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디: 자유 글쓰기] 재봉틀

 

 

 

재봉틀

 

  1. 06.12 김태옥

우리 집에는 엄마가 결혼 후 마련하여 쓰셨던 오래된 물건들이 있다. 다듬이돌이나 방망이, 놋대야, 멧돌, 커다란 항아리들과 함께 중고로 구입하셨던 미싱(일본말)이 있다. 엄마의 젊은 시절에는 한국의 모든 물자들이 귀했기에 결혼예단에 옷을 만들 수 있는 원단들을 몇 필씩 넣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어릴 적 기억으로 엄마가 미싱을 하시던 기억보다는 명절 전날 심부름으로 저고리동정을 사오면 엄마는 한복저고리에 동정을 새로 달며 꿰매시던 것이 생각난다. 아이들이 훌쩍 자라 못 입게 된 한복들은 치마를 뜯어 천으로 보관하였다. 그래서 장롱 속에는 작아진 저고리와 원단들, 예단으로 받은 천들이 가득 들어있는 칸이 있었다. 어떤 천들이 들어있나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똑같은 천들이지만 나에게는 매번 처음 보는 것처럼 신기했었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부터 나의 꿈은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다. 이와 더불어 주변 환경 또한 나의 꿈에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 하교하면서 혼자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는 앙드레김의 숍과 유리벽 안쪽에 앙드레김의 드레스가 항상 전시되어 있어 화려하고 예쁜 드레스들이 나의 맘을 빼앗아 황홀하게 넋을 잃고 쳐다보다 집에 오곤 하였다.

원하던 대학의 의류직물학과에 들어가면서 재봉틀은 애용품이 되었다. 재봉을 처음 시작하면서 조각난 천들이 이어져서 옷의 모양을 갖추고 입고 다닐 수 있는 것들이 재미있었다. 윗실과 밑실이 만나면서 예쁘고 일정한 간격의 바느질로 인해 손으로 바느질을 했을 때보다 깔끔하고 더 세련된 느낌이 있었다. 그렇다고 손바느질이 밉다는 것은 아니다. 손바느질은 손바느질대로 다정함과 포근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퀼트로 누빌 때의 느낌은 기계로 만든 것과는 달리 부드럽고 몸에 착 감기는 느낌이 난다.

다들 재봉틀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재봉으로 인해 무언가가 뚝딱 만들어지는 것들로 처음에는 사랑에 빠져버린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신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 엄마의 장롱속에 있던 한복치마의 옷감은 나의 치마로 변신을 하였고, 동대문 시장을 돌아다니며 내가 만들고자 하는 옷들에 대해 어떤 원단이 어울릴까 고민을 했고, 심지나 단추, 허리 밸트심 등의 부속품을 사러 다니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다. 대학4년 동안 동대문 광장시장은 정말 자주 갔기에 어디에 가면 무엇이 있는지 훤히 꿰뚫고 있어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내가 가고자하는 곳을 헤매지 않고 다닐 수 있었다.

치마를 만들기로 결정한 다음에는 길거리에서 여성들의 치마만 보였다. 치마라인이 저렇게 되었구나, 길이는 저 정도가 좋겠구나, 원단이 디자인과 잘 어울리는구나 등 여성들이 입은 치마를 보며 치마를 디자인한 사람들의 안목을 배울 수 있었고 고급바느질과 싸구려바느질(싸구려바느질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고 옷 제작에 있어서 많은 공정들이 생략된 것으로 옷의 수명이 짧다)을 구분할 수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품과 시간이 많이 드는 재봉에 대해 소홀해졌고 간단한 바지단 줄이는 것 조차 피곤하다는 핑계로 점점 수선 집에 맡기기 시작했다. 우리 집 발틀인 재봉틀은 사용할 때만 재봉틀의 몸통을 위로 꺼내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속으로 접어 넣어 상판은 평편하게 되는 구조다. 재봉틀 사용의 시간이 점점 줄어들면서 재봉틀은 겨울철 마루의 한쪽 구석에서 화분받침대로 사용하게 되었다. 아무리 비닐을 깔아 물이 직접 닿지 않게 한다고는 하지만 조금씩 물이 스며들면서 낡은 집과 함께 재봉틀 상판의 나무는 썩고 들뜨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몇 번의 강산이 변하는 동안 재봉틀은 애물단지가 되고 있었다. 집을 리모델링하면서 재봉틀발판과 받침대는 재봉틀과 분리되어 지하실로 향했고 재봉틀을 그나마 사용하였던 나만 재봉틀을 잘 보관해야겠다고 생각해 습기가 없는 침대밑에 고이 모셔놓을 수 있었으며 그렇게 또 보자기에 쌓여 또 몇 년을 지났다.

대학 졸업한지 만 40년이 되는 올해 이사를 하게 되면서 재봉틀은 새롭게 변신을 하였다. 엄마가 처음 구입하셨을 때에도 중고였기에 상판과 발틀은 오리지널은 아니었지만 상판이 장인의 손에 의해 박달나무로 교체되어 재봉틀을 더 고급스럽게 보였다.

재봉틀은 언제 어디에서나 묵묵히 자리하고 있으며 자신의 역할을 기다리고 있었고 내가 방치해 놓고 사용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는 환경이 변하여 재봉틀을 여유 있게 놓을 수 있고 작업할 수 있는 공간 생겼으며 나만의 시간이 조금 늘어났다. 이제는 좀 더 재봉틀과 가까이 하며 자주 애용하려고 한다. 조각보자기도 만들고 시간이 많아 무엇을 하지 않고는 못 견딜 것 같은 때가 되면 옷도 만들고 천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