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녀대표 감사글 “이제 앞으로 또 10년을 향해 걸어갑니다”

지난 일을 돌이키니 기쁘고 슬펐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그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졌습니다. 성당의 교리방 한 칸에서 시작하여 작지만 편안한 우리 집을 가지게 되었고 실무자 두 명으로 시작했던 일이 한때는 20명 가까운 직원들이 함께 일할 정도로 규모가 늘어났습니다. 98년 시작할 때는 상담소 하나였지만 현재는 상담소와 쉼터 두 기관으로 나뉘어져 상담소 6명, 쉼터 5명의 실무자들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만 변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 상담소를 시작하였을 때 성폭력 신고율이 2%밖에 안 되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10%정도로 올라갔다고들 하더군요. 여성부가 신설되었고, 호주제가 폐지되었으며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방지법이 발효되어 이제껏 여성들의 족쇄로 작용했던 여성악법의 사슬들이 하나씩 풀려져 가고 있습니다.

이런 10년의 기억들을 어떻게 남겨야할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매 해 남겨놓은 기록을 충실히 옮겨 우리가 이만큼 열심히 일했다고 표와 통계로 보여드리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천주교성폭력상담소, 그리고 쉼터 평화의 샘이 지금껏 해온 일, 하고 있는 일들은 결국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들, 상담원과 자원봉사자, 후원자, 샘동이들이 함께 해왔고 하고 있는 모습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이들이 상담소와 쉼터에서 일해 왔고 일하고 있는지, 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이제껏 함께 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니 너무나 많아 옮기기가 어렵습니다. 사무실 입구에 있는 후원자 이름이 기록된 액자를 쳐다보며 초창기를 생각하니 마음과 기도로, 물질적 후원으로, 자원봉사로 도움을 주셨던 그리운 얼굴들이 보고 싶습니다. 어려운 시기 고생했던 실무자들 얼굴도 떠오릅니다.
모든 분들의 기억과 이야기를 남기고 싶지만 지면한계 상 그럴 수 없어 아쉽습니다. 한분 한분의 이름을 떠올리며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평화의 샘’을 거쳐 간 수많은 청소년들이 해마다 10월 ‘홈커밍데이’가 되면 친정에 오듯이 집으로 옵니다. 남자친구를 데리고 오기도 하고, 결혼한 친구들은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오기도 합니다. ‘평화의 샘’에서 함께 살 때 울고 웃었던 이야기들을 후배들에게 들려주며 있을 때 잘하라고 충고도 해 줍니다. 이때가 저는 가장 즐겁습니다. 상담소를 통해서 마음의 상처를 씻고 자신을 돌보며 살아가는 분들, 상담소와 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시면서 행복해하시는 분들을 볼 때 또한 보람을 느낍니다.

이제 앞으로 또 10년을 향하여 걸어갑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저희 모두 에게 힘을 줍니다. 우리가 바로 ‘평화의 샘’입니다.

2008년 10월
천주교성폭력상담소 & 쉼터 평화의샘 대표 윤순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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