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4일 경기도 남양주에서 한 여성이 직장 인근에서 살해당했다. 피해자는 가정폭력과 스토킹으로 이미 여러 차례 경찰에 신고했고, 가해자는 다른 성폭력 범죄 전과로 전자발찌를 부착한 상태였다. 또한 피해자에 대한 ‘특수상해’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었으며, 스토킹에 대한 잠정조치도 1~3호까지 내려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고, 피해자 보호조치는 스마트워치 지급과 맞춤형 순찰 등 제한적인 수준에 그쳤다. 결국 피해자는 스마트워치를 통해 경찰에 구조 요청을 했음에도 신고 2분 만에 살해당했다.
이 비극은 결코 낯선 일이 아니다. 지난해 5월 동탄에서 발생한 여성살해 사건에서 피해자는 경찰에 여러 차례 신고했지만, 경찰이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을 ‘머뭇대는’ 사이 피해자는 자신의 주거지에서 납치되어 살해당했다. 같은 해 7월에는 의정부, 울산, 대전에서도 피해자들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자신의 주거지와 직장에서 살해당했다. 그리고 불과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또다시 같은 비극이 반복되었다.
지난해 7월, 이재명 대통령은 “범죄가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피해자의 절박한 호소를 외면한 무능하고 안이한 대처가 비극을 반복적으로 초래했다”고 지적하며 관계 당국의 뼈아픈 자성과 재발 방지를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8개월 동안 관계 당국이 보여준 ‘뼈아픈 자성’은 어디에서도 확인하기 어렵다.
한국여성의전화가 발표한 ‘2026년 분노의 게이지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 내 여성살해’ 피해자는 최소 137명에 달한다. 자녀·부모·친구 등 주변인 피해자까지 포함할 경우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될 위험에 처한 피해자는 최소 673명으로, 이는 전년도보다 23명 증가한 수치다. 특히 경찰 신고와 피해자 보호조치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살해된 피해자와 주변인 피해자는 최소 86명으로 전체 피해자의 12.8%에 달한다. 이는 모두 국가의 무능하고 안이한 대응 속에서 반복되고 있는 비극이다.
이번 남양주 여성살해 사건에서도 관계 당국의 책임 있는 대응은 찾아볼 수 없다. “이번 피의자에 대한 강력한 조치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전자발찌 착용자가) 거주지를 벗어났는지 확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경찰청, 법무부 관계자들의 ‘무책임한’ 발언만 들릴 뿐이다.
사건 발생 이틀 뒤인 3월 16일,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관계자들을 감찰한 뒤 엄하게 조치하라”고 지시했으며, 이러한 ‘문책’만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제시된 정부의 유일한 대책이었다. 경찰청 역시 경찰의 부실 대응에 대해 감찰 조사에 착수했다고만 밝혔을 뿐이다. 관계 부처인 법무부와 성평등가족부는 아무런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다.
국가의 무관심과 무대응 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여성들은 소중한 목숨을 잃거나 잃을 위기에 처해 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의무다. 오늘 여성·시민사회는 더 이상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국가의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대응을 규탄하며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가해자 체포·유치·구속 등 적극적인 조치를 통해 피해자의 일상에서 가해자를 분리하라.
지난해 7월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재범 위험성 평가 제도를 활용하여 가해자에 대한 유치·구속 조치를 적극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남양주 여성살해 사건 직후 경찰청 관계자는 해당 사건에서 ‘재범 위험성 평가’조차 실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가해자는 성폭력 범죄 이력이 있었고, 가정폭력과 스토킹으로 여러 차례 신고된 전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경찰은 가해자를 구속하지 않았다. 한 보도에 따르면 피해자는 가해자를 피해 수차례 직장을 옮겼고, 주변에는 매일 목숨을 걸고 출근한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도대체 언제까지 피해자가 스스로 가해자를 피해 다녀야 하는가. 국가의 역할은 피해자에게 “숨어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를 피해자의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분리하는 것이다.
하나.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를 ‘모니터링’하라.
성평등가족부와 경찰청은 지난 10일 ‘피해자 보호체계 강화’를 위해 경찰과 가정폭력상담소가 협력하여 ‘피해자’를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모니터링해야 할 대상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여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가해자는 전자발찌를 부착하고 있었고 접근금지 등 잠정조치 1~3호 처분을 받았음에도 수차례 피해자 직장 인근에 접근했으며 피해자의 차량에 위치추적 장치를 부착하기도 했다. 가해자의 위반사항을 점검하지 않는 조치는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이번 사건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피해자를 ‘모니터링’하는 것으로 이러한 범죄가 예방되지 않는다. 수사기관이 가해자의 위반 사항을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하나. 가정폭력처벌법을 전면 개정하여 ‘교제폭력’을 포함한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을 제대로 규율할 수 있도록 신속히 입법하라.
법무부는 ‘교제폭력’의 입법 공백을 메우기 위한 대책으로 「스토킹처벌법」 개정으로 ‘교제폭력’을 규율하는 방식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입법이 남양주 여성살해 피해자를 살릴 수 있었겠는가.
남양주 여성살해 사건의 피·가해자의 관계는 ‘사실혼 관계’, ‘동거하던 교제 관계’ 등으로 혼용되어 보도되고 있다. 이처럼 현실에서는 관계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모두 동일하게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의 특성을 가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법 적용을 위해 관계를 엄격하게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교제폭력’을 규율하는 법이 없어서 살해당한 것이 아니다. 피해자는 현행 「가정폭력처벌법」과 「스토킹처벌법」에 따른 피해자 신변 보호조치가 이루어졌음에도 결국 살해당했다. 법무부의 입법안은 현장의 혼란만 가중할 뿐이며 근본적으로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을 해결할 수 없다. 입법 공백은 ‘교제폭력’에만 있는 것이 아닌,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전반에 존재한다.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은 친밀한 관계를 기반으로 하기에 가해자가 피해자의 성향, 정보 등을 이용하여 피해자를 통제하는 특성이 있고, 피해자가 가해자의 통제를 벗어나고자 할 때 그 폭력성이 더욱 극대화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피해자 스스로 가해자와의 관계를 완전히 중단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에 신고 단계부터 공권력의 강력한 개입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고 피해자가 일상을 자유롭게 영위할 수 있도록 가정폭력처벌법 전부 개정을 통한 포괄 입법을 해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최소 22.5시간마다 여성 1명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될 위험에 처해 있다. 주변인 피해까지 포함하면 최소 13.02시간마다 1명이 피해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더 이상의 지연은 또 다른 피해를 의미한다. 국회는 신속한 입법 논의를 통해 지금 당장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
하나. 여성폭력·여성살해 문제 해결을 위한 범정부 종합대책을 마련하라.
여성폭력은 개인의 불운이나 우발적 사건이 아니다. 이는 성차별이 구조화된 사회·문화적 조건 속에서 발생하고 강화되며 반복되는 구조적 폭력이다. 매년 수백 명의 여성들이 목숨을 잃고 있음에도 그 규모가 뚜렷하게 줄어들지 않는 현실은 성차별적 문화와 인식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깊게 자리하고 있으며, 성평등이 제대로 진전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5년 초 윤석열 정권이 탄핵된 이후 성평등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 속에서 출범한 새로운 ‘국민주권정부’가 출범 1년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가.
이제 국가는 반복적인 신고와 도움 요청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살해되거나 살해 위험에 놓이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여성폭력의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관련자들의 인식개선 뿐 아니라 공교육 체계 내에서 성평등 의식을 제고하도록 해야 하며, 관련 법안을 신속히 제·개정하며 여성폭력 피해자 권리보장의 실효를 담보하는 범정부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이행해야 할 국가의 의무다.
2026년 3월 17일
남양주 가정폭력·스토킹 여성살해사건 정부대응을 규탄하는 시민사회 일동
경남여성단체연합, 고흥나누리통합상담센터, 공폐단단(친족성폭력공소시효폐지를외치는모임), 노원여성회, 녹색교통운동, 녹색연합,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대구여성회, 대전여성단체연합, 대전평화여성회, 동해가정폭력성폭력상담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부천행복가정폭력상담센터, 서울여성노동자회, 서울여성회, 서페대연, 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경남여성회 부설 여성인권상담소, 광주여성의전화 부설 한올지기, 광주여성인권지원센터, 대구여성인권센터, 목포여성인권지원센터 디딤, 새움터, 수원여성인권돋음,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여성인권티움, 인권희망 강강술래,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제주여성인권연대, 충북여성인권), 세종YWCA성인권상담센터, 여성가족인권상담센터 한삶, 여성폭력통합지원상담소연대(22개소), 원주가정폭력성폭력통합상담소, 월계우리통합상담소,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인천여성회, 전국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63개소),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134개소), 전국이주여성쉼터협의회(33개소), 전주가정상담센터 부설 가정폭력성폭력통합상담소,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청주YWCA여성종합상담소, 파주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가정폭력통합상담소, 포항여성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고양여성민우회, 광주여성민우회, 군포여성민우회, 서울동북여성민우회, 원주여성민우회, 인천여성민우회, 진주여성민우회, 춘천여성민우회, 파주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강릉여성의전화, 강화여성의전화, 광명여성의전화, 광주여성의전화, 군산여성의전화, 김포여성의전화, 김해여성의전화, 대구여성의전화, 목포여성의전화, 부산여성의전화, 부천여성의전화, 서울강서양천여성의전화, 성남여성의전화, 수원여성의전화, 시흥여성의전화, 안양여성의전화, 영광여성의전화, 울산여성의전화, 익산여성의전화, 전주여성의전화, 진해여성의전화, 창원여성의전화, 천안여성의전화, 청주여성의전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YWCA연합회, 화순어울림가정상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