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비동의간음죄 개정 계획이 없다’라는 법무부·여성가족부 입장에 분개한다

 

1월 26일 여성가족부는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피해자의 법 제도적 권리보장>을 위해 성폭력 관련 법률 개정을 검토한다는 내용을 포함하였다. 세부적으로는 그동안 수많은 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가 논의해온 형법 제32장의 강간 및 추행의 죄를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죄로, 「형법」 제297조의 강간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여부’로,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에 피해자의 과거 성이력 증거 채택 금지조항 신설 등을 검토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법무부는 ‘비동의간음죄 개정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비동의강간죄 신설은 성범죄의 근본 체계에 관한 문제이기에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고, 해외 입법례에 대한 연구를 포함하여 충분한 논의와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면 관련 논의와 연구를 제안하였음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정책에 대한 고민이나 대안없이 ‘개정계획이 없다.’며 반대의사를 표하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이다.

 

여성가족부 또한 양성평등정책으로 피해자 중심의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말이 무색하게 비동의강간죄 개정이 쟁점화되고 정부·여당 인사들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자, 계획안을 발표한 지 하루도 안 되어서 취소하고 급히 해명에 나섰다. 여성가족부는 여성폭력이 발생하는 사회구조적 요인을 진단하고 정책을 통해 성평등이 실현될 수 있도록, 정부는 물론 시민사회의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여야 할 의무와 권한을 가졌다. 그럼에도 정부의 눈치만을 보며 성평등정책 전담부처로서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강간죄 개정 관련한 논의는 2015년 제1차 양성평등기본계획부터 논의되어 온 과제이다. 20대 국회 다섯 개의 정당에서 대표 발의했던 법안이 10개에 달한다. 222개 여성인권 단체와 전문가들은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를 구성하여 성폭력 구성요건을 ‘동의’여부를 중심으로 규정할 것을 지속해서 촉구하며 다섯 차례의 의견서 제출하고, 시민사회의 의견을 경청하기 위한 각종 토론회와 캠페인 등을 진행하여 왔다. 그러나 법무부 및 여성가족부는 이러한 시민사회의 의견과 활동을 묵살하고, 계획이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2019년 1월~3월동안 전국 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강간 상담사례 1030명 중, 폭행·협박 없이 발생한 성폭력 피해사례가 71.4%로 달한다. 다수의 성폭력 사건이 폭행과 협박이 없이 피해자의 저항이 어려운 상태와 상황, 취약한 처지를 노리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현행법으로 처벌하기가 어렵다. 국제적 기준 역시 동의 여부로 강간을 판단하도록 변화하였으며, 이미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18년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동의로 개정할 것을 한국정부에 권고하였다. 또한 2021년 유엔인권이사회는 전 세계 강간 사건을 조사하고 이에 대한 특별보고서와 입법모델을 발표하며, 국내에서 적용 가능하도록 명문화할 것을 강력히 제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퇴행적인 의견을 고수하는 정부에 분개할 수밖에 없다. 법무부는 성폭력의 현실과 현행법의 간극을 바라보고 범죄자를 강력히 처벌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보완하여야 한다. 여성가족부는 성평등 정책이 법과 사회에 반영될 수 있도록 각 부처 및 기구들을 감시하고 압박하여야 한다. 성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이다. 이를 무시하고 신중한 검토를 운운하며 시민들을 기만하는 정부는 부끄러움을 알아야 할 것이다.

 

2023년 1월 27일

 

천주교성폭력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