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상담소의 일주일, 우리 이렇게 일해요.

월요일

 

전화상담과 인터넷상담

 

한 주의 시작이다. 출근한 나는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는 상담이 있는지 확인한다. 실무자들이 요일을 정해서 들어오는 인터넷상담과 전화상담을 받는데 월요일은 나다. 확인해보니 주말에 들어온 인터넷상담이 없다. 다른 기관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우리 상담소에서는 면접상담 등 기관으로 방문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에 비해 인터넷상담의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연 신규사례 100사례이상, 연 상담건수가 2000건을 넘어가는 상황에서 사례가 더 많이 들어오는 것도 걱정이지만 왜 인터넷상담이 줄어드는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다음 회의에서 좀 더 논의해봐야 할 것 같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오늘 할 일을 확인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중학교 2학년 여자아이의 엄마다. 늦은 밤 학원에서 귀가하다 집 앞에서 누군가에게 끌려가 성폭행을 당했단다. 점점 살이 찌는 아이가 이상하다 싶었을 때는 이미 임신 6개월. 경찰에 신고를 했더니 수사를 한답시고 학교에 와서 이것저것 캐묻고 다니는 바람에 학교친구들에게도 피해사실이 모두 알려져 버렸단다. 방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안 나오려는 딸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하다. 이제 겨우 15살, 성폭력으로 임신한 아이를 뱃속에 두고 있는 아이의 마음이 어떨지, 남편 없이 키워온 딸의 고통을 봐야만 하는 엄마의 마음이 어떨지, 그 마음을 가늠하다 전화를 받는 내 목소리가 오히려 떨렸다. 당신이 일을 다니느라 집에 없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고 자책하며 울먹이는 어머니에게 그런 거 아니라고, 잘못은 어머니가 한 게 아니라고 말해드린다. 만날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먹먹하다. 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한지 올해로 4년째, 나를 자위상대 삼아 신음소리를 내는 음란전화부터 이런저런 사소한 가정상담까지 많은 것들에 익숙해졌고, 세상에 일어나지 않는 일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실제 그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은 수화기 너머에서조차 너무나 생생하다.

 

성폭력상담원교육, 성교육강사양성교육

 

전화를 끊고 한숨을 돌리고 보니 오늘따라 상담소가 한적하다. 해마다 하반기에는 성폭력상담원 및 성교육강사양성 교육이 있는데 일주일에 한번 교육이 있는 날이 월요일이라 오윤정 선생님과 김태옥 선생님은 바로 교육장으로 출근한다. 몇 년 전만 해도 교육정원 80명을 채우고도 신청자가 몰려들어 대기자 명단까지 만들었었는데 올해는 영 교육생이 모이지를 않았다. 머리를 싸매고 커리큘럼을 짜고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신 분들을 어렵게 모시는 데도 올 해의 수강생은 20명이 겨우 넘었다. 장소임대료에 강사료까지 지급하고 나면 인건비도 남지 않는 적자라 하지말자는 얘기도 나왔지만 그래도 어쩌랴. 성폭력을 예방하고 대처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성폭력문제를 이해하고 성폭력 없는 세상을 위해 주위를 돌보고 생활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이 한명이라도 더 많아지는 것이니 말이다. 이제껏 기관에서 배출한 교육생만 000명,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교육을 이어나갈 지 좀 더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손해를 보더라도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심리상담

 

점심을 먹고 난 후, 김형옥 선생님은 상담에 들어갔다. 3,4시간 연이어 상담을 하고 오더니 지친 눈치다. 연이어서 상담을 하고나면 나 또한 약간 힘이 빠진다. 심리 상담을 전공했으나 처음 생존자들과 만났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도 많았다. 눈물을 흘리며 가해자에게 한 폭력과 학대에 대해, 사회의 냉랭한 시선이 얼마나 무서운지 말할 때면 정말 뭐라 한 마디 위로할 말을 찾을 수 없어 무기력해지곤 했다. 살아내야 할 삶이 참으로 슬프고 막막하여 울고 싶기도 했다. 그럴 때 수퍼바이져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 “상담자는 내 앞에 있는 한 사람과 그저 함께 있고, 함께 인내하고 귀 기울여주는 것으로서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란 말씀이 얼마나 내게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내 자신이 가장 무능하다고 느꼈던 그 순간이 내가 할 수 있었던 가장 최선이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화요일

 

상담소회의, 기획회의, 전체회의

 

 

오늘은 금요일과 함께 회의가 몰려있는 날이다. 우선 매주 오전 상담소 식구들이 모여 사업진행상황이나 각자의 업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함께 논의하는 상담소회의가 있다. 오후에는 기획회의로 상담소와 쉼터 실장과 소장, 대표님이 모여 기관운영사항들을 논의한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상담소, 쉼터 실무자 전원이 모여 업무보고를 하고 주요사항을 논의하는 전체회의가 있는 날이다. 지난주에 각자 작성했던 월별보고서를 취합하고 돌아가면서 업무보고를 한다. 이번 회의에서는 앞으로 있을 10주년 기념행사에 대한 논의가 오랜 시간 이어졌다. 다음 주에 샘동이들과 함께 갈 가을소풍 준비도 빠질 수 없다. 일이년 전만 해도 상담소 직원들도 매주 금요일마다 돌아가며 쉼터 당직을 섰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그냥 저녁 한 끼 해먹고 하룻밤 자는 건데 뭐 어려울 거 있나 하겠지만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어떤 아이들이 쉼터에 머물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아이 한 명이 칼로 자기 발을 찍어 샤워하던 중에 옷도 못 입고 머리에는 거품칠을 한 채 뛰쳐나와야 했을 때도 있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1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을 중학생, 고등학생 나가는 순서대로 깨워 밥 먹여 학교 보내는 것도 어려웠다. 이 일을 매일 하는 쉼터 당직자들은 참 대단하다. 여하튼 쉼터 실무자들이 보강되면서 상담소 직원들이 당직을 할 필요가 없어져 부담이 덜기도 했지만 한 집에서 아래위층에 사는데도 당직을 안 하니 얼굴 볼 일이 많이 없다. 그래서 가능하면 일 년에 한 두번이라도 실무자들과 샘동이들이 함께 여행을 가곤 했는데 올 해는 그럴 기회가 없어서 가을소풍을 함께 가기로 했다. 올해 가을소풍 장소는 절두산 성지와 선유도공원. 가서 뭐하고 놀 건지도 뭘 먹을 건지, 누가 어떤 준비를 할 건지도 정했다.

오전에는 상담소회의, 오후에 기획회의와 전체회의를 하고 나니 다들 진이 빠졌나 보다. 힘들어 죽겠는데 김미순 선생님은 청소하자고 난리네. 우리 사무실이 좀 지저분하기는 하지만 우리 소장님은 청소를 너무 열심히 한다 말이지. 후다닥 정리를 하고 오늘은 다들 칼퇴근!

 

 

수요일

 

직원능력향상을 위한 스터디모임

 

30분 일찍 출근했다. 매주 수요일마다 상담소 직원 전원이 모여 공부모임을 시작한 지도 3년이 되었다. 최근 몇 달동안 공부하고 있는 주제는 아동성학대이다. 작년에 호주 주정부에서 성학대 피해아동 상담자들을 훈련시키는 일을 하시는 분께 교육을 받았던 오윤정 선생님이 이번 주제를 이끌고 있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함께 원서를 번역하면서 기본적인 개념을 다시 잡고, 외국의 지원사례나 체계에 대해서 공부하고, 이를 다시 현재 기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례들에 적용해보는 일은 나 자신에게도 도움이 많이 된다. 아직 국내에서는 성폭력상담에 대한 연구가 오래되지 않은 터라 여유가 된다면 외국의 연구들을 정기적으로 리뷰해 보고 싶은데 시간이 없으니 아직은 요원한 이야기다. 마음이 있으면 언젠가는 가능해지겠지.

 

성폭력예방교육활동, 성교육강사모임 긷다

 

오전에 긷다 모임이 있는 터라 김태옥 선생님이 분주하시다. 긷다 모임은 성교육강사모임의 이름인데 ‘평화의 샘에서 물을 긷다’ 에서 따온 말이다. 10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면서 성교육강사모임도 많이 성장하였다. 매해 성폭력상담원교육에 이어서 성교육강사교육을 한 후 희망자에 한해 강사모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2주에 한번 빡센 세미나에 들어간다. 여성학 공부에 교안작성 공부까지 끝나려면 거의 1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실제로 교육을 나가기 전에는 시연까지 해보는데 이게 실제 교육보다 더 어려우시단다. 우리가 교육을 나가는 곳은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학생과 학부모, 교사 그리고 복지관, 지역공부방, 성매매쉼터, 성폭력쉼터, 가출청소녀 쉼터, 성당이나 교회 주일학교 등 수도 없이 많다. 성교육센터가 있던 3년 동안 충실히 대상별로 교안연구를 하고 교재도 많이 만들었다. 작년(2007년)에 했던 교육만 493회였다. 그런데 센터가 없어지고 나니 교육이 들어와도 나갈 사람이 없어서 걱정이다.

 

위기지원

 

김윤정 선생님은 외근이다. 며칠 전 중학교 상담교사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의 일기장에서 친부와 친오빠에게 학대받고 있다는 것을 보셨단다. 긴급하게 개입해야 한다는 판단으로 경찰에 미리 연락을 해둔 후 오늘 아이를 만나러 갔다. 엄마는 없고 할머니만 있다는데 선생님 말로는 아이를 비난하고 있단다. 학교로 출발하기 전 모여서 상황에 따라 어떻게 대처할 건지 간단히 논의한 후 김윤정 선생님은 상담소를 나섰다. 이런 상황이면 우리 모두 떨리고 두렵다. 할 때마다 어렵고 막막한 느낌이 들곤 한다. 혼자서 그 상황을 맞이할 상담원은 얼마나 마음이 무거울런지.

이런 날은 돌아오기를 기다려 함께 술이나 한 잔 하면 좋을 텐데 김미순 선생님이 동작구 지역사회복지협의체 회의가 있어서 나가야 한단다. 이런 저런 일로 몇 명 되지도 않은 직원들이 다함께 모이는 것도 어렵다.

 

목요일

 

방문상담, 그리고 성학대 피해아동을 위한 놀이미술치료

 

우리 기관에는 ‘방문상담’이라는 특화된 프로그램이 있다. 상담소를 시작한 후 성폭력피해를 입었을 때 부모가 아이를 상담소에 데리고 오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사는 것이 힘에 겨운 부모가 시간을 내기 어렵거나 부모가 가해자일 경우, 또는 부모가 없는 경우에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방문상담이다. 상담전공자들을 교육시킨 후 가정이나 복지관, 시설 등으로 찾아가서 상담하도록 하는 것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학대를 경험한 아이들의 회복과정은 지난하지만 그 변화는 놀랍기만 하다. 찾아오는 내담자들을 지원하고 상담하는 것과 달리 찾아가는 상담은 여러 가지로 힘들고 어렵다. 그래도 그만 둘 수 없는 건 우리가 가지 않으면 상담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아직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아이가 만든 상담시간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
아이가 만든 상담시간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

 

심리상담 수퍼비젼

 

매 주 전문가 선생님들을 모셔서 수퍼비젼을 한다. 오늘은 방문상담을 시작할 때부터 함께 해주셨던 정혜자 선생님이 수퍼비젼을 주신다.

방문상담원 선생님이 일 년이 넘도록 씨름하고 있는 아이. 엄마는 남편의 폭력에 못이겨 집을 나가고 알콜 중독 아빠와 둘이서만 지내왔던 8살 아이는 그동안 말도 표현도 없었다. 상담이 진행되면서 이제야 조금씩 아팠던 마음과 숨겨진 분노가 행동이 아닌 말로 표현하고 있다. 언제 그 회복의 과정이 끝날지는 알 수 없다. 치유과정의 끝을 정하는 건 상담자가 아닌 아이들이다. “네가 좋아질 때까지, 내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까지 함께 갈 거란다.” 어쩌면 우리가 아이에게 주는 건 그러한 믿음일지 모르겠다.

 

방문상담 사례회의

 

수퍼비젼 후에 방문상담사례회의가 이어졌다. 열악한 환경에 있는 아이들이다 보니 놀이치료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사례관리를 맡고 있는 김윤정 상담원과 방문상담을 맡고 있는 김형옥 상담원이 함께 참석하여 방문상담원 선생님들과 논의를 한다. 상담하는 장소는 적절한 지, 보호자 상담이 필요한 지도 논의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를 돕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논의하기도 한다.

오늘은 새로 방문상담을 시작하는 사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아이를 만나고 온 상담원 이야기로는 병약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밖으로 도는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으시단다. 워낙 동네아저씨에게 피해가 있었으니 이대로라면 재피해를 입을 수도 있으니 걱정이다. 아이의 안전을 위해 일상생활을 돌봐주고 점검해줄 수 있는 사람이 우선적으로 필요할 것 같다. 하교 후에 갈 공부방과 정기적으로 아이를 들여다봐 줄 수 있는 복지관을 알아보기로 했다. 성학대 피해를 경험한 아동이 앞으로도 성학대를 포함한 모든 학대로부터 안전하게 지역사회 안에서 보호받고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우리의 일일 것이다.

 

 

금요일

 

상담소 사례회의, 동료 수퍼비젼

 

10시, 이번 주에 들어온 새 사례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례들을 함께 논의한다. 사례가 접수되면 사정면접 및 평가 이후에 개입계획을 세우고 법적지원이나 의료적 지원, 개인상담과 부모상담이 함께 진행되고 목표달성정도에 따라 종결이 결정된다. 이러한 과정이 모두 사례회의에서 다루어진다. 이번 주에 들어온 사례는 모두 8사례. 피해자가 청소녀인 친족사례가 3사례, 집주인 할아버지가 월세방 아이를 수년간 추행해온 사례, 스토킹 사례 등 2시간이 넘게 어떻게 할 지 고민을 해보지만 참 쉽지가 않다. 각자 담당할 사례를 정하고 역할을 확인한다. 요즘 자살사건이 연이으면서 혹시나 위험 신호가 있는 내담자가 있는지 점검하고 어떻게 대처할 지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한다. 아, 이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저런 모임과 수퍼비젼, 회의 중간에 상담도 하고 행정업무도 처리하고 직원들끼리 모여 앉아 수다도 떤다. 이렇게 또 한 주가 간다.

쉬는 주말에 우리가 쉰다고 하여 성폭력 사건 또한 쉬지는 않겠지. 토요일, 일요일에도 방문상담과 개인상담은 지속되고 월요일 출근하면 또 다른 사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상담소 10년 동안 우리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그럼에도 항상 부족하고 항상 어렵지만 또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걸어 나간다.

상담자가 믿지 않는 희망을, 운동가가 믿지 않는 미래를 그 누가 함께 가겠는가. 상담소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 사회의 모든 진보적인 사회운동이 얼마나 한 인간에게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법과 제도를 바꾸려는 투쟁이, 세상의 편견의 맞서려는 노력이, 내 이웃에 대한 관심과 봉사가 개개인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알아가는 것은 참으로 경이롭다. 힘든 때도 있지만 그 한 구석 어딘가에 자리 잡고 앉아 밥벌이도 하고 어려움을 함께하며 함께 성장해나갈 수 있다는 건 어쨌거나 행복한 일이다.

 

<글쓴이: 박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