제297조를 개정하여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 또는 협박이 아닌 동의여부로 규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바, 본 의견서에서는 국제법 및 해외 입법례와 같은 국제적 기준이 강간을 판단함에 있어 동의여부를 그 기준으로 하는 방향으로 수렴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우리 형법 역시 국제적 기준에 부합할 수 있도록 개정되는 것이 바람직함을 제시하려 합니다.

3. 우선 국제법상의 기준을 살펴보자면, 국제형사재판소와 유럽인권재판소와 같은 국제재판소들은 모두 동의여부에 따라 강간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동의의 부재를 강간 성립 여부 판단의 주안점으로 둡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폭행 및 협박이 아닌 동의여부를 기준으로 강간을 판단하는 것이 국제적인 추세임을 확인하면서, 유럽인권협약에 의하여 국가는 피해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모든 성적 행위를 기소하고 처벌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4. 유엔 역시 각국이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강간을 정의할 것을 여러 차례 권고한 바 있습니다. 2010년 유엔 여성지위향상국은 여성 대상 폭력에 대한 입법권고안을 담은 핸드북을 발행하여, 각국 형법이 유형력 또는 폭행의 행사를 강간의 구성요건으로서 요구하고 있는 경우 그러한 조건을 삭제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아울러 명백하고 자발적인 동의를 강간 판단의 기준으로 삼거나, ‘강압적인 상황이 존재하는 경우 강간이라고 보되 강압적인 상황의 해석을 넓게 하는 방식의 입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권고하였습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역시 여러 결정을 통해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강간이 정의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한 바 있고, 2017년에는 일반권고 제35호 제29(e)에서 성범죄는 자유로운 동의의 부재를 기준으로 정의되어야 하며, 강압적인 상황 하였던 경우 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하였습니다. 특히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18년 제8차 한국정부의 성평등 정책 전반에 대해 심의한 후, 형법 제297조를 개정하여 피해자의 자유로운 동의의 부재를 중심으로 강간을 정의하여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5. 이외에도 여성에 대한 폭력과 가정폭력 방지 및 근절을 위한 유럽 평의회 협약(이스탄불 협약, 2011)은 동의 없는 모든 성적 행위는 범죄화되어야 한다고 규정하였고, 이 협약은 유럽의 34개국이 비준, 46개국이 서명하였습니다.

6. 해외 각국의 구체적인 입법례를 보더라도 영국, 스웨덴, 독일, 아일랜드, 캐나다, 호주, 미국(11개 주) 등의 여러 선진국들은 이미 이러한 국제적 기준에 따라,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또는 동의 없는 성적 침해를 강간죄 등으로 규정하여 폭행 및 협박 없는 성폭력 사례들을 처벌하고 있습니다. 또한 형식적으로는 동의가 있다고 보이나 폭행·협박, 위계·위력, 피해자의 취약성(연령, 신체적·정신적 장애, 음주, 약물 복용, 무의식, 수면, 공포 등)을 이용한 경우 등으로서 실질적으로 자유롭고 자발적인 동의가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동의의 부재를 간주하여 처벌하는 입법을 채택하였습니다. 특히 이중 스웨덴은 가해자가 심각한 부주의로 피해자의 동의를 확인하지 못한 경우까지 처벌하도록 규정하여, 국제 기준보다도 좀더 진일보한 입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7.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제법과 선진적인 해외 입법례는 모두 강간을 동의여부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1> 국제법과 해외 입법례를 통해 본 강간죄 구성요건 참조). 이에 <‘강간죄개정을 위한 연대회의>, 국회가 형법 제297조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동의여부로 개정하여, 국제적 기준 및 권고에 우리 형법이 부합하도록 할 뿐 아니라, 성폭력 피해자가 법적 처벌의 공백으로 인해 피해를 구제받지 못하거나 수사·재판 과정에서 2차 피해를 입는 일이 더는 발생하지 않게 할 것을 촉구합니다.

2019. 08. 13.

강간죄개정을 위한 연대회의

(208개 단체/중복기관수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