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어떤 선택을 하든 안전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 〈지우러 가는 길〉의 주인공 윤지는 고등학교 1학년이다. 윤지는 임신중지를 위해 룸메이트 경선의 돈을 훔치고, 브로커를 통해 임신중지약을 구한다. 낙태죄가 폐지되었다는데, 이 아이는 왜 병원이 아닌 이런 길로 내몰려야 했을까.

 

영화는 임신중지와 출산 중 어느 한쪽을 정답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윤지는 임신중지를 결심했다가 출산으로 마음을 돌려 미혼모 시설을 찾아가고, 다시 임신중지를 선택한다. 임신과 출산에 관한 선택은 한 번의 결정으로 끝나지 않으며, 사람은 자신의 상황과 마음에 따라 생각을 바꿀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얼마나 ‘올바른가’가 아니라, 어떤 선택을 하든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 있는가이다.

 

윤지의 여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룸메이트 경선은 묻는다. “좀 정상적으로, 병원 가면 안 돼?” 아프면 병원에 가고, 임신하면 의료기관에서 상담받는 것이 우리가 아는 ‘정상적인’ 경로다. 그러나 윤지에게는 그 길이 막혀 있다. 부모는 윤지를 두고 떠났고, 병원은 보호자의 동의를 요구한다. 부모가 없다면 아이 아버지나 선생님을 데려오라고 한다. 그러나 윤지를 임신하게 만든 사람은 잠적한 성인 남성 교사다. 윤지가 경선을 쏘아보며 내뱉는 “정상적으로?”라는 말이 영화 밖에서도 오래 남는 이유다. 우리는 왜 병원에 가지 않느냐고 묻기 전에, 왜 병원에 가는 길이 이토록 어려운지를 물어야 한다.

 

윤지는 임신과 출산, 임신중지, 돈, 자신의 미래까지 홀로 감당해야 한다. 반면 윤지를 임신하게 만든 성인 남성, 윤지를 보호하지 못한 가족과 학교, 의료체계와 사회의 책임은 희미하다. 사회는 임신한 사람에게 쉽게 묻는다. “그래서 네가 책임질 거야?”

 

그러나 책임을 요구하려면 먼저 책임질 수 있는 조건이 있어야 한다. 아이를 낳아 기르려면 주거, 소득, 돌봄, 교육이 필요하다. 임신을 중지하려면 정확한 정보, 안전한 의료서비스, 적절한 약물, 사후관리가 필요하다. 어느 쪽도 개인의 의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회는 선택의 결과를 개인에게만 감당하게 하며, 자원이 부족하고 보호받기 어려운 사람일수록 그 무게는 더 커진다.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에도 제도적 공백은 이어졌다. 임신중지 약물은 정식 의료체계 안에 들어오지 못했고, 음성적 약물 유통과 안전 문제가 계속 제기되어 왔다. 2026년 9월 16일, 정부는 임신중지 약물을 내년 1분기 중 정식 도입하는 방안을 밝혔다. 임신 9주 이내를 대상으로, 도입 초기 2년간은 의료기관에서 의사가 직접 처방·조제하는 방식이다. 음성적 유통으로 인한 안전 문제와 의료 접근성의 제한이 그 이유였다. [1]

 

이는 단순히 약물을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임신중지를 선택한 사람이 더는 비공식적이고 위험한 경로에 의존하지 않도록 의료체계가 책임을 지는 문제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임신 초기의 약물 임신중지를 의료적 방법으로 인정하면서, 정확한 정보와 품질이 보장된 약물, 필요할 때 의료진의 지원과 의료기관으로 연결되는 체계를 강조한다.[2] ‘혼자 할 수 있다’와 ‘혼자 하게 내버려둬도 된다’는 전혀 다른 말이다. 집에서 약물을 복용할 수 있다는 것이 의료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제대로 된 의료체계라면 어떤 방식으로 임신중지를 하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곧바로 의료기관에 닿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도입 방안에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이 많다. 건강보험 적용 여부와 가격, 처방할 수 있는 의사의 범위, 그리고 미성년자의 보호자 동의 여부가 그렇다. 정부는 이를 가이드라인에서 정하겠다고 한다.

 

이 마지막 쟁점은 윤지의 문제와 정확히 겹친다. 윤지는 부모가 없고, 병원은 보호자를 데려오라고 했다. 보호자 동의가 필수 요건이 된다면, 약이 정식으로 도입되어도 윤지는 다시 병원 밖에 머물 수 있다. 비용도 마찬가지다. 윤지가 룸메이트의 돈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가격이 높으면 정식 도입은 또 다른 문턱이 된다. 정부는 청소년과 저소득층, 농어촌 지역 거주자의 접근성을 살피겠다고 밝혔다. 그 약속이 실제로 윤지 같은 사람에게 닿으려면, 기준은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에게 기댈 수 없는 청소년을 전제로 만들어져야 한다.

 

 

 

윤지가 다시 임신중지를 시도할 때, 경선은 윤지의 곁에서 걱정 어린 눈빛으로 손을 잡아준다. 아프지 않느냐는 물음에 윤지는 답한다. “네가 같이 있으니까, 괜찮아.”

 

경선은 미혼모의 딸이다. 자신이 엄마의 인생에 짐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경선은 엄마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며 돈 모으기에 급급하다. 지금의 윤지처럼 숱한 선택과 책임의 고비를 넘어왔을 경선의 엄마는 말한다. 너를 낳은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그런 경선이 윤지의 ‘지우러 가는 길’의 동행자가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임신한 사람에게 “왜 그렇게 선택했느냐”고 묻는 사회가 아니라, “어떤 선택을 하든 안전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묻는 사회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후 7년, 그동안 책임을 회피해온 국가도 이 길에 동행해야 한다.

 


 

참고자료

[1]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정부, 임신중지 약물 정식 도입 추진」 (보도자료)

[2] WHO, Abortion care guideline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