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샘공동체 25주년 새로쓰기 인터뷰] 혐오와 배제의 시대 너머 페미니즘의 대항해로!

2탄. 김미순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전 소장

 

“혐오와 배제의 시대 너머 페미니즘의 대항해로 !”

 

평화의샘 공동체 25년 역사는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게 된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에 대해 다시 질문하면서 다양한 생존자들과 함께해온 과정이다평화의샘은 한국사회의 모든 변곡점에 여성/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있음을 보면서 활동가와 생존자로서 깨어나고 성장해왔다. 2023평화의샘 공동체 25년을 맞이해서 다양한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평화의샘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활동을 했으며 활동가들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편집자 주]

<2023년 현직장 사무실에서>

 

천주교성폭력상담소호를 바다에 띄우다!

<천주교성폭력상담소(이하 상담소)>는 1980년대에 시작된 한국 사회의 반성폭력 운동 및 천주교 안에서 성폭력예방 및 피해자 지원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필요성에 의해 1998년에 개소하였다. 성직자와 신도들의 후원으로 개소에 도움을 받았으나 상담소는 공식적인 ‘천주교’ 내의 단체도 아니고, 정부의 지원없이 운영되다 보니 재정상의 문제로 소장을 포함하여 모두 반상근 활동을 하다가 2000년이 되어 상근활동가가 있는 단체가 되었다. 이에 개소 초기 상담소는 성폭력상담원 및 성교육강사양성교육을 수료한 10여명의 자원활동가들이 지원상담에 대한 훈련을 병행하며 전화상담 위주로 활동하였다.

김미순 전 소장(이하 김미순) 또한 2002년 성폭력상담원교육을 받은 후 김미숙 소장과 박가람의 삼고초려로 청소년지원시설 활동가로 입사하였다. 김미순은 청소년지원시설에서 활동하면서도 상담소 활동을 겸하며 반성폭력 활동에 대한 관심을 놓치 않았고 2008년 4월 소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김미순의 부임 기간 동안 상담소는 정체성 및 활동 방향에 대한 개편과 변화를 맞았고 2019년 4월 퇴사한 뒤 상담소의 가장 큰 지지자로서 자리하고 있다.

평화의 샘이 상담소도 그렇고 생활시설도 그렇고 후원금이 그렇게 넉넉하지도 않았을 거고 어려웠겠죠.. 그때 당시 임금이 그랬어요. 그런 와중에도 내부의 어떤 시스템을 갖추려고 했던 게 초반에는 꽤 재미가 있었고, 더 지나면서는 같이 활동했던 우리 활동가들이 사업을 어마무시하게 벌렸거든요. 그러한 변화를 위한 노력들이 실은 평화의샘이 더 커지게 되고 자리를 잡게 된 계기도 되죠.”

상담소는 국고보조금을 지원받는 단체가 되었지만 후원금이나 운영비는 늘 넉넉치 못 했다. 상근활동가들을 충원하여 사업을 확장하기에는 재정적 부담이 컸던 상담소는 비상근 활동가나 자원활동가 인력풀을 활용하여 사업을 확장해 나간다.

일반적으로 성폭력상담소에서는 외부 상담기관에 사례를 연계하거나, 성폭력피해자 치료회복프로그램으로 사례를 의뢰한다. 그러나 초기 천주교성폭력상담소는 상담심리를 전공한 상근활동가나 상담을 전공한 비상근 활동가들이 활동의 주축을 이루며 상담소에서 직접 피해자의 심리치유를 위해 활동하였다. 그 방법 외에도 저소득층 성폭력피해 어린이 놀이‧미술치료를 통한 방문상담, 보호시설 내 성폭력피해 청소녀 방문상담, 가출.성매매 청소년 치료재활 프로그램 등 저소득층 아동.청소년 대상의 심리상담을 특성화한 사업이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피해자를 지금처럼 의료지원 법률지원 심리지원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도록 제도권에서 보장하고 있었지만 실은 그 개념이 확실하진 않았던 것 같아 . 어떤 측면에서는 두 부류로 나뉘지 않았을까 싶어요.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법제도 변화는 보통 운동단체에서 했었죠, 그리고 나머지 단체에서는 피해자의 역량 강화를 시키는 지점 한 꼭지로 트라우마, 치유에 집중하는 파트가 동시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초기 시작했던 분들 중에 운동단체로 가서 법제도를 변경하는 활동을 하시는 그룹이 한 그룹 있었던 거고, 그런 지향에 동참하면서 피해자의 심리 치유, resilience에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그룹으로 이렇게 2000년도 초까지만 해도 있지 않았나 싶은데, 저희들은 후자에 가까운 정체성을 가지게 된 거죠.”

상근활동가들과 심리상담가들은 성폭력 피해 아동 및 청소년들을 피해자라는 공통된 상황 외에도 교차 되는 다양한 정체성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수퍼비전을 강화하였고, 상담자 역량 및 인권 감수성 향상을 위한 교육을 다양하게 실시하였다. 이러한 지원 경험과 역량강화 활동이 축적되어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조력하고자 하는 상담소의 정체성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두 걸음 내딛고, 한 걸음 뒤로 하며 조금씩 나아가다

성폭력피해 아동.청소년 대상의 심리치유 사업은 상담소에 새로운 질문을 던져주었다. 성폭력피해자의 치유 및 회복만큼이나 성폭력 없는 세상을 위한 예방 활동과 인식의 변화를 추동하는 것이 반성폭력 활동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것이었다.

이에 상담소는 두 가지 프로젝트 사업을 시작하여 상담소 활동을 확장해 나갔다. 그 중 하나는 아동성학대에 대한 개념을 알려 예방하고, 성학대피해아동을 발견했을 때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아동성학대 대응능력 강화사업’을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저소득층 아동・청소년을 위한 성인지교육’을 통해 성폭력을 예방하는 것이다. ‘아동성학대 대응능력 강화사업’의 경우 아동성학대 실태조사에서부터 정책 제안, 지침서 제작 및 배포, 성학대 지킴이단 활동 등이 다양하게 진행되었고, ‘저소득층 아동.청소년을 위한 성인지교육’은 대규모 집체교육의 틀에서 벗어나 주양육자의 돌봄이 어려운 아동・청소년, 성폭력 및 성매매 피해 청소년, 가출 청소년, 비혼모 청소년 등 아동・청소년의 특성에 따른 집단상담식 성교육으로 진행되었다.

“2002년도 지나고 2005년도 까지는 천주교성폭력상담소가 사업을 굉장히 확장하는 시기에요. 그때 당시에는 여성폭력에 대한 관심도들이 어느 정도 형성되고 관심을 가 지는 시기거든요. 여러가지 사업들 내에서 천주교성폭력상담소가 가야 될 방향들을 계속 논의했던 것 같아요. 교육도 하고 심리상담을 하면서도 심리상담만 해서 되겠 , 하는 고민이 있었지요.”

이러한 활동은 지역사회 내에서 성폭력 피해아동 및 청소년을 조기에 발견하고, 지역 내 유관기관들과의 협력으로 통합적 지원을 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가며, 상담소의 활동을 확장해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사업의 확장만큼 활동가들의 업무량이 증가하는 것에 비례하여 활동가의 소진을 예방하거나 안정적인 인건비를 충당할 수 있을 만큼의 후원 및 운영비 확보는 지속적으로 어려웠다. 결국 이 사업들은 불꽃같은 3년의 활동을 끝으로 마감하게 된다. 수많은 고민과 논의를 통한 결과였다.

보통은 피해자가 들어오면 어떤 사정으로 들어오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그런 것들을 봐야 되는데 그런 것들이 (체계적으로) 되지 않는 지점에 대해서 계속 얘기를 하다가 2007년도 김미숙 선생님이 아프셨고 그때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만들어보자는 작업들을 2007년도 시작으로 2008년도에 개편을 했었죠.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의 의미,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은 어떤 절차로 어떻게 가는지, 그리고 피해자를 전반적으로 지원하는 과정에서 심리상담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지만 전부가 아니라 일부다 라는 것들을 하면서 그 과정들을 만들어갔죠.”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심리치유 위주에서 성폭력 예방으로 확장했던 성폭력상담소의 활동은 김미순의 부임과 함께 재정비의 시간을 갖는다. 각 프로젝트 사업의 종료와 함께 성교육센터를 대폭 축소하고, 방문상담을 위주로 활동했던 심리상담가들은 심리상담센터라는 별도의 활동으로 조직화한다. 상담소의 사업 또한  ‘성폭력피해자를 위한 치료회복사업’만은 남겨두고 과감히 정리하였다.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통합지원을 강점으로 하는 상담소로 거듭나기 위한 결단이었다.

당시 제가 전달체계를 수립하면서 했던 작업 중에서 하나가 피해자 지원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두 영역만 빼고 나머지 프로젝트 사업은 하지 않는다 라는 원칙을 세웠거든요. 예산이 부족하니까 여기저기 사업 예산을 가지고 오지만 인건비를 지원해주지 않는 이상은 오히려 계속해서 피해자 지원 업무에 소홀해지는 결과를 낳거든요. 그래서 정부가 지원하는 치료회복사업으로 심리상담 지원하고 나머지는 의료법률지원과 같은 것들은 기존 성폭력상담소가 해야 하는 기본 업무잖아요. 그것에 역량을 계속 강화시킨거죠.

심리상담 중심의 기존 활동이 성폭력피해자의 상황 및 특성에 맞는 통합적 지원이 되지 않았다는 반성은 상담소의 정체성과 활동가의 역할을 재구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상담소는 통합적 사례지원 시스템을 구성하기 위해 사례지원자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지원의 폭을 넓혀갈 수 있도록 역할을 강화해 나간다.

 

상담소의 역할을 고민하고 우리만의 길을 만들기 위해 변화를 꾀하다

이때부터 상담소는 통합적인 피해자 지원을 목표로 개개인 활동가들의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한 활동이 주를 이루었다.

활동가 각자 사례지원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공통의 가치를 바탕으로 각각 혹은 함께 역량 강화를 위한 활동을 하며 피해자를 지원한다. 정기적인 사례회의나 동료사례수퍼비전, 외부전문가 사례수퍼비전, 사례지원자와 심리상담가가 함께 참석하는 심리상담 수퍼비전, 여성폭력에 대한 민감성을 높이는 스터디 등을 통해 피해자의 피해 경험을 여성주의적 시선으로 해석하고 치유와 회복의 시간에 조력하고자 하였다.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지원기관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에 대한 표본을 보여주는 게 천주교성폭력상담소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만들려고 애를 썼고. 그래서 지금도 계속해서 활동도 더 확장시키고 피해자를 더 포괄적으로 확대해서 지원하려고 하는 것들이 저는 굉장히 뿌듯하게 생각하고 제가 그 기관에서 일했다는 것도 되게 좋고

상담소와 분리되어 조직화된 심리상담센터의 심리상담자 또한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정기적인 수퍼비전을 의무화하고, 피해자의 긴박한 상황에 대해서는 담당 사례지원자와 소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활동가와 심리상담가가 때로는 피해자 지원을 위해 서로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조력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사례지원 과정의 영역이나 역할을 점검케하는 수퍼바이저가 되기도 하며 서로의 성장을 도왔다.

제가 이렇게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저의 동료와 선배와 리더들이 있기 때문이지 않았겠어요? 제가 업무를 처음부터 잘 했을리 만무하고 고집과 아집과 이런 생각을 가 질 때 어떻게 피해자를 바라봐야 하는지 얘기해 주고, 조직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어떤 시각을 가져야 되는지도 아마도 은연중에 계속해서 얘기해 줬을 거고 그런 것들 이 저한테 영향을 미치는 거죠.

외부적으로는 여성폭력에 대해 이해가 깊은 의료기관이나 변호사를 발굴하고, 피해자 통합지원을 위해 유관기관 사례회의, 자문상담 등을 구조화하였다. 피해자의 연대자와 지지자로서 조금 더 조응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변호사와 함께 하는 집단상담을 진행하기도 하고, 비슷한 지원 경험을 가진 상담소들과의 수퍼비전을 진행하기도 했다.

성폭력피해자 통합지원을 위한 체계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던 2012년 상담소는 또 다른 변화를 맞게 된다. 김미순이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이하 전성협) 대표(공동대표 2년, 상임대표 4년)로서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6년의 전성협 대표활동은 외부적으로는 전성협 사무국으로서 시대의 흐름을 조망하고 정책을 제안하며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내부적으로는 활동가들이 변화하는 정책 및 제도, 각 지역의 상담소들의 특장점을 수용하여 내실의 강화를 꾀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 시간은 상담소가 단순히 외양만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반성폭력 단체로서의 정체성과 연대 활동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MeTooWithYou하며 반성폭력의 물결에 함께 하다

2018년 우리 사회는 매일매일 낯설고 긴장되는 말하기와 연대하기가 지속된다. 2017년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운동이 대한민국의 법조계, 연극계, 학내, 정치계 등에 끊이지 않고 제기되었다. 당시 성폭력피해자 통합지원을 목표로 피해자가 치유.회복될 때까지 지속지원을 하던 상담소에도 미투운동의 흐름에 힘입어 여러 단체와의 공동 대응을 요청하는 피해자들이 찾곤 했다.

전성협 대표활동을 통해 연대 및 공동대응의 중요성을 알게 된 상담소에서는 2018년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에 집행단위로 활동하였고, 그 외에도 수많은 공동대책위원회에 연대단위로 함께하며 피해자들의 용기에 함께 할 수 있는 반성폭력 단체로 활동하고자 하였다. 특히 안희정성폭력사건 공대위의 경우 반성폭력 활동을 하는 다양한 법률가, 학자, 상담소들간의 연대가 가지는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권력형 성폭력의 유의미한 법적대응과정을 함께 하며 활동가들 또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운동이라는 것은 계속해서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제도나 정책이 주고 있는 건 한 발자국 늦을 수 있어요. 하지만 상담소가 한 걸음 늦지 않게 더 많이 고민하고 지원하려고 하는 것들, 이런 것들이 굉장히 뿌듯하죠.

예를 들어 준강간 공대위 사건 다루면서도 어떤 한 사건을 그렇게 끈질기게 꾸준히 피해자 편에 서서 동고동락을 한다는 것 자체도 그게 바로 운동이죠. 중간에 일정부분 지원할 거 지원했으니 끝. 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고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어떤 문제로 작동되는지.. 큰 문제거든요.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실은 피해자를 더 많이 지원하고 추동하고 같이 연대하고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거잖아요. 향후에 준 강간 피해를 안 입으면 좋겠지만 어떤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를) 입었을 때는 더 나은 환경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고, 그런 것들이 천주교성폭력상담소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이 활동에 힘입어 2019년에는 보통의준강간사건이라 불리는 ‘준강간사건의정의로운판결을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공동대응하기도 하였다.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통합지원과 더불어 필요하다면 다른 단체들과의 연대, 언론을 통한 공론화 등을 통해 공동대응하는 것 또한 통합지원의 한 부분일 수 있다는 고민의 결과였다. 미투 운동의 흐름 속에 시작된 공동대책위원회 활동은 2023년까지 이어져 활동가들이 피해자 지원이라는 민감하고 세밀한 전문영역뿐 아니라 법과 사회의 변화를 추동하는 운동가로서 이미 활동하고 있었음을, 앞으로도 그렇게 활동할 것임을 각성할 수 있었다.

 

혐오와 배제의 시대 너머 페미니즘의 대항해로!

상담소 활동가들이 생각하는 우리 기관의 정체성은 사례지원은 잘 하지만 적극적으로 운동을 추동 혹은 지향하는 단체는 아니었다. 그러나 반성폭력 운동이 성폭력이라는 낯선 개념을 알려내고, 피해자에게 드리운 편견과 통념을 깨기 위한 인식 변화를 도모하고, 이제는 협소한 성폭력의 법을 개정하기 위한 활동으로 변화해 왔듯이 피해자 지원 또한 반성폭력 운동의 일환으로 역할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피해자 심리치유 중심의 지원에서 교육을 통해 성폭력을 예방하는 활동,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통합지원을 통해 피해자가 가진 내면의 힘을 믿고 조력하는 활동으로 넓혀온 지난 시간은 성폭력 없는 세상을 위한, 성폭력 피해에도 피해자의 일상적 삶을 추구하는 치열한 반성폭력 운동이었다.

이 일(반성폭력 활동)에 빠져들다보면 자연스럽게 페미니스트가 되야 되는 거 같고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그래서 그렇게 저는 페미니스트가 된 것 같고. 그런 의미에서 삶이나 가치관은 계속 변화했죠.

활동가는 움직이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현재에 안주하기보다는 계속 창의로운 사, 즉 변화를 위하고자 하는 지향을 가지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천주교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활동을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지 여전히 고민 중이다. 더구나 여성, 장애인, 이주여성, 성소수자, 노인 등이 더 큰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고,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가해자들의 백래쉬가 넘쳐나는 작금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성평등을 위한 활동을 지향하며 나아갈지 매 순간 고민한다. 그 정답은 알 수 없으나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고 확언할 수 있다. 김미순의 말처럼 우리 모두 활동가로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지향해야 한다. 차별과 혐오, 배제의 시대를 너머 우리는 성평등한 세상으로, 페미니즘의 대항해로 나아가고자 한다.

 

<금잔디・라나・숨su:m이 인터뷰하고, 따오기가 정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