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성폭력상담소, 1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다

1998년~2000년 : 태동과 걸음마

 

1998년 10월 새세상을 여는 천주교여성공동체(이하 천여공) 부설 천주교성폭력상담실 ‘평화의샘’이 개소하였으며 일년 후 쉼터가 개소하였다. 천여공 부설로 시작된 만큼 이 시기에는 가톨릭단체, 여성운동단체의 성격이 두드러졌다고 할 수 있다. 회원단체로서 회원들 간의 친목도모가 중요하게 여겨졌으며 상담과 교육에 있어서도 회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역할이 컸다. 상담은 전화상담의 비중이 높았으며 교육은 주로 성당성교육이었다.

 

새세상을 여는 천주교여성공동체 부설 천주교성폭력상담실

 

민주화운동시기를 거치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실천적 신앙을 지향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천주교 여성들은 사회문제와 교회문제를 여성의 눈으로 바라보고자 하였다. 여성운동과 방향성을 함께 하던 이러한 흐름은 가톨릭교회 내에 여성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견으로 모아져 1993년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여성공동체가 설립되었다. 80년대에 시작하여 90년대 들어 본격화된 반성폭력운동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던 1990년대 후반에는 성폭력예방과 상담활동을 천주교회 안에서도 해야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에 따라 천여공은 2년여에 걸친 준비과정을 거쳐 97년 실질적인 개소준비모임이 갖고 98년 천여공 부설 성폭력상담실을 만들었다. 성폭력상담실의 장기 목표는 천주교회 내에 독립된 성폭력상담소를 설립하는 것이었지만 초기의 역량으로는 성폭력상담실의 자립이 어려웠다. 따라서 성폭력상담실 실장(현재로는 소장)은 당시 천주교여성공동체 회장이었던 윤순녀 회장이 겸임하기로 하였고 천여공 회원들이 상담소 운영위원회에 참가하여 상담소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교회 내에서 시작한 만큼 상담소 초기 활동의 주요 영역은 교회였다. 소식지를 통해 교회 안에서의 남녀차별문제를 제기하면서 교회여성들의 기도와 여성들의 연대와 활동으로 극복해나가자고 홍보하였으며, 2000년 천주교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와 함께 개소 2주년 기념 심포지움 “현대사회와 성”에서 교회 내 성문제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였다. 상담소 내에서도 정기적으로 월례미사를 드렸고 상담원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피정이 실시되었다.

 

재정과 인력의 부족을 자원봉사자의 힘으로 메우다

 

개소 당시 상담소에는 상근자가 없었다. 재정상의 문제로 소장과 실무자가 모두 반상근인 상태로 99년이 지났고 2000년이 되어서야 두 명의 실무자가 상근을 하게 되었다. 실무자의 부재를 매운 것은 10여명 내외의 자원봉사자들이었다. 98년 8월 개소 전 실시되었던 제 1기 상담자원봉사자 교육을 수료한 후 자원한 분들이 요일별로 상담소에 나와 훈련을 받으면서 상담전화를 받았고, 99년 9월 제 1기 성교육전문강사 양성교육 수료자들이 교육을 담당하였다. 99년 1년 동안 상담소는 305건의 상담을 받았는데 상담방법으로 보면 전화상담이 94%였고 이 중 171건만이 성폭력상담이었다. 같은 해에 외부로 출강한 교육은 모두 12회였는데 주일학교의 학생과 학부모를 위한 교육이었다. 사무 분야에서도 자원봉사자가 일손을 거들었다.

 

첫 번째 이전과 쉼터 개소, 기관의 터를 닦다.

 

1999년 6월 처음 둥지를 틀었던 삼각지 성당을 떠나 상도동 성혈흠숭 수녀회의 연수원으로 기관을 이전하였으며 그 해 8월에 상담소 설치신고를 하고, 10월 선도일시보호시설 ‘평화의샘’ 쉼터를 개소하였다. 쉼터는 2000년 6월 서울교구 가톨릭사회복지회 소속으로 설치신 고하였다. 2001년 쉼터가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 실무자가 생기고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행정적으로나 업무적으로 독자적인 운영이 가능해졌지만 이 시기에는 상담소 부설로 운영되었다.

 

 

2001~ 2004: 안정과 모색

 

2001년부터 국가에서 인건비를 지원받고 그간의 경험이 쌓이면서 성폭력상담소의 기본적인 운영은 안정기로 접어들었다. 상근직원이 늘어났으며 기관 소유의 사무실로 이전하였다. 상담소의 특화사업으로 심리상담과 놀이치료를 이용한 방문상담을 시작하면서 사업의 주요영역과 대상이 교회에서 일반으로 변화하였고 일반 성폭력상담소와 구별되는 지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힘을 비축하며 내부의 역량을 키우던 시기였다.

 

홀로서기

 

2001년 0월 정부지원 상담소로 결정되어 운영비가 지원되기 시작하였다. 소장이 상담과 연대 사업을 담당하고 교육담당 실무자 일인, 홍보 및 사무담당 일인으로 총 3명의 실무자들이 모두 상근으로 일을 하게 되었고 사업에 따라 반상근 간사를 쓰기도 하였다. 2003년부터는 김미숙 소장님과 교육부, 상담부, 홍보부 등 5명 체계로 개편되었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인력을 확충하는 것에 기관의 부담은 컸지만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2002년 1월 5일에는 천여공 제 10차 정기총회에서 분리 독립이 결정되었다. 새로 들어오는 실무진들이 천여공 회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긴밀한 관계에서 상담소를 운영하는 것이 어려워졌고 자립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처음 상담소가 개소되면서 세웠던 장기목표는 달성된 셈이다. 전세로 살던 수녀원집터가 재개발이 되면서 2003년 7월에는 사무실도 이전하였다. 후원주점과 특별후원사업 등을 거쳐 많은 분들의 정성으로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저소득층 성폭력피해어린이 방문상담, 상담소의 방향을 잡다

 

2000년 12월에 지원한 ‘저소득층 성폭력피해어린이 놀이미술치료를 위한 방문상담’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프로젝트로 선정되었다. 프로젝트는 2001년부터 시작되었고 2001년 7월에서는 서울시 늘푸른 정보센터(현 서울시 늘푸른여성지원센터) 테마사업 성폭력부분에 ‘보호시설에 있는 성폭력피해청소녀 방문상담’ 프로젝트가 선정되어 지원을 받았다. 이 사업의 성과는 개소 4주년 놀이치료 미술치료를 통한 저소득층 성폭력피해어린이 방문상담사례발표회를 통해 타기관들과 공유되었다. 방문상담 사업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여성부, 서울시의 지원을 번갈아 받으며 계속되었고 2005년부터는 복권기금의 지원을 받고 있다.

방치되어있는 성폭력피해아동을 보며 느낀 안타까움에서 시작된 이 사업이 상담소에 미친 영향을 세 분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내용면에서는 놀이미술치료를 포괄하는 심리상담, 방법상으로는 방문상담, 대상의 측면에서는 아동이다.

 

1) 심리상담

일반적으로 성폭력상담소에서는 외부의 상담전문가나 놀이치료사에게 사례를 의뢰하거나 연계하게 된다. 우리 상담소에서 직접 심리상담을 할 수 있었던 건 실무자 중에서 상담심리를 전공한 상담심리사들이 다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동놀이치료와 청소년과 성인 심리상담을 상담소 내부에서 소화하면서 수퍼비젼도 강화되었다. 기관의 주도하에 월 4~5회 수퍼비젼이 이루어지면서 개별 상담자의 임상경험이 쌓여 가는 만큼 그 경험이 기관에도 함께 축적될 수 있었다.

 

2) 방문상담

저소득층 및 소외계층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방문하여 놀이치료 및 심리상담을 하는 방문상담은 역량을 갖춘 상담원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성폭력상담원 교육을 수료하고 상담을 전공하거나 상담을 하고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필요한 교육을 개발했으며 정기적인 보수교육과 수퍼비젼을 통해 전문 인력을 양성해왔다. 8년의 사업을 통해 배출된 인력들은 방문상담원계약이 종결된 후에도 사회복지나 상담, 성폭력상담소에 일하고 있어 기관 간 연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었으며 방문상담 사업을 통해 연계된 복지관이나 공부방, 쉼터 등도 사례 진행시 함께 논의가 가능한 소중한 자원이 되었다.

 

3) 아동

아동의 경우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성폭력피해 이후 면접단계나 심리상담 단계에서도 지원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러한 아동에 초점을 맞추면서 아동발달이나 심리적 상태, 성폭력피해 후유증이 나타나는 증후, 성폭력피해 외에 환경적 어려움에 대한 대처방법, 부모 상담 등에 대한 정보를 경험적으로 축적할 수 있었다. 특히 열악한 환경에서 성적, 신체적, 정서적 학대피해로 고통 받는 아동들을 지켜보면서 통합적 접근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2005~ 2007: 도약과 혼란

 

2005년이 들어오면서 두 가지 큰 프로젝트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3년 동안 진행된 ‘아동성학대 대응능력 강화사업’과 ‘저소득층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성교육센터’를 통해 인건비와 사업비가 확보되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졌다. 그간 하고 싶었던 많은 사업이 시도되었고 상담지원체계가 개선되고 교육활동이 급격히 늘어나는 등 가시적인 성과와 함께 내적인 성장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인력과 활동이 급격하게 확대된 만큼 조직 정비에 투자되는 에너지가 컸고 덩치가 커진 만큼 시행착오를 바로잡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기관의 도약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실무자들의 소진이 컸다.

 

아동성학대 대응능력 강화사업

 

2004년 10월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테마사업에 선정된 ‘아동성학대 대응능력 강화사업’이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전담인력 1인과 사업비가 3년 동안 지원되었는데 이 프로젝트를 통해 상담소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업들을 진행할 수 있었다.

<성학대피해아동의 사회적 서비스 개선을 위한 실태조사, 동작구 아동성학대 지킴이단 발대식 및 활동, 아동성학대 예방과 대처를 위한 교사교육사업, 정책 간담회, 아동성학대 예방과 대처를 위한 교사 지침서 및 실무자 지침서 제작 및 배포, 아동성학대상담원 업무지침서 제작 및 배포>

사업을 진행하면서 성폭력상담의 전문성에 대한 고민도 함께 진행되었다. 기존 상담소의 상담과정에서 위기지원과 심리지원이 통합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반성과 함께 사례지원시스템을 통합적으로 재구성하고 개별 상담원들이 한 사례를 모두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전문적인 역할을 가지고 상담원들이 함께 하나의 사례를 지원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상담원들의 전문성을 높이는 동시에 소진을 방지할 수 있었다. 상담인력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역할을 중심으로 한 체제개편이 가능하였다. 상담소에서 할 수 있는 지원과 할 수 없는 지원을 분명히 구별하고 우리가 할 수 없는 지원이 가능한 기관을 확인하고 연계하는 작업도 함께 이루어졌다.

 

천주교성폭력상담소 부설 성교육센터

 

노동부 사회적 일자리 사업으로 선정된 성교육센터는 저소득층 청소년과 아동을 주요대상으로 하여 2005년 3월부터 2008년 3월까지 10명이 인건비를 지원받았다. 센터 10명, 아동성학대전담인력 1명, 기존에 있던 상담원 5명까지 상담소는 16명의 실무자로 가득 찼다. 장소와 일할 책상과 컴퓨터를 구하는 일이 문제였다. 개별 사무실을 얻었다가 다시 상담소로 들어오는 등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인력 확보 측면으로 보면 단연 기회였다. 센터의 직원들은 성폭력상담원과 성교육강사로 훈련을 받았고 센터와 상담소 업무를 함께 나눌 수 있었다. 3년의 사업기간 동안 총 00회의 교육을 하였으며 교육을 나간 수많은 기관과 새로운 연대를 맺을 수 있었다. 또한 2003년 이후 시작되었던 집단상담식 성교육을 좀 더 변화 발전시켜 성매매, 성폭력피해자, 성폭력가해자, 미혼모, 가출 청소녀 등 특수집단성교육을 진행하였고, 대상의 성격이나 연령에 따른 교안을 작성하여 경험과 연구의 결과를 나누고자 하였다.

그러나 3년의 활동을 통해 이후 센터를 유지할 수 있는 인력과 재정을 확보하려 했던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다.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불안정함과 낮은 급여, 기관 확장 단계에서 생긴 업무역할의 혼란 등으로 생긴 갈등 등이 어려움 중의 하나였다.

 

연대활동과 지역활동에 힘을 쏟다

여성단체로서의 정체성이 컸던 첫 번째 시기(1998~2000)에 비해 전문성을 강조하며 사업을 키워가던 두 번째 시기(2001~2004)는 외부활동이 제한적이었다.

2005년에 들어서며 상황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실무자들이 늘어나면서 소장이 실무영역 외에 다른 영역으로 눈을 돌릴 수 있었다. 성폭력 예방과 대처과정에서 사회적 인식과 법, 정책의 중요성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통합적 지원을 강조하며 사례관리를 시도하다보니 사례지원에서도 지역사회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김미숙 소장님이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공동대표, 청소년위원회 위원을 맡으면서 정책제언과 사회홍보활동에 좀 더 힘을 기울였으며 상담소 차원에서도 기관이 위치한 동작구 내 경찰서와 간담회를 가지거나 여성폭력단체들과의 연계시스템을 구축하는 등의 활동을 해나갔다. 동작구 내에 지킴이단에 동의한 000개의 약국과 문구점에 스티커를 부치고 안정장소로 활용하고 이를 학교교육에서 홍보하는 식의 사업도 함께 진행되었다. 활발한 지역 활동을 통해 발견된 지역 내 학대피해사례나 성폭력사례가 상담소에 조기신고 되고 이후 지역단체나 사회복지사, 동사무소 등과의 협력을 통해 피해아동과 가족을 여러 방향에서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2008~ : 선택과 집중

 

인건비와 사업비가 지원되던 프로젝트 사업이 종결되었다. 사업은 축소되었으나 성과는 상담원 개개인과 상담소에 축적되어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했다.

 

10년의 성과와 한계

 

1991년 1개소였던 성폭력상담소가 2008년에는 200여개소로 확대되었다.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지원서비스를 비교적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운영주체나 상담소의 성격에 따라 서로 다른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상담소에 따라 운동성을 강조하며 사회적 인식 개선이나 정책제언, 반성폭력 운동을 주요하게 펼치기도 하고 사회복지전달체계의 하나로 상담서비스만 강조하기도 한다. 법률 제정과 정부의 운영비 지원을 통해 상담소들이 제도권 안으로 편입되면서 각 상담소의 활동이 지도점검의 이름으로 통제되는 경향도 보인다. 여기에 더불어 정부주도의 아동성폭력전담센터, 원스탑지원센터 등이 확대되면서 민간 상담소들이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천주교성폭력상담소의 10년사를 돌아보면 가톨릭여성운동단체에 기반을 두고 시작하였으나 ‘운동성과 종교색은 약화되고 전문성은 강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고 할 수 있다.

성폭력상담에서 운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모자람이 없고 교회 내에서 여성의 시각을 확대하고자 하였던 개소 초기의 문제의식 또한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운동성의 약화는 여전히 우리의 한계로 남는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상담소에 요구되는 것들을 모두 해낼 수 없는 상황에서 이제껏 우리는 ‘개개인의 내담자를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성과를 다른 상담소들과 공유하고 타 상담소들과의 긴밀한 연대 속에서 운동성을 견지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할 것이다. 그와 더불어 교회 내 성폭력문제를 제기하고 그 해결방법을 모색하는 것 또한 앞으로의 과제라 할 수 있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2007년 10월과 2008년 2월에 모든 프로젝트가 끝나면서 상담소 조직체계가 정비되었다. 성교육센터가 정리되면서 교육 사업은 대폭 축소되었지만 사례관리자, 지원상담자, 심리상담자 등 역할을 중심으로 개편된 사례관리체계는 그대로 살아남았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6명의 실무자가 상담소에 남았다. 매해마다 운영비를 확보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지만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 앞날을 걱정했다면 지금까지 올 수 없었다.

건강한 상담자가 내담자를 돕고, 행복한 실무자가 기관의 미래를 만든다. 그래서 2008년, 우리의 새로운 시작은 행복한 실무자, 건강한 상담자 만들기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윤순녀 대표 인터뷰 : 지난 10년의 기억 “두려워 말라. 내가 너의 곁에 있다”

 

 

올해로 기관이 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소감이 남 다르실 텐데 어떠신가요?

 

10년이라는 시간이 참 빨라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실감이 안나요. 시편에 보면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는 말이 있는데 그 생각이 나더라구요. 10년이 너무 금방 지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10년 동안 우리가 집을 세 번 옮겼는데 그 생각도 나고. 지난 10년은 정신없이 여기까지 달려온 것 같아요.

 

기관의 태동부터 지금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하셨는데 처음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정신대 할머니들과의 만남

 

92년에 정대협 할머니 문제가 처음 신문에 났는데 그때 나는 필리핀에서 여성학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였어요. 얼마나 충격적이고 놀라웠는지 12월에 한국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정대협 사무실이었어요. 그 때 정대협도 힘들 땐데 찾아가니 너무 반가워하더라고. 천주교에서도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함세웅 신부님께 부탁해서 할머니를 위한 미사를 드리자고 했지요. 내 생각에 그걸 해 드려야할 것 같았어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강연도 하고 돈도 모아서 그 해 말에 아현동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는데 할머니 20여분이 오셨고 신부님도 여러분 오셨어요. 93년도에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여성공동체’가 만들어져서 정대협 사업을 함께 하게 됐죠. 그러다가 95년 북경세계여성대회를 가게 되었고 한 1년 동안 같이 가는 사람들과 여성대회에 대해서 공부를 했는데 그 그룹에서 자연스럽게 나왔던 얘기가 교회 안에서 여성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삼각지 성당 방 한 칸에서 시작하다.

 

97년도에 그 얘기가 좀 더 가시화되면서 천여공 부설로 성폭력상담실이 출범하게 되었지요. 상담이야 방에 전화 하나 두고 하면 되는데 교육 장소가 없는 거예요. 함세웅 신부님께 의논을 하니까 삼각지 성당의 박은종 신부님을 찾아가 보라고. 그래서 갔더니 너무 쉽게 ‘쓰세요’ 그러시는 거예요. 생각보다 너무 쉽게 돼서 오히려 걱정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걱정을 하니깐 성당은 누구에게나 열린 하느님이 주신 장소라고, 특히 힘없는 사람들에게 열린 곳이니까 쓰라고. 그래서 주중에만 쓰는 조건으로 책상 하나, 전화기 하나, 컴퓨터 하나 두고 그렇게 시작이 된 거예요. 교육실 빌리러 갔다가 사무실까지 된 거죠. 98년 6월에. 그리고 이제 실무를 해야 하는데 막막하더라구요. 그래서 천주교여성공동체 이름으로 한국성폭력상담소에 공문을 보냈어요. 그러니까 당시 소장이었던 최영애 씨가 직원들한테 물어본 거지. 상황이 이러이러한데 할 사람 있냐고. 아마 월급은 어려워도 교통비정도는 줄 거라고. 그래서 오게 된 사람이 김미숙 선생님이예요. 김미숙 선생님이 오면서 실무자가 생기고 장소도 생겼으니 박차를 가해 가지고 교육도 시작하고. 1기 교육이 끝나는 날, 개소식을 했어요. 그래서 시작한 거는 더 먼저였지만 우리 생일이 10월 29일이 된 거죠.

 

故 박은종 신부님에 대한 아픈 기억

 

박은종 신부님을 생각하면 고맙고 감사하고, 지금은 만날 수 없는 분이니 마음이 참 슬퍼요. 신부님께 참 고마운 게 당시 우리가 실무자랑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근근히 최소한의 경비로 운영하고 있을 때인데 종종 사무실에 들러서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보시고서는 그냥 봉투를 놓고 가세요. 열어보면 5만원도 들어있고, 10만원도 들어있고. 그런데 성당 분위기가 참 험악한 거예요. 그래서 왜 그런가 하고 했더니 성당 신자들이 신부님한테 불만이 좀 있었던 거예요. 신부님이 오자마자 성당 안에다 노숙자들이 잘 수 있는 쉼터도 만들고, 성폭력상담소에 방도 빌려주고 그러니까. 당시만 해도 남들이 생각할 때 성폭력상담소 그러면 더러운 단체 이런 게 좀 있었고, 게다가 노숙자 쉼터는 낮에는 동네할머니들 와서 지내는 건물인데 밤에 노숙자들을 데려와서 자게 했거든. 그 때가 IMF 터지고 나서 얼마 안 지났을 때라 서울역에서 사람들이 밀려오니깐.

그러다가 99년 3월 달에 신부님 발령이 휴양으로 나온 거예요. 본당 오신지 일 년 만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강원도 상동 공소에 계시다가 2000년에 우리 곁을 떠나셨어요. 우리 때문에 삼각지 성당을 떠나신 것 같아서 늘 마음이 무겁고 아팠죠.

 

수녀원의 도움으로 두 번째 집으로 이사가다

 

박은종 신부님은 가시면서 우리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후임신부님께 다 얘기해 두겠다고 그랬었지만 오신 신부님께서 저희에게 사무실을 비워 달라고 하시더라구요. 여기저기 부탁도 하고 매달려 보기도 하던 중에 다행히 ‘그리스도의 성혈 흠숭 수녀회’ 수녀님들이 도와줘서 상도동으로 이전을 하게 되었지요. 워낙 수녀원 수련소였는데 집도 크고 마당도 넓은 그 좋은 집을 6000만원에 빌려줬어요. 2000만원은 어떻게 융통을 하고, 나머지는 내가 전세를 빼서 이사를 왔지요. 99년 6월부터 2003년 7월까지 상도동에서 살았어요. 99년 겨울에 그 집에서 정말 너무 고생을 했어요. 그 집이 엄청 컸는데 독일식 기름보일러 난방비가 300~400만원이 든다는 거예요. 그 때 우리가 기름값이 어디 있어. 먹고 살 것도 없는데. 그냥 떨고 살아야지. 낮에는 실무자들이랑 함께 있어도 밤에는 나 혼자 있어야 하는 거야. 정말 그 해 겨울은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이게 정말 하느님의 역사라는 게 그 너무너무 추운 겨울에 떨면서 지내는데, 저희 교육을 받으셨던 박선과 신부님께서 어느 날 신자 한 분이 군대 간 아들을 위한 미사를 부탁드리면서 봉투를 하나 가지고 왔는데 그 때 우리 생각이 났다고 그러면서 그 분을 모시고 우리 집에 오신 거예요. 가시고 나서 봉투를 열어보니 거기에 200만원이 들어 있었어요. 그 해 성탄선물이었죠. 우리에겐. 정말 소중하고 감사한 돈이었죠. 그 돈으로 기름 넣고 조금씩 조금씩 아껴 쓰면서 첫 해 겨울을 났어요.

 

쉼터 개소, 그리고 세 번째 이사

 

처음에는 집도 실무자도 없어서 쉼터를 하는 건 생각도 못하다가, 두 번째 집으로 이사를 하고 나니까 공간도 생긴데다 서울시에서 한번 와서 보고는 쉼터를 빨리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99년 10월 25일에 쉼터 개소를 했고 2000년이 되면서 한두 명씩 사람이 오기 시작했죠. 그때는 돈도 없고 쉼터 실무자도 없었으니까 낮에는 상담소 실무자들이 함께 있고, 밤에는 나랑 있고. 참 고생 많았던 때였어요. 김미숙 선생님도 정말 고생했고. 그 때가 우리가 뿌리를 내리던 시기였으니까. 쉼터 운영을 위해 실무자가 꼭 있어야 하겠는데 돈도 조금밖에 줄 수가 없고 하다 보니 어떻게 인연이 잘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2000년 겨울까지 두 해 겨울을 제가 혼자 지내다가 2001년에 정부보조금이 나오면서 실무자를 쓰게 되었고 그 때부터는 조금씩 정상적인 괘도에 올라가게 된 거죠. 2003년 7월에 지금 집으로 이사 오면서 좀 더 안정이 된 거고. 이후 5년 동안은 무난하게 왔던 것 같아요. 김미숙 선생님이 건강 때문에 갑작스럽게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그만두게 된 게 큰 일이였지만 또 그만큼 우리 기관이 내공이 쌓여서 윗사람이 하나 없더라도 받쳐줄 수 있을 만큼 인력확보가 됐다는 게 또 감사한 일이죠. 그렇게 꾸려나간 김미숙 선생님 덕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을 하셨는데 여성문제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87년 유월항쟁이 지나면서 그 후유증이었는지 당시에 내가 몸이 많이 아팠어요. 어느 날 성서를 보다가 그날따라 예수님이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건 뭐 수도 없이 읽었던 건데 그날따라 내 눈에 왜 여성이 그 카운트에 빠졌을까 그런 의문이 드는 거예요. 그러면서 구약책을 읽으니 여성억압의 역사고, 성경을 읽으면서 믿음이 성장한다기보다는 오히려 혼란이 있었죠. 그러다가 89년에 6월에 미국 메리놀 신학교에서 열리는 여성신학 심포지엄에 초대가 된 거예요. 거기서 참 충격이었던 게 신학교 학장이면 남자 신부일줄 알았는데 숏팬츠에 젋은 여자가 왔다 갔다 하는데 그 사람이 학장이라는 거예요. 예전에 수녀였다가 그만둔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참 놀랍더라구요.

그러던 중 심포지엄에서 요한복음 4장을 강의를 듣는데, 예수님이 정오에 물을 뜨러 나오는 여자에게 예수님이 찾아가 물을 잡숫고 싶다고 그래요. 그 여자가 ‘지체 높으신 분이 이렇게 하찮은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하니까 ‘나는 너의 신분을 다 알고 있다. 너는 이미 6번 결혼했고 너의 남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있다’ 그러시죠. 여자가 놀라서 어떻게 그걸 다 알고 있냐고 하니깐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해요. ‘나는 네가 찾고 있는 메시아다.’ 여자가 그 얘기를 듣고 뛰쳐나가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해요. 우리가 찾던 메시아를 만났다고. 근데 요한복음 3장을 보면 신학자 니코데모가 예수님을 찾아가서 ‘진리가 무엇입니까, 어떻게 거듭나야 합니까’ 하고 계속 물어 보는데도 예수님은 자기가 메시아임을 밝히지를 않아요. 사실 요새로 하면 낮에 물 뜨러 나오는 여자는 성매매여성이거든요. 예수님이 당신이 메시아임을 처음 밝히는 상대가 바로 그러한 여자였던 거였지. 그 강의를 듣는데 갑자기 내 안에서 뭔가가 막 끓어 오르더라구. 예수님이 이천년 전에 잘난 신학자가 아닌 여성에게 와서 자신이 메시아임을 밝혔듯이 지금도 우리를 찾아와서 밝혀주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눈감고 있구나! 예수님이 오늘 내게 이걸 알려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너무 신났죠, 이제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구나. 내가 성서에서 느꼈던 의문이 풀리면서 90년대부터는 한국에 들어와 여성신학과 여성학공부를 하고 미친 것처럼 일을 했죠.

 

처음 상담소나 쉼터를 만들던 시기에 가졌던 바람이나 저희 기관 이름이 표방하는 바를 생각한다면 사실 종교성이 좀 더 강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 현재 기관의 모습이나 하는 일을 보면 교회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처음부터 구성원을 천주교신자만 뽑아야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신자 중심으로 간다면 협소해질 거라고 생각했죠.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이름을 걸고 있는가와 무관하게 공동체에서 필요로 하는 일, 약자와 함께 하는 일을 한다면 그게 하느님의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다만 교회내 성폭력은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이며 늘 고민하고 있죠.

 

이름이 천주교성폭력상담소지만 그렇다고 하여 저희가 다른 상담기관에 비해 특별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황에서 교회 내 성폭력문제를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요.

 

우리 기관이 가톨릭사회복지회에 소속되어 있으나 교회조직 안에 들어있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조직적인 개입을 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외부에 있기 때문에 강점이 있기도 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이 천주교에 근원을 두고는 있으나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은폐하거나 두둔하는 건 없습니다. 해서도 안 되는 일이구요. 개소 2주년 되는 해에 천주교 가정사목위원회와 함께 ‘현대사회와 성’이란 주제로 심포지엄도 개최하고 논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했었지만 그 때 그 때의 사회적 요구에 따라 일을 하다 보니 오히려 교회 내 성폭력문제를 이슈화하고 다루는 일이 지연된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 상담소 내부의 역량이 모자라는 부분도 있고요. 우리가 다른 성폭력상담기관과 다를 수 있으려면 이론적으로도 무장이 되어야겠지만 구체적인 사례에서도 잘 대처할 수 있도록 교회 조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어떻게 개입을 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할 것이고, 회칙이나 교서 등을 근거로 하여 대처할 수 있는 논리 또한 연구되고 토의되어야할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게 앞으로의 과제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이름 얘기가 나왔으니 천주교성폭력상담소와 평화의 샘이라는 명칭은 어떻게 지어진건가요?

 

처음에는 천주교여성공동체 부설로 시작했으니 자연스럽게 천주교성폭력상담소라고 짓게 됐죠. 메리놀외방전교회의 하유설 신부님이라고, 당시 자문위원이시던 신부님께서 요한복음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문구를 따서 ‘평화의 샘’이라고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는데 다들 찬성해서 그 이름도 함께 쓰게 됐고요.

처음에 우리 상담소를 홍보하고 다닐 때 이름이 그게 뭐냐고. 천주교가 성폭력만 하는 느낌이 든다고 하는 신부님들도 있었어요. 천주교는 성폭력과 무관하다는 의식이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천주교에서 금기시되는 논의가 성문제, 독신문제 등인데 이것에 대해 얘기하면 교회가 무너진다고 생각들을 해요. 그건 아니죠. 교회의 주인은 사람, 즉 평신도들이거든요. 이게 다 종교라는 도그마 때문에 그런 거예요. 아이고, 하다 보니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나갔네요.

여하튼 지금은 행정적으로 분리되어 상담소는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쉼터는 ‘평화의 샘’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만 우리 안에서는 상담소와 쉼터 모두를 통칭하여 ‘평화의 샘’으로 부릅니다. 앞으로 법인이름으로 쓸 생각이기도 하구요.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시면서 힘든 것도 있고 좋았던 것도 있으실 거라 생각됩니다.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길을 만드는 것은 참 힘든 것 같아요. 가장 힘들었던 건 집을 구하러 다니던 일이예요. 세 차례에 걸쳐 집을 구한다고 길거리를 헤매면서 항상 ‘하느님 우리가 어디서 이 일을 해야 하나요’ 하고 물어보곤 했어요. 젊어서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고 하면 나는 못할 것 같아요.

좋았던 건, 쉼터에 오랫동안 있었던 친구가 결혼한 것이에요.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요. 부모도 없고 글자도 하나도 모르는 상태로 와서 호적도 만들고 이름도 다시 만들고, 다시 태어난 거죠. 그 힘든 시기 잘 견디고 이제 가정을 가지고 살면서 때 되면 찾아오고 그런 게 너무 이쁘고 보기 좋아요. 기쁨이죠.

 

그동안 고생도 많았지만 10년을 돌이키면 보람도 크실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생각하는 방향이 있으시면 얘기해주세요.

 

상담소와 쉼터가 함께 사단법인을 만들 예정입니다. 법인이 되면 현재 있는 집처럼 기관이 가지고 있는 재산도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관리될 거고 공동체의 틀 안에서 상담소나 쉼터가 계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상담소는 현재 전문성을 많이 인정받고 있는데 현재 가지고 있는 전문성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물론이구요. 방문상담처럼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 저소득층 사람들에게 찾아가는 방식의 상담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쉼터 같은 경우에는 현재 쉼터가 청소년쉼터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밖에 있을 수 없거든요. 청소년의 자활이란 결국 중고등학교를 잘 다니게 하고, 대안학교나 검정고시를 통해 사회에 건강하게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일 텐데 그들이 정말 홀로 설 수 있기 위해서 지금 쉼터만으로는 부족하죠, 앞으로 혼자 자립하기 어려운 친구들을 위한 자립관 같은 개념의 중간집을 만들고 싶어요. 아이들이 삶의 중심이 되고 우리는 도우미 역할을 해 주는 그런 공간이면 좋겠어요.

해야 할 일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그러나 지나간 10년을 돌아보면 하느님이 저희 곁에 있으셨다고 느껴집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열심히 뛰겠습니다. 이제껏 여러 분들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고 앞으로도 이 일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관심 가져주시는 많은 분들과 함께 해내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윤순녀 대표는 국제가톨릭형제회(A.F.I) 회원으로 가톨릭노동청년회 회장, 민통련 중앙위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공동대표, 한국여신학자협의회 공동대표,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여성공동체 회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 등을 역임하셨으며 현재 평화의샘 쉼터의 시설장과 기관대표로 일하고 계십니다.

제 11기 성교육강사 양성교육 실시

교육신청서.hwp0byte양성교육_일정(08년).hwp0byte2008년 11월 10일부터 12월 8일까지 5주에 걸쳐 성교육강사 양성교육을 실시합니다.
교육대상: 아동 및 청소년의 성교육에 관심이 있으신 분(성폭력상담원과정이나 가정폭력상담원과정을 이수하신 분들은 신청서만 제출, 이수안하신분들은 졸업증명서 제출)
교육일시: 2008년 11월10일~12월8일(5주) 30시간
교 육 비: 100,000원
교육문의: 김태옥(825-1272)

개소 10주년 기념 하루잔치 “10월의 어느 멋진날에”

– 당신이 바로 평화의 샘입니다 –

성폭력 예방과 치유를 위해 노력해 온 천주교성폭력상담소가 올해로 10년이 되었습니다. 그간 성폭력 근절을 위해 함께 했던 후원회원, 자원활동가, 상담원, 성폭력피해 생존자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이에 모두 한자리에 모여 서로 서로 지지와 용기를 돋우며 즐겁게 놀다 가시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동안 함께 해주셨던 여러분들의 아낌없는 성원을 기대하며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 일시 : 2008년 10월 31일(금) 12:00 ~ 오후 10:00
– 12:00 ~오후3시 : 점심
– 오후3시 ~ 10시 : 호프
– 오후7시 : 본행사
감사맞이
천주교성폭력상담소&쉼터 평화의 샘 가족 노래공연
성폭력없는 세상을 위한 동행자 감사패
축하나눔

@ 장소 : 1호선 대방역 3번 출구 [비스바겐]

성폭력피해자를위한 집단상담 참가자모집안내

집단상담신청서(최종).hwp0byte안녕하세요?
천주교성폭력상담소에서 성폭력피해자를 위한 치유와 성장 집단상담 참가자를 모집합니다.

1. 목 적 : 집단상담이라는 만남의 장에서 지금-여기에서의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탐색하고 표현하며, 서로를 비춰주는 성실한 거울이 되어줌으로써, 자신과 타인을 좀더 깊이 이해하고 수용하며, 성장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2. 참가대상 : 20세 이상의 성폭력피해 여성(어릴 적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거나, 성인 후 성폭력 피해경험이 있는 사람)

3. 기 간 : 10월 21일~12월 2일, 매주 화요일 오전10시~오후1시
(3시간씩 7주간, 총21시간)

4. 참 가 비 : 무료(여성부 지원)

5. 장 소 : 천주교성폭력상담소 (7호선 장승배기역)

6. 접수방법 : 신청서 접수(팩스 및 이메일 접수) 후 확인 전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신청서는 천주교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www.peacewell.org) 게시판의 공지사항에서 다운받아 사용
① 이메일 : wellpe98@hanmail.net
② 팩 스 : 02-825-1292
③ 전 화 : 02-825-1272~3 (담당: 김형옥)

7. 신청마감: 2008년 10월 9일 목요일
* 선착순 8명 모집 (이후 신청자는 대기자로 접수됩니다.)
* 신청서 접수 후, 신청자 개별 통화 후에 집단상담 참가 여부가 확정됩니다.

부모집단 마감 및 참가신청 안내

★프로그램 2는 마감되어서 더 이상 접수를 받지 않습니다.

프로그램 1은 현재 접수중이오니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부모집단프로그램에 초대합니다.

프로그램_안내문.hwp0byte참가신청서.hwp0byte천주교성폭력상담소 2008년 부모집단프로그램 안내

아이에게 일어난 일을 알게 된 이후
새로운 것들을 알아야만 했고,
낯선 일들을 해야만 했고,
많은 것들이 변해버렸고,
그 모든 것을 부모라는 이름으로 견뎌내야만 했습니다.
사회의 편견과 벽에 부딪쳐 상처받았지만,
아이를 보면서 나약해질 수도 없었습니다.
이제 잠시나마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온전히 당신 자신과 만날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프로그램 1> 성피해자녀 부모를 위한 집단상담

“나, 너와 함께,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찾고 만나고 함께 한다.
지금-여기에서 나를 느끼고, 너를 알고, 함께 성장한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스스로가 보는 자신과 타인이 본 자신의 모습은 같은 부분도 있지만 다른 부분도 많습니다. 지금-여기에서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탐색하고 표현함으로써, 자신과 타인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성장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 ~ 오후 1시 (3시간씩 8주간, 24시간)

*9월 23일 시작합니다.

<프로그램 2> 치유예술로의 초대 (성피해자녀 부모 표현예술치료)

“우리가 살아오면서 겪는 개인의 역사를
통합적 예술을 통해 표현해봄으로써 외상을 극복하고
창조적이며 자발적인 자기를 발견하여 생활에 변화를 가져온다.”

우리의 경험은 무의식적 이미지, 기억, 감각 등으로 신체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동작, 드라마, 그림, 글쓰기 등 다양한 표현예술매체를 활용하는 일은 놀이와 상상을 통해 이러한 경험을 가져옴으로써 우리가 창조적, 자발적으로 살아가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놀이와 상상의 형식을 통해 일상에서 억압되었던 내면에 접촉하여 정서적 고통을 치유하는 심리적 과정에 기초합니다.
*매주 목요일 오후 1:40 ~ 4:40 (3시간씩 8주간, 24시간)

*9월 18일 시작합니다.

*참 가 비 : 무료(여성부 지원)
*장 소 : 추후공고

※접수방법 : 두 가지 중 편리하신 방법을 선택하여 접수하시면 됩니다.
접수 후 확인전화(☎02-825-1272 ❧담당:오윤정)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① 이메일 : wellpe98@hanmail.net
이메일 제목을 집단상담 신청(참가자이름)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② 팩 스 : 02-825-1292

※신청마감 및 개별면접 안내
1차 신청마감 : 8월 29일(금)
프로그램 시작일 이전에 참가자 사전 개별면접 1회 있습니다.
접수하신 순서대로 일정을 잡습니다.(프로그램별 선착순 8명)

★프로그램 2는 마감되어서 더 이상 접수를 받지 않습니다.
프로그램 1은 현재 접수중이오니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축’ 정혜자선생님<어린이마음치료>출간

본 상담소 아동상담 수퍼바이저이신 정혜자선생님이 <어린이 마음치료>(교양인)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셨습니다.
놀이치료전문가 정혜자선생님은 본 상담소에서 수년간 저소득층 성학대피해아동을 위한 놀이미술치료 방문상담 수퍼바이저(지도전문가)로서 아동상담원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으로서의 역할을 해주시고 있습니다.
정혜자선생님의 30년동안의 아동상담의 노하우를 담은 <어린이마음치료>를 통해 더 많은 상담자와 부모가 아이들의 마음과 참 만남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워크샵후기>성학대피해아동상담자를 위한 부모및보호자상담

workshopone.jpg0byteworkshoptwo.jpg0byte본 상담소 주최로 2008년 8월 9일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상담워크샵 II <성학대피해아동상담자를 위한 부모 및 보호자상담 워크샵>이 실시되었습니다.
이번 워크샵은 2008년부터 본 상담소 주최로 연중 실시하는 상담원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의 일환으로서 첫번째 교육프로그램 <심리검사의 이해와 개관> 이후로 두 번째로 실시된 워크샵이었습니다.
이날 교육에서 강사는 놀이치료전문가이며 본 상담소 아동상담수퍼바이저이신 정혜자선생님과 , 본 상담소 상담실장 박가람 선생님이었습니다.
총 21명의 교육생들이 참여한 이 날 워크샵에서는 상담자들이 부모 및 기관보호와 어떻게 성학대피해아동을 위해 협력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주된 관심과 초점이 모아졌습니다.

2007년 전국성폭력실태조사 보고서-여성부

2007년전국성폭력실태조사보고서인쇄본.hwp7.5M

『2007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개요

ㅇ 목적
– 성폭력에 관한 일반인의 인식 및 피해 실태, 피해자의 특성 및 요구, 피해자 지원시설의 서비스 및 운영 상황 등 성폭력에 관한 전반적인 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기초로 성폭력 방지를 위한 정책 방안을 제시


ㅇ 추진 체계
– 주관부처 : 여성부
– 주관연구기관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 공동연구기관 :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한국가정법률상담소


ㅇ 사업 기간 : ’07. 5. 8. ~ ’08. 1. 31.


ㅇ 사업 내용
– 일반인조사
– 피해자조사(보호시설 등 이용자)
– 지원시설조사(상담소, 보호시설, 1366센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