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죄개정연대회의] 제2차 의견서: 직접적인 ‘폭행‧협박’ 없는 강간 전체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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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적인 폭행협박없이 발생하는 강간 전체 71.4%

: 전국 66개 성폭력상담소 2019.1-3. 상담사례 분석

 

1. 2018#미투 운동은 성폭력이 직접적인 폭행·협박이 아닌 지위와 권세, 영향력 등을 이용하여 발생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었다. 형법상 강간죄나 강제추행죄와 같은 성폭력 관련 법률은 성적 침해의 수단을 폭행 또는 협박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현실에서 성적 침해는 가해자의 물리적인 폭행이나 명시적인 협박을 수반하지 않는 다양한 상황에서 발생하고 있다.

 

2. 20191월부터 3월까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를 통해 전체 66개 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강간(유사강간포함) 상담사례들을 살펴본 결과, 성폭력 피해사례 총 1,030명 중 직접적인 폭행·협박 없이 발생한 성폭력 피해사례는 71.4%(735)에 달하고, 직접적인 폭행협박이 행사된 성폭력 피해사례는 28.6%(29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폭력 신고율이 10% 미만으로 매우 낮고, 현행 수사·재판기관에서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상대방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로 최협의의 폭행·협박으로 해석하고 있는 현실에서 실제로 처벌 가능한 성폭력 피해사례는 28.6%보다 훨씬 낮을 수밖에 없다.

 

3. 현재 국회에는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의사에 반하여또는 동의 없이로 변경하거나 비동의간음죄를 별도로 신설하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는 9개의 형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황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1소위에서 개정안들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기다리고 있다. 이에 208개의 여성인권운동단체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강간죄개정을 위한 연대회의>형법 제297조 강간죄를 개정하여 성폭력 구성요건을 동의여부를 중심으로 규정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4. 현행 형법상 강간죄를 구성하는 폭행 또는 협박은 성폭력 행위 당시에 가해자가 직접적인 폭행·협박을 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그러나 강간(유사강간포함) 상담사례 분석에 따르면, 성폭력 행위 당시에 가해자가 물리적인 폭행이나 명시적인 협박으로 피해자의 저항을 억압한 사례는 전체 사례 중 28.6%에 지나지 않았다. 20세에서 64세인 성인이나 65세 이상 고령자의 경우 각각 31.6%, 37.5%였으나, 19세 미만 미성년자나 장애인인 경우 각각 23.7%, 26.0%, 직접적인 폭행협박을 한 성폭력 사례의 비율은 미성년자나 장애인의 경우에 상대적으로 더 낮게 나타난다.

 

5. 성폭력 행위 당시에 직접적인 폭행협박이 없었던 강간(유사강간포함) 상담사례는 전체 사례 중 무려 71.4%를 차지한다. 이러한 상담사례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로, 가해자가 성폭력 행위 당시에 직접적인 폭행·협박을 하지 않더라도 피해자가 벗어나기 어렵고 도움받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저항을 포기하는 사례들이 있다. 상습적으로 신체적인 위협을 가해온 남자친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저항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생한 성폭력, 입원 중에 의료인에 의해 발생한 성폭력, 여행지에서 가이드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고립된 상황에서 발생한 성폭력 등이 이에 해당한다. 상담사례에 의하면, 많은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와의 관계, 힘 또는 권력의 차이, 피해자의 취약한 상황, 상습적인 학대에 노출된 경험 등에 따라 직접적인 폭행·협박이 없더라도 저항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둘째로, 가해자가 성폭력 행위 당시에 직접적인 폭행·협박을 하지 않더라도 피해자를 속이거나 피해자가 신체적·정신적으로 무력한 상태를 이용하는 사례들이 있다. 피해자가 잠이 든 상황에서 발생한 성폭력, 피해자가 술 또는 약물에 취한 상태일 때 발생한 성폭력,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기습적으로 발생한 성폭력 등이 이에 해당한다. 비록 준강간죄 등에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성폭력을 하는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이라는 구성요건은 최협의의 폭행·협박에 준하는 매우 협소한 경우에만 성립이 인정되고 있어, 두 번째 유형에 해당하는 성폭력 상담사례 중 대부분은 준강간죄 등으로 포섭될 수 없다.

 

6. 가장 최근의 강간(유사강간포함) 상담사례들을 분석한 결과에서 나타나듯이, 직접적인 폭행·협박이 없는 성폭력 상담사례가 전체 사례 중 71.4%를 차지하고 있지만, 현행 형법상 강간죄 등 성폭력 법률로는 이러한 성폭력 사례들을 처벌할 수 없다. 이는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 중 대부분이 한국의 현재 법률에서는 처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음을 의미한다. 국회는 하루빨리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 또는 협박여부가 아니라 동의 없이또는 명백한 동의 없이등으로 동의여부를 중심으로 규정하도록 형법 및 성폭력 관련 법률 전반을 개정하여야 한다. 이는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2018.3.9.)에서 한국 정부에 권고한 사항이며 세계적 흐름이다.

 

7. 독일이나 영국, 스웨덴 등 선진국들은 이미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또는 동의 없는 성적 침해를 강간죄 등으로 규정함으로써 폭행협박 없는 성폭력 사례들을 처벌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에는 인식 가능한 의사에 반하는성적 침해를 기본적인 성폭력 범죄 개념으로 변경하였고, 스웨덴의 경우에는 피해자의 동의 없이성적 행위를 하는 것을 강간죄로 규정하면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의존하는 상황을 이용하는 것을 피해자의 동의 없는 행위로 명시하고 있다. 한국도 이러한 입법 변화를 고려하여 형법상 강간죄 등의 법 개정을 추진하고, 성폭력 피해를 방치하는 한국의 법 현실을 개선하여야 할 것이다.

 

8. 여성인권운동단체들은 1991년 성폭력특별법 제정 운동 당시부터 최협의설을 폐기하고 폭행·협박이라는 구성요건을 개정하도록 촉구해왔다. 2005년에 결성된 <여성인권법연대>는 형법 제297조 강간죄를 동의 없는 성적 행동 등죄로 규정하고 성폭력 관련 법률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2007년 형법 개정안을 제안해 임종인 의원이 발의, 공청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208개의 여성인권운동단체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강간죄개정을 위한 연대회의>는 앞으로도 국회의 행보를 주시하며 성폭력에 대한 패러다임을 폭행 또는 협박에서 동의여부로 전환하기 위한 법 개정 및 성문화 바꾸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이어나갈 것이다.

 

2019. 07. 09.

강간죄개정을 위한 연대회의

(208개 단체/중복기관수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