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상담소 활동가 감시단 “날카로운 시선”

 

 

성폭력피해자가 사법적/비사법적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나 기관들은 인권감수성 유무에 따라 조력자가 되기도 하고, 2차 가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들이 가진 감수성에 따라 우리는 성평등한 사회로 더 나아가기도 하고, 성차별이 공고한 사회임을 알아기도 합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나 3.8여성대회 등에서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디딤돌.걸림돌을 발표하였으나 그 대상에 제한이 있었습니다. 이에 본 상담소는 수사 및 사법기관뿐 아니라 피해자변호사 및 가해자변호사, 공공기관/학교 등의 조직내 성인권담당자, 언론 등 성폭력사건의 해결과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의 과정에 영향을 주는 사람들의 성인권감수성을 날카롭게 바라보고, 냉정하게 비판하고자 합니다. 올해는 총 3사례로 디딤돌 1사례, 걸림돌 2사례가 선정하였습니다.

 

[디딤돌: 1건]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6형사부>

 

사건내용

성인인 가해자는 2024년 초부터 10월경까지 미성년자 피해자들을 상대로 성착취 목적의 대화를 나누고,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진을 촬영해 보내도록 해 성착취물을 제작함. 이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 3명중 2명을 직접 만나 성관계를 가졌으며, 그 중 한 명과의 성관계 장면을 촬영하기까지 하였음.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6형사부는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성착취목적대화등)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성착취물제작등),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성착취물소지등), 미성년자의제강간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에게 1심 판결을 통해 징역 7년, 아동 청소년관련기관 등과 장애인관련기관에 각각 10년간 취업제한을 명하였음. 또한 7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의 부착을 명하고, 준수사항을 별지로 기재하여 부과하는 등 엄벌에 처하였음.

 

■ 추천 이유

첫째, 본 판결은 디지털 성범죄 및 미성년자 대상 범죄의 심각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엄벌을 통해 사법 정의를 실현함.

최근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상당수가 집행유예나 비교적 낮은 형량으로 마무리되며 “처벌이 약하다”는 사회적 우려가 반복되어 온 현실 속에서, 본 판결은 징역 7년이라는 실형을 선고함. 이는 가해자에 대한 관행적인 온정주의를 배격하고 양형 기준 내에서도 중형을 선고함으로써,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 착취 행위는 결코 가볍게 다루어질 수 없다는 단호한 법적 기준을 보이며 사법 정의를 실현함.

둘째, 재범 방지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였음.

징역형 외에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 관련 기관에 각 10년간 취업제한을 명하고, 7년간의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과 구체적인 준수사항을 부과한 점은 매우 고무적임. 이는 출소 후에도 가해자가 범죄 취약 계층에게 접근할 수 있는 경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국가가 끝까지 가해자를 관리·감독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한 것임. 이러한 조치는 잠재적 피해를 예방하는 데 있어 실효성이 매우 높은 처분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판결임.

셋째, 피해자 중심의 사법 철학을 보여주며 피해자의 회복을 돕는 판결임.

이번 판결은 피해 아동·청소년이 입은 정신적 외상과 성장에 미칠 악영향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판결로, “법과 사회가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다”는 피해자 중심의 사법 철학을 명확히 보여주었음. 이는 ‘합당한 처벌’을 바랐던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가 되었으며,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었음.

 

 


[걸림돌: 2건]

 

<서울00지방법원 00형사부>

“피해자에게만 가중된 입증 및 설명 책임”

 

■ 사건내용

피해자는 2024년 4월 서울의 한 클럽에서 낯선 남성(이하 가해자)이 술을 권해 마셨다. 몇마디 대화 이후 가해자의 신체 접촉을 마지막으로 기억이 끊겼고, 잠시 의식이 돌아 왔을 때는 옆에 모르는 남성이 있었다. 다음 날 오후 깨어났을 때 피해자는 본인의 몸상태와 주변 상황을 보아 가해자로부터의 성폭력을 인지하였고, 이에 피해자는 즉시 신고하였다.

1심 법원은 피해자가 음주로 심신상실·항거불능 상태였다는 점과 피고인이 이를 인식·이용했 다는 점, 나아가 삽입 행위 여부 모두가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하 였다. 그러나 이는 피해자의 상태와 증거 전체를 오인·축소해 사실과 법리를 잘못 적용한 부 당한 판단이다.

 

■ 추천이유

이 사건에서 가장 문제적인 지점은 피해자에게만 유독 높은 설명 책임과 증명 부담이 부과되 었다는 점이다. 준강간 사건에서 흔히 나타나는 기억 공백·단절은 과학적·경험적으로 널리 보 고되는 정상적 현상임에도, 재판부는 이를 ‘신빙성 부족’으로 해석했다. 반면 가해자는 초기 부인 → 일부 인정 → 다시 부인 등 진술을 여러 차례 변경했음에도, 법원은 이러한 변화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지 않았다. 같은 ‘기억의 불명확함’이라도 피해자의 경우 불리한 증거로, 가해자의 경우 합리적 의심의 근거로 작용한 셈이다.

CCTV 영상 역시 왜곡된 방식으로 해석되었다. 영상에는 피해자가 웃으며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비틀거리고 중심을 잡지 못하는 장면도 확인된다. 과도한 음주 상태에 서 나타나는 과한 웃음이나 둔감한 표정은 내적 취약성을 감추는 외형일 뿐인데, 재판부는 영 상 속 외형적 안정성만을 근거로 피해자의 판단능력·저항능력 저하 가능성을 축소 평가했다. 이는 외부 행동 몇 장면을 피해자의 전체 경험을 대체하는 증거로 삼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법적 판단 과정에서도 이러한 편향은 강화되었다. 피해자는 수사재판기관으로부터 “어디까지 기억하는지, / 정말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 “왜 저 항하지 못했는지”, “왜 그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반복적이고 고통스러운 설명을 요구받았다. 반면 가해자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진술로 핵심 사실관계를 모호하게 유지할 수 있었고, 이 는 의심의 여지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작용했다. 동일한 현상이 피해자에게는 불리함으로, 가 해자에게는 방어 논리로 기능하는 구조적 불균형이 드러난 것이다.

이 사건은 개별 사실관계보다도,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에게만 더 높은 문턱이 적용되고 가 해자에게는 낮은 의심 기준이 부여되는 구조적 편향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지 않는 한, 유사한 사건에서 동일한 판단의 왜곡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 -. -. –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형사2단독 재판부>

“교제폭력의 구조성을 이해하지 못한 솜방망이 판결”

 

■ 사건 내용

피해자는 가해자와 2023년 초경 알게 된 후 6개월간 교제했던 사이였음. 교제하는 동안 가해자의 강압적인,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 및 폭언과 폭행이 지속되자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그만 만나자고 메신저를 통해 통보하였으나, 가해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음. 오히려 연락 없이 피해자를 찾아와, 피해자가 거절과 거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폭행, 강간, 감금, 금품갈취, 불법 촬영 및 촬영물 유포협박 등의 범죄 행위를 일삼음.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벗어나 취업을 한 뒤에도, 가해자는 지속적으로 스토킹과 범죄행위를 하였음. 경제적 착취까지 이어지며 범죄행위의 정도가 심해지자 피해자는 2023년 12월경 경찰에 가해자를 신고 및 고소함.

재판부는 공소 제기된 폭행·상해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하였고, ‘범행이 상당한 기간 동안 수회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피고인에게 동종 범죄를 포함해 형사상 처벌받은 전력이 적지 않다는 점도 검토하였음. 그러나 단지 ‘벌금형 초과 전력이 없다’는 사유를 들어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이라는 경미한 처벌을 내리는 데 그쳤음.

 

■ 추천 이유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장기간에 걸쳐 성폭력, 교제폭력(데이트폭력), 감금, 경제적 착취, 협박 등 복합적이고 반복적인 폭력을 가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부는 이를 개별 사건 단위로 파편화하여 판단했고, 결과적으로는 현저히 가벼운 형량을 선고한 사례임.

이는 범행의 반복성과 의도성, 피해자가 제출한 치료 기록과 탄원서에 드러난 심각한 정신적‧신체적 후유증 등 실질적인 피해를 형량에 전혀 반영하지 못하였고, 범행의 반복성과 의도성, 피해자가 제출한 치료 기록과 탄원서에 드러난 정신적‧신체적 후유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이러한 판결은 피해 실질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음.

특히 본 사건은 폭행‧상해 혐의만 기소된 채 성폭력 혐의는 불송치되었고, 불송치 결과에 대한 이의신청도 기각된 상황으로, 사건 전체의 맥락이 왜곡·축소된 구조 속에서 판단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음. 교제폭력은 친밀한 관계 안에서 형성되는 위계, 통제, 심리적 지배의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지속적인 폭력임. 그럼에도 재판부는 이러한 폭력의 관계성이나 맥락을 삭제한 채 사건을 단순한 물리적 행위로만 축소하여 판단하였고, 결과적으로 피해자가 장기간에 걸쳐 겪은 고통과 위험을 사법적 판단 영역에서 충분히 다루지 않았음.

이처럼 폭력을 개별 행위로 쪼개어 판단하고 그 안에 존재하는 지배와 통제의 맥락을 간과하게 된다면, 피해자의 경험과 존재는 사법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음. 따라서 본 사건은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을 가로막는 명백한 ‘사법적 걸림돌’이자, 교제폭력 및 성폭력의 구조적 특성에 대한 사법부의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