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디: 자유 글쓰기] 사라져가는 것들

사라져가는 것들

 

 

글_마녹

 

어릴 적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는(초등학교가 아니다. 나는 국민학교 세대이다. 그런데 한글2020을 사용하니 자꾸 초등학교로 자동변환된다.) 집에서 버스로 15분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그 버스는 인근의 온 마을을 다 돌고서야 한 시간에 한번 왔고, 같은 마을에 살던 친구들과 나는 버스를 기다리다 지루해져 함께 걸어가곤 했다.

 

학교에서 우리 마을을 가는 길엔 두 개의 다리가 있었다. 하나는 제법 넓은 폭의 하천인 ㅈ천이 흐르던 다리였고, 다른 하나는 작은 산골마을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흐르던 좁은 폭의 하천인 ㅌ천이 흐르는 다리였다. ㅌ천이 흘러 ㅈ천과 합쳐지고 그 물줄기는 서해 방향으로 흐르고 흘러 ㅍ항에 합류한다. 놀이터도 없고, 구멍가게도 없는 시골 마을의 아이들이 햇살이 좋은 날 이 하천을 그냥 지나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ㅈ천에서 놀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잡은 우리들은 ㅌ천이 흐르던 다리 위에서 한참을 내려다보다가 잠시만 놀다 가자고 냇물로 뛰어들곤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이 다 젖도록 놀다보면 어느새 버스가 다리위를 지나가고, 시간도 쏜살같이 지나가 엄마에게 혼나겠다며 부리나케 집으로 뛰어가곤 했다. 마을에 다다라 아이들과 헤어지며 보면 그 냇가에 안경을 놓고 온 친구, 보조가방을 놓고 온 친구가 한 명은 꼭 있었다. 결국 그 다음날이면 다시 안경이나 가방을 가지러 학교에서부터 그 길을 걷고 ㅌ천으로 뛰어들곤 했다.

 

ㅌ천이 ㅈ천과 합류되어 2-300m 흐른 지점의 위에는 왕복8차선의 고속도로가 지난다. 그 유래와 뜻도 알지 못 하지만 우리는 모두 그곳을 영장골이라 불렀다. 영장골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우리 마을이 있다. 우리 마을은 고속도로가 생기며 정부로부터 재정비가 된 곳이었다. 마을의 모든 집들은 똑같은 모양으로 고속도로를 바라보며 지어졌고, 붉은색, 파란색, 초록색의 지붕이 칠해져 있었다. 같은 시기에 면사무소에서 담장에 장미나무를 심으라고 장미묘목이 배분되기도 했고, 같은 시기에 같은 색깔의 기와로 바꾸는 마을 정비가 이루어지곤 했다.

 

고속도로를 지나며 보이는 우리 마을은 색색들이 정갈한 양옥들의 마을이었지만 실상은 오후 내내 해가 들어 여름이면 숨이 턱턱 막히는 집이었다. 에어컨도 없고,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을 곳 없는 마을의 한여름이면 사람들은 바리바리 고무대야에 먹을 것을 싸들고 영장골로 갔다. 넓디넓은 고속도로가 지나는 교량의 밑에 냇물이 흐르니, 그곳은 시원하다 못 해 서늘했다. 제법 폭이 넓던 ㅈ천은 어른 무릎정도의 깊이여서 누구라도 놀기 좋았다. 시골마을에 살며 수영장 한번 가보지 못 했던 우리들은 거기서 어울리지도 않는 수영복을 입고 냇물에 들어가 놀았다. 어른들은 그런 우리들을 보며 교량 밑에서 수다를 떨고, 낮잠을 자기도 했다. 그때 다슬기와 물고기를 잡겠다고 얼굴을 냇물에 들이밀고 눈을 치켜뜨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더 이상 ㅈ천이나 ㅌ천에서 놀지 못 했다. 내가 진학한 학교는 ㅌ천이나 ㅈ천의 반대 방향인 시내로 나가야 하니 일부러 그곳을 찾을 일이 없었다. 어디에도 갈 곳이 없어 마을안에서만 친했던 또래들도 자신의 놀이와 관계를 위해 어디로든 나갈 수 있는 시기가 되었던 것이다. 성인이 되며 서울 인근으로 독립한 나는 한두 달에 한 번 부모님을 뵈러 갔다. 그 사이 또래 친구들도 결혼을 하거나, 이사를 가고 그 자리엔 낯선 이들이 들어섰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우리 마을을 비롯한 인근 지역은 하나둘 화훼농장이 들어서더니 몇 년 사이 전국에서도 매우 유명한 화훼단지가 되었다.

 

얼마전 한동안 본가에 머무는 일이 생겼다. 그 시절 무지렁이처럼 천방지축으로 놀았던 우리의 모습이 생각나 해질녘 영장골을 향해 산책을 갔다. 고속도로 옆으로 논밭만 무성하던 영장골은 화훼농장으로 둘러쌓여 있었고, 마을 곳곳으로 들어선 소규모 공장이나 농장에서 퇴근하는 차량들로 복잡해졌다. 인도도 별도로 없는 시골길을 ‘차가 많아 위험하네, 조심해야겠네’라고 생각하며 걷다보니 영장골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곳은 예전에 다슬기를 잡고, 물놀이하고, 어른들이 한가로이 낮잠을 자던 곳이 아니었다. 넓디넓게 흐르던 ㅈ천은 물이 줄어 아주 작은 하천이 되었고, 물이 없는 하천바닥에는 무성한 수풀이 잠식해있었다. 수풀들 사이로 냇물이 얼마나 흐르고 있는지 보고 싶었지만 하천 주변에 무수하게 쌓여있는 흙더미와 돌더미로 가까이 갈 수 조차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하교길에 물놀이를 하던 ㅌ천으로 향했다. 그때 그렇게 친구들과 온 몸이 젖게 놀던 ㅌ천은 더 이상 하천이 아니었다. 그저 메마른 땅이었다.

 

사막처럼 쩍쩍 갈라진 ㅌ천을 내려다보며 ‘정말 다시 오지 않는 구나, 이제 더 이상 그런 시간은 없겠구나..’라며 시간의 흐름을 실감했다. 그 시간엔 추억만 있는 게 아니었다. 흐르는 강물도, 푸르렀던 나무들도, 지천에 깔렸던 다슬기도, 내 손에서 잘 빠져나가던 물고기도 함께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함께 흘러갔음을 알 수 있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낮게 나는 백로를 보았다. 하천에 앉아 먹이를 찾고 휴식을 취할 저 새는 어디서 생존하는 걸까 궁금해졌다. 이미 사라진 것들과 지금 사라져가는 것들이 아릿하고 씁쓸하게 턱 끝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