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상담소 활동가 감시단 “날카로운 시선”

 

 

 

성폭력피해자가 사법적/비사법적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나 기관들은 인권감수성 유무에 따라 조력자가 되기도 하고, 2차 가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들이 가진 감수성에 따라 우리는 성평등한 사회로 더 나아가기도 하고, 성차별이 공고한 사회임을 알아기도 합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나 3.8여성대회 등에서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디딤돌.걸림돌을 발표하였으나 그 대상에 제한이 있었습니다. 이에 본 상담소는 수사 및 사법기관뿐 아니라 피해자변호사 및 가해자변호사, 공공기관/학교 등의 조직내 성인권담당자, 언론 등 성폭력사건의 해결과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의 과정에 영향을 주는 사람들의 성인권감수성을 날카롭게 바라보고, 냉정하게 비판하고자 합니다. 올해는 총 5사례로 디딤돌 1사례, 걸림돌 4사례가 선정하였습니다.

 

디딤돌

<대전고등법원 제1형사부

준강간사건 피해자의 상황과 맥락을 고려한 판결, 10여년간의 기다림에 보답하다.

 

사건내용

상기 피해자는 2010년 겨울 저녁,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술자리부터 기억이 없음. 이후 기억은 불상의 아파트 단지 주차장 같은 곳에서 불상의 가해자로부터 강간피해를 입은 기억이 드문드문 있음.피해자는 당시 깜깜하고 주변에 사람도 없었고 저항하기에는 술이 덜 깬 상태여서 저항하기 힘들었음. 이후 기억은 집에 가기 위해 길을 헤매다가 인근 아파트 경비실과 경찰의 도움으로 귀가 후 다음날 바로 고소를 하였지만, 가해자가 특정되지 않아 사건이 중단되었음.

2021년 가해자가 다른 강제추행 건으로 조사 중 DNA 일치로 가해자가 특정되어 수사 재개되었으며, 대전지방법원에서 1심 징역 4년이 선고되었음. 이어 가해자 측에서 항소하였으나 대전고등법원에서 항소 기각됨.

 

추천이유

(1) 준강간 피해에 있어서 피해 당시 피해자의 기억 유무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받거나 심신상실을 인정받지 못하는 근거가 되고 있음. 해당 판결은 구체적이고 명확한 진술을 하기 어려운 준강간 사건의 특성을 전제로 하여 피해자의 진술이 완전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피해자가 기억할 수 있는 범위에서 3회에 걸쳐 진술한 내용을 구체적이고 일관적이며 진술 자체가 모순되거나 비합리적인 부분이 없다고 판단하였음. 또한 10여년만에 진술한 피해자가 기억이 흐려지거나, 처음 진술할 때 기억이나지 않았던 지엽적 상황이 나중에 떠오르는 등의 모습에 대하여 가해자 측에서 진술 모순을 주장하였는데 재판부는 피해자의 상황을 고려하여 자연스러운 상황이라 판단함.

(2) 가해자 측에서 피해자가 기억이 나는 부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진술하는 것에 대하여 심신상실 및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라 주장하였음. 하지만 재판부는 가해자가 피해자와의 대화 내용을 구체적으로 진술 못함을 근거로 피해자가 당시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의 상태라 보았고, 피해자가 피해 이후 아파트 경비실과 경찰의 도움으로 귀가한 상황으로 보아 피해 이후까지도 피해자의 대응을 할 수 없던 상황으로 판단함. 이에 재판부는 피해자가 완전히 기억을 잃지 않거나,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더라도 피해자가 정상적인 판단·대응·조절 능력을 행사할 수 없으면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에 해당된다고 봄.

(3) 피해자가 가족에게 성폭력 피해사실을 알리지 못한 것을 동의한 성관계의 근거로 주장하는 점에 대하여 사회적 통념이 있는 (준강간)성폭력의 특성과, 피해자의 개별적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여 가족에게 피해사실을 알리기 어려운 상황임을 인정하였고, 가해자의 주장대로 동의된 성관계가 아님을 판단함.

(4) 피해자가 피해 상황의 기억을 처음부터 끝까지 갖고 있기 희박한 준강간 사건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나, 준강간의 구성요건인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를 인정받아 유죄선고(14%)를 받기가 어려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판결은 준강간 사건에 있어 피해자의 분절된 기억과 피해자의 상황을 피해자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가해자의 모순된 진술을 상세히 검토함으로써 처벌이 가능케 하였고, 피해자가 10여년간의 기다림을 보답 받을 수 있는 판결이었음.

 

 

걸림돌

①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제12>

성폭력피해자의 판결문 당일 발급을 거부하다.

 

사건내용

서울서부지법 형사제12부는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피해자측에서 신청한 피고인측의 의견서와 변론요지서 등의 열람복사 신청을 거부하였을 뿐 아니라 판결등본의 방문신청도 당일 발급은 거부함. 그 이유에 대해 판결문 발급신청은 재판부 허가사항으로 사건의 피해자라 하더라도 당일 발급은 불가하며, 재판부 허가 후 우편으로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지침이 정해졌다고 답변을 함.

 

추천 이유

① 성폭력피해자는 형사사법과정에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소송관계인에서 제외되어 기록에 대한 접근권이 매우 제한되어 있으며 이는 형사사법과정에 가해자측의 2차 가해성 주장 및 서면제출 등에 대해 즉각 대응하지 못 하는 결과를 낳고 있음.

② 형사사법 과정 중 많은 가해자들이 법정에서 구두로 변론을 하기 보다 변론요지서로 갈음하고 간단한 요지만 설명하고 있는 작금의 사법적 과정에서 피고인변호사의 변론요지서 및 의견서 등의 열람복사 거부는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반박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것으로 매우 문제적임.

③ 특히, 판결문에 대한 민원실 당일발급 거부는 피해당사자로서 자신의 사건에 대한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며, 재판부의 판결문 발급 허가라는 시간적/비용적 단계를 하나 더 둠으로써 성폭력피해자들이 사법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으로 문제적임.

 

 

②<SBS 그것이 알고 싶다 1345선생님의 두 얼굴_금기, 시험 그리고 변화’ >

그루밍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시사점은 차치하고 가십거리로만 소비한 제작진

 

사건내용

피해자는 고등학교 때부터 논술교사(가해자)에게 지속적으로 성추행, 강간 등 약 9년에 걸친 그루밍성폭력 피해를 겪어옴. 가해자는 논술동아리에서 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것을 구실로 성적으로 과감히 행동해야 한다고하며 신체의 일부를 찍어 자신에게 보내게 하거나 자신과 성관계를 해야한다고 주장함. 피해자는 청소년기 진로문제로 인해 심리적으로 힘겨울 때 만난 가해자에게 의지하여 가해자가 시키는 대로 함. 피해자는 성인이 된 이후 가해자의 가족과 함께 살고, 가해자가 운영하는 학원에서 근무하며 다른 여타 피해자들과 그룹생활을 하면서 성폭력 피해를 겪음.

 

추천이유

성폭력 범죄는 사건의 특성상 취재와 보도과정에서 피해자와 그 가족 등이 2차 피해를 볼 수 있고,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매우 신중히 접근해야 하므로 이를 위하여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이 마련되어 있음.

이 권고 기준에는 성범죄 사건의 이해와 상관없는 범죄의 수법과 과정, 양태, 그리고 수사과정에서의 현장 검증 등 수사 상황을 지나칠 정도로 상세히 보도하지 않아야 하고 사회적 안전망 부재, 범죄 예방 체제 미비 등 성범죄를 유발하는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사회구조적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음.

 

2023년 3월 25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 1345회 방송분에서는 피해자의 경찰 진술조서 내용을 재현하고, 피해자가 직접 작성한 수기를 강조하여 보여주고 피해자가 속했던 집단이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이상한 집단이었는지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었음. 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시민들에게 해당 사건이 그저 가십거리로만 소비되게끔 하였음.

 

본 사건은 피해자가 미성년자일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교사로부터 지속적으로 성적, 금전적 착취 피해를 본 그루밍 사건이란 특이성을 갖고 있기에, 사회구조적 문제로 시사하는 바가 있으면서도 현행법상 공백이 있을 수밖에 없음. 현재 법률은 미성년자 온라인 그루밍성폭력에 대해서만 처벌할 수 있도록 법안이 마련되어 있고 본 사건처럼 성인 피해자에 대한 그루밍, 오프라인상 그루밍 성폭력 피해는 법적 처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음.

 

이처럼 사건이 가진 법리적 한계나 사회구조적 문제를 등한시하고, 세부권고기준 조차 따르지 않은 보도를 한 SBS를 걸림돌로 선정함. 앞으로 피해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우리 사회에 건설적인 시사점을 던지는 보도를 하길 바람.

 

<동작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청소년의 그루밍성폭력에 대한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하다.

 

사건내용

피해자는 17세 고등학생으로 2021년 말부터 2022년 상반기 동안 채팅을 통해 여러 성인 남성들과 성관계를 하였으며, 그중 한 명인 가해자의 회유로 불법촬영에 동의하여 성관계 동영상을 찍음. 피해자는 처음에는 모두 자신이 동의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성폭력임을 인지하게 되었다. 상담을 통해 피해자가 처벌을 원했던 마지막 가해자와의 카톡내용을 통해 성인 남성과 음란한 내용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그루밍성폭력피해를 입었다고 할 수 있다.

 

추천이유

피해자의 부는 2022년 7월 피해자가 정신과병동에 입원한 후 담당의사로부터 피해자에게 성폭력피해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타 상담소를 통해 미성년자 온라인 그루밍과 성착취물 제작으로 경찰신고가 가능할 것으로 보여 피해자부에게 안내하였다고 함. 정신과 상담일지에는 피해자가 우울증, 공허함 등 우울증 때문에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였다는 의사 소견이 있었으며, 병원에서는 신고시 적극 협조하겠다고 하였음.

그러나 동작경찰서에서는 피해자가 만16세를 넘겨 의제강간으로 신고할 수 있는 나이가 지났으며, 피해자가 동의한 성관계로 신고가 어렵다는 답변을 듣고 신고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동작경찰서의 수사관이 2021년 3월 23일 신설된 법 조항인 아동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 제11조와 아청법 제15조2에 대한 이해와 의지가 있었다면 가해자들의 행위를 아청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한 가해자에 대해서는 아청법 제11조1항(아동‧청소년성착취물을 제작‧배포 등)의 죄명을 적용할 수 있으며, 피해자와 카톡으로 성적인 대화를 이어가며 최종적으로 성착취를 하였던 가해자에 대해서는 아청법 제15조2(아동‧청소년의 성착취 목적의 대화 등)1항의1에 따라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 또는 혐오감을 유발할 수 있는 대화를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하거나 그러한 대화에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참여시키는 행위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에 따라 가해자의 행위를 범죄로 처벌할 수 있다.

 

동작경찰서는 아청법에 대한 법률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성인 남성과 청소년피해자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구조에 대한 이해가 없어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하며, 청소년피해자가 채팅을 하면서 성적인 대화를 이어가며 성관계에 동의했는지, 불편한 상황에서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하겠다는 가해 남성의 말을 동의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 없이 겉으로 단지 피해자가 동의했다는 이유만으로 신고조차 안 된다고 한 동작경찰서를 걸림돌로 선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