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동원 성폭력 사건 1심 판결에 대한 공대위 입장문

색동원 성폭력 사건 1심 판결에 대한 공대위 입장문

피해자의 ‘저항이 없었다’는 이유로
장애인 거주시설의 구조적 성폭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를 규탄한다

🔥 입장문 전문 : https://actnow.do/rhF8

2026년 9월 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9부 형사부(이하 ‘재판부’)는 인천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색동원 성폭력 사건 피해자 3명에 대해 유무죄를 다르게 판단하였다. 그 기준은 피해자의 ‘저항’이었다. 재판장은 “성폭력 행위에 대해 저항이 어려운 장애인을 상대로 한 범행일지라도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의 항거를 불능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이 존재했다고 볼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 다른 2명의 피해에 대해 유죄로 인정한 것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 행위를 하였고, 피해자가 하지 말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피해자의 저항은 몸이 굳는 것, 침묵, 집에 가야 된다 등 말이 아닌 우회적인 방식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현실에서는 더욱 많다. 피해자가 아무 말 하지 못했던 것은 가해자가 시설장이라는 권력을 갖고 강요에 의해 폭력을 자행했고, 일상적으로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하고 무시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70여년간 국가는 폭행‧협박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강력한 통념에 갇혀 성폭력 피해자의 저항여부로 가해자의 유형력을 판단했다. 그 결과, 수많은 성폭력 가해는 정당한 처벌에서 면죄부를 받았고, 피해자들의 인권은 보장받지 못했다. 9월 2일의 판결도 가해자에게, 통제와 권력이 작동되는 거주시설의 구조적 폭력에 면죄부를 주는데 일조했다.

2023년 대법원은 “‘폭행 또는 협박’은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로 강력할 것이 요구되지 아니하고, 상대방의 신체에 대하여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일반적으로 보아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강간죄를 입증하기 어렵게 했던 협소한 폭행‧협박에 대한 ‘최협의’ 기준을 폐기하고 폭넓게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같은 대법원 판례조차 고려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폭행, 협박이 아닐지라도 위력 사용, 항거불능, 항거곤란 상태에 있음을 이용한 가해로 해석할 수 있으나, 가해자가 위력을 사용하여 장애를 이용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천편일률적인 매뉴얼처럼 적용하는 ‘최협의’의 폭행, 협박 기준은 당장 폐기되어야 한다. 더 이상 피해자가 위험을 담보로 강력하게 저항하는 것이 가해자의 유형력의 유무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색동원 현장 검증 당시 재판장은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현장 검증은시설의 폐쇄적이고 구조적 폭력이 은폐되기 용이한 실체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시설의 실체는 재판을 통해 밝혀지지 않았고 피해자의 목소리는 묵살되었다. 동일한 피해에 대해 장애인 복지법상 위반은 인정되고, 성폭력 처벌법 상 강간죄는 인정되지 않았다. 시설장의 권력에 의한 구조적 성폭력이 법의 부당한 기준에 의해 선별되고, 분절적으로 판단되는 기이한 판결을 우리는 목격하였다. 2026년 9월 2일은 인권침해로 인해 색동원으로 전원되었지만 또 다시 피해가 발생하는 한국사회의 거주시설 내 인권침해를 묵인한 참담한 날이다.

색동원 성폭력 사건에 대해 사회적 공분이 일어나고 이슈화되면서 특별 수사팀이 꾸려졌지만 피해자들 다수의 사건은 현재 경찰 수사단계에 멈춰있고 방치되고 있다. 재판부가 아직 수사조차 시작되지 않은 수많은 피해자, 심층조사 보고서에 온 몸으로 표현한 다른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기억했다면 무책임하고 부당한 판결을 할 수 없다. 색동원 사건에 공분한 한국사회도 이슈화 이면의 현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시설감금은 성적권리의 침해를 야기한다. 재판부는 “가장 안전하게 보호받아야 할 거주시설내에서 각 범행을 당하였는바, 피해자가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과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그러나 일상 전반의 결정권을 보호라는 이름으로 시설장이 독점하는 구조에서 피해자가 항거곤란한 환경이었음을 재판부는 묵인하였다. 그리고 시설은 가장 안전한 곳이 아니다. 구조적 폭력이 은폐될 수 있는 곳이다. 그러한 현실에 대해 15년 선고는 납득할 수 없다. 장기간 폐쇄적인 시설에서 시설장이 지위와 권력을 악용하여 다수의 피해자에게 자행한 심각한 범죄인 점을 고려하면 15년은 엄중한 책임이 아닌 가해자에게 ‘아주 최소한의 책임’만을 물은 것이다.

도대체 재판부는 시대에 역행하여 피해자의 저항에 책임을 전가하고 거주시설의 구조적 성폭력에 무죄를 선고한 판결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 재판부는 방치되고 있는 수많은 피해자들의 사건에 대해서도 가해자를 면죄하는 정당한 명분을 제공하였다. 우리는 사법부의 정당한 처벌만이 정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시설에 감금되어 폭력을 몸으로 겪어낸 피해자들이 감금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 안전하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정의를 위해서도 싸우고 있다. 그 길에 사법부의 비겁한 판단이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피해자의 권리와 일상이 온전히 회복되고, 거주시설의 구조적 폭력이 근본적으로 해체될 때까지 우리의 투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26년 9월 3일
인천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색동원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