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2022년 (사)평화의샘 활동가역량강화교육 <생애주기 : 나이듦과 돌봄노동>

 2022 ()평화의샘 활동가역량강화교육 <생애주기 : 나이듦과 돌봄노동>

dependentindependent 사이를 부단히 오가는 pendant

사단법인 평화의샘은 활동가들의 욕구를 바탕으로 해마다 역량강화교육을 진행한다. 주제는 우리의 활동 영역과 관련된 것들일 때가 대부분이다. 여성인권이나 반차별 이슈, 성폭력과 성매매, 혹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거나 디지털을 매개로 하는 성범죄. 최근 몇 년 동안에는 활동가들의 소진을 방지하고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도록 대리외상 예방이나 여성주의자기방어훈련을 기획하여 진행해왔다.

그러던 것이 2022년에는 좀더 개인적인 이슈를 다루어 보았다. <생애주기 : 나이듦과 돌봄노동>이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은 여기에도 접목시킬 수 있다. 개인적인 돌봄 영역은 이미 공공성을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영역에서 돌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의미로 앞의 말과 교차한다.

평화의샘은 젠더폭력 피해 생존자를 지원하는 사업과 활동을 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얼핏 이 주제는 크게 활동과는 관련이 없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적 사건과 공적 책임이라는 차원에서 우리는 깊은 관련이 있다. 젠더폭력 피해자의 경험은 개인적인 영역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넘어서서 생존자들과의 사회적 연대로 확장했으며 공적인 사회적 책임으로 가시화했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단체들이 국가의 지원금을 활용하여 생존자를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사적 영역에서 공적 담론으로의 확장의 흐름은 평행이론에 가까울 정도로 일치한다.

그리고 평화의샘 활동가들은 이미 공적 영역에서도 지극히 내밀한 사적 영역에서도 나이 들거나 돌봄을 하는 역할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특히 개인의 삶에서 이 주제를 여성주의적으로 어떻게 사유할지에 대한 고민을 가진 이도 많다. 막막한 현실에서 언젠가 누구에게나 맞닥뜨릴 이 주제에 대해 함께 생각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http://okeesalon.org/)의 김영옥 선생님을 모시고!

 

인상 깊었던 문맥들을 정리해 본다.

 

  • 돌봄에는 경제, 사회문화, 젠더 이데올로기 등의 환경과 조건이 연결된다. 그리고 각 생애단계별로 돌봄을 받거나 돌봄의 어려움이 있다. 돌봄에는 돌보는 습관이 필요한데, 돌보는 경험을 덜 해본 집단은 스스로 일상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기도 하다.

  • 돌봄/노동은 매우 부조리하고 비논리적인 방식으로 의미화된다. 공적 영역에서의 생산 노동은 필수노동으로 일컬어지며 가치가 있는 전문적인 노동으로 취급되지만, 돌봄 노동(재생산 노동)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사소하고 비전문적인 영역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돌봄 노동은 자기 돌봄, 서로 돌봄, 함께 돌봄으로써 ‘나’, 관계, 공동체를 사회적으로 재생산하는 필수 활동이다.

  • ‘자아’나 ‘개인’을 바라보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인해 자립과 의존은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간은 독립적/자율적/이성적이면서도 동시에 상호의존적/감성적/몸의 감각을 중시할 수도 있다. 돌봄은 인간의 의존성이라는 실존적 정체성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돌봄 노동은 관계를 동반하고, 관계 속에서 수행되며, 관계를 형성하는 노동일 수밖에 없고 관계에 있어서의 윤리 문제를 지속적으로 소환한다.

  • 한편, 돌봄 노동에는 성역할이 결합되어 저평가 되어있고, 돌봄노동이 탈가족화/탈여성화/사회화된다해도 자본주의 시장으로 흡수되는 상황적 사회 체제적 한계가 있다. 경제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 돌봄 노동은 사회 재생산의 문제이고 생산 노동 체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재생산 노동이다. 이윤 추구와 성장, 발전에 목표를 둔 자본주의 생산 정치 경제를 떠나 돌봄 노동을 중심으로 사람의 기본 욕구를 충족하고 사회를 살리는 재생산 정치경제로 갈 때, 불확실성을 넘어 삶이 가능해진다.

“질병이나 장애로 인해 용변 처리를 남에게 맡겨야 해도, 다른 이를 돌보느라 머리가 산발이 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시민일 수 있다. 우리의 시민임은 선험적으로 가정되는 것이기보다는 구체적 돌봄관계 안에서 구현되고 생산되는 것이다. 시민적 돌봄이 사회정책의 첫 번째 전제가 될 때 우리는 방치될까 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시민적 돌봄이 구체적인 돌봄관계 안에서 ‘적당함’의 감각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버팀목이 될 때 우리는 한계까지 몰려 절망하지 않을 수 있다.”
전희경, “시민으로 돌보고 돌봄받기”,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 질병, 돌봄, 노년에 대한 다른 이야기』

 

개인적으로 최근 몇 년 동안 나의 모친을 장기적으로 부양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형제들이 함께 마음을 모으고 있다. 나의 삶에서 나이듦과 돌봄에 대해 집중해보고 여성주의적 사유와 실천할 만한 것을 탐색하고 싶었다. 이러한 탐색은 지속가능한 활동가로서 삶의 동력 또한 키워줄 것이라 기대한다. 이미 그러한 고민을 실현하고 실천하고 관계의 가장 깊은 심연에 도달했던, 옥희살롱과 함께 글쓰기 작업을 한 분들의 소중한 경험 또한 많은 울림을 주었다.

또한 돌볼 권리와 돌보지 않을 권리, 돌봄 받을 권리와 돌봄 받지 않을 권리 사이에서 나는 어떤 권리를 실행하고 추구할 수 있는지 돌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실체를 가진 질문과 명명하기를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한 개인에게 independent(독립한 상태)를 강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연 pendant(존재)가 온전히 independent로서만 살 수 있을까. dependent(의존/부양하는)와 independent 사이를 부단히 오가는 것이 통합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일 수 있다는 통찰이 길게 여운을 남긴다.

  • 사단법인 평화의샘은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의 김영옥 선생님과 함께 <생애주기 : 나이듦과 돌봄노동>이라는 주제로 2022년 활동가 역량강화교육을 11월에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