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샘공동체 25주년 새로쓰기 인터뷰] 조금 별난 청소년들과 보낸 특별한 시간

 

5탄. 박주현 전 평화위기청소년교육센터 활동가/현 성매매 피해아동‧청소년지원센터 띠앗 팀장

 

조금 별난 청소년들과 보낸 특별한 시간

 

평화의샘공동체 25년 역사는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게 된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에 대해 다시 질문하면서 다양한 생존자들과 함께해온 과정이다. 평화의샘은 한국사회의 모든 변곡점에 여성/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있음을 보면서 활동가와 생존자로서 깨어나고 성장해왔다. 2023년, 평화의샘 공동체 25년을 맞이해서 다양한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평화의샘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활동을 했으며 활동가들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편집자 주]

 

평화위기교육센터의 시작!

2009년 2월 평화의샘 공동체가 여성가족부 국비 사업인 『성매매 피해 청소년 치료‧재활 사업』을 맡으면서 평화위기청소년교육센터(이하 평화교육센터)가 시작되었다.당시 위기청소년교육센터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에 따라 성매매의 대상이 된 아동청소년들의 성매매 재유입 방지 및 건강한 사회인으로서의 성장을 위한 치료‧재활을 목표로 활동하였다.2020년 아청법이 개정되고 성매매 피해아동‧청소년지원센터가 생기기 전까지 12년 동안 평화교육센터에서 청소년들과 함께했고, 지금은 성매매 피해아동‧청소년지원센터 띠앗에서 활동 중인 박주현 팀장(이하 박주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조금 특별할 수도 있는 청소년들과의 만남

2009년 박주현은 대학에서 청소년학과를 전공하고 청소년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위기청소년교육센터 교육상담원 모집”이라는 구인공고를 보고 막연하게 재밌을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이력서를 제출하였다. 당시만 해도 4일 동안 혹은 18일 동안 청소년들과 함께 합숙교육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성매매’, ‘지적장애’라는 단어조차 익숙하지 않았던 박주현은 12년 동안 현장에서 성매매 피해를 경험한 지적장애가 있는 아동청소년을 만나면서 성매매의 사회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인식과 지적장애 청소년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었다.평화교육센터는 성매매 피해를 경험한 지적장애가 있는 청소년들을 위한 기관이며, 전국에 단 한 곳뿐인 특성화 기관이었다. 전국에 11개 기관으로 존재했던 위기교육센터는 개정 전 아청법을 근거로 성매매 대상 아동·청소년들에 대한 보호처분을 목적으로 했다. 그러나 평화교육센터는 청소년들을 보호처분을 받은 대상 청소년들의 의무교육 제공자로서 머물지 않았다. 성매매의 대상이 됐다는 이유로 청소년을 보호처분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치유와 회복의 내용을 구성하였다. 이를 통해 성착취에 취약하거나 피해를 경험한 지적장애 청소년들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 1819일에서 45일의 여정 청소년 성장캠프

사업을 맡은 첫해에 18박 19일의 청소년성장캠프를 운영한 결과 청소년들과 합숙으로 3주간의 긴 교육을 하며 2번의 주말을 함께 보내는 것이 오히려 교육적인 효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평가되었다. 다음 해부터는 기간을 축소하여 1번의 주말을 함께할 수 있도록 9박 10일로 변경되었다. 그 뒤로도 몇 년간 9박 10일로 진행하다가 주말 동안 발생되는 교육 효과성 저하, 캠프에서의 가출 위험 등 다양한 문제들을 겪은 뒤 장애 청소년의 교육도 비장애 청소년과 동일한 교육 기간으로 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인지적으로 취약하니 반복 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교육 기간이 길었던 것인데 캠프 기간 내에서의 반복보다 횟수의 반복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해서였다. 2015년부터는 평화교육센터의 성장캠프도 4박 5일 40시간의 교육으로 구성되어 안정적인 체계를 갖추었다. 아래상자에는 박주현이 직접 적어준 평화교육센터 프로그램의 흐름과 실제 경험이 들어있다.


청소년들은 1차 교육으로 40시간의 청소년성장캠프를 수료한 후 3개월 이후 ‘희망키움과정’이라는 20시간의 심화교육을 수료하게 된다. 이를 통해 탈성매매를 점검하고 재유입 예방을 위한 사회화 훈련을 진행한다. 이후 두 과정을 모두 마친 청소년들을 위해 일상 생활 유지와 자가점검을 위한 지지모임 등의 과정이 있다. 청소년 성장캠프는 심리검사, 심리치유, 의료지원, 법률지원, 진로지원, 관계형성, 성주체성 확립, 성매매피해 예방교육 등의 분야들로 이루어졌다.

 

캠프 첫날은 전국 각지에서 처음 보는 청소년들과의 만남이라 모두 긴장하고 경계하는 상태로 서로 기싸움도 하고 눈치도 보며 어색함이 흐른다. 캠프 운영자의 입장에서는 참여 청소년 전원 이탈 없이 교육 수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합숙이 시작되는 첫 날 ‘즐겁고 있을 만한 곳이구나’를 느낄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이를테면 교육에 참여하면 제공되는 다양한 생활용품을 교육 참여의 동기화를 위해 ‘감사합니다’라는 프로그램으로 기획하여 전달하였다. ‘감사합니다’라는 프로그램은 오늘 하루 자신이 가장 감사한 점을 음악에 맞춰 발표하고 발표한 청소년에게는 다양한 생활용품을 선물로 증정하였다. 다양한 선물 받는 것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은 합숙 첫날밤 이렇게 매일매일 선물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하루 종일 받는 교육이 지치고 힘들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다음날은 하룻밤을 보낸 사이라 경계도 풀어지고 취향이 맞는 청소년들끼리 친해지기도 하여 ‘우리’라는 집단의식이 생겨 조금 끈끈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좋은 분위기가 지속될까 싶다가도 예민한 순간도 많아서 서로 오해와 갈등, 싸움이 매회기마다 빠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셋째날은 갈등의 최절정일 때도 있는데 마지막 밤은 모두가 다시 각자의 현실로 돌아갈 생각에 아쉬움을 토로한다. 수료식을 하는 마지막 날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건 숙박의 기관과 상관이 없었다.


 

성매매에 대한 인식이나 그동안의 모든 상처와 조건만남 등 위험에 노출되는 행동이 한 번의 교육으로 수정될 순 없지만, 참여했던 청소년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강사나 자원활동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좋은 어른’에 대한 경험을 했던 것은 분명히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 지적장애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성매매

“입싸는 얼마구요, 얼싸는 얼마예요. 2:1은 가격 더블로 받아요. 대실해서 2시간 하는 사람이랑 저녁부터 밤 같이 보내는 사람이랑은 가격이 달라지구요” “모텔값 없다고 해서 저희 집으로 가서 했어요” “만나서 저를 공중 화장실로 데려가서 옷 벗겼어요” “성관계하고 돈 주기로 했는데 현금 없다고 나중에 주겠다고 하면서 모텔에서 먼저 나가더니 연락이 안돼요.”

박주현은 청소년들과 나이 차이도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 청소년 성장캠프를 시작한 첫해 합숙을 하면서 청소년들이 어떠한 경험을 했는지 들었을 때, 굉장히 취약하고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온라인이나 채팅 어플을 통한 가해 남성과의 대화부터 성매매 피해에 노출되는 일련의 과정 또한 그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박주현은 평화교육센터를 통해 청소년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왜 조건만남을 할까? 채팅을 안 하면 안되나?” 청소년 개인행동에 초점을 맞췄었던 것 같다고 한다. 이러한 자신의 시각이 다양한 경로로 오랜 기간 성착취 과정에 노출된 청소년들과의 상담을 통해 점차 청소년에 대한 ‘성매매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으로 변화함을 느꼈다.

“성매매를 ‘성을 사고판다’라는 거래의 의미로만 알았다면, 성은 사고팔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특히 청소년 성매매는 인지적·신체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는 청소년들을 이용한 성착취 범죄라고 규정해야 해요. 성매매에 있어 공정성은 존재하지 않아요.”

성매매는 성인이든 청소년이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자신에게 안전하고 유리한 판단과 선택을 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찾아온다. 청소년성매매를 하는 남성들은 청소년에게 친절하고 따뜻하고 즐거운 것을 제공하는 모습이지만 성적인 착취를 목적으로 찾아온다. 가해자들은 주로 성인이거나 집단적인 또래일 때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성매매/성착취의 공통점은 남성들의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청소년/여성이 이용되는 것에 허용적인 남성중심적인 문화에 있다. 성착취 피해 청소년을 유인하는 알선자, 어플 운영자, 구매자들에 의해 이러한 세계관이 발전하고 성착취 구조는 공고해진다.

“피해 청소년들이 원하는 것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아요. 대인관계의 어려움으로 소외당한 경험들이 있다보니 잘 대해주고 다정하게 다독여주는 관계를 원해요. 그런 관계를 안전하게 할 수 있는 활동가랑 한강 공원 가서 라면을 먹거나 예쁜 카페 가서 커피 마시며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을 원해요.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지만 꿈에 그리는 거예요.”

– 청소년들에게 청소년 성장캠프는 어떤 의미일까?

한 번 캠프를 수료한 청소년 혹은 이미 모든 과정을 마치고 지원받을 수 있는 나이가 훨씬 지난 청소년들에게서도 “선생님 캠프 또 언제 해요?”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듣는다고 한다.

“제가 하는 활동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건, 사각지대에 있는 청소년들을 발견하고 이들이 우리를 만나면서 성피해에 노출됐던 경험을 새롭게 다루면서 사회적 안전망으로 들어오게 되는구나. 비단 서울 지역뿐 아니라 전국 각 지역에 있는 청소년들도 직접 가서 만나서 성인지 감수성 교육이나 치료 지원, 혹은 사회적응능력을 강화하고 삶에 도움이 되는 부분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해요.”

“전국적으로 청소년들을 만나러 가다보니 체력적으로 지치기도 했지만,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청소년들이 인풋 대비 아웃풋이 바로 나오는 것은 아니어서 회의감이 찾아올 때도 간혹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긍정적으로 변하는 청소년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을 때, 너무 감사하구나, 이렇게 아이들이 성장하고 있구나, 우리가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청소년성장캠프는 성매매에 노출된 청소년들이 사각지대 속에서 안전한 사회안전망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하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센터에서 아청센터로의 전환

2020년 드러난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 대한 대응 활동과 아청법개정운동을 통해 같은 해 5월 아동청소년성보호법이 개정되면서 대상 아동·청소년 조항이 삭제되었다. 이를 근거로 성착취의 대상이 된 아동·청소년을 피해자로 인정할 수 있게 되었고 이들에 대한 보호와 통합 지원체계가 마련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12년간 지속되었던 교육센터 사업은 종료되었고 2021년부터 성매매 피해아동‧청소년지원센터(이하 아청센터)라는 사업으로 전환되었다. 평화교육센터 역시 성매매 피해아동‧청소년지원센터 띠앗(이하 아청센터띠앗)으로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였다.

2020년 5월 아청법이 개정된 후 통합지원센터 설치 근거에 따라 전국의 위기청소년교육센터는 2021년에 전국 17개 성매매 피해아동・청소년 지원센터로 새롭게 전환되었다. ‘띠앗’은 그 중 유일하게 지적장애 및 인지적 능력이 한정된 청소년을 지원하는 특성화센터로 만 24세 이하의 청소년들의 통합지원(긴급구조, 상담, 의료, 법률, 사회화, 자립․자활 지원)을 하고 있다.

“아청법 개정 이후, 지원센터는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기존 교육센터보다 통합적으로 1:1 밀착지원을 하고 있어요. 특히 우리 특성화센터는 인지적 능력이 한정된 아동·청소년들이 탈성매매를 할 수 있도록 눈높이에 맞는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진행하고 있고요. 아직까지 지적장애, 경계선 아동‧청소년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안내서들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연간 회기와 수료 인원 등의 실적을 요하는 합숙 교육 형태는 사라졌지만 아청센터띠앗 역시 평화교육센터와 마찬가지로 성인지 교육, 진로‧직업 교육, 사회화 훈련 등 필요한 집단 교육들을 병행한다. 더불어 평화교육센터 시기에는 할 수 없었던 통합적인 사례지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2020년 평화교육센터 사업 종료와 동시에 사례지원을 종결하였던 청소년들 중 아청센터 지원 나이에 해당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아청센터 전환을 알리고 의사 확인 후 초기상담을 통해 현재까지 지속적이고 통합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 청소년과의 긴 호흡은 어디에서 나왔나?

‘성매매’와 ‘지적장애’라는 그 당시 익숙하지도 또 편하지도 않았던 분야 속에서 박주현이 15년이라는 긴 시간을 변함없이 한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어디에서 비롯된 힘일까?

박주현은 먼저 긴 호흡을 함께 한 좋은 동료와의 만남을 손꼽았다. 교육센터는 2인 구조의 체계라 업무를 함께 하는 활동가와의 갈등이 있다면 그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었을 것이다. 평화교육센터 12년을 이끄는 동안 동료 활동가들은 3번 바뀌었다. 활동가와 함께 숙박하고 생활과 교육을 하고 출장 가고 지원을 하는 모든 과정 속에 배려와 존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파트너쉽이 오랜 시간 일을 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다음으로 조직의 특성도 원동력이었다고 한다. 박주현에게 평화의샘 공동체는 배움과 성장, 그리고 사람을 중요시 여기는 곳이다. 사람을 세우고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는 곳,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면 반영되는 곳이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오랜 기간 같은 조직 내 같은 업무, 같은 위치에 있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고, 지적으로 취약한 청소년들과의 반복적인 의사소통이나 밀착지원 구조로 인해 소진이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런 박주현에게 정신적, 신체적, 심리적 돌봄은 필수적이라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에너지가 높은 그는 세계여행을 통해 가보지 않은 곳을 탐험하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소통과 스포츠 활동을 통해 에너지 충전을 한다. 에너지 넘치는 청소년을 만나는 활동은 강인한 체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를 위해 박주현은 아침 운동으로 힘을 얻고 기분전환이나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견딜 수 있었다.

2021년부터 아청센터띠앗은 ‘형제, 자매간 우애로운 사이’라는 의미를 지닌 순우리말 ‘띠앗’이라는 이름으로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다. 활동가와 청소년 간의 우애로운 사이를 기대하며 만든 별칭이라고 한다. 박주현을 비롯한 4명의 활동가들은 아청센터띠앗을 만나는 모든 청소년들과의 우애로운 사이를 희망하며, 모든 아동 ‧청소년의 성착취 피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한걸음 나아간다.

 

 

 

<땡글이가 인터뷰하고, 금잔디가 정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