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발언2. 준강간 사건의 성인지 관점을 고려한 적극적 수사를 촉구한다!

불법촬영 동반 준강간 사건 엄정 수사 촉구 기자회견

 

발언2. 준강간 사건의 성인지 관점을 고려한 적극적 수사를 촉구한다!

 

 

: 김태옥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소장)

 

지난 몇 년간 우리사회는 각계각층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사건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연대하며 피해자들을 지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술이나 약물에 의한 준강간사건이나, 연인관계에서 발생하는 성범죄에 대해서는 피해자에 대한 편견과 통념이 여전히 만연하여 기소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중인 준강간사건을 공동대응하고 있는 준강간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준강간공대위)’에서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를 통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준강간사건의 피해자 769명 중 67%512명만이 수사기관에 신고를 하였고, 그중 기소되어 공판까지 간 피해자는 229(44%)뿐이었습니다.

 

피해자들이 성폭력피해에도 불구하고 신고하지 못 한 가장 큰 이유는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고, 성폭력피해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거나, 가해자 처벌을 위해 지나치게 반복된 진술이 요구되는 반면 실제 가해자가 처벌은 받게 되지 않을까봐(42%)가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였습니다. 실제 사건이 불기소되거나 무죄가 나오는 이유 또한 피해자의 상태를 심신상실 혹은 항거불능 상태로 보기 힘들어서(43%), 가해자의 고의성이 합리적 의심없이 증명되지 않아서(24%), 피해자의 진술의 신빙성이 낮아서(20%),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않아서(8%) 등이었습니다.

 

준강간 사건의 피해자는 범죄 피해를 당하게 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로 인해 자신의 피해사실과 그 피해 전후의 상황에 대해 명확하게 진술 또는 입증을 하기가 어렵고, 수사 및 재판기관은 합리적 의심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힘들다며 불기소 혹은 무죄로 판단합니다. 혹여 피해자가 만취상태인 것이 확인되더라도 만취한 줄 몰랐다’, ‘합의하여 성관계를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가해자가 주장하면 다시 범죄의 책임을 규명하는 일을 피해자에게로 돌리며, 이때 피해자에게는 피해자다운 피해자인가라는 왜곡된 통념 기준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은 물론 피해상황에서의 심신상실 여부, 가해자의 고의성 등도 함께 의심의 잣대로 판단되는 것이 현 수사재판과정의 현실입니다.

 

이 사건은 준강간사건의 잘못된 통념과 인식 뿐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일’, ‘두 사람간의 사소한 일로 치부되는 연인관계에서 발생한 성폭력사건입니다. 데이트 중 자신의 명백한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인 강요에 의해 일어나기도 하고 약물이나 술 등을 이용해 성적인 행동에 대한 자기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든 후 성범죄가 발생하지만 수사 및 재판기관의 지극히 낮은 성인지 감수성으로 처벌은커녕 신고조차 어렵고, 신고를 하더라도 2차 가해의 상황에 놓이곤 합니다.

 

본 사건 피해자는 가해자와 술을 마신 후 기억을 잃어 자신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으며, 이후 핸드폰에서 나온 불법촬영물을 보고 자신에게 성폭력피해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늘상 약물을 소지하고 흡입하며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약물을 강권한 가해자의 행동으로 미루어, 가해자가 자신에게 약물을 사용하였다고 의심하였습니다. 더구나 불법으로 촬영된 영상의 피해자는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었고, 일상적인 관계에서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았을 성폭력상황이었습니다.

 

지난 2월 대법원 형사3부는 피해자가 음주 후 스스로 한 행동을 기억하지 못한 준강제추행사건에 대해 술에 취해 정상적인 판단능력 및 신체적 대응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면 심신상실상태에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며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폭넓게 해석하여 음주 후 기억상실 일명 블랙아웃을 유죄취지로 파기 환송하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본 사건 또한 피해자가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태였는가, 만취하여 혹은 약물에 취하여 정상적인 판단이나 대응이 가능한 상태였는가, 라는 성인지적 관점으로 사건의 실체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준강간사건의 피해자를 천편일률적인 피해자의 모습으로 정형화하여 외면한다면, 추후 술과 약물에 의한 준강간사건은 범죄자들에 의해 계속 악용될 것입니다.

 

이제 수사기관은 변화해야 합니다.

술이나 약물에 의한 성폭력사건이 잘못된 사회통념이나 피해자다움을 강요하지 않고, 사건의 전후 맥락, .가해자의 평소 성행동, 가해자의 약물습관, 상대방의 의사결정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지, 피해자의 적극적인 합의를 구하였는지 성인지적인 관점을 고려한 수사가 진행되어야 합니다. 피해자가 성폭력으로 인한 고통을 더 이상 받지 않도록 피해여성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고 가해자의 범죄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