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강간사건기자회견 발언1_준강간 사건에서의 법과 현실의 간극

 

준강간 사건에서의 법과 현실의 간극

 

정은자,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공동대표

 

형법 제299조 준강간죄 및 준강제추행죄는 폭행 협박이 없었더라도 심실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한 경우에는 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과 동일하게 처벌하도록 규정된 법입니다.

 

준강간 사건의 주 쟁점은 첫째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

둘째 피고인이 피해자의 이런 상태를 인식하고 이를 이용하여 간음할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입니다.

 

술 혹은 약물에 만취한 피해자를 강간한 가해자는 전형적으로 피해자의 의식이 멀쩡해 보였다며 합의된 성관계를 주장하거나,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인식하지 못하였고,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피해자는 피해 경험을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성폭력의 책임을 고스란히 뒤집어쓰거나, 성폭력 피해 자체를 부정당하고 오히려 역고소에 시달립니다.

 

피해자가 피해 경험을 기억하면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준강간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피해자가 피해 경험을 기억하지 못하면, 가해자는 성행위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하거나, 피해자가 동의한 성관계였음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특히 술로 인해 블랙아웃 상태가 되면 자신의 의지나 인식과는 무관한 말이나 행동을 할 수도 있는데, 피해자가 어떤 말을 하거나 비틀거리면서도 혼자 걷거나 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심신상실 상태가 아니었다거나, 성관계에 합의를 했는데 단지 기억을 못하는 것이라고 가해자들은 주장합니다. 하지만 사법부는 피해자의 관점으로 가해자와의 관계나 사건의 맥락을 살펴보고 판단하기 보다는 가해자들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기반하여 판결을 내리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매우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준강간사건의 피해자는 피해 경험을 기억해도, 혹은 기억하지 못해도 피해를 사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법부의 태도는 피해자들을 위축시키고 자신의 피해를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게 하는 악역향을 주는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술 취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처벌되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이번 사건도 준강간 사건을 다루는 전형적인 통념에 기반하여 판결을 내린 것으로, 단지 피해자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피해 상황에 대한 모든 맥락적 논리와 증거들은 무시되고, 오로지 가해자의 진술만으로 무죄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법원은 피해자다움에 부합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제하고, 무죄추정의 원칙을 명목으로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를 요구하며 성폭력 피해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준강간 사건이 제대로 된 판단을 받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본 사건의 경우처럼 심신상실 및 항거불능 상태의 명백한 증거(cctv 확인)와 일관적이지 않은 가해자의 진술, 비상식적인 정황 등이 증명된 사건조차 무죄가 선고 된다면 추후 그 어떤 준강간 사건의 가해자도 처벌받지 않는 선례를 남기게 되며 피해자의 고통은 가중될 것입니다.

 

준강간죄의 판단에 있어 법리는 현실과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심신상실의 범위, 항거불능의 상태를 피해자중심주의에 입각하여 성인지적 관점으로 읽힐 수 있어야 하고, 최소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의와 상식으로 피해자는 보호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