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성폭력도 보험으로? 정부는 4대악 피해보상도 민영화 하려는가

성폭력도 보험으로? 정부는 4대악 피해보상도 민영화 하려는가

글 _ 김홍미리(hotline)

 

 

‘가정폭력, 성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 현 박근혜 정부가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운 ‘4대악’ 근절 대상입니다. 정부는 그중 가정폭력과 성폭력에 대해 2013년 6월 ‘성폭력·가정폭력 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폭력 예방과 엄정 대응 및 피해자 지원을 강화할 것임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피해 여성이 느끼고 경험하는 현실은 정부 발표 이후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여전히 폭력이 일어날까 두렵고, 폭력이 남기는 상처로 고통 받으며,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어 절망스럽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 한 해 여성 살해 관련 언론보도를 통계 낸 바에 따르면, 2013년 한 해만 최소 123명의 여성이 남편,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상대방으로부터 폭력을 당했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4대악 근절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며, 여성폭력의 현황과 쟁점을 살펴보려 합니다. – 기자 말

‘전시성 정책’논란 불구, 현대해상 ‘4대악 보상보험’ 출시

 

현대해상의 ‘4대악 보험’이 7월 1일 출시됐다. 박근혜 정부가 주요 국정 목표 중 하나로 ‘안전과 통합의 사회’를 제시하고 세부 국정과제로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 등 4대악 척결 정책을 추진한 지 2년 만이다.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 국가 책임을 민간에게 떠넘긴다는 비판, 보험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가 기획한 ‘4대악 보험’은 금융감독원의 심의를 통과했다.

4대악 척결을 외치던 정부는 4대악을 민간 보험 ‘상품’으로 출시함으로써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한 몰이해와 무지를 드러냈다. 어떻게 보면 이 무지는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을 맥락 없이 묶고 ‘4대 악’으로 규정할 때부터 예측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4대악으로 묶이면서 각각의 문제에 대한 맥락적 이해를 간소화했고, ‘악’으로 규정됨으로써 처벌과 규제라는 일률적인 해결방안에 대해서도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성·가정·학교폭력은 왜 일어나는지, 이것은 무엇에 대한 문제인지, 어떻게 해결가능한지에 대한 논의들은 ‘악을 척결한다’는 당위적인 명제 앞에서 쉽게 간과되었다.

그 물음을 간과해온 결과가 바로 7월 1일 출시되는 현대해상의 4대악 보상보험 ‘행복지킴이’이다. 현 정부는 마치 행복지킴이 보험이 ‘4대악’ 피해 회복을 보장하기라도 할 것처럼 홍보하지만 정작 그것은 피해의 대부분을 보상하지 못하며 피해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더욱 강화하는 맥락에 놓인다.

‘4대악 보험’이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인 이유

출시된 4대악 보험이 포퓰리즘 정책인 이유는 이 보험이 기존의 민간 보험사에서 특약으로 보장하고 있는 내용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발견된다. 현 정부는 특약으로 보장할 만한 내용을 굳이 ‘4대악’ 보험의 이름으로 전면화 하였고, 금감원이 나서서 현대해상측에 보험상품의 명칭에 ‘4대악’이라는 용어를 포함시킬 것을 요구할 만큼 ‘4대악’ 관치상품에 열을 올렸다.

‘4대악 보험’에 대한 요청은 보험사들에게도 난처한 일이었다. 성폭력만 해도 손해율을 측정할 수 있는 모집단이 없기 때문에 보험료 책정부터가 어려웠고, 피해의 형태가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액에 대한 범용성도 적용되지 않았다. 가정폭력과 학교폭력도 예외가 아니었다. 예방효과 없이 사후보장만 받는 식으로는 소비자의 가입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보험이 출시됐지만, 증빙과 사후관리 문제는 또 다른 난제로 지적됐다.

때문에 기존의 성폭력 관련 보험은 단독 상품이 아니라 실손 의료비의 ‘강력범죄 특약’으로 설계되었고 30원에서 300원의 특약보험료를 책정, 입원비 및 위로금을 100만 원에서 300만 원 사이에서 보상해왔다. 이번에 현대해상이 출시한 ‘4대악 보험’은 독립상품으로 설계되긴 했지만 기존 보험의 특약보장과 유사하거나 더 적게 보장한다. 더욱이 사망이나 후유장애에 있어서는 기존의 실손 보험이 성폭력만을 특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광범위하게 보장받는다.

이런 비판에 대해 현대해상 강신보 팀장은 지난 6월 11일 <mbn>과 한 인터뷰에서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확대라든가 저렴한 보험료로 보장하는 좋은 취지가 많다”라고 반박한 바 있다. 실제로 출시되는 4대악 보험은 19세 미만의 취약계층자녀들을 대상으로 하며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 학교 등 단체가입만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이러한 반박은 오히려 ➀학교 밖 청소년들을 배제하고 ➁20세 이상 피해자들을 배제하며 ➂예산이 부족한 지자체에 거주하는 청소년들을 배제한다. 또한 ➃취약계층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고 ➄차상위 이상 계층을 사회안전망에서 배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매우 광범위한 배제를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이런 광범위한 배제는 ‘4대악 보험’의 실효성에 더 강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성폭력 피해의 절반이 19세 이상이며, 통계로 드러나는 가정폭력 피해의 80% 이상이 19세 이상임을 고려할 때, 19세 미만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확대’라는 현대해상의 ‘4대악 보험’의 취지에 공감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이 보험의 수혜자는 보험계약을 할 수 있는 예산이 있는 지자체에 거주하는 19세 미만 청소년 중에서도 차상위 이하의 계층이며, 사건이 일어날 경우 4대악 피해를 입증하는 청소년에 한해서 입원비 및 위로금 100만 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그 사이 국가는 무엇을 하나? 현대해상 ‘4대악 보험’이 이들의 피해를 보호하고 치유하기에 앞서 검증하고 측정하는 사이, 국가는 무엇을 할 것인가?

국가가 책임져야 할 ‘4대악’ 피해 보상을 민간보험사에게 떠맡기려 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4대악 민간 보험’의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한다면, 국가가 하기 어렵거나 민간 보험사만이 할 수 있는 전문적인 보장내용을 포함시켜서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4대악 보험이 보장하겠다고 하는 입퇴원비나 진단서 발급비용 등은 이미 성․가정․학교폭력 관련 법률(「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18조,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3조, 제28조,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6조)에 의거하여 국가가 보상하도록 되어 있으며, 4대악 보험이 보장한다는 위로금 100만 원은 피해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민간 보험사에 자신의 피해를 드러내며 애써 증빙할 만큼의 ‘위로금’이기 어렵다.

더군다나 ’19세 미만 취약계층이면서 4대악에 노출된 경우’라면 민간 보험에 기대기 이전에 이미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사회안전망 안에 충분하고도 넘치게 들어와 있어야 한다. 만약 이들이 배제되어 있었다면 그것은 민간 보험으로 보충할 문제가 아니라 국가 책임의 범위를 넓히고 강화해야 할 문제다.

전체 가해자의 85.1%는 친밀하거나 아는 사람

 

[사례①]교실에서 왕따인 학생이 자신을 따돌린 학생들에게 폭력을 가했다면 이 학생은 현대해상 4대악 보상보험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아니면 결국엔 폭력의 희생자가 된 애초의 가해자들이 보상을 받을 것인가?

[사례②] 성폭력 가해자를 고소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되고 오히려 가해자에게 ‘무고죄’로 고소당한 피해자는 현대해상 4대악 보상 보험의 수혜자가 될 수 있나? 있다면 다시 입증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고소 기각과 가해자에 의한 역고소로 인해 일어나는 성폭력 피해자의 2차 피해는 이 보험에서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나? 2차 피해는 증명가능한가? 이것 또한 어렵다면 이 보험은 어디에 필요한가?

[사례③] 아버지에게 맞고 사는 엄마를 보고 자라난 초등학교 5학년 딸은 현대해상 4대악 보상보험에서 가정폭력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나? (엄마는 19세 이상이므로 이미 4대악 보험의 수혜자가 될 자격이 없다) 이 아이의 피해는 무엇이고, 어떻게 입증하며, 이 아이의 피해는 어떻게 보험으로 보상해줄 수 있나?

이 사례들은 성·가정·학교폭력 및 불량식품으로 인한 피해를 민간 보험으로 보상하겠다는 발상이 얼마나 이들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친밀함과 폭력이 동시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피해자는 상황을 즉각적으로 인지하기 어렵고 그 사이 폭력관계는 점차 강화되기 쉽다. 하지만 시간의 경과가 피해자의 합의나 동의, 동조로 이해되면서 오히려 피해는 더 이해받기 어려운 지형을 구축한다.

왕따 학생의 자살이나 가해학생에 대한 보복, 가정폭력 피해자에 의한 가해자 사망사건과 같이 친밀한 폭력은 가해와 피해가 순환적이며 극단적이기 쉽다. 성·가정·학교폭력을 ‘악’으로 진단하거나 ‘악한 개인’에 대한 처벌과 규제강화로 일괄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친밀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하지 않고 설계된 ‘4대악 보험’이 ‘친밀한 관계’와 ‘폭력’의 메커니즘을 얼마나 이해하고 반영할 수 있을까.

일례로 대검찰청 2011년 범죄분석에서 성폭력 가해자는 모르는 사람인 경우가 49.1%, 친밀하거나 아는 사람인 경우가 15.3%로 보고되지만, 2007년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전국성폭력실태조사에서 모르는 사람에 의한 강간(미수)은 15.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전배우자·전애인이 40.6%, 업무상 아는 사이 19.9%, 동네사람 9.6%, 그 외 아는 사람이 15.0%로 전체 가해자의 85.1%는 친밀하거나 아는 사람인 것으로 나타난다.

대검찰청 범죄통계에서 성폭력 면식범의 비율(15.3%)은 실태조사에서의 비율(85.1%)을 훨씬 밑돈다. 피해자와 알거나 친밀한 가해자가 공식적인 사법기관의 범죄 통계에서는 15% 대로 급감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성폭력에 대한 사법적 대응이 ‘통념’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는 사이에 일어난 성폭력의 경우 가해자가 처벌 받는 일은 매우 드물게 일어나며, 그 말은 곧 처벌받지 않는 무수한 폭력 피해들이 부정당하고 삭제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디까지가 피해이고 어디까지가 피해가 아닌가?

현대해상의 4대악 보험은 경찰과의 MOU체결을 통해 경찰이 피해사실을 입증해주면 보험금을 지급할 ‘계획’이라 한다. 이러한 계획은 법원의 판결로 피해를 입증하는 방식보다는 피해입증을 수월하게 할 것이라 기대받기도 한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 여부를 판단하는 자가 경찰이냐 법원이냐는 중요한 변수가 아니다. 여전히 성폭력을 폭행 또는 협박·저항의 여부로 판단하는 관행이 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성폭력이 갖는 특수성에 대한 이해 없이 경찰의 판단에 맡긴다면 성폭력 피해를 의심받을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현실적으로 보험금 지급 근거로 지목되는 ‘경찰의 입증’은 여러 가지 난관을 예정하고 있다. 경찰이 성폭력 피해를 입증하고 가해자를 기소했으나 법원에서 기각한 경우, 이것을 현대해상 측에서 피해로 ‘인정’ 할 것인가. 혹은 학교에서 왕따인 학생이 가해 학생들을 폭행한 경우, 경찰은 피해자를 누구로 특정할 것인가. 이 뿐만이 아니다. 법적으로 가정폭력의 범주에는 신체적 폭력만이 아니라 정서적, 성적, 경제적 폭력이 포함된다고 하지만, 타박상이나 찰과상 등의 눈에 보이는 피해가 없을 때 경찰은 피해사실을 어떻게 입증할 것이며, 보험사는 무엇을 근거로 피해사실을 수용할 것인지도 애매한 문제로 남는다.

보험사의 우려대로 이것을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라고 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가정폭력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볼 것인지는 논쟁적이다. 손실을 최소화해야 하는 보험사 입장에서 이것은 피해가 아닐지 모르지만, 당사자 입장에서 자신의 피해는 이제까지 보고 겪은 가정폭력이 원인일 수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버지의 가정폭력을 목격하고 자라난 자녀의 일상적 불안감이 가정폭력 피해로 존중받고 이것에 대한 보상이 무리 없이 집행되는 일은, 이윤이 인간의 삶보다 먼저인 보험의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성폭력 가해는 특정한 시간대에 특정한 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지만 그 피해는 이후의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가정폭력 또한 간헐적 가해라 하더라도 그 반복성은 가족구성원 모두의 삶을 뒤흔든다. 국가가 민간 보험의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면, 그 보험은 성폭력 피해자의 남은 생애에 대해서, 가정폭력에 노출된 가족원 모두의 삶을 피해 이전으로 복원하고, 다른 삶을 살았을 가능성에 대해서 보상하도록 해야 한다.

성·가정·학교폭력이 국가책임인 이유는 이러한 광범위하고 전방위적인 피해들을 민간 기업이 인지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법에 명시된 가정폭력과 성폭력, 학교폭력에 대한 국가책임성을 직시해야 한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현 정부의 선언이 진실이라면, 실효성도 없고 2차 피해를 양산하는데 적극 기여하는 4대악 민간 보험 허가는 즉각 취소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