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가 사법적·비사법적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이나 기관은 인권 감수성의 유무에 따라 조력자가 되기도 하고, 2차 가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감수성은 성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성차별이 공고한 사회임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나 3.8여성대회에서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디딤돌과 걸림돌을 발표한 사례가 있으나, 해당 대상 선정에는 제한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피해자와의 소통 과정에서 2차 피해 사실을 드러내는 데 어려움이 있었으며, 해당 기관이나 담당자의 실명을 거론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피해자도 있었습니다.
이에 본 상담소는 수사 및 사법기관뿐 아니라 피해자 변호사와 가해자 변호사, 공공기관과 학교 내 성인권 담당자, 그리고 언론 등 성폭력 사건의 해결과 피해자의 치유 및 회복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의 성인권 감수성을 날카롭게 점검하고 냉정히 비판하고자 합니다. 올해는 걸림돌만 총 3사례입니다.
〓 걸림돌
<서울00경찰서 여성청소년계>
“딥페이크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성인지적감수성 없이 피해자가 직접 수사종결을 요청하도록 종용하다.”
■ 사건내용
2024년 5월 경, 피해자는 SNS 메세지로 불상의 가해자로부터 피해자의 이름과 함께 피해자의 사진을 이용한 허위합성사진 5장을 받게 됨. 피해자가 반응이 없자 다음날 다른 계정으로부터 또 다른 음란한 사진이 옴. 이 시기에 사건 외에도 피해자의 SNS에 불상의 인물들이 피해자를 성적으로 조롱하는 댓글들이 달림.
■ 추천이유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는 허위 영상물을 이용한 디지털 성폭력의 피해자로서 자신의 촬영물을 불법 제작·유포한 가해자를 찾아 강력히 처벌하고자 하였고 6월경 고소 및 진술을 하였음. 그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힘들었음에도 허위 영상물과 모욕적 메시지를 보내온 계정들을 증거로 정리하여 수사를 요청했음. 그럼에도 수사기관은 SNS계정들만 갖고는 적극적으로 수사하기 어렵다는 태도로 피해자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았음. 고소 후 한달 뒤, 수사기관에서 가해자를 특정하여 찾을 방법이 없어 수사 종결하겠다고 연락이 왔고 피해자도 사건이 종결된 것으로 알고 있었음.
한달 후 담당수사관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옴. 7월에 수사종결하려고 하였으나, 딥페이크성폭력사건 이슈화로 인해 피해자의 사건도 상부의 결재를 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피해자가 직접 수사를 종결해달란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혀달라는 내용이었음. 피해자는 그 부분에 대해서 본인이 결정할 일이 아니라 보았고 스스로 종결을 원한다는 마음도 없었음. 생각해 볼 시간을 갖겠다고 하였으나 이후에도 늦은 밤 시간에 까지 수사관으로부터 연락이 와 부담스럽고 힘들었다고 함. 결국 피해자는 수사관의 연락을 받기가 힘들어 수사기관에 스스로 수사종결 요청을 하게 됨.
디지털 성폭력 범죄는 재유포, 복제, 소지, 시청 등 다수의 가해자들이 범죄 행위에 가담하고 공모하는 구조적 특성을 가지고 있음. 이러한 범죄가 계속되는 한, 근본적인 사회적 변화는 요원함. 특히, N번방 사건 이후 성폭력특별법이 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의 미온적대처는 피해자들에게 깊은 좌절을 안기고 있음. 본 사건도 개선의 여지가 없이 이어져 온 관행의 결과라 봄.이러한 수사기관의 태도는 피해자의 처벌 의지를 꺾고, 오히려 2차 가해를 조장하는 결과를 낳음. 피해자는 자신의 허위 합성물이 얼마나 유포되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심리적 어려움을 겪었으며, 수사기관의 수사 종결 종용은 피해자의 일상을 침해하는 명백한 2차 가해로 이어짐.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은 이미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 그러나 여전히 허위 영상물 합성으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의 소극적 태도와 사안을 가볍게 여기는 문화 때문에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피해자들이 고소를 진행하는 데 큰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음. 따라서 수사기관은 디지털 성폭력, 특히 딥페이크 성폭력의 특성과 피해자의 심리적 고통을 깊이 이해하고, 성인지 감수성을 갖춘 적극적인 수사로 피해자의 권익을 보장해야 함.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응답하며, 이러한 범죄에 단호히 맞서는 것이 공공기관의 책무이자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길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김0정 검사>
“성추행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한 채 불기소 처리한 검찰”
■ 사건 내용
가해자는 팀장, 피해자는 팀원으로서 2023년 6월경에 있었던 회식자리에서 가해자가 옆자리에 있던 피해자의 손을 테이블 아래에서 갑작스럽게 잡거나, 피해자의 얼굴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갑자기 붙잡는 등의 추행을 하였음.
■ 추천 이유
검찰에서는 피해자의 손을 만진 사실은 피해자의 주장만으로는 인정하기 부족하고, 얼굴을 만진 행위에 대해서는 손을 대려고 하였거나 갖다 대었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가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비추어 사회 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위로나 격려의 표시를 넘어서서 추행의 정도를 이르렀다거나 피의자에게 추행의 범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와 달리 피의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자료가 없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음.
피해자는 피해 다음날 얼굴을 만진 것을 목격한 직장동료와의 카톡 대화에서 피해로 인해 당혹스럽고 힘들었던 심정에 대해 나눈 사실이 있고, 고소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피해를 호소하고 있으며, 피해가 없었다면 가해자를 고소할 이유가 없던 피해자의 주장에 대해 정당한 사유 없이 배척해서는 안 되나 검찰은 피해자의 진술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에 대해서는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외면하였음.
반대로 가해자는 피해자의 얼굴을 건드리는 동작을 취했을 뿐 실제로 닿지는 않았다는 주장을 하며 가해자가 피해자의 얼굴을 만지는 것을 목격하였다고 진술한 참고인과 배치되는 주장을 하고 있어 누가 보더라도 가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더 의심되는 상황임에도 가해자에게 추행의 범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며 가해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음.
이러한 검찰의 태도는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적인 문제 등을 답습하여 피해자가 겪은 피해를 축소하고 수사 과정에서 또 다른 2차 피해를 주는 것이며, 더 나아가 피해자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법절차를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 할 수 있음.
<영등포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팀>
“교제관계에서 발생한 여성폭력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 판단을 하다”
■ 사건내용
피해자는 남편과 이혼소송을 진행하던 2023년 초경, 게임을 통해 알게된 가해자와 6개월간 교제한 사이임.
피해자와 가해자가 처음으로 동의하에 성관계를 하게 되었지만, 관계 중 가해자가 너무 강압적으로 성관계를 하였음. 이후에도 가해자의 폭언과 폭행이 지속되자 가해자에게 그만 만나자고 카카오톡으로 통보했지만 가해자는 받아들이지 않았음. 오히려 연락도 없이 피해자를 찾아와,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압적으로 여기저기 데리고 가 폭행, 강간, 감금, 금품갈취, 카메라이용촬영, 유포협박 등의 행위를 하였다고 함.
피해자는 이혼과정 중인 남편에게 가해자로부터의 피해사실을 여러번 이야기한 적이 있기도 하였고, 남편이 피해자가 연락이 안 되자 경찰에 신고하여 출동을 하기도 하고, 피해자가 신고를 한 적도 3-4차례 있었으나 그때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협박하여 경찰에게 아무 일도 없다고 말하고 돌려보냈고, 경찰과 남편이 함께 찾아와 병원까지 가서 치료를 받기도 하였으나 동영상이 유포될 것이 두려워 자진해서 가해자에게 돌아갔었다고 함.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벗어나 취업을 해도 지속적으로 스토킹을 하고 범죄행위를 함. 경제적 착취까지 이어지는 범죄행위의 정도가 심해지자 2023년 12월 경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되었다고 함.
■ 추천이유
(1) 교제하는 사이와 같이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성폭력 및 폭행, 스토킹 사건의 송치 여부를 판단할 때는 ‘친밀함’, ‘교제관계’ 등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음
– 본 사건은 교제관계에서 불법촬영, 유포협박, 강간, 감금, 스토킹 등이 발생한 것으로 교제관계에서 안전하게 관계가 종결되지 못 하고, 유포협박 및 스토킹 등으로 관계가 지속된 것임. 그러나 수사기관에서는 ‘사건 이후에도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 공간에서 / 연인들처럼 / 자녀와 함께 있었다는 것이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며 친밀함을 기반으로 발생하는 성폭력이나 폭력의 특성은 배제한 채 불송치 결정을 내림
(2) 촬영물등이용협박죄는 유포 가능성을 내용으로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의 해악을 고지하였다면 범죄성립이 가능함에도(서울고법 2023노3763, 2024.03.29.) 유포의 실행으로 판단기준 달리하였함
가해자의 동의없는 촬영물이 존재하고, 이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하였음에도 가해자의 진술만으로 동의한 촬영물로 판단하고, 유포협박죄 여부를 유포 여부로 판단하여 아직 발생하지 않은 범죄로 봄. 본 사건은 가해자가 폭행, 강압 등 유형력을 행사하여 강간하고 동의없이 성관계장면을 촬영하였음. 또한 성관계 영상을 가족에게 보내겠다고 협박하여 재차 피해자가 여타 범죄에 대해서도 신고를 하지 못 하였음. 그러나 수사기관에서는 바로 신고를 하지 않고 가해자와 함께 있었다는 것과 함께 ‘포렌식 결과 피의자가 유포한 사실은 없다’는 것을 불송치 이유로 제시함.
(3) ‘상대방 의사에 반하여’, ‘상대방의 불안감 및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를 지속.반복하는 스토킹처벌법의 판단기준을 ‘피해자의 명시적 거절이 있어야 한다’는 기준으로 판단하여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음
가해자가 피해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아다니며 감시하고, 급기야 동료와의 식사를 못 가게 막고 스토킹하는 행위에 대해 명시적 거절의사를 표현한 것이 피해자 진술 밖에 없고, 지속적.반복적 행위라 볼 수 없드며, ‘불쾌하고 성가실 수는 있겠으나 불안감과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행동은 아니라’고 불송치 결정을 내림. 본 사건 피해자의 경우 교제관계에서 강간, 폭행, 협박, 스토킹 등이 지속.반복되었고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이 폭행사진, 상해진단서, 경찰출동기록 등으로 확인되나 수사기관은 이러한 상황과 맥락으로 피해자가 느끼는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이해하는 대신 ‘불쾌하고 성가신 거지 불안함이나 두려움은 아니다’라며 스토킹이나 교제폭력으로 인해 피해자들이 느끼는 감정과 범죄의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 하고 있음
친밀함을 기화로 한 젠더기반 폭력이 중첩, 반복되는 전형적인 교제폭력 사건은 강간이나 폭행의 구성요건 하나하나로만 판단하여서는 안 되며, 범죄의 사실관계 안에 친밀함과 폭력이 어떠한 상황과 맥락으로 자리하고 있는 지 충분히 검토하여 판단하였어야 함.
- 경찰은 스토킹 범죄나 교제폭력으로 피해자가 사망하는 등 강력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스토킹범죄 대응 및 피해자 안전 강화를 위한 방안 ․ 데이트 및 교제폭력 근절 및 피해자 보호 방안을 통해, 교제폭력 및 스토킹 사건에서 피해자 안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더라도 반복되는 행위에 대해 적극 개입하며 대응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실제 현장에서 실효성있게 피해자 보호 및 가해자 처벌을 위한 대응이 강화되고 있는지 의문이 들며, 오히려 교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 및 스토킹피해에 대한 세부 요건을 제시하며, 인식없이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판단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