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사무실 구석 1열 : 활동가 인권감수성 ‘뿜뿜’하는 날

사무실 구석 1: 활동가 인권감수성 뿜뿜하는 날

 

반성폭력 활동가들은 성폭력뿐만 아니라 먼지같이 우리 안팎에 존재하는 차별과 혐오, 그곳에서 분투하거나 불평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시선을 멈추지 않고, 함께 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활동가의 소진예방 활동으로 다양한 인권 & 젠더이슈를 담은 다양성 영화를 시청하고, 그 안에서 느낀 것들을 나눕니다. 올해 어떤 영화를 보았고 무엇을 느꼈는지 활동가들의 수다를 들어볼까요?

 

2022년 03월 14일

<우리는 매일매일>

감독 강유가람 / 다큐멘터리 / 대한민국 / 75분 / 2021

미투운동이 한창이던 어느 날, 감독은 90년대 말 함께 가열차게 활동하던 친구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찾아 나섭니다.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건 뭘까?”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친구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페미니스트들의 오늘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을 90년대 영페미의 다양한 활동들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었고, 각자의 직업과 자리에서 여전히 부당함을 참지 않고 변화를 위해 싸워가는 힘을 볼 수 있어 감동이었습니다. 이 영화 시청 당시 상담소에서 육아휴직 대체인력인 활동가가 있었는데, 우리는 매일매일 속 페미니스트들을 보며 용기를 얻어 상담소 계약 종료 후에도 열정적인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선거 이후 또다시 큰 격변을 맞이하게 될 여성운동 안에서 우리의 마음을 영화 속 페미니스트들의 투쟁과 함께 다 잡을 수 있었습니다.

 

♦ 2022년 04월 25일

<최선의 삶>

감독 조아혜 / 드라마 / 대한민국 / 109분 / 2021

‘최선의 삶’은 교육이라는 불평등한 구조에서 소외되거나 부적응을 겪는 청소년들이 그 구조 밖으로 탈출하며 폭력과 빈곤, 불안 등 오히려 더 큰 불평등을 겪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청소년기 아직 안정감이나 신뢰감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의 모습은 활동가들의 청소년기를 떠오르게 하고, 어른들의 잘못된 잣대들이 또래 간 빈부격차, 관계 안에서의 권력, 그로 인한 청소년기 따돌림과 삶에 대한 불안 등으로 나타나는 것을 직면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현재 청소년 정책 혹은 교육정책이 학교 밖 청소년들을 담아내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도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원작 소설이 궁금해서 읽어보았는데 영화 속 주인공보다 더 강렬하고 더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책도 함께 추천드립니다!

 

♦ 2022년 07월 25일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감독 최진성 / 다큐멘터리 / 대한민국 / 103분 / 2022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는 2020년 한국사회에서 충격에 빠트렸던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사건’의 실체를 들여다 보는 이야기로 왜 N번방을 사이버 지옥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이 영화에는 N번방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범죄자 검거에 최선을 다한 ‘추적단 불꽃’과 디지털성범죄의 문제에 깊이 파고 들며 연대하는 기자, 텔레그램은 검거가 힘들다는 인식을 깰 수 있게 철저히 수사한 사이버수사대, 가해자들의 협박과 조롱에도 시민들에게 이 범죄를 알리기 위해 노력한 방송국 PD등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함께 했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용기를 내어 피해사실을 드러내 준 피해자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연대와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N번방 사건으로 인해 카메라이용촬영, 제작, 유포 등에 대한 법률이 강화되었지만 재판에서 가해자 조주빈이 받은 형량은 여전히 부족하게만 느껴지고 ‘추적단 불꽃’이나 N번방 사건을 모니터링하는 ‘리셋’을 빙자하며 피해자들을 또다시 이용하는 제2의 N번방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는 등 불법촬영 피해는 지속되고 있어 이를 뿌리 뽑는 방법은 무엇일까,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고통을 겪어야 이 수요가 사라질까 씁쓸한 고민을 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 2022년 11월 1일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감독 레이철 리어스 / 다큐멘터리 / 미국 / 86분 / 2019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은 강철보다 더 단단한 정치권의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돈과 권력으로 움직이는 정치권에 기업 후원금, 기득권의 후보추천 등을 거부하고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목소리내고, 직접 참여하는 풀뿌리 정치가 필요하다고 외치는 네 명의 여성이 정치에 도전합니다. 인종차별, 기후위기, 미국의 만연한 의료보험제도, 노동이나 빈민층의 불평등 문제 등 굳건한 신념과 강인한 의지로 재력과 수완이 뛰어난 기득권층에 맞섭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우리나라의 정치권을 떠오르게 합니다. 전체 의원의 18.5%에 그치는 여성의원수, 그마저도 주요 당직 임명과 선출에서 불이익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하는 의원수는 42.3%이고,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소수정당의 기회를 앗아간 거대양당의 위성정당 창당으로 가로막혔습니다. 소수자를 대변해줄,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정치인이 절실한 요즘, 이 영화는 어떤 과정과 결과를 담았는지 시청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2022년 11월 30일

<수프와 이데올로기>

감독 양영희 / 다큐멘터리 / 일본, 대한민국 / 118분 / 2022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역사가 할퀴고 이념이 만든 운명을 감내하며 살아온 감독의 가족사를 압축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양영희 감독은 재일한국인 2세로 그의 부모는 조총련의 열혈 활동가였고, 세 오빠는 1959년 말부터 1984년까지 이어졌던 ‘재일조선인 북송사업으로 북한에 가게 되었습니다. 일본에 거주하면서도 일본인 사위를 반대하고, 남한의 제주도 출신임에도 북한을 선택하는 부모를 이해할 수 없던 감독은 어머니가 털어놓은 제주 4.3사건을 들으며 가족사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영화를 보며 제주 4.3 사건이 영화 혹은 역사속 한 사건이 아니라 여전히 사람들의 삶에 슬픔과 고통을 주는 일처럼 느껴졌고, 나와 내 가족 일인 것처럼 느껴지며 내내 흐르던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또한 국가에 의한 무고한 시민들의 폭력피해였고, 그에 대한 항쟁이었음에도 여전히 ’사건‘이라 부르는 현실에 대해서도 분노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4.3과 관련해서는 수많은 문학 및 미술작품들이 있는데 이 영화 또한 한 가족의 이야기로 다시 한번 되짚는 기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