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샘공동체 25주년 새로쓰기 인터뷰] “평화의샘심리상담센터의 흥망성쇠?! 그래도 연대는 계속된다"

4탄. 신경숙 전 평화의샘심리상담센터장

 

“평화의샘심리상담센터의 흥망성쇠?!

그래도 연대는 계속된다"

 

평화의샘공동체 25년 역사는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게 된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에 대해 다시 질문하면서 다양한 생존자들과 함께해온 과정이다. 평화의샘은 한국사회의 모든 변곡점에 여성/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있음을 보면서 활동가와 생존자로서 깨어나고 성장해왔다. 2023년, 평화의샘 공동체 25년을 맞이해서 다양한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평화의샘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활동을 했으며 활동가들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편집자주]

 

평화의샘공동체(이하 평화의샘)는 폭력피해로 고통받는 여성들에게 심적 안정과 치유를 경험하게 하고 싶다는 윤순녀 대표로부터 시작되었다. 생존자들의 심적 안정과 치유를 위해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초기부터 역량 있는 심리상담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의 초기 활동을 기반으로 피해생존자의 트라우마 치유에 더 전문적으로 집중하고자, 2009년 평화의샘심리상담센터(이하 상담센터)를 개소하였다. 비록 법인 운영상의 문제로 2021년부로 사업은 종료되었지만, 여전히 성인지감수성이 높은 오랜 경력의 심리상담사들이 평화의샘과 함께 하고 있다. 그중 상담센터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였던 신경숙 전 평화의샘심리상담센터장(이하 신경숙)을 만나 평화의샘에서 상담센터가 가진 의미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여성폭력의 현실을 마주하고, ‘평화의샘을 만나다

 

신경숙은 본인의 삶을 평화의샘을 만난 2000년 이전과 이후의 삶으로 나누었다.

 

“2000년 이전의 삶. 뭐랄까 그냥 평범하게 여성의 역할, 사회에서 주는 여성이 하는 역할, 결혼해서 아이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고 ‘직장생활하는 여성은 극성맞고 암탉이 울면 집안 망한다.’ 이런 말들이 비일비재했었고. 그런 와중에 거기서 순응하며 살기는 했지만 감히 그걸 뛰어넘을 용기가 없었고, 주변에 지지세력이 없었고, 삶에서 뭔가 불편하고 억울하고 한이 맺히고 우울감에 시달렸었거든요? ”

 

신경숙은 결혼 후 여성을 속박하는 불합리한 가부장적 시스템 안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져 ‘이게 내 삶이 아닌데’라는 우울감과 혼란을 느껴 힘겨운 시기를 보냈다. 우울감이 지속되던 상태에서 성당을 다니며 마음을 돌보던 중 본당 수녀의 권유로 보건복지부와 천주교장상연합회에서 주관한 ‘제1기 가정폭력 전문상담원 교육과정’을 참여하게 된다. 세달 정도 교육을 받으며 가정폭력, 아동폭력, 성폭력, 학대에 대한 불합리한 사회적 병폐와 어둡고 다양한 문제들을 직면하게 되었고, 본인이 이제껏 알고 경험했던 삶의 틀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고통받고 치열하게 생존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들을 알고 난 후 그냥 내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과 뭔가 ‘해야 된다는, 해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교육받는 동안 계속 마음속에서 올라왔어요. 피하고 싶지 않고 맞서 싸우고 싶은 에너지가 분출했던 것 같아요. 이걸, 이 사람들을 만나니까 결은 다르지만 나도 그 고통 속에 있었던 사람이라는 게 더 부연이 되었던 것 같아. 그래서 열정적으로 사회악이나 불합리함에 맞서겠다 하는 게 그런 사람들을 만나니까 힘이 생겼던 거죠. 뛰어들게 되는 거 같아. 삶에 대한 희망? 뭔가 할 일이 생긴 거잖아요. 주어지니까 일상에 대한 활력이 생기더라고요.”

 

교육 마지막 강의가 끝난 후 바로 윤순녀 대표가 나와 평화의샘과 ‘제2기 성교육 전문강사 양성교육’을 소개하였고, 평화의샘과 신경숙의 첫 만남이 되었다. 교육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성문화에 관한 이야기, 성폭력 실태와 대책, 성교육의 필요성과 상담원의 자세 등의 강의를 들으며 ‘난 이제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나를 비롯한 여성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대처하면서 아픔을 함께 치유하겠다.’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교육이 끝난 후, 성폭력에 명확히 초점을 맞춘 평화의샘 활동에 끌려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게 된다.

 

 

자원활동가부터 시작해 심리상담센터장으로 성장하게 되다

 

신경숙은 2000년 10월~11월에 성교육 전문강사 양성교육을 마치고 평화의샘에서 전화상담 자원봉사, 학교와 부모 대상 성교육강사활동을 시작했다. 활동할수록 스스로 더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느껴 배움에 대한 갈망이 커졌다. 이후 2001년 4월~6월에 평화의 샘에서 제4기 성폭력 상담원 교육과 같은 해 8월 저소득층 성폭력피해 어린이 놀이, 미술치료를 위한 방문상담원 교육을 받은 후 성폭력 상담사로 활동영역을 확대하게 되었다. 활동을 확대하게 된만큼 전문심리상담사의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강한 의지로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상담심리사자격을 갖추기 위해선 많은 수련과 자기 성장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나서 내 한계를 마주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내 나이가 40대 후반이고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에 부담이 컸고 자격을 갖춘 상담심리사가 된다는 것은 너무 아득하고 이룰 수 없을 것 같아 망설이고 고민을 많이 했었죠. 그래도 일단 시작이 반이라고 너무 멀리 생각하고 계획 하지 말고 지금 당장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을 시작했어요.”

 

이후 상담심리사 2급 자격을 취득한 신경숙은 어엿한 심리상담사로서 피해생존자 심리상담활동을 천주교성폭력상담소에서 재개하였고 적극적으로 하게 된다.

2008년도 천주교성폭력상담소에서는 피해자 지원에 있어서 심리상담만이 필요한 영역이 아니라 그밖에 법률, 의료, 기관간 연계 등 통합적인 체계 아래서 피해자를 지원해야한다는 문제가 대두되었고 전환의 시기를 갖게 된다. 이에  2009년 3월 천주교성폭력상담소에서는 통합적 지원을 하는 상담소와 전문심리상담을 하는 심리상담센터로 분업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심리상담사들의 인원 감축과 업무조정 등 현실적 문제들이 대두되었고, 성폭력상담원 교육을 받은 역량 있는 심리상담사들과 함께 전문심리상담센터를 구성하게 되었다. 당시 상담소의 박가람, 김미순은 신경숙에게 상담센터의 센터장을 맡아 줄 것을 제안하였다.

 

“박가람, 김미순샘이 센터를 개소하는데 자원활동 차원에서 센터장으로 활동해 줄 것을 제안했을 때, 저는 “평화의샘이 나를 필요하다고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난 무조건 무조건 하고 싶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거면 열심히 하고 싶다. 하지만 내 역량이 그럴 수 있는지 걱정되어 망설여지는 부분도 있다”고 했더니 박가람, 김미순 선생님이 옆에서 도와주겠다고. 혼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고.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말에 용기를 내하겠다고 했지요.“

 

여성이 주체적으로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도록, 함께하는 심리상담센터

 

평화의샘심리상담센터는 “성폭력 피해 여성의 심리적 치유와 회복”이라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목표를 위해 10년간 활동해 온 특성화된 상담센터였다. 그에 따라 상담심리학을 전공하고 여성주의 관점으로 상담하는 전문가 자격을 갖춘 임상경험이 많은 상담심리사들이 활동을 하였다. 신경숙은 평화의샘을 방문하는 여성들이 ‘스스로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평등을 추구하는 여성으로서, 모든 사회 현상과 문제를 직시하고 고민하며 주체적으로 함께 아픔을 치유할 수 있길’ 바랐고 상담센터가 그 계기가 되길 원했다. 그래서 상담센터에서 활동하는 상담심리사들과 함께 꾸준히 스터디와 수퍼비전 등 모임을 통해 역량을 강화하였다.

 

그래서 평화의샘 심리상담센터는 여타 심리상담센터에서 광범위한 주제와 다양한 어려움을 다루는 것과 다르게, ‘성폭력 피해여성’이 피해로 인한 후유증에 집중해 전문적으로 심리지원을 받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였고, 상담사-피해생존자 간 뿐만 아니라 상담사들 간의 깊은 연대를 바탕으로 구성원 변화 없이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담센터의 활동은 천주교성폭력상담소의 안정적인 피해생존자지원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외에도 상담센터 초기 심리상담사 인턴을 양성하여, 인턴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평화의샘에서 함께 활동하는 심리상담사들이 있다. 그밖에도 다양한 기업이나 기관들과 MOU를 맺으며(동작아이존, 성가정입양원, 연대가습기살균제 보건센터, 기업EAP* 등) 연대활동을 지속했다.

*기업EAP: 기업 내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직원에게 전문가 상담을 제공하는 자율복지제도

 

이에 더해 상담센터가 가진 피해생존자 상담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센터의 인지도를 높이면서 수익도 창출할 수 있는 기관으로 발돋움하여 평화의샘 공동체의 외연 확장에 기여할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2015년 평화의샘 공동체가 ‘사단법인 평화의샘’이 되면서 비영리법인의 부설기관 중 하나인 상담센터의 활동은 수익사업에 대한 제약이 생겼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차별과 폭력으로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심리상담이라 할 지라도 상담자들의 역량 유지 및 정당한 처우는 필수불가결하다. 그러나 공익법인의 특성상 공익을 위한 지원사업 외 수익이 창출되는 상담은 지원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오랜 숙고끝에 상담센터는 사업을 종료하게 된다. 신경숙뿐 아니라 평화의샘의 오랜 활동가들은 성인지 감수성과 우수한 전문상담 역량을 가진 심리상담사와 역사를 보유한 상담센터가 사업을 종료하게 된 것에 크나큰 아쉬움을 가졌다.

 

 

평화의샘 심리상담사들의 연대는 계속된다

 

그럼에도 신경숙은 평화의샘 심리상담센터장이라는 역할을 통해 스스로 변화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활동하기 전 그러니까 2000년 전의 나는 왜곡되고 강박적 사고, 편협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 심리적, 정서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지금은 삶에 대한 태도에 유연함을 가질 수 있고 어떤 틀에 갇힌 가치관을 지향하진 않아요.

상담 공부를 하다 보니 저도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자라면서 피해가 많았고 상처 입은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사실 심리학 공부와 상담심리사 수련 과정은 불안정한 저를 치유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또 저를 치유하는 과정이나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활동이 다른 길이 아니라 모두 한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면서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고 그게 저를 성장시키고 성숙한 사람을 지향할 수 있게 한 원동력으로 지금의 나를 여기 이렇게 있게 했어요.”

 

신경숙을 비롯해 상담센터에서 활동하던 심리상담사들은 여전히 평화의샘 공동체 안에서 활동을 계속 이어가며 평화의샘을 찾아오는 다양한 피해생존자들을 만나고 있다. 상담하기에 좀 더 원활한 시스템을 갖춘 곳으로 갈 수 있었음에도 평화의샘과의 끈을 놓지 않고 지속적으로 활동을 하는 것은 평화의샘에 대한 깊은 신뢰와 피해생존자들에 대한 연대의식 바탕이었다고 본다.

 

“비록 센터는 없어졌지만 지금 여기서 상담하고 있는 선생님들까지는 그런 연대가 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한테 (평화의샘은) 큰 의미여서 하나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2000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것 같아요, 새로운 길,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것 같아요.”

 

끝으로, 한해에 여러 피해생존자들이 평화의샘을 방문해 심리상담을 한다. “평화의샘이 인생의 전환점이자 새로운 세계였다”는 신경숙의 말처럼 이곳을 찾아오는 피해생존자들 또한 신경숙과 같이 새로운 경험을 한다면 살짝 귀띔 해주시길 바란다. 상상만 해도 두근거리는 일이다.

 

 

<따오기 · 가온 · 숨su:m 이 인터뷰하고, 땡글이가 정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