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글쓰기] ‘알로하’도 결국 사회였다

 

알로하도 결국 사회였다

 

 

땡글이

 

 

치유와 환대를 이야기하는 공동체라고 해서 배제와 위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요가와 명상, 춤과 독서모임 같은 취미 공동체는 종종 경쟁보다 존중과 연결의 공간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비교와 긴장,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소외의 감정은 생겨난다. 훌라(Hula) 공동체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훌라는 하와이의 전통 춤이자 몸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언어다. 나는 3년째 훌라를 배우며 단순한 춤 동작뿐 아니라 하와이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알로하(Aloha)’ 정신을 함께 접해왔다. 알로하는 흔히 사랑과 환대의 의미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공동체 안에서 조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인내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태도에 더 가깝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화를 말하는 공간일수록 오히려 사람들은 더 조심스럽게 서로를 살핀다. 공연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나는 한 동료에게 “춤의 그림체가 너무 강하다”는 말을 들었다. 얼핏 들으면 개성이 있다는 뜻 같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공동체 안에서 너무 눈에 띄는 존재라는 의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순간 내가 본 것은 단순한 개인 감정이 아니었다. 공동체 안에도 결국 ‘조화로운 사람’에 대한 암묵적인 기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SNS와 공연 문화가 결합된 취미 공동체에서는 실력만이 아니라 존재감 자체가 은근한 비교의 대상이 된다. 몸의 표현 방식, 분위기, 표정, 관계 맺는 태도까지 평가의 영역 안으로 들어온다. 그런데 치유와 조화를 이야기하는 공동체일수록 이런 긴장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갈등은 종종 개인의 예민함이나 적응의 문제로 환원되고, 배제는 노골적인 차별보다 훨씬 더 미묘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사실 이런 풍경은 특정 공동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인정받고 싶은 마음, 뒤처지고 싶지 않은 마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문제는 그런 결핍이 비교와 위계 속에서 스스로를 소진시키거나, 타인을 조용히 밀어내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 생긴다. 대놓고 미워하지 않아도 사람은 충분히 서로를 소외시킬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하와이 문화 역시 오래전부터 공동체 안의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민해왔다는 점이다. 하와이에는 무리에서 벗어나 도망친 사람들을 품어주는 사원이 따로 존재했고, 왕의 이름으로 이들의 피난과 보호를 허용하는 제도도 있었다. 또한 하와이 문화 안에는 카네(Kāne·남성), 와히네(Wahine·여성) 외에도 오래전부터 마후(Māhū)라는 존재가 있었다. 현대적으로는 성소수자 혹은 트랜스젠더 개념과 일부 겹쳐 설명되기도 하지만, 본래 마후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경계를 함께 지니며 공동체 안에서 영적 인도자와 스승의 역할을 수행해온 존재들이었다.

 

그럼에도 현대의 훌라 대회에서는 여전히 현실적인 질문이 남아 있었다. 성별 구분이 뚜렷한 경연 구조 안에서 마후 참가자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어느 부문에서 참여할 수 있는가는 단순한 전통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포용 방식에 관한 문제였다.

 

실제로 하와이의 권위 있는 ‘릴리우오칼라니 여왕 어린이·청소년 훌라 대회(Queen Liliʻuokalani Keiki Hula Competition)’는 2017년, 스스로를 마후로 정체화하거나, 사회적 트랜지션 과정에 있던 참가자와 관련해 성명을 발표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접근 방식이었다. 주최 측은 단순히 “차별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대신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라는 질문을 먼저 던졌다.

 

하와이 왕국의 마지막 군주였던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은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아이들의 교육과 존엄을 중요하게 여긴 인물로 기억된다. 대회 주최 측은 그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참가자 본인이 가장 존중받고 편안한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전통을 이유로 누군가를 배제하기보다, 전통의 정신 안에서 더 넓은 포용의 가능성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이런 질문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도 필요하다. 우리는 종종 공동체의 이름으로 조화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다수가 익숙하게 느끼는 기준을 유지하는 데 더 익숙하다. 낯선 표현 방식, 기준에서 벗어난 몸과 정체성, 강한 존재감은 쉽게 “튀는 사람”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배제는 대개 직접적인 혐오보다 더 미묘한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함께 어울리기 쉽지 않다”, “분위기랑 못 섞인다”, “이미지가 강하다” 같은 말들이 그렇다.

 

중요한 것은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차이를 어떻게 다루는가에 대한 공동체의 태도다. 공동체의 성숙함은 모두 비슷한 사람들만 남아 있는 상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는가에서 드러난다.

훌라를 통해 내가 본 것은 완벽한 공동체의 환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불완전한 사람들이 계속 부딪히고, 한계를 받아들이고, 조율하면서 끝내 함께 살아가려 애쓰는 과정에 가까웠다. 하와이에서는 이러한 끝없는 조율과 대화와 그에 담긴 의식을 호오포노포노(Ho’o ponopono)라고 불렀는데 ‘올바른 길로 가게하다’란 뜻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 역시 갈등이 전혀 없는 공동체가 아니라, 차이를 이유로 누군가를 조용히 밀어내기보다 함께 살아갈 방법을 질문할 수 있는 공동체일 것이다. 어쩌면 알로하의 정신 역시 완벽한 조화를 뜻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한 타인과 공존하려는 태도 속에서 함께 가는 길이라 믿으며, “ALOH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