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아니 에르노의 <사건>을 읽고, 낙태죄 폐지 1년 4.10 공동행동에 다녀온 이야기

 

     

 

최근 아니 에르노의 <사건>을 읽게 되었습니다. (현재 영화로도 상영 중인 <레벤느망>의 원작 에세이입니다.) 프랑스에서 낙태가 불법이던 1964년, 당시 대학생이었던 아니 에르노는 임신을 하게 되고 일기장에 “아무것도 없음”을 적으며 생리가 시작하기만을 기다리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후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겪게 되는 생생한 임신 중절 경험이 담겨 있습니다.

 

원치 않은 임신은 대학생인 그녀를 계급적으로 추락시킵니다. 임신했다는 말을 하면 모든 남성들이 그녀를 ‘섹스를 경험해 본 여자’ 취급을 하며, 대놓고 혹은 은근히 그녀를 모욕합니다. 심지어 그녀를 보호해야 하는 의사들까지 욕설을 내뱉기도 하고, 유산유도제를 원하는 그녀에게 오히려 몰래 반대의 효과를 가진 약을 처방해주기도 합니다.

 

스스로 해내야 된다고 깨달은 아니 에르노는 뜨개질 바늘로 중절을 시도하기도 하고, 스키장에서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가 구르기도 하며 처절하게 중절을 위해 노력을 하다가 좌절합니다. 그녀는 결국 친구에게 빚을 져서라도 천사(임신중절해주는 여성)를 만나게 되고 , 드디어 탐침관을 삽입하는 중절 수술을 하게 됩니다. 탐침관을 품고 지낸 4일간의 묘사가 압도적입니다.

 

출혈로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그녀는 성공했고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36년이 지나 노년이 되어서야 털어놓습니다. 긴 시간만큼 중절을 하기까지 그녀가 겪은 모욕이 잊히지 않았으리라 여겨집니다.

 

 

4월 10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서울 보신각에서 진행된 낙태죄 폐지 1년 4.10 공동행동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가 보장될 때까지”집회에 다녀왔습니다. <사건>의 배경인 프랑스는 여성들의 긴 싸움 끝에 1975년 낙태죄 합법화가 되었지만, 지금 우리는 3년전 낙태죄 위헌 판결이 나고, 2021년부터 낙태죄가 폐지되었음에도, 여성들이 임신중지 시도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구체적인 대안이나 정책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햇빛 쨍쨍한 날 우리 모두는 뭉쳐 지난 1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정부, 보건복지부, 식약처, 국회가 해야할 일들을 촉구하였습니다.

 

#식약처는 유산유도제 승인하라

#건강보험은 임신중절 지원하라

#국회는 대안입법 마련하라

#정부는 혐오정치 그만두고 성차별정치 실현해라

 

<사건> 속 이야기를 마음 속에 품은지 얼마 안되어 집회에 참여해서인지, 발언자들의 이야기와 지금 임신 중지와 관련된 현실이 더 간절하게 다가왔습니다. 모두가 모욕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그날까지, 함께 싸우리라 한번 더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