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글쓰기] 75번의 거절이 지워진 법정

 

75번의 거절이 지워진 법정

 

햇살

 

상담소는 지난 4월부터 ‘동의없는 성폭력 재판소원’ 공동대책위원회 활동을 함께 하게 되었다. 4월 23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 앞에서는 재판소원 청구를 알리는 기자회견이 있었고, 5월 13일 오후 2시에는 동의없는 성폭력 재판소원 쟁점을 알리는 토론회도 있었다.

 

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한지 20년. 강산이 두 번 변하는 동안 피해자를 지원하는 체계는 보다 전문화되었고, 관련 법안들도 제·개정을 거듭했다. 하지만 최근 기자회견과 토론회에 참석하면서 그리고 상담소에서 지원하는 다른 사건들의 재판결과를 마주할 때면, 과연 우리가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나아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증거가 거의 없는 사례가 다수인 성폭력 사건에서 75차례나 거절의 의사를 밝히고 저항했음이 명백한 증거로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현실은 우리 사법부가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기본권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게 아닌가 한다.

 

현행 형법 제297조(강간)는 폭행 또는 협박을 구성요건으로 한다. 문제는 사법부가 이를 해석함에 있어 ‘피해자의 항거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정도’의 폭행과 협박이 있어야 한다는 이른바 ‘최협의설’을 여전히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75번의 거절이 있었음에도 무죄가 선고된 배경에는 바로 이 낡은 잣대가 있다. 법원은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했는지보다, 가해자가 ‘물리적으로 얼마나 강한 위력을 행사했는지’에만 몰두한다. 피해자가 느끼는 압도적인 공포와 위압감, 그리고 그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최선의 방어 기제는 법정에서 ‘충분한 저항’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성폭력은 언제나 물리적 폭력의 형태로만 발생하지 않는다. 관계의 위계, 심리적 압박, 반복된 요구와 강요 속에서도 피해자의 동의는 쉽게 무력화된다. 그럼에도 사법부는 여전히 피해자가 얼마나 강하게 저항했는지를 묻고, 피해자의 명확한 거부 의사는 판단의 중심에 놓이지 못하고 있다.

 

위에서 말한 기자회견에서 피해자가 호소한 글을 통해 사법부가 가해자의 서사에는 얼마나 관대하고, 피해자의 고통에는 얼마나 무딘지를 알 수 있다. 많은 사건에서 가해자가 제출한 ‘반성문’, ‘초범이라는 점’,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하다는 점’ 등은 형을 감경하는 주요한 근거가 된다. 반면 피해자는 자신이 얼마나 두려웠는지, 얼마나 거부했는지, 왜 그 상황에서 더 강하게 저항하지 못했는지를 반복해서 설명해야 한다.

 

‘입증 책임’이라는 법률 용어 뒤에는 피해자가 감당해야 하는 깊은 심리적 압박이 존재한다. 피해자는 자신의 진술이 의심받지 않기 위해 기억의 파편을 반복적으로 끄집어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과 반응마저 검증의 대상이 된다.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를 설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건을 재현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상처를 입는다. 가해자의 방어권은 지나치게 보호하면서, 피해자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는 왜 이토록 가볍게 취급되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동의’를 성폭력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No Means No’(거절하면 성폭력이다)를 넘어 ‘Yes Means Yes’(명시적 동의가 있어야 성관계가 성립한다)의 원칙이 법 테두리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이는 단순히 법 조항 하나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성적 관계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일이다.

 

상대의 거절 의사가 분명함에도 이를 무시하고 행해진 성적 행위는 명백한 범죄다. 75번의 거절을 무시한 행위가 ‘폭행이나 협박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는 사회에서, 어떤 피해자가 사법 정의를 신뢰할 수 있을까? 사법부는 더 이상 법전에 갇힌 협소한 해석에 머물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외면받고 무시되는 피해자의 의사를 직시해야 한다.

 

20년 차 활동가로서 나는 여전히 희망을 말하고 싶다. ‘동의없는 성폭력 재판소원’ 기자회견과 쟁점 토론회에서 확인한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과 연대는 사법부가 변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다. 사법부는 더 이상 가해자의 ‘실수’를 변명해 주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피해자가 겪는 심리적 고립과 사회적 낙인을 걷어내고, 무너진 성적 자기결정권을 복원하는 곳이어야 한다.

 

75번의 거절이 무죄가 되는, 피해자의 동의가 무시되는 비상식적인 시대를 끝내야 한다. 그것이 이 땅의 수많은 피해자에게 사법부가 보내야 할 최소한의 응답이자, 진정한 사법 정의의 실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