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어리와 조각
글. 마녹
지난 주말 뜨거운 더위를 뚫고 집으로 가는 것이 두려워 서점에 들렀다가 강화길 작가의 ‘치유의 빛’을 집어들었다. ‘여성의 몸’이 주제라니 지금 내가 읽어야 하는 책 아닌가. 더구나 주인공 지수가 자신의 몸을 ‘덩어리’라고 일컫는 것을 보며 ‘몸’이라는 것이 관점이나 인식에 따라 얼마나 다른게 명명될 수 있고, 평가될 수 있는 것인지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치유의 빛’에서 지수는 작고 마른 몸으로 존재감이 없는 아이였다가, 갑자기 키가 훌쩍 크고 거대해진 체구로 아이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사람이 된다. 작가는 독자에게 불편함이 들 정도로 주인공의 변화된 몸과 그 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비판적 시선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지수는 스스로의 몸을 덩어리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인식으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지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훌쩍 지나 서른두살의 지수는 큰 키에 불구하고 50kg밖에 안 나가는 깡마른 몸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앞에서는 즐겁게 지내는 듯 하지만 몸무게 몇g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식사를 거르고, 약을 먹기도 한다.
글쓰기 주제가 ‘몸’으로 정해진 뒤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 지 감이 오지 않았다. 최근 내가 경험하고 있는 질병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것인지, 성애화되고 있는 이 사회 여성의 몸을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몸’이라는 단어가 가진 인식 이야기해야 하는지.. 그러다 ‘치유의 빛’에 나오는 ‘덩어리’라는 말을 보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몇 년전 갑작스런 질병으로 수술을 받게 되었고, 수술전 주치의가 동의서를 받으러 왔다. 늘상 진료실에서 담당교수와 대면하다 처음 보는 낯선 분이었다. 그분은 내 침상옆에 쪼그리고 앉아 어디를 어떻게 수술할 것인지, 어떤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지 하나하나 설명했다. 단 1%라도 있을 수 있는 부작용을 언급하다보니 수술을 하는 게 맞나, 의문이 들 정도였다. 몸의 한 켠을 수술한다고 여기저기가 아플 수 있다니 이보다 더 한 연결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수술실에는 나에게 동의서를 받았던 주치의 외에도 많은 의료진들이 있었다. 지나치게 많은.. 그들이 나에게 대략적으로라도 몇 명의 의료진이 있을 수 있다고 안내했던가? 내 몸이 이렇게 여러사람들 앞에서 드러내 보여지고, ‘다루어’ 질 것이라는 것에 대해 왜 아무도 친절하게 이야기하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다. 질병을 가진 사람이지만 가장 내밀한 몸을 스스로 돌보며 사람이건만 인데 그저 하나의 피사체로, 환자라는 정체성으로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지수가 말하는 바로 그 덩어리처럼..
수술 이후의 삶은 오히려 내 몸의 연결감을 다시 느끼는 시간이었다. 잠깐의 수술이었을 뿐인데 후유증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더구나 갱년기를 지나는 여성으로서의 몸에는 더 많은 질병군들이 새롭게 존재를 드러냈다. 한 군데가 멍들면 모두 다 상해가는 과일처럼 자고 일어나면 하나씩 몸이 신호를 보냈다.
그렇게 지속된 통증들의 정도가 심해져 병원을 갔다. ‘무릎과 고관절에 전기판으로 충격을 주는 것과 같은 통증이 있고 그러면 걷기도 힘들게 통증이 지속되다가 몇 분 지나면 괜찮아졌다가, 다시 그 통증이 오는 것이 반복된다’는, 실제 체감되는 통증의 증세를 50%도 구연하지 못 한 나의 말을 들은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고관절은 여기서 이야기 하지 마시고 다른 과에 말씀하세요’. 자신들은 각각 다른 전문의들이 진료를 보고 있고, 지금 이야기하는 증세는 자신의 파트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부위별로 다른 전문의에게 접수하고, 검사하고, 진료를 봐야 했고, 계산도 각 담당의마다 다르게 영수증이 발급되었다. 작은 질병으로 시작되어 연결되어 있다고 감각하던 내게 그건 아니라고 선을 긋는 것 같았다. 내 몸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연결의 존재라던 나의 인식은 즉시 깨졌다. 그들은 내 몸을 부위와 증상별로 조각조각 분절하고 해체했다.
몸이라는 주제로 글쓰기를 하기로 한 뒤 나는 몇 가지 메모를 적었었다. ‘왜 몸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언어들이 더 많다고 느껴질까?’, ‘왜 나는 몸에 대해 질병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많을까?’, ‘왜 사람들은 몸에 대해 ‘평가’하는 말들을 많이 할까?’ 나는 아직, 이 글쓰기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 결국 몸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냥 나의 존재, 나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덩어리, 하나의 조각조각이 아니라 풍성한 삶의 이야기를 한 존재로서의 나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