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성명] 법무부는 성범죄 무고 수사 골몰하지 말고, 성폭력 수사부터 제대로 하라.

지난 3월 6일 한 언론에 따르면 ‘검찰이 경찰이 불송치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 직접 보강수사를 강화해 무고 범죄를 엄벌’하고 있다는 사실이 성폭력 무고 사례들과 함께 보도되었다. 해당 검사는 “여성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 때문에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성폭력 사건은 특성상 상당한 의심이 들어도 수사가 어려운 영역”  “검찰은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라며, 무고 범죄 수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어떤 성폭력 범죄도 피해자 일방적 진술만으로 유무죄를 판단해 가해자를 처벌하는 경우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현실이 성폭력 수사재판에 만연한 것처럼 말한 것이다. 대검찰청은 사법질서를 해치는 무고 건을 가려내는 것인가, 성폭력에 대한 ‘피해자 불신’, ‘여성 의심’ 편견과 통념을 유포하겠다는 것인가. 검찰이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과 피해자들의 진술을 허위라고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해당 검사의 적극적인 기소는 검찰의 입장인 것으로 확인된다. 2월 14일 검찰청이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면, 검찰은 2022년 하반기 ‘위증 무고 등 사법질서를 왜곡하는 거짓말범죄’에 대해 ‘검찰의 수사 역량을 집중하여 엄단한 결과 결과 무고 사범 입건수가 대폭 증가하였다’면서 검찰의 직접 수사의 성과로서 증가된 무고 입건 수와 사례를 제시했다. 이 배경에는 2021년 소위 검수완박이라고 불리는 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의 개정을 둘러싼 정치적 싸움이 있다. 두 차례에 걸친 법 개정으로 검사의 직접 수사 범위가 차례대로 6대 범죄(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참사범죄), 2022년 5월에는 2대 범죄(부패 경제범죄)로 축소되었다. 2022년 6월 법무부 한동훈 장관을 비롯해 검사들은 해당 법 개정이 헌법적 권한인 검사의 수사권을 침해했다는 취지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였으나, 2023년 3월 23일 헌법재판소는 이를 각하하며 법개정을 통한 수사권 조정이 문제가 없음을 결정하였다. 그 사이 2022년 5월 법무부는 검찰청법상 검사의 직접 수사 범죄 범위가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범죄”라고 규정된 부분을 활용하여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개정에 나섰다. 다시금 공직자, 선거 관련 범죄 일부가 검사의 직접 수사 범위로 포함되었으며, ‘중요범죄’이자 사법질서를 저해하는 범죄로서 ‘무고’가 포함되게 되었다. 검찰은 대통령령이 개정되자마자 직접수사할 수 있는 범죄 중에서도 무고와 위증에 초점을 맞추어 집중 인지수사 및 기소하였고, 지난 14일 ‘검수완박’에 맞선 ‘검수원복’ 개정의 ‘성과’로 성폭력 무고 적발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이다.
보도자료에서 검찰은 “실체적 진실을 왜곡 은폐하여 피해자를 양산하고 국가 사법질서의 근간을 위협하는 위증 및 무고 범죄를 엄단하여 ‘억울한 국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시행령 개정에 대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무고죄를 제대로 걸러내야만 진짜 성범죄 엄벌이 가능해진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검찰수사권 문제만이 배경인가? 윤석열 정부는 후보 시절부터 ‘성폭력 무고죄 강화’를 소위 청년 공약으로 내세웠으며 110대 정책과제에도 관련 정책을 포함했다. 검찰이 집중 수사 및 기소한 것은 성폭력 무고에 국한되지 않고 무고 범죄 전반에 대한 것이나, 성폭력 무고는 다른 것보다 더욱 대표적인 성과로 제시되고 주목받고 있다. 핵심 성과로 제시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폭력 신고 중 무고가 많다’, ‘피해자들의 진술은 신뢰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법체계는 여성과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성폭력 유무죄가 판단된다’, ‘대다수의 성폭력 사건이 신고하기만 하면 유죄 판결을 받는다’, ‘성폭력 무고때문에 현재 억울한 가해자가 대거 양산된다’ 라는 강력한 통념이 그 환경이다. 통념은 대통령, 정치인, 정당, 변호사, 검사, 언론 등 전문가들의 의견으로 거듭 공신력을 확인하며 만들어져왔다.
2017~2018년 대검찰청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공동연구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로 기소된 피의자 수에 비해 성폭력 무고로 기소된 경우는 0.78% 에 불과하다. 성폭력 가해 지목자가 무고죄로 역고소 한 경우에도, 84.1%는 불기소 처분이었다. 경찰이 불송치한 건에 대해 무고인지 아닌지 직접 보강수사하여 인지하고 기소한 것을 홍보하는데, 검찰은 무고수사를 홍보하기 이전에 여성폭력에 대한 수사, 기소, 공소 유지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2022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 중 불송치 처분된 성폭력 사례를 분석한 결과, 피해유형으로는 ‘강간’이(52.9%), 피가해자관계로는 ‘친밀한관계에서’(29.4%), 처분의 이유로는 ‘피해자다움에 대한 통념이 작용하여’(32.4%) 가 가장 많았다. 강간으로 수사기관에서 인정되려면 저항을 불가능하게 할만한 폭행·협박이 있었는지를 입증해야 하는데 여러 이유로 강력한 저항을 하지 못한 경우 불송치, 불기소 되는 경향이 이번 상담통계에서도 확인되었다. 2019년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담 분석에 따르면 71.4%가 폭행·협박 없는 성폭력이다. 협소한 강간죄 규정으로 인해 대다수의 성폭력 사건들은 수사기관에서 인정이 안될 수밖에 없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권리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검찰의 이러한 행태는 가해자들의 적반하장 무고 고소를 부추기고 폭행·협박 없는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이 수사기관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침묵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대법원은 2019년 성폭력 사건의 무혐의, 무죄가 무고의 근거는 아니라고 판단했고, 검찰은 2018년 수사 매뉴얼을 개정하여 성폭력 사건에 대한 수사가 종료된 이후 무고 수사를 개시하도록 하였는데 이러한 흐름에도 역행한다. 무고가 중요범죄로 사법질서를 교란한다고 본다면, 성폭력 무고 불기소 처분 결과가 84.1%에 이르는데 형사법체계를 왜곡하는 것은 오히려 성폭력을 했음에도 무고로 고소하는 가해자 아닌가? 법무부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해 무고로 역고소 함으로써 형사법체계를 교란하는 가해자를 인지하여 기소하고 있는가?
법무부는 검찰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정치적 싸움에서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더불어 대통령의 반여성적 공약을 시도하기 위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고 의심, 인지수사를 ‘활용’하지 말라. 법무부가 먼저 해야할 일은 성폭력 수사와 기소를 제대로 하는 것, 범죄 피해자를 두텁게 보호하는 것, 현재 공백상태인 19세 미만 성폭력 피해자 초기 진술 제도 확보다.
2023년 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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