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발언문
[발언 1] 이효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사무국장)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는 2017년 피해지원 창구를 열고 2020년까지 동의 없이 유포된 피해촬영물을 삭제했다. 삭제지원이 제도화되기 전 이렇다 할 프로세스나 자원 없이 활동가들은 새로운 지원에 뛰어들었다. 촬영물이 보여짐으로써 피해가 구성되는 폭력의 특성상 시공간을 초월한 온라인 공간에 유포된 피해촬영물은 피해 그 자체이면서 증거이고 현장이다. 피해촬영물 삭제는 성폭력 발생 현장을 지속적으로 탐색하고, 피해의 총량을 줄이고, 추가 피해로 확대되는 것을 막는 지원이다. 삭제지원이라는 말조차 없던 그 시기에 피해자는 자신의 영상을 삭제하기 위해 수소문하고 사비를 털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지금의 삭제지원 체계는 이 절박한 요구로 만들어졌다.
당시 한사성 활동가들은 구글에 피해촬영물 키워드를 검색해 유포된 영상을 찾아 삭제했다. 그러나 영상이 삭제되어 더 이상 페이지가 유효하지 않을 때도 피해자의 이름을 검색하면 구글엔 피해촬영물 검색 결과가 무수히 나왔다. 사이트 URL은 연결되지 않지만, 피해자의 이름, 직업, 지역, 피해촬영물 키워드는 고스란히 구글에 노출됐다. 때로는 연관검색어에도 피해자의 이름과 피해촬영물 키워드가 나왔고, 활동가들은 이 정보를 삭제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메일을 보내고, 마땅한 접촉 창구가 없어 온갖 수단을 찾았지만, 구글은 느리고 불성실하게 회신했다.
한사성이 유효하지 않은 URL까지 필사적으로 지우려 한 이유는 텍스트일 뿐이지만 피해 정보가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피해가 진행 중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촬영물을 이용한 성폭력은 촬영물에 붙는 정보 값들로 피해 맥락이 구성된다. 따라서 촬영물엔 항상 어떤 직업을 가진, 몇 살의, 어디 지역의 누구인지 같은 개인정보와 모욕적인 허위 사실이 동반된다. 그저 보는 것이 폭력이 되는 촬영물을 이용한 성폭력은 피해 정보가 알려질 때 검색량이 늘고 조회수가 올라간다. 피해 그 자체가 재현되고 반복되며 영속성을 가진다. 뿐만 아니라, 성행위를 하면 정숙하지 못한 여성이라 비난받는 2차 가해가 여전한 현실에서 성적 촬영물의 존재만으로도 피해자는 사회적 낙인을 겪게 된다. 텍스트만으로도 마치 피해촬영물 원본과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이다.
구글은 접수된 삭제 요청 건들을 수집해 연구 목적으로 ㄹ사이트에 정보를 위탁한다고 했다. 피해촬영물 삭제 요청은 원칙적으로 넘겨져서는 안 되지만 지켜지지 못했다며 무책임한 사과를 했다. 구글은 미국의 DMCA(Digital Millennium Copyright Act) 법을 근거로 삭제 요청을 받는다. 디지털성폭력 피해촬영물 또한 마찬가지다. DMCA는 저작권법으로, 저작권자가 무단 도용된 콘텐츠를 발견해 서비스 제공자에게 삭제를 요청하면, 플랫폼은 즉시 해당 콘텐츠를 내려야 한다.
한사성도 구글을 비롯한 미국 플랫폼에 삭제를 요청할 때 이 법을 활용했다. 피해촬영물이 저작물이라서가 아니라, 이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작물 무단 도용 피해와 디지털성폭력 피해는 당연히 피해의 사회구조적 맥락이 다르다. 따라서 피해촬영물 삭제 요청은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와 피해회복의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하며, 피해 정보를 수집한 플랫폼은 정보가 가진 함의들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구글은 피해자가 자신의 촬영물을 제발 삭제해달라고 요청한 내역을 그대로 ㄹ사이트에 넘기고, ㄹ사이트는 이를 아카이브해 플랫폼의 투명성을 위해 공개했다. 삭제 요청한 자의 정보와 피해 게시물의 URL이 함께 노출됐다. 우리가 구글에 요구하는 투명성은 피해자가 더 쉽게 삭제 요청을 할 수 있는 프로세스, 어떤 기준으로 언제까지 삭제가 될 것인지에 대한 안내, 이후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 얼마나 많은 피해촬영물이 구글에 유통되고 이를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와 같은 것이다.
한사성은 삭제지원을 할 때, 피해자의 게시물이 유포된 플랫폼, 발견 건수, 삭제 요청 결과를 피해자에게 제공했다.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촬영물이 어떻게 처리되고 삭제가 진행되는지 주체로서 알권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구글은 피해자의 삭제 요청 정보가 어떤 연구에 어떻게 쓰이는지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은 채 유출했다.
한사성은 촬영물을 이용한 성폭력에서의 ‘불안’을 중요한 특성으로 보며, ‘불안피해’로 명명해 지원해 왔다. 찍히거나 유포되는 것을 인지할 수 없는 점과 사회적으로 여성의 신체 이미지가 음란물로 취급되는 구조적 배경에서 불안을 사회적 고통으로 설명하고 있다. 누군가의 피해촬영물이 유포됐다는 소식만으로도 여성 전반이 불안을 느끼고, 타인의 피해가 ‘나’의 피해로 구성되기도 하며, 피해자가 누구인지 계속 추측하게 된다. 물리적 폭력과는 또 다른 전방위적인 영향을 끼친다.
즉, 삭제 요청 정보가 온라인에 공개된다는 것은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플랫폼 사업자는 신속한 삭제 처리뿐 아니라, 삭제 요청 정보를 안전하게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으며, 삭제 요청 유출이 단순한 실수라는 구글의 해명은 턱없이 부족하다.
빅테크 기업으로서, 디지털성폭력 피해 삭제 요청을 받는 플랫폼으로서, 이번 사태는 경악스럽고 이후 대응 또한 너무나 무책임해 개탄스럽다. ㄹ사이트는 성평등가족부가 삭제 요청을 한 뒤 13일 만에 한국에서 접수된 건만 삭제했다. 구글은 성평등가족부에 이 사태가 벌어진 경위나 대책 같은 기본적인 설명조차 없이 사과 공문을 보냈다. 지금도 ㄹ사이트에는 디지털성폭력 삭제 요청으로 보이는 무수히 많은 자료가 존재한다. 한국에서 접수되지 않은 요청은 계속 공개해도 되는 것인가? 구글은 여전히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폭력과 혐오가 불리는 거대 자본의 수혜를 받고 있는 구글은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피해를 확산시킨 이 사태에서 간과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또한 젠더 관점에 근거해 삭제요청 관리 프로세스 전면 개선을 요구한다. ‘민감 정보’를 유출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하려면, 이 정보가 왜 민감한 것인지부터 똑바로 이해해야 한다. 구글이 지금껏 강조해 온 빅테크 기업으로서의 윤리와 투명성은 이 토대 위에서 가능할 것이다.
[발언 2] 은수 (한국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안녕하세요.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은수입니다.
여러분, 하루에 구글을 얼마나 사용하시나요? 저도 일하면서 정말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구글은 지난 10년간 전 세계 검색시장, 검색량 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해 왔습니다. 이는 구글에서 검색하면 거의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피해자들이 구글에서 피해URL이 검색되지 않도록 삭제요청을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최대 검색 사이트인 구글에서 피해영상을 ‘검색’할 수 없게 되면 영상이 훨씬 덜 노출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구글은 오히려 피해자의 신상정보가 유출되고 피해URL이 공개된 채로 방치했습니다.
구글은 이번 사태에 대해 몰랐다고, 단순히 “사람의 실수”라고 합니다. 하지만 2020년에도, 2021년에도,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협력기관에 피해자의 신상정보와 삭제요청문이 그대로 공개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과거 기사에 따르면, 당시 구글은 피해자의 요청에 따라 개인정보를 비식별 처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똑같은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정보관리기술을 주력상품으로 내놓는 기업에서 그걸 몰랐다는 게 말이 됩니까? 피해자에게 요청받은 ‘기록’이 있고, 처리한 ‘기록’이 있는데 그저 “사람의 실수”라니요.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시스템의 총체적인 실패입니다.
초창기 구글의 모토는 “악해지지 마라(Don’t be evil)”였습니다.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의 모토도 “옳은 일을 하라(Do the right thing)”였습니다. 2018년 이 모토는 행동강령에서 모두 삭제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구글은 여전히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업처럼 보입니다. 자신들이 보유한 최첨단 기술과 데이터 관리 노하우가 그 모든 가치를 실현해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요.
일례로, 구글의 자회사 유튜브 컨텐츠 광고에 대해 한 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저는 유튜브를 정말 많이 봅니다. 아마 프리미엄 구독 없이 보시는 분들은 아실 겁니다.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면 광고가 나옵니다. 그런데 공중파 방송에서는 결코 방영될 수 없는 시대착오적이고 성차별적인 광고가 너무 많습니다. 바람을 피운 남성과 함께 있는 상대 여성을 응징하는 여성혐오적인 서사, 여성의 몸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플레이 방법을 보여주면서 가슴을 키우면 기뻐하는 여성 캐릭터, 온갖 피부 요철이 말끔히 없어져 기뻐하는 여성의 제품 사용후기 등 하나같이 여성의 몸에 대한 끝없는 규제,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광고들입니다. 이런 광고를 방치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에게 디지털 성폭력의 위험을 인지하고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자율적으로’ 만들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요?
기업은 자신들이 내놓는 상품의 품질을 검수하여 이용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위해를 방지하고 관리·감독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빅테크 기업에는 최근까지도 이런 기본적인 책임조차 묻기 어려웠습니다. 올해 초 영국은 그록 등 AI 기술을 이용한 딥페이크 범죄가 횡행하자 이를 방치한 플랫폼 기업에 강경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는 플랫폼에 직접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법안이 발의되어 시행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불법촬영물, 비동의 성적 표현물에 대해 플랫폼이 삭제조치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시 전 세계 매출액 기준 일정 비율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미국에서는 삭제하지 않은 피해영상물 건수당 최대 약 7,840만원의 벌금을 물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플랫폼 기업이 국가를 경계로 지어진 법망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전 세계에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이고, 트래픽이 곧 수익이 되는 플랫폼 자본의 세계관에서 기업이 범죄 피해를 확산시키는 통로 역할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올해 3월, 한국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발의되었습니다. 삭제의무시한을 정하는 등 중요한 내용이 포함되었으나, 과징금의 기준을 국내 매출액으로 두고 있어 실효성에 한계가 있습니다. 위법사항이 적발되었을 때 법적 책임을 제대로 묻기 위해 정부의 발 빠른 대응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입니다.
구글은 이번 사태에 대해 분명히 책임져야 합니다. 언론사에 보내는 성의 없는 사과 한 줄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직접 이 사태를 해명하고 사과하십시오. 과거부터 현재까지 유사한 피해가 반복된 원인을 명확하게 분석하고, 피해자 정보 유출 피해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십시오. 또, 방치된 피해자의 게시글을 통해 얼마나 많은 유입과 유출이 있었는지 파악하고, 피해 정도와 규모를 전수조사한 보고서를 제출하십시오.
빅테크 기업 구글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하기 위해 구호 몇 개 외치겠습니다.
마지막 어절 세 번 함께 외쳐주십시오.
구글은 언론이 아닌 피해자들에게 직접 공개적으로 사과하라!
구글은 피해자 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대응책을 공개하라!
구글은 피해자 정보 유출 피해규모를 전수조사하라!
[발언 3] 김성순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너무나도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습니다.
불법촬영물과 피해자 정보의 확산에 기여한 것만으로도 큰 문제인데, 이에 대한 피해자의 삭제 요청과 민감개인정보, 그리고 문제의 불법촬영물 url까지 함께 게시되어 버리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피해자 스스로 불법촬영물을 특정하여 삭제 요청했기에 그 삭제요청이 어떤 형태로든 공개되어버린다면 불법촬영물이 실제 누구를 피해자로 했던 것인지가 더욱 극명하게 세상에 알려져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구글은 이미 스스로의 잘못을 명백하게 인정하였다고 합니다. 내부 업무 처리에서의 개인의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그 개인의 잘못이 곧 구글의 잘못입니다.
미국 내에서 미국인의 불법촬영물과 개인정보 유포 문제, 그리고 이에 대한 삭제 요청이 있었어도 이번과 같이 제3의 기관을 통해 공개된다든가 삭제에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 이후 후속 조치가 미온적이었을지 의문입니다.
해외에서의 영향력과 수익 확대에는 노력하면서 컨텐츠의 관리나 내부 통제 절차가 미흡한 이유는 명백합니다. 해외에서의 자신들의 잘못이 기업체에 더 큰 피해로 돌아온다는 인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체 특히 플랫폼에게 잘못보다 더 큰 책임이 따를 법적 위험이 없다함은 그 잘못을 방지할 투자나 내부 통제 절차를 마련 할 필요가 없다고 함과 마찬가지입니다.
불법촬영물 및 개인정보의 무단 공개, 제3자 무단 제공을 아무리 우리 국내법으로 틀어막아도 글로벌 빅테크나 플랫폼을 규제에 나아가지 못한다면 피해자는 유관 단체나 대한민국 정부 기관을 통한 빠르고 쉬운 구제를 받을 길이 없게 됩니다.
구글이 잘못의 전모를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사과, 피해회복, 재발방지에 나아가야 함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 구글만 바라보며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성평등가족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 관련 기관은 현재 우리 법과 제도로 구글에 어떠한 제재를 가할 수 있는지 검토하여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가능한 조치가 없거나 부족하다면 우리 법과 제도의 어떤 부분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검토하여 개선안을 밝혀주십시오.
안 그래도 우리 사회 공론장에 글로벌 플랫폼으로 인한 폐해가 만연한데 불법촬영물의 피해자 보호까지 이 지경이어서는 안 됩니다. 관계 기관의 적극적 조치를 촉구합니다.
이상입니다.
[발언4] 김수아(서울대학교 여성학협동과정 교수)
디지털 성폭력 삭제 요청 정보 유출에 대한 플랫폼의 책임있는 대응 요구
한국의 불법촬영물 피해자들이 글로벌 플랫폼 구글에 보낸 불법촬영물 삭제 요청문과 이에 포함된 개인정보가 구글의 협업 연구기관 사이트에 상당 기간 공개되었다가 뒤늦게 삭제된 것이 알려졌다. 해당 문제를 플랫폼과 연구기관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한국 정부의 요청에 뒤늦게 대응한 것이다. 글로벌 플랫폼 구글은 이전부터 디지털 성폭력 문제에 있어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피해영상물과 관련된 검색어를 확산하거나, 피해영상물을 삭제하는 데 있어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오히려 피해자의 진정성을 증명해야 하는 등의 문제적 면모를 보여왔다. 거기에 더해 지금은 디지털 성폭력의 특성상 피해를 가중하는 개인 정보 유포 문제를 심각하게 인지하고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경위가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어떤 경위라고 하여도 플랫폼 그리고 관련된 연구 기관의 책임을 경감할 수는 없다. 일차적으로 데이터의 수집과 저장 자체가 피해자의 의도에 반한 것이다. 동의없는 자료의 수집 및 활용이라는 점에서 법적이고 윤리적인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연구 기관으로의 이전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동의가 없었던 것은 물론, 이러한 데이터를 관리한다는 것이 단지 ‘기밀 보호’만이 아닌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한 가장 기초적 조치에 해당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무책임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연구 기관에서 데이터를 그대로 노출한 것은 더욱 문제적이다. 사실상 연구 기관에서 타인의 개인 정보, 특히 이번과 같은 민감한 정보에 대한 윤리적 접근을 하지 않은 것이 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개인의 정보가 검색 가능한 공개된 장에 존재한다는 것은 비단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뿐 아니라 통상적인 경우에도 재산상의 피해나 각종 사이버 공격에의 노출을 가능하게 한다. 개인정보를 통해 2차 피해에 노출이 더욱 쉽게 되는 디지털 성폭력 피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연구 기관은 개인 정보를 엄격하게 관리할 것을 요구받으며, 통상의 연구자들은 개인 정보를 식별할 수 없도록 데이터를 처리하여 보관하거나 신상 정보가 포함된 내용은 폐기하는 등의 방식으로 연구 참여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이제 앞으로 피해자들이 연구 목적이라는 말, 신원을 보장하겠다는 말을 신뢰할 수 있을까? 어떤 변명으로도 이 문제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구글은 물론, 연계된 연구 기관의 책임자 역시 실질적 책임을 지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디지털 성폭력 문제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노력들이 이루어짐에도 이를 그저 소용없는 일로 만드는 것이 이와 같은 플랫폼의 무책임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한 실수라는 말로 넘어가거나 사과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구글은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발언5]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안녕하십니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입니다.
지난 9월 8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구글에 접수되었던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의 불법영상문 삭제 요청문이 외부 연구기관에 전달되어 공개되었고, 여기에는 일부 피해자의 이름과 연락처, 직장과 학교, 피해 내용, 피해촬영물 주소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를 중단시키기 위해 삭제와 차단을 요청한 것인데, 오히려 구글이 이 신청내역을 전달하여 피해를 확산시킨 것입니다.
민변 여성인권위원회는 2020년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당시 대리인단을 구성해 피해자들을 지원한 이후, 갈수록 고도화되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국가 차원의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각종 입법 및 정책 운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텔레그램 사건 당시에도 불법촬영물이 구글의 검색어와 검색 결과를 통해 확산됨에 따라 피해자의 신상과 피해촬영물이 노출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대리인단은 이를 막기 위해 구글을 상대로 가처분을 신청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당시 구글 검색에서는 피해자의 인적사항과 피해 사실이 연관검색어로 노출되고, 피해촬영물이 미리보기 형태로 노출되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요구한 것은 피해자가 유포된 게시물과 주소를 하나하나 찾아 끝없이 신고해야 하는 악순환을 막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피해촬영물 데이터베이스와 알고리즘을 활용해 동일한 촬영물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것을 막아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당시 가처분 사건에서 구글의 법률대리인은 가처분 서류의 송달은 받아줄 수 없다며, 알고리즘을 활용한 일괄적인 삭제나 차단은 어렵다는 취지로 답했습니다. 대신 피해자들이 개별적으로 구글에 삭제를 요청하면 잘 처리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구글 미국 본사에 대한 송달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패소할 경우 피해자들이 감당해야 할 소송비용의 부담이 더해졌기에, 대리인단은 끝내 소를 취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글의 책임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구글의 책임을 묻는 절차를 피해자들이 끝까지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런 장벽 앞에서 피해자들은 결국 구글의 삭제 절차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드러난 것은 무엇입니까. 피해자들에게 약속했던 그 삭제 절차조차 안전하게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구글에게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피해촬영물을 지우기 위해 정보를 제출한 것과, 그 정보를 연구기관에 넘겨 공개하는 데 동의한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과 목적 외 이용, 제공을 엄격히 제한합니다. 특히 피해자의 성적 피해내용은 개인정보보호법상 민감정보에 해당할 수 있고, 법은 이러한 정보의 처리에 원칙적으로 다른 개인정보 처리와 구분되는 별도의 동의를 요구합니다. 삭제를 위해 받은 정보를 적법한 동의나 다른 법적 근거 없이 연구 목적으로 제공했다면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행위에 해당합니다. 구글이 일반적인 정보 공유 안내를 해두었다고 해서, 피해자의 신상과 성적 피해내용을 원문 그대로 외부 기관에 제공하고 공개하는 데 필요한 동의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구글이 검열의 투명성을 확보하겠다는 명분도 피해자의 신상 공개를 정당화하지 못합니다. 피해촬영물을 지워 달라는 요청은 부당한 검열 요구가 아닙니다. 구글 자신이 운영하는 검색 사이트를 타인의 인격권과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무분별한 폭력의 장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라는 것입니다.
이번 사태는 개인정보 유출의 문제에 그치지도 않습니다. 성폭력처벌법상 촬영물 제공, 전시 혐의로 수사해야 할 사안입니다.
대법원은 아동·청소년성착취물 사건에서, 링크 게시를 포함한 일련의 행위가 단순한 소개나 연결을 넘어 성착취물에 별다른 제한 없이 바로 접근할 수 있는 상태를 실제로 만들었다면, 배포하거나 공연히 전시한 것과 실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공개된 링크를 통해 피해촬영물에 실제로 접근할 수 있었는지, 해당 정보의 제공과 공개를 누가 결정하고 집행했는지 밝혀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불법촬영물 유통방지 의무의 이행 여부도 조사해야 합니다. 전기통신사업법은 조치의무사업자에게 자신이 운영·관리하는 정보통신망에서 불법촬영물의 유통을 인식한 경우 필요한 삭제·접속차단 조치를 하도록 하고, 일정 사업자에게는 기술적·관리적 조치도 요구합니다. 구글이 통제하는 서비스에서 이러한 의무가 실제로 이행됐는지 조사해야 합니다.
지금도 공적 삭제지원으로 지워지지 않은 촬영물 때문에, 실효성을 확신하기도 어려운 디지털 장의사에게 수천만 원을 지출하는 피해자들이 있습니다.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자신의 시간과 돈을 들여 촬영물을 추적하고, 삭제를 요구하고, 다시 유포됐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여기에 삭제를 요청하면서 제출한 정보마저 공개될 수 있다는 두려움까지 더해졌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앞으로 피해자는 범죄 피해 회복을 위해 자신의 자원을 이용하여, 온전히 사적인 구제수단에 의존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범죄 피해자의 회복과 재발 방지를 나서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국가는 물론 범죄를 가해, 방조하는 기업이 부담해야 할 피해 방지와 회복의 책임을 피해자의 과제로 떠넘겨서는 안 됩니다.
구글은 한국에서 접수되는 삭제 요청 자료를 외부에 제공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예외 없이 적용하고, 그 이행 여부를 공개하십시오. 피해자가 신상 유출을 걱정하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안전한 비공개 삭제 절차를 보장하십시오.
각 피해자에게 자신의 어떤 정보가 유출되어 공개되었는지, 이후 어떤 조치가 이루어졌는지 통지하십시오. 구글이 관리하는 검색 결과와 이미지, 자동완성 연관 검색어에서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실효적인 보호체계를 마련하십시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이미 구글의 정보 제공 경위와 적법한 처리 근거, 민감정보 동의 절차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성평등가족부도 구글로부터 한국에서 접수되는 삭제 요청 자료를 외부에 공유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후 대응과 약속만으로 이미 발생한 피해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유출의 정확한 경위와 범위, 법 위반 여부를 밝히고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회복 조치를 해야 합니다.
6년 전 피해자들이 법적 구제의 문턱에서 돌아서야 했던 일을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민변 여성인권위원회는 피해자들과 함께 끝까지 그 책임을 묻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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