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성폭력 STOP! 성매매 NO!”, 사단법인평화의샘 아웃리치!

2022년 9월 23일, 사단법인 평화의샘 활동가들은 노량진역 주변에서 아웃리치를 실시하였습니다.

 

전날 분주한 포장 작업!! 거리로 나갈 준비!!

 

사단법인 평화의샘에서 단독으로 진행하였던 것이 처음이었던 상반기 때 경험을 토대로 부족했던 부분은 보완해서 ‘폭력없는 세상, 성평등한 사회’라는 슬로건 아래 다시 한번 거리에 나섰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수험생들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수험생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기도 하고 1호선과 9호선이 함께 있어 노량진역을 이용하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번 아웃리치는 노량진역에서 진행하게 되었는데요, 많은 분들이 관심갖고 함께 해주셨습니다.

 

상반기 때는 폭력없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자는 주제를 편하게 홍보물에 담아 건네는 것이었다면 이번엔 홍보물 배포와 더불어 사단법인 평화의샘과 법인에 소속된 기관들을 소개하고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그루밍성범죄와 온라인그루밍 등을 알리는 홍보용 판넬을 눈에 띄게 세워둬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바쁜 퇴근 시간에 홍보용 판넬을 눈으로만 쓱~보고 지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아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바라보시는 분들에게는 미리 준비한 질문지를 뽑을 수 있도록 하여 정답을 맞힌 분에게는 홍보물과 버섯 자석 버튼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소소한 이벤트였지만 폭력없는 세상, 성평등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기 위해 설명을 듣고 참여해주신 시민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내년에 또 어떤 모습으로 아웃리치를 할지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참여후기] 미투운동 중간결산, ‘지금 여기에 있다'(주최-한국성폭력상담소)

지난 2022년 8월 20일 인사동 KOTE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주최하는 [미투운동 중간결산 : 지금 여기에 있다]가 열렸습니다.

미투운동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현장을 함께 걸었던 연대단체, 동료활동가로서 천주교성폭력상담소에서도 함께 참여하여 미투운동이 지금은 어떤 상태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행사가 열리는 인사동 KOTE 입구 골목에는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 FDSC의 작품인 휘장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어 웅장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 휘장들은 책갈피로도 만들어져 참여신청을 한 사람이나, 후원을 한 사람들에게 배포되었습니다.

미투운동 중간결산은 총 3섹션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첫번째로는 “성찰 빼고 돌아올 때 : 가해자 처벌 후 복귀 전, 공동체의 숙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안희정 성폭력사건의 피해자측 증인이었던 신용우님, 미투운동의 연대자이자 피해당사자였던 정의당 장혜영 의원, 이윤택 성폭력사건의 연대자였던 성평등작업실 이로의 이산 님이 패널로 나오셔서 미투운동이 각 공동체에서 어떻게 작동되었는지, 그 안에서 피해자나 연대자들이 겪은 고통은 무엇이었는지, 각 공동체들이 성찰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두번째 섹션에서는 “‘2차 피해와 피해 부정의 양상”에 대해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님, 한국여성의전화 송란희 님, 국회정책연구회의 이보라 님, 여성현실연구소의 권김현영 님이 패널로서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이 시간에는 미투운동의 흐름만큼 거세게 휘몰아쳤던 2차 피해의 양상을 세세하게 이야기하였는데, 2차 피해라는 것이 기존의 피해자다움, 피해자책임론에서 더 나아가 가해자의 권리라는 인식(무죄 추정의 원칙 등)과 이에 철저한 검증이라는 명목하에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짚고, 이러한 2차 피해가 법으로 다 아우르며 제재하여야 하는 것인가, 사회적 혹은 윤리적 차원에서 2차 피해가 발생되는 원인을 찾아보고 고민하며 작지만 다양한 싸움들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해 각자의 고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마지막 섹션에서는 “피해자는 일상으로 달라진 우리로 살아가기”라는 주제로 각 미투운동의 당사자이자 고발자들이 일상회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주었습니다.

권수정 금속노조 부위원장, 주연 충북스쿨미투연대 생존자, 허/들 허들을넘는여자들 에디터 등은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일상회복을 도모하였는지, 그때 연대자나 지지자들에게 어떻게 힘을 받았는지, 또 생존자로서 어떤 마음을 단단히 하였는지 이야기들을 나누어주었습니다. 행사 모두를 지켜본 활동가로서는 이 시간이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미투운동 중간결산 행사에는 여러 부스들이 있었습니다.

천주교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김지은입니다’의 저자 김지은님이 처음으로 부스를 연 ‘람지커피’의 판매를 도왔는데요. 당일 많은 분들이 김지은님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며 준비해온 원두, 드립백, 콜드브루가 모두 완판되기도 했습니다.

 

** 많은 분들이 미투운동이라는 말이 나오면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처럼 말씀하시곤 합니다. 그러나 현장 활동가로서 미투운동은 여전히 진행중이고, 미투운동의 피해생존자들의 일상회복은 더디기만 하다는 느껴집니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어떤가요? 이미 형을 마쳤으면 그의 모든 책임은 끝난 걸까요? 그들을 둘러싼 권력과 자원과 영향력이 건재함을 각 미디어에서, 그 권력을 둘러싼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서 매번 느낍니다. 반성과 성찰이 없는 사회와 그 구조에서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연대는 계속 되어야 합니다. 미투운동에 나서주신 피해자들에게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연대와 지지를 계속 보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행사였지만 본 상담소 활동가들도 함께 하며 많이 고민하고, 힘을 내는 시간이었습니다.

 

** -본 행사에 대해서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유투브를 통해 다시보기 하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i7ztN4Awb8E

 

-행사 당일 판매하던 김지은님의 ‘람지커피’가 정기구독 신청을 받는다고 합니다.

연대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문의; ramjicoffee@naver.com

[후기] 띠앗 활동가의 “차이나는 문화회식”: 24회 서울국제영화제 「걸스 걸스 걸스」

띠앗 활동가의 “차이나는 문화회식” 지금부터 공유합니다.

띠앗 활동가들이 실무에서 깨어있는 인권 감수성으로 아동·청소년들과 만나기 위해

24회 서울국제영화제에 참석했습니다.

띠앗 활동가가 처음으로 선택한 퀴어영화는 「걸스 걸스 걸스」~

「걸스 걸스 걸스」는 3명의 10대 후반 여자 청소년들의 성적 지향성에 호기심을 갖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아낸 영화입니다.

퀴어영화에서 주로 다뤄지는 성 정체성을 넘어 무성애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청소년들의 삶에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제시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네요.

앞으로도 띠앗 활동가들은 국제영화제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서로의 차이와 문화이해를 넘어 공정과 다양성의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활동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청소년지원시설 활동가 모집(구분:상담원_숙직근무 가능한 자)

개인정보제공·이용_동의서◎ 평화의샘은 성착취를 경험한 청소녀들의 치유와 자립을 위해 청소녀들이 자신의 존엄성을 다시 확인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공간입니다.

    성착취 피해 아동 청소년을 위한 상담, 교육, 자립, 자활등의 통합적 서비스 제공을 함께 할 에너지 있는 활동가를 찾습니다!

(다음 중 하나 이상에 해당하는 자만 응시 가능)

-「사회복지사업법」에 의한 사회복지사의 자격을 가진 사람으로서 경력3년 이상인 사람

– 사회복지시설 및 사회복지단체의 임직원 또는 공무원으로서 여성폭력방지 업무에 종사한 경력이 3년 이상인 사람

– 가정폭력상담소나 성폭력상담소 등 「사회복지사업법」제2조 제3항에 따른 사회복지시설에서 상담 업무에 종사한 경력이 3년 이상인 사람

– 성매매방지를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 및 시설에서 성매매방지 업무에 종사한 경력이 3년 이상인 사람

– 「청소년기본법」제21조 및 제22조의 규정에 의한 청소년지도사 및 청소년상담사의 자격을 가진 경력이 3년 이상인 사람

– 음악치료사 ·미술치료사 등의 전문치료사 자격을 소지한 경력이 3년 이상인 사람

– 채용시 주1일 이상 숙직근무 가능한 자(약 월 6회 정도)

– 성범죄 전력이 없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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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출서류

이력서, 자기소개서 각 1부

첨부 된 개인정보제공·이용_동의서 1부

해당자격증 사본 1부

경력증명서 1부

◎ 전형방법

1차: 서류전형(합격자 개별통보)

2차: 서류전형 합격자에 한하여 면접전형( 정확한 일정과 장소는 개별통보)

최종합격: 개별통보

◎ 접수방법: 이메일 접수(w-peace98@hanmail.net)

◎ 급여: 서울시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인건비 가이드라인 및 시설 운영규정에 준함(월 6회 정도 숙직근무 가능한 자)

◎ 기타

– 제출된 서류는 채용심사 외에는 사용하지 않으며, 비밀을 보장하고 일체 반환하지 않습니다.

– 제출서류 내용이 허위로 판명되었을 시 심사대상 제외 및 채용 취소가 가능합니다.

– 면접장소, 합격자 발표, 변경사항 등은 개별 통보합니다.

[온라인 토론회 자료집] “젠더 갈라치기”라는 새로운 함구령을 넘어 젠더폭력 저항하고 애도하기

2022년 8월 16일 저녁 7시, 온라인 토론회 “젠더 갈라치기”라는 새로운 함구령을 넘어 젠더폭력 저항하고 애도하기가 한국성폭력상담소 • 유니브페미 • 준강간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공동주최로 온라인 zoom에서 열렸습니다. 이번 온라인 토론회는 인하대 성폭력 사건을 둘러싼 한국 사회 지형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는 자리였습니다.

<발제>

-발제1 대학에서 성차별은 어떻게 지워지는가 _ 원정 (유니브페미)

-발제2 젠더 갈라치기라는 함구령, 윤석열 정부는 여성폭력을 해결할 수 있을까 _ 추지현(서울대 사회학과)

-발제3 준강간 누가 어떻게 ‘허용’하고 있는가 _ 남성아(준강간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자세한 내용은 온라인으로 함께한 참가자들의 질의와 이에 대한 각 발제자들의 응답내용,  참여신청자들의 말까지 함께한 자료집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자료집▼

2022온라인토론회_자료집

피해 부정’의 시간, ‘2차 피해’ 해결은 가능한가?

피해 부정’의 시간, ‘2차 피해’ 해결은 가능한가?

8월 20일 [미투운동 중간결산 : 지금 여기에 있다] 토크세션 2 주제를 소개합니다. 2차 피해 문제제기는 지난 몇 년 성폭력 싸움에서 빠진 적이 없습니다. 성폭력 저항 역사 내내 그러했듯이요. 그러나 양상은 더 격렬해졌습니다. 성폭력 자체를 부정하기 위해, 피해자 진술 뿐 아니라 피해자라는 위치, 피해자 진실성을 탄핵하기 위해 가해자와 그의 이해관계자는 자원, 인맥, 언로를 동원하고 전 사회적 규모로 커졌습니다. 이를 ‘2차 피해’ 라고 여전히 부를 수 있다면, 이에 대한 공동체 해결과 책임은 어떻게 촉구해야 할까요?

 

 

 

[쟁점토크] 15:10 ‘피해 부정’의 시간, ‘2차 피해’ 해결은 가능한가?

진행 _ 박다해(한겨레21 기자)
패널 _ 권김현영(여성현실연구소), 송란희(한국여성의전화), 이보라(국회여성정책연구회), 김혜정(한국성폭력상담소)

<미투운동 중간결산 : 지금 여기에 있다>
행사 웹페이지 / 참여신청 / 모금함 가기

https://2022metoo.com/

 

 

 

[온라인 토론회] “젠더 갈라치기”라는 새로운 함구령을 넘어 젠더폭력 저항하고 애도하기

[온라인 토론회] “젠더 갈라치기”라는 새로운 함구령을 넘어 젠더폭력 저항하고 애도하기

한 대학에서 20세의 여성이 허망하게 죽음을 맞았다. 
‘세계선도 미래인재’를 계발하겠다고 나서는 한국의 대학에서 성폭력 피해 끝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데 이에 대응하고 애도를 표할 수 없다. 
애도와 주목이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증폭시킬까 우려되고, 
피해자 모욕과 신상털기를 지속하는 여성혐오 커뮤니티가 있다. 
그 사이에서 정부는 ‘젠더’도, ‘성차별’도 언급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여성으로서 경험한 폭력을 
여성 대상 폭력(Gender-based Violence against Women)으로서 문제화 하는 것을 
제지하려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젠더갈라치기라며, ‘젠더’와 ‘성차별’에 함구령을 내리는 이는 누구인가? 
어떤 공론화를 누가 왜 두려워하는가?

대학 내 공간에서, 새 정부와 정권에서, 준강간이 일어난 현장에서 성차별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으며, 
어떻게 함구되려 하는지, 애도와 저항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짚는 토론회, 많은 목소리들을 환영한다.   


■ 일시 _ 8월 16일(화) 저녁 7시
■ 장소 _ 온라인 zoom
■ 참여신청 _ 분노하고 애도하는 이들 https://bit.ly/2022inspeak

○ 사회 _ 닻별 (한국성폭력상담소)

○ 발제
□ 대학에서 성차별은 어떻게 지워지는가  : 
   _ 원정(유니브페미)
□ “젠더 갈라치기”라는 함구령, 윤석열 정부는 여성폭력을 해결할 수 있을까 : 
   _ 추지현(서울대 사회학과)
□ 준강간 누가 어떻게 '허용'하고 있는가 : 
  _ 남성아(준강간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천주교성폭력상담소)

■ 주최
한국성폭력상담소, 유니브페미,  준강간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 문의
한국성폭력상담소 02-338-2890 ksvrc@sisters.or.kr

 

[스터디: 자유 글쓰기] 사라져가는 것들

사라져가는 것들

 

 

글_마녹

 

어릴 적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는(초등학교가 아니다. 나는 국민학교 세대이다. 그런데 한글2020을 사용하니 자꾸 초등학교로 자동변환된다.) 집에서 버스로 15분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그 버스는 인근의 온 마을을 다 돌고서야 한 시간에 한번 왔고, 같은 마을에 살던 친구들과 나는 버스를 기다리다 지루해져 함께 걸어가곤 했다.

 

학교에서 우리 마을을 가는 길엔 두 개의 다리가 있었다. 하나는 제법 넓은 폭의 하천인 ㅈ천이 흐르던 다리였고, 다른 하나는 작은 산골마을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흐르던 좁은 폭의 하천인 ㅌ천이 흐르는 다리였다. ㅌ천이 흘러 ㅈ천과 합쳐지고 그 물줄기는 서해 방향으로 흐르고 흘러 ㅍ항에 합류한다. 놀이터도 없고, 구멍가게도 없는 시골 마을의 아이들이 햇살이 좋은 날 이 하천을 그냥 지나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ㅈ천에서 놀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잡은 우리들은 ㅌ천이 흐르던 다리 위에서 한참을 내려다보다가 잠시만 놀다 가자고 냇물로 뛰어들곤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이 다 젖도록 놀다보면 어느새 버스가 다리위를 지나가고, 시간도 쏜살같이 지나가 엄마에게 혼나겠다며 부리나케 집으로 뛰어가곤 했다. 마을에 다다라 아이들과 헤어지며 보면 그 냇가에 안경을 놓고 온 친구, 보조가방을 놓고 온 친구가 한 명은 꼭 있었다. 결국 그 다음날이면 다시 안경이나 가방을 가지러 학교에서부터 그 길을 걷고 ㅌ천으로 뛰어들곤 했다.

 

ㅌ천이 ㅈ천과 합류되어 2-300m 흐른 지점의 위에는 왕복8차선의 고속도로가 지난다. 그 유래와 뜻도 알지 못 하지만 우리는 모두 그곳을 영장골이라 불렀다. 영장골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우리 마을이 있다. 우리 마을은 고속도로가 생기며 정부로부터 재정비가 된 곳이었다. 마을의 모든 집들은 똑같은 모양으로 고속도로를 바라보며 지어졌고, 붉은색, 파란색, 초록색의 지붕이 칠해져 있었다. 같은 시기에 면사무소에서 담장에 장미나무를 심으라고 장미묘목이 배분되기도 했고, 같은 시기에 같은 색깔의 기와로 바꾸는 마을 정비가 이루어지곤 했다.

 

고속도로를 지나며 보이는 우리 마을은 색색들이 정갈한 양옥들의 마을이었지만 실상은 오후 내내 해가 들어 여름이면 숨이 턱턱 막히는 집이었다. 에어컨도 없고,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을 곳 없는 마을의 한여름이면 사람들은 바리바리 고무대야에 먹을 것을 싸들고 영장골로 갔다. 넓디넓은 고속도로가 지나는 교량의 밑에 냇물이 흐르니, 그곳은 시원하다 못 해 서늘했다. 제법 폭이 넓던 ㅈ천은 어른 무릎정도의 깊이여서 누구라도 놀기 좋았다. 시골마을에 살며 수영장 한번 가보지 못 했던 우리들은 거기서 어울리지도 않는 수영복을 입고 냇물에 들어가 놀았다. 어른들은 그런 우리들을 보며 교량 밑에서 수다를 떨고, 낮잠을 자기도 했다. 그때 다슬기와 물고기를 잡겠다고 얼굴을 냇물에 들이밀고 눈을 치켜뜨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더 이상 ㅈ천이나 ㅌ천에서 놀지 못 했다. 내가 진학한 학교는 ㅌ천이나 ㅈ천의 반대 방향인 시내로 나가야 하니 일부러 그곳을 찾을 일이 없었다. 어디에도 갈 곳이 없어 마을안에서만 친했던 또래들도 자신의 놀이와 관계를 위해 어디로든 나갈 수 있는 시기가 되었던 것이다. 성인이 되며 서울 인근으로 독립한 나는 한두 달에 한 번 부모님을 뵈러 갔다. 그 사이 또래 친구들도 결혼을 하거나, 이사를 가고 그 자리엔 낯선 이들이 들어섰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우리 마을을 비롯한 인근 지역은 하나둘 화훼농장이 들어서더니 몇 년 사이 전국에서도 매우 유명한 화훼단지가 되었다.

 

얼마전 한동안 본가에 머무는 일이 생겼다. 그 시절 무지렁이처럼 천방지축으로 놀았던 우리의 모습이 생각나 해질녘 영장골을 향해 산책을 갔다. 고속도로 옆으로 논밭만 무성하던 영장골은 화훼농장으로 둘러쌓여 있었고, 마을 곳곳으로 들어선 소규모 공장이나 농장에서 퇴근하는 차량들로 복잡해졌다. 인도도 별도로 없는 시골길을 ‘차가 많아 위험하네, 조심해야겠네’라고 생각하며 걷다보니 영장골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곳은 예전에 다슬기를 잡고, 물놀이하고, 어른들이 한가로이 낮잠을 자던 곳이 아니었다. 넓디넓게 흐르던 ㅈ천은 물이 줄어 아주 작은 하천이 되었고, 물이 없는 하천바닥에는 무성한 수풀이 잠식해있었다. 수풀들 사이로 냇물이 얼마나 흐르고 있는지 보고 싶었지만 하천 주변에 무수하게 쌓여있는 흙더미와 돌더미로 가까이 갈 수 조차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하교길에 물놀이를 하던 ㅌ천으로 향했다. 그때 그렇게 친구들과 온 몸이 젖게 놀던 ㅌ천은 더 이상 하천이 아니었다. 그저 메마른 땅이었다.

 

사막처럼 쩍쩍 갈라진 ㅌ천을 내려다보며 ‘정말 다시 오지 않는 구나, 이제 더 이상 그런 시간은 없겠구나..’라며 시간의 흐름을 실감했다. 그 시간엔 추억만 있는 게 아니었다. 흐르는 강물도, 푸르렀던 나무들도, 지천에 깔렸던 다슬기도, 내 손에서 잘 빠져나가던 물고기도 함께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함께 흘러갔음을 알 수 있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낮게 나는 백로를 보았다. 하천에 앉아 먹이를 찾고 휴식을 취할 저 새는 어디서 생존하는 걸까 궁금해졌다. 이미 사라진 것들과 지금 사라져가는 것들이 아릿하고 씁쓸하게 턱 끝에 남았다.

 

[스터디: 자유 글쓰기] 재봉틀

 

 

 

재봉틀

 

  1. 06.12 김태옥

우리 집에는 엄마가 결혼 후 마련하여 쓰셨던 오래된 물건들이 있다. 다듬이돌이나 방망이, 놋대야, 멧돌, 커다란 항아리들과 함께 중고로 구입하셨던 미싱(일본말)이 있다. 엄마의 젊은 시절에는 한국의 모든 물자들이 귀했기에 결혼예단에 옷을 만들 수 있는 원단들을 몇 필씩 넣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어릴 적 기억으로 엄마가 미싱을 하시던 기억보다는 명절 전날 심부름으로 저고리동정을 사오면 엄마는 한복저고리에 동정을 새로 달며 꿰매시던 것이 생각난다. 아이들이 훌쩍 자라 못 입게 된 한복들은 치마를 뜯어 천으로 보관하였다. 그래서 장롱 속에는 작아진 저고리와 원단들, 예단으로 받은 천들이 가득 들어있는 칸이 있었다. 어떤 천들이 들어있나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똑같은 천들이지만 나에게는 매번 처음 보는 것처럼 신기했었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부터 나의 꿈은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다. 이와 더불어 주변 환경 또한 나의 꿈에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 하교하면서 혼자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는 앙드레김의 숍과 유리벽 안쪽에 앙드레김의 드레스가 항상 전시되어 있어 화려하고 예쁜 드레스들이 나의 맘을 빼앗아 황홀하게 넋을 잃고 쳐다보다 집에 오곤 하였다.

원하던 대학의 의류직물학과에 들어가면서 재봉틀은 애용품이 되었다. 재봉을 처음 시작하면서 조각난 천들이 이어져서 옷의 모양을 갖추고 입고 다닐 수 있는 것들이 재미있었다. 윗실과 밑실이 만나면서 예쁘고 일정한 간격의 바느질로 인해 손으로 바느질을 했을 때보다 깔끔하고 더 세련된 느낌이 있었다. 그렇다고 손바느질이 밉다는 것은 아니다. 손바느질은 손바느질대로 다정함과 포근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퀼트로 누빌 때의 느낌은 기계로 만든 것과는 달리 부드럽고 몸에 착 감기는 느낌이 난다.

다들 재봉틀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재봉으로 인해 무언가가 뚝딱 만들어지는 것들로 처음에는 사랑에 빠져버린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신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 엄마의 장롱속에 있던 한복치마의 옷감은 나의 치마로 변신을 하였고, 동대문 시장을 돌아다니며 내가 만들고자 하는 옷들에 대해 어떤 원단이 어울릴까 고민을 했고, 심지나 단추, 허리 밸트심 등의 부속품을 사러 다니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다. 대학4년 동안 동대문 광장시장은 정말 자주 갔기에 어디에 가면 무엇이 있는지 훤히 꿰뚫고 있어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내가 가고자하는 곳을 헤매지 않고 다닐 수 있었다.

치마를 만들기로 결정한 다음에는 길거리에서 여성들의 치마만 보였다. 치마라인이 저렇게 되었구나, 길이는 저 정도가 좋겠구나, 원단이 디자인과 잘 어울리는구나 등 여성들이 입은 치마를 보며 치마를 디자인한 사람들의 안목을 배울 수 있었고 고급바느질과 싸구려바느질(싸구려바느질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고 옷 제작에 있어서 많은 공정들이 생략된 것으로 옷의 수명이 짧다)을 구분할 수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품과 시간이 많이 드는 재봉에 대해 소홀해졌고 간단한 바지단 줄이는 것 조차 피곤하다는 핑계로 점점 수선 집에 맡기기 시작했다. 우리 집 발틀인 재봉틀은 사용할 때만 재봉틀의 몸통을 위로 꺼내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속으로 접어 넣어 상판은 평편하게 되는 구조다. 재봉틀 사용의 시간이 점점 줄어들면서 재봉틀은 겨울철 마루의 한쪽 구석에서 화분받침대로 사용하게 되었다. 아무리 비닐을 깔아 물이 직접 닿지 않게 한다고는 하지만 조금씩 물이 스며들면서 낡은 집과 함께 재봉틀 상판의 나무는 썩고 들뜨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몇 번의 강산이 변하는 동안 재봉틀은 애물단지가 되고 있었다. 집을 리모델링하면서 재봉틀발판과 받침대는 재봉틀과 분리되어 지하실로 향했고 재봉틀을 그나마 사용하였던 나만 재봉틀을 잘 보관해야겠다고 생각해 습기가 없는 침대밑에 고이 모셔놓을 수 있었으며 그렇게 또 보자기에 쌓여 또 몇 년을 지났다.

대학 졸업한지 만 40년이 되는 올해 이사를 하게 되면서 재봉틀은 새롭게 변신을 하였다. 엄마가 처음 구입하셨을 때에도 중고였기에 상판과 발틀은 오리지널은 아니었지만 상판이 장인의 손에 의해 박달나무로 교체되어 재봉틀을 더 고급스럽게 보였다.

재봉틀은 언제 어디에서나 묵묵히 자리하고 있으며 자신의 역할을 기다리고 있었고 내가 방치해 놓고 사용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는 환경이 변하여 재봉틀을 여유 있게 놓을 수 있고 작업할 수 있는 공간 생겼으며 나만의 시간이 조금 늘어났다. 이제는 좀 더 재봉틀과 가까이 하며 자주 애용하려고 한다. 조각보자기도 만들고 시간이 많아 무엇을 하지 않고는 못 견딜 것 같은 때가 되면 옷도 만들고 천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만들고 싶다.

[스터디: 자유글쓰기] 장래희망

 

초중고를 거쳐 대학을 다니고 졸업해서 직장을 다니다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다 아이들이 독립을 하면 편안한 여생을 보내는 게 나의 인생이 될 줄 알았다…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할 때까지도 그래… 다들 이렇게 사는거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단지 학워니를 벌겠다는 목표가 아니라 살앙온 만큼 더 살아야 할 수도 있는 내 인생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냥 돈을 버는 일이면 되는 걸까…돈을 많이 벌지는 못해도 지금이라도 내가 살고자 하는 내 삶의 방향을 생각해서 직업도 생각해 봐야 하는 건지 고민이 든다.

 

다행히 경제적으로 크게 타격이 없이 5~6개월 정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기는 했지만 다시금 불안함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더 이상은 너무 길게 지체할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상담소 스터디 중 함께 봤던 다큐 중 “우리는 매일매일”이 떠올랐다. 자신이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일을 잠시 멈추고 함께 활동했던 활동가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찾아가 인터뷰를 했던 내용이다. 인터뷰를 했던 주인공이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들 자시느이 인생을 더 열심히 가치있게 살고 있었다. 소신을 가지고 자신이 옳다고 생가하는 일에 대해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경제적인 것을 넘어 자신의 소신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고, 소외된 사람들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살아가려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어떤 일을 할까의 고민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다.

2년이 안되는 시간동안 상담소에서 활동가로 일하면서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많은 생각들 중 확실한 건 앞으로 더 상담소에서 활동가로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피해자들과 진심으로 더 많은 소통을 할 수 있는,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활동가, 일방적으로 무엇인가를 제공하고 주는 관계가 아닌!

 

피해 생존자와 그리고 함께하는 활동가들과  소통될 수 있는 활동가가 되려면 나의 일상에서도 조금더 민감하게 생각하고 반응하고, 깨어 있을고 노력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들 그냥 그렇게 사는거지”라는 생각이 아니라 나의 소신대로,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초등학교 때 “나의 장래희망”이라는 글을 많이 쓰고 발표도 했던 기억이 있다. 45세의 지금 나의 장래희망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활동가가 되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장래희망을 발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