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새벽출근

새벽출근

 

윤정

 

남편은 주중에는 새벽 5시에 일어나 30분 만에 준비를 끝내고 출근한다. 날씨가 좋으면 그나마 괜찮은데 눈이 너무 많이 오거나 장마철에는 새벽 출근하는 남편이 안쓰럽다.

 

이렇게 벌써 11년째다. 남편은 단 한 번도 늦잠을 자서 지각한 적이 없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본사가 서울 용산에 있었다. 지금 사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 직장이 있어 아이를 낳고 7시 전에는 집으로 와서 항상 함께 아이 목욕을 시킬 수 있었다. 나보다 더 아이를 잘 씻기고 잘 재웠다. 아들이 태어나고 육아를 하면서 나는 저녁 6시가 되면 늘 베란다에서 남편의 퇴근만을 기다렸었다. 그 시간이 나에게는 휴식 시간이 되었다.

 

아들이 7살이 되던 해에 남편이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회사가 대전으로 이전하기로 했어…. 대전으로 출퇴근해야 할 것 같아….” 우리 둘은 앞으로 대전으로 출퇴근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힘듦이 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라고 하면 가야지 뭐….”

 

이전이 결정되고 한 달 뒤 남편은 매일 대전으로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새벽 5시에 기상해서 씻고 바로 집 근처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서울역까지 버스를 타고 내려 대전역까지는 KTX를 타고 갔다. 출근만 2시간이 걸리는 거다. 당연히 출근 시간의 버스도 앉아서 갈 자리는 없고 KTX에도 자리가 없을 때도 종종 있다고 한다.

 

돌아올 때는 그나마 사무실이 대전역 안에 있어 버스를 타는 시간은 줄일 수 있지만, 퇴근길의 KTX 안은 지하철만큼 붐빈다고 한다. 간혹 자리가 있어 앉아 있다가도 입석으로 탑승한 어르신들을 보면 자리를 양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하지 정맥이 심각한 상태이다. 이것도 직업병이라고 해야 하나….

 

매일매일 4시간의 긴 출퇴근 시간을 보내고 집에 오면 늘 녹초가 되어있었다. 처음 대전으로 발령받고 1~2년까지는 적응하느라 감기를 달고 살았다. 나 역시 매일 함께 육아했던 남편이 늦게 들어오고 일찍 잠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지쳐갔다. 힘든 출퇴근 시간을 보낸 지 5년이 지나갔다.

 

올해 초 남편이 본사에서 서울로 지사를 내기로 했고, 본인이 지사 담당자로 오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동안 너무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쁜 소식이었다. 나도 일을 시작한 상황에서 남편의 이른 퇴근은 분명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었다. 드디어 나도 회식 자리에 갈 수 있겠구나!! 퇴근하고 바로 집에 가지 않고 운동도 하고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는구나!

 

서울 지사로 발령받고 5년 만에 서울로 출근하게 된 첫날, 남편은 5년 만에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아침을 먹지 못하고 출근해서 배가 고파 점심을 먹기 전 커피믹스를 3잔이나 마신 탓인지 초기 당뇨의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미숫가루도 싸줘 보고 찰떡도 싸줘 보고 여러 가지 해봤지만, 아침을 안 먹게 되는 상황이 더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아침밥을 준비하면서 그동안의 마음의 짐이 싹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7시 30분에 출근하게 되면서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살도 조금 더 붙어가는 것 같았다. 퇴근해서 오면 7시쯤 되니 아들과도 많은 시간을 보내줄 수 있게 되었고 나는 저녁 설거지도 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이렇게만 지내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다. 하지만 내가 꿈꾸던 생활은 4개월 만에 끝이 났다. 다시 대전 본사로 복귀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남편은 대전 본사의 본부장으로 가는 것이니 더 좋은 인사이동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왠지 얼굴은 좋은 인사이동에 맞는 밝은 얼굴이 아니었다. 나는 무슨 그런 회사가 있냐며 화를 냈다. 서울로 보낸 지 몇 개월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다시 본사로 복귀라니…. 너무나 화가 났다. 그리고 남편이 또다시 새벽 출근에 저녁 9시가 되어야 집에 올 수 있는 상황에 분노했다.

 

힘내라는 말보다 더 위로와 힘이 되는 말이 있을지 고민해 보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내일은 새벽만이라도 비가 내리지 않기를…

 

2021.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