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샘공동체 25주년 새로쓰기 인터뷰]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날마다 평화를 꿈꾸다

3. 정미애 청소년지원시설 평화의샘 시설장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날마다 평화를 꿈꾸다

 

 

평화의샘 공동체 25년 역사는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게 된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에 대해 다시 질문하면서 다양한 생존자들과 함께해온 과정이다. 평화의샘은 한국사회의 모든 변곡점에 여성/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있음을 보면서 활동가와 생존자로서 깨어나고 성장해왔다. 2023, 평화의샘 공동체 25년을 맞이해서 다양한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평화의샘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활동을 했으며 활동가들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편집자 주]

 

 

2004년 3월 22일, 성매매방지법은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로 제정되었고 같은 해 9월 23일부터 시행되었다. 청소년지원시설 평화의샘(이하 평화의샘)은 그 중 보호법에 근거해 운영되는 생활시설(쉼터)이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여성 청소년들은 다양한 성착취/성매매/성폭력(조건만남, 디지털성범죄, 그루밍성범죄 등)을 경험했다. 이들은 한 가지 사건만을 겪는 것도 아니고 사회/인지/환경/신체적 조건과 인생의 맥락 안에서 만성적인 성착취 대상이 되도록 유도되곤 한다. 이러한 경험을 하는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평화의샘에 대해 정미애 시설장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보았다.

청소년과 함께 여성폭력을 마주하다

 

정미애 시설장(이하 정미애)은 성매매방지법 제정 및 시행 다음 해인 2005년 3월에 평화의샘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컴퓨터/웹 관련 일을 하던 정미애는 지인의 소개로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성교육센터 홍보기획팀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그간 해오던 일을 상담소 업무에 일정 부분 접목할 수 있겠구나 싶은 막연한 생각으로 접근했는데 이때의 정미애는 여성주의나 여성단체에 관심이 있거나 따로 생각해 본 적도 없는 평범한 30대 여성이었다. 활동할수록 성폭력피해상담과 사회복지를 공부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고 그렇게 자격을 갖춘 뒤 청소년지원시설로 이동했다. 상담소에서는 주로 성인들을 만나다가 지원시설에서 청소년을 만나면서 성폭력과 성매매의 차이를 구분하려는 이성적 시선에 앞서 ‘청소년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더 많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활동가와 시설장으로서 18년 동안 활동해왔다.

 

“평화의샘을 만나기 전 저의 이십대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주도적이거나 주체적 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때로는 세상의 많은 시선에 맞춰 갈등하지 않으려고 숨기도 했었고요. 그러다 청소년을 만나면서 사회적 모순과 부당함이 제 눈에 더 띄더라고요. 안타까웠고 그래서 힘을 더 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이제 보호에서 권리로, 피해자로서의 권리와 권리의 정당성을 이야기하고 교육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하려고 해요.”

 

지금은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권리를 행사하게끔 해야 하나, 어떻게 의무를 지키라고 말하나, 늘 질문을 하고 고민을 하는 이 부분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폭력이다/아니다’라고 판단하고 개입하는 정도였지만 자신도 모르는 채 겪었을지 모르는 일상의 폭력을 자각하기 시작했고 불편함도 많아졌다.

 

“폭력이라는 말은 나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성폭력 피해는 다른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내 주위에서는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깊이 알아갈수록 너무 많은 일들이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나는 그걸 배제하고 살았구나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여기서 저는 처음 접했던 것 같아요.”

 

‘돈이 필요하니까 성을 파는 거고 개인 당사자의 문제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지만, 평화의샘에서 활동하면서 성매매 구조를 알게 되고 청소년이 성착취 경험에 노출되기 쉬운 취약한 환경을 만들어내는 우리 사회를 보게 되었다. 개인의 문제로 보기보다 왜 그렇게 개인이 성착취 경험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지 그 흐름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 물론 여전히 평화의샘은 개인 청소년의 삶에 더 집중하는 것을 우선 가치로 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개인에게 원인을 전가하듯이 청소년 일탈과 취약함에 집중하기보다 전체적인 성매매를 용인하는 사회구조가 문제라는 것을 기본적인 의식으로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성폭력피해자 쉼터에서 선도보호시설로, 선도보호시설에서 성매매피해지원시설로

 

1960년대 윤락행위등방지법에 의해 설치된 부녀직업보도시설의 강제입소와 인권침해 문제점이 방화와 죽음으로 드러나면서, 1990년대에는 인권침해문제와 직업재활/자립에 있어서 비효율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부녀직업보도시설에 대해 헌법소원에서 위법이라고 판시되었으며 시설들이 폐쇄되고 1990년대 후반에는 시설입소절차를 개정하여 선도보호시설이 생겼다. 성매매를 할 우려가 있다고 보여도 강제하지 않게 되었으며 본인이 입퇴소를 결정할 수 있게 되었고 성인보다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입소 비율이 늘었다. 한 발 더 나아가 성인과 청소년들을 분리해 청소년에 대한 충분하고 전문적인 지원을 하는 것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며 이것은 2004년 성매매방지법의 피해자 지원체계 안에 통합되었다.

평화의샘은 선도보호시설이라는 체계 안에 있었지만 위에 설명한 부녀직업보도시설의 흐름과는 다른 맥락을 가진다.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안전기지로서 쉼터를 운영하다가 청소년들의 성폭력/성매매/아동기 학대가 혼재하는 복합적인 경험과 상황을 목격했다. 그러면서 이들에 대해 지원하고 함께 지낼 수 있는 체계로서 선도보호시설을 선택했고 성매매방지법 이후에는 성매매피해지원시설로 정체화했다.

 

“폭력피해여성을 지원하는 단체로서 이용시설 말고 생활시설도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거라서 ‘선도’라는 개념이 있지는 않았어요. 피해 유형 상관없이 사람을 중심에 두고 삶에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에 가치를 두었죠. 원가정에서 지내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의식주와 심리·정서적 지원으로 자연스럽게 확장했어요.”

 

평화의샘에는 오래전부터 인지능력에 한계가 있는 청소년들이 시설 내에 많았다. 한계에 부딪히는 경험과 소통의 어려움이 많았고 도움을 받을만한 지원체계도 전무했다. 발달상의 장애가 있는 청소년들이 가출을 하면 성착취 범죄의 대상이 되는 일이 많았다. 실종 신고를 해서 경찰이 사건 현장에서 구조하는 일도 있었고,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 줄 몰라서 각 지방으로 직접 데리러 가는 일도 많았다.

 

“피해를 인지하지 못하는 정도의 취약한 인지능력의 청소년들이 노년 남성에게 막대 아이스크림을 받고 성착취를 경험하는 걸 보면서 전문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장애인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위기교육센터와 협업을 많이 했고요.”

 

평화의샘에는 갈수록 발달장애를 가진 청소년 비중이 늘고 있고 일반 학교 시스템에서는 소화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학습·또래관계·자기역량강화·진로상담·성인지를 바탕으로 한 자기방어능력강화 같은 것들이 그렇다. 다양한 외부 시스템을 찾아서 청소년의 자원으로 삼기 위해 연대하고 만들어내고 있다. 사단법인 평화의샘에서 인지능력에 한계가 있는 청소년을 위한 아동청소년지원센터 띠앗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성착취 뿐만 아니라 청소년의 삶 전체를 조망하며 만난다

 

평화의샘이 만나는 청소년들은 구조적인 폭력피해의 상황에 놓이고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고 그래서 피해자로서 지원을 받는다. 정미애는 이러한 당사자 청소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자체로서 존엄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과 존중받는 경험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들은 방임과 폭력의 형태로 선택의 기로에 놓여왔고 자기 확신 없는 결정과 안전하지 않은 결과를 견뎌왔다. 청소년들이 폭력의 피해에 놓이지 않도록 기성세대로서 안전기지의 역할에 대해 오래 곱씹는다고 한다. 국가와 사회가 충분히 하지 못한 사회적 안전망을 다시금 세우는 역할을 하는 것이 평화의샘의 몫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청소년들이 성착취의 피해자일 수는 있지만 일련의 삶의 과정에서 늘 피해자로 명명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대외적으로 지칭할 일이 있으면 어떤 때는 피해자라고도 하지만 다른 때는 생활인이나 청소년으로 얘기하는 편이에요. 사건과 관련해 특정한 때가 아니면 가능한 한 피해자라는 말은 안 쓰려고 해요.”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성착취를 경험한 여성이 늘 피해자로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성착취 피해가 중요한 트라우마 경험이기는 하지만 한가지 트라우마가 삶을 온통 잠식하지만은 않는다. 피해를 경험한 누구라도 그 피해 이후의 성장 경험을 할 수 있다. 평화의샘 청소년들도 자기 삶을 꾸려가는 한 사람의 주체이자 주인공으로서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생활시설은 성적 피해 관련만 지원하는 게 아니라서 의료/법률/치료회복 프로그램 같은 피해지원 사안에 따라 종결하지 않는다. 학교도 다니고 생활하는 전반에 걸쳐서 24시간의 일상을 함께 지내기 때문에 청소년으로서의 발달과정까지 보다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다보니 사회적인 보장이나 피해자에 대한 지원 시스템 외에도 그 청소년 한 사람의 부모, 공교육, 지지체계를 포함해서 직접 소통하고 일을 추진하기 마련이다. 신뢰 있는 관계 형성을 통해 정서적으로 마음을 읽고 빈틈을 메우고 다지는 것도 주된 일이다. 지자체나 복지체계에서는 지원대상자라는 표현도 하겠지만, 평화의샘이 청소년들을 복지 시혜의 대상자로 명명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평화의샘이 성착취 피해 청소년들과 연대하기

 

N번방 사건 이전에도 가출한 지적장애 청소년이 성인 남성들에게 성폭력을 당했으나 성매매 ‘대상’ 청소년으로 판결이 나면서 십대여성인권센터를 중심으로 성매매/성폭력단체들이 움직인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들의 심각성이 공론화되면서 형법에서는 의제강간 연령이 상향되고 아청법에서는 ‘대상’ 청소년을 삭제하고 모든 성매매의 상대가 된 청소년들을 피해자로 인정하는 개정이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시스템 안에서 성착취는 더욱 만성화되고 은밀해지고 있으며, 일반 대중이나 법조인들의 인식 변화는 더디다고 느낀다.

 

“우리 사회가 거대한 공모 구조이다 보니까 청소년과 성인을 연결하는 채팅 앱을 제제하고 사용을 불편하게 하는 일이 어려워요. 성착취가 산업형에서 디지털로 변모하면서 개인 대 개인의 사적인 문제처럼 인식하는 것도 가장 큰 문제구요. ”

 

성매매 방지법이 2004년도에 만들어지고 현재 20년이 지나가면서 성산업 구조나 청소년 성착취 방식 등 모든 현상들이 변화하는 상태에서, 젠더 폭력 유형마다 다른 특성이 있고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데 피해자지원시스템도 예전의 지원체계 그대로 법 개정이 되지 않다 보니 답답함을 느낀다. 한국 사회는 큰 사건이 있을 때만 반짝하고 청소년에 대한 성착취 문제에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한다. 청소년을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여기고 성착취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여가부를 폐지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고 재정 지원의 열악함이 이렇게 심각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청법이 개정됐지만 성매매 된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해서 청소년의 성매매가 곧 성착취라는 인식이 아직도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청소년 성착취 피해는 여러 문제들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현상인데 그 현상을 단편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이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우리 활동에 있어 걸림돌이죠.”

특히 지원시설은 직접 지원과 시설 운영 실무에 치여서 어떤 시스템을 그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펼치기에 역부족이고, 개개인의 특성에 맞춰서 다양한 방식으로 상향지원으로 가는 복지여야 하는데 예산에 대한 불안정은 심화되고 있다는 걸 체감한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복지 재정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의샘은 기본적으로 의식주를 비롯한 생활, 교육, 안전을 도모하는 역할을 한다. 또 워낙 제때에 돌봄 받지 못해서 혹은 착취적인 경험들에서 비롯된 질병이나 신체적/정신적 어려움들을 해결하기 위해 의료지원을 한다. 법률 지원과정에서는 활동가가 어떤 인식을 가지고 조력을 하느냐에 따라 감정·자존감·사건에 대한 해석들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전문적인 조력가에 의한 법률지원이 필요하고 그렇게 진행하고 있다.

개인들은 저마다 다른 정도의 정서적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데, 생활 안에서도 개별마다 정서적 접근이 달라지고 세밀하게 접목시키려 한다. 개별 욕구에 맞는 교육이나 심리상담, 성인지교육, 여행, 자기방어훈련, 자신을 탐색하는 집단 프로그램, 여가 활동들이 그렇다.

 

“평화의샘 청소년들에게는 다정하게 놀아주는 것, 친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대상이 되어주는 것이 가장 채워야 할 부분이고 가장 원하는 것이기도 해서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의료든 법률이든 치료회복이든 피해지원체계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관계형성이 기본이어서 여기에 많은 힘을 쏟고 있어요.”

 

성인이 되어서 바로 독립적인 생활을 하거나 성공적인 자립생활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지는 않다. 그래도 사회화와 관계형성이 잘 될 때 자활에 가까워질 거라고 한다. 스스로 하찮지 않은 존재감을 느끼고, 서로 도움을 받아야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나도 도울 수 있는 존재라는 감각을 가지고 평화의샘을 떠난다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것이다. 청소년이 지지받기 열악한 환경에서 ‘혼자는 아니다’라는 생각이라도 들게끔 하는 데 힘을 쓰고 있다.

한편, 활동가로서 청소년들에게 피해 경험을 들을 때, 그들이 말하는 상황과 장면들이 정미애 개인의 상상 이상일 때 많이 힘들다고 한다. 모욕적이고 무력하게 무차별적으로 당한 것들을 폭력이라 생각하지 못하는 걸 볼 때,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도 크지만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청소년들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예전에는 그 청소년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폭력인지 모르고, 계속 피해를 당하는지도 모르고 당하는 청소년들에게 더 많은 질문을 했다면, 이제는 질문 대신 그 청소년의 마음과 감정을 읽어내고,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교육을 하고,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요. 이 일이 숨겨지거나 피해지는 일이 아니고 성매매 피해도 말할 수 있고 당사자가 당당할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어요.”

피해 정도의 크고 작은 문제로 보기보다, 청소년들이 불쾌한 감각이나 원하는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는 감수성/자기방어 훈련을 위해서 어떤 것이 필요할까가 가장 절실하다고 한다.

 

 

나는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해 이런 상상을 한다

 

관계나 사회 집단에 적응하기 어려운 청소년들에게는 홈스쿨링 하듯이 학업체계가 인정되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고 상상한다고 한다. 작은 사회화 훈련을 할 수 있는 장으로서 생활 시설이면서 대체학력이 인정되는 시스템이다. 또한 다양한 형태의 청소년지원시설이 있어서 저마다 게스트하우스 형식, 학력 인정되는 형식, 자활을 특성화한 형식 등을 특화하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은 여러 경험을 해봐야 하는 시기인데 경제적인 자활 시스템 안에 묶이면 본인의 가능성을 찾기 어려울 수 있고, 자신의 특성과 개성과 재능을 발견할 수 있도록 실컷 놀면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청소년에게는 자활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센터나 하자센터 같은 시스템도 생활시설과 접목해보고, 경제적 자활을 유예할 거라면 기본소득도 필요하다 싶다.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품위 유지와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경제기반을 보장하는 것도 방법이다.

최근 평화의샘은 지원시설로서 지금처럼 생활시설·자활지원센터·상담소 등 성매매방지법이 처음 생길 때처럼 이 형태대로 지속할지, 생활시설이라는 틀을 깨고 주거/일상 지원도 하면서 이용시설로서 새로운 활동으로 전환할지 고민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는 평화의샘 청소년들을 보면서 여전히 생활시설의 보호와 지원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아주 오래전에 생활했던 이들이 올 곳이 있는 것도 의미 있고요. 이번 홈커밍데이 때 오래전에 있었던 전 생활인이 왔는데, 내 흰머리를 보자마자 나를 껴안고 우는 거예요. 너무 놀랐어요. 성매매를 하고 안 하고가 아니라 삶의 태도가 상대를 공감하는 방식으로 변화되고 성장했구나 라는 게 느껴지니까 너무 많이 놀랐어요. 아직은 생활시설로서 충분히 성매매피해 청소년들을 지원하고, 그 청소년들에게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정미애는 지난 18년간 활동가를 채용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정말 하고 싶은 마음 없이 단순히 직업으로 삼기에는 성매매 영역은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현장에서는 성인지 감수성이나 성매매에 대한 관점을 계속 훈련해야 하는데 그 훈련의 과정이 체화되지 않으면 불편해서 오래 있을 수가 없다고 한다.

제일 힘든 것은 생활인 청소년들과 부대끼면서 서로에게 내상을 입히는 자잘한 상처다. ‘지나가는 과정이구나’하고 소화시키고 넘어갈 때도 있지만 컨트롤이 안 될 때는 자신도 모르게 자괴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여기저기 기웃기웃 하지만 그 마음을 가장 알아주는 사람은 동료 활동가들이다. 빨리 마음을 읽어주고 얘기를 풀어내면서 괜찮아지고 힘이 생긴다. 돌봄노동의 가치에 대한 건강한 인정과 투자는 활동가 사이에서 먼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몸을 움직이는 여러 활동, 수영·등산·요가를 하면서 생각을 멈추는 작업을 좀 많이 해요. 끊어내는 작업, 비우는 작업. 우리가 하는 일에서는 당장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그럴 때는 그냥 비워야 다시 세울 수 있어요. 정말 출근하기 어려운 날에는 동료 활동가들이 이해해줄 때가 있어요. 서로에게 그런 유연성은 좀 발휘되어야 오래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정미애는 성착취가 단기간에 근절되거나 청소년 치유와 자립이 마음먹은 대로 금세 이루어지는 게 아니기에 비우고 내려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러다 보면 조그만 변화를 보아도 가능성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고 한다.

하찮아 보이지만 작디작은 일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것,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재하고 살아가는 것을 긍정하는 것, 이것이 생활시설의 의미이지 않을까.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날마다 작은 평화를 꿈꾸고 만들어내는 것이 평화롭지 않은 폭폭한 세상에서 우리가 승리하는 방법이라고 믿고 싶다.

 

 

<마녹 · 봄봄 · su:m 이 인터뷰하고, su:m이 정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