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십대여성일시지원센터 토론회>후기
현생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기 위한
내가 성매매 이슈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2010년, 거리에서 십대여성을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나중에는 그들이 프로젝트로 활동하고 서울시 사업을 운영하는 과정을 지켜 보면서 사회적 안전망이 전무하다시피한 성착취를 겪는 십대여성들의 동반자가 되어주는 존재라는 생각에 든든함과 위로를 느꼈다. 그들은 서울시립십대여성일시지원센터 나무(나는무지사랑스러워)였다. 그러다가 나또한 평화의샘을 통해 십대여성 청소년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나무의 활동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심지어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곳에 있다니!
그런데 2025년 11월, 13년 동안 공적 지원체계로서 자리를 지키고 꽉 채워 성장하던 나무가 문을 닫게 되었다. 그 마지막의 때에 <2025년 십대여성일시지원센터 토론회>가 열렸다. 나무의 지난 활동을 집약하고 나무의 활동에 어떤 사회적 의미가 있는지, 이를 통해 우리 사회 청소년 지원체계에 대한 청소년들의 경험은 어떤지, 청소년지원체계에서 더 확장해야할 가치는 무엇인지 두루 확인할 수 있는 연구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토론회였다. 서울시가 십대여성지원사업을 중단하는 부당함에 대한 비통한 마음을 안고, 서울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십대여성들을 만나는 수많은 활동가들이 토론회에 모여들었다.
<청소년지원체계, 지원을 넘어 돌봄으로>
돌봄과 개방성으로 일궈낸 십대여성일지원센터 나무의 실천 연구
수차례의 인터뷰와 워크숍 등을 통해 정리한 나무와 함께 성장해온 여러 청소년과 활동가들의 생생한 목소리는 두 시간의 짧은 연구 발표 시간 동안 미처 다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차고 넘쳤다. 연구자들은 이 속에서 나무의 ‘특별함’을 골라내고 벼리고 언어화하여, 직접 나무를 겪지 않았던 토론회 참여자들에게 귀하게 전달해 주었다.
나무의 ‘개방성’은 공간의 구조적 개방성의 차원을 넘어 관계의 윤리로서도 작동해, 청소년들이 진정한 존중을 중심으로 한 만남을 가능하게 했다. 청소년들이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환대받는 경험은 ‘상호의존의 돌봄관계’를 만들어내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나무는 ‘위기’ 청소년 지원의 빈틈을 돌봄으로 채웠지만, 나무의 돌봄노동은 나무의 특별함으로 그치지 않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아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 나무의 개방성과 돌봄 실천에 대해 충분한 가치 평가를 하지 않은 서울시 정책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모든 청소년 기관이 나무와 똑같은 실천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각 기관 고유의 강점과 철학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나무가 실천한 철학과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철학이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뜯어보고 변주하는 시도는 어떤가. 청소년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나무의 실천에 연대하는 것은 십대여성정책의 부재에 대한 저항이기도 할 것이다.
좀 길지만 쿠키 같은 첨언.
내가 만나는 평화의샘 청소년들에게도 나무가 가까이에 있어서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나무 실천 연구 발제문에도 청소년들의 생생한 대화가 무수하지만, 나의 가까이에 있는 평화의샘 청소년들이 나무에 드나들면서 느꼈던 후기들을 소개하고 싶다.
일단은 여기서는 애들이 저랑 솔직히 티비보는 수준 좋아하는 거 놀이 수준이 다르거든요. 근데 거기서는 나랑 애니를 보는 수준이 비슷한 선생님이 있어서 한 시간 반을 그 얘기를 하고 진짜 너무 좋았어요. 진짜 좋았어요! 귀칼이랑 데몬헌터랑 진격거랑 노자키군이랑 다 아는 거예요. 정말 행복한 거예요. 애들은 한 번도 이렇게 맞춰준 적이 없는데, 이렇게 말 잘 통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첫날에는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왔다가 잘못 온 줄 알고 망설였는데, 엄청 반겨주는 거예요. 아직 인사도 안 했는데 먼저 인사해주고 반겨주고.
거기 밥이 좋았어요, 카페 음료도 있고 라면도 있고 덮밥도 있고 그러니까 많이 갔던 거 같아요. 그리고 쉴 공간도 있잖아요, 누워서 보드게임도 할 수 있고 향수 체험도 할 수 있고 할 게 많았어요. 그면 그냥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많이 주셨던 거 같아요.
되게 뭔가 엄청 힘들어서 가출했을 때 따뜻한 공간이 나무였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나 지금 되게 추운데 하고 마음도 아프고 할 때 가출을 했는데 괜히 한 것 같고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자존심도 있고 그래서 바로 들어가기는 싫을 때, 나무에서 버팅기고 있다가 (평화의샘) 샘들한테 전화해서 나무에 있다고 하는 거죠. 나무에 있다고 하면 샘들도 안심하셨던 거 같아요. 그때가 제가 제일 힘들 때였는데 나무에 많이 의지했던 거 같아요.
평화의샘 청소년들과 나무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이런 공간이 지역 곳곳에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로 이어지곤 한다. 연구 발제문의 이 문장들처럼.
꼭 해야만 하는 것이 없는 공백의 시간을 청소년은, 모든 인간은 절실히 필요로 한다. ‘현생’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기 위해서라도 때때로 “현생 도피처”가 필요하다는 모래의 이야기는 현재 어떤 성격을 가진 청소년 공간이 현저히 부족한지, 주무관청이 이러한 성격을 가진 기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려야 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