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폭력피해자를 위한 심리상담사의 연대는 계속 됩니다

2020년말로 사단법인 평화의샘 부설 평화의샘 심리상담센터가 사업을 종료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성폭력피해생존자나 성매매피해생존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상담활동을 해 오던 역할은 어떻게 되나 궁금해하셨을텐데요. 오랜 시간 여성폭력피해자를 위해 연대하며 활동해오신 심리상담사들은 여전히 사단법인 평화의샘 부설기관에서  피해자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계십니다.

특히 상담소에서는 성폭력피해생존자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심리상담사들은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는 인식하에 함께 성장을 고민합니다. 성폭력피해자들이 사법적 혹은 비사법적으로 가해자나 조직에 대응하는 단계에 있는 경우 심리상담사는 피해생존자의 심리적 어려움에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은 물론 대응과정에 대한 충분한 이해로 피해자가 채 드러내지 못 하는 상황적 어려움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매년 심리상담자와 함께 성장하고, 피해자에 더 잘 연대할 수 있는 교육을 기획,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1년에는 n번방 사건으로 인해 개정된 일명 N번방 방지법부터 올해 시행된 스토킹처벌법에 대해 교육하며 디지털성범죄 피해나 데이트, 스토킹 폭력피해에 대한 이해를 돕고 역량이 강화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해당 교육을 통해 심리상담자와 활동가가 피해생존자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지원과정에 따라 긴밀히 소통하고 협업해야 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단법인평화의샘 제9차 정기총회 안내

  1. 사단법인평화의샘 회원님들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1. 2022년 사단법인평화의샘 제9차 정기총회를 다음과 같이 안내하오니 많은 회원님들의 참석을 부탁드립니다, 올해 또한 코로나19로 인하여 대면회의가 아닌 zoom 온라인회의로 진행 하고자 합니다. 온라인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링크주소(아이디/비번)는 총회전날 메일과 문자로 발송할 예정입니다.

 

  1. 온라인 회의에 참석이 어려우신 회원님께서는 첨부한 위임장을 작성하시어 메일 w-peace98@hanmail.net이나 팩스(02-825-1292)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가. 주 제: 2022년 사단법인평화의샘 제9차 정기총회

나. 일 시: 2022년1월21일(금) 저녁7시

다. 장 소: zoom 온라인회의

라. 참석대상: 사단법인평화의샘 정회원

마. 안 건:

– 2021년 활동보고 및 결산 승인

– 2022년 사업계획 및 예산 승인

-기타안건

위임장_(양식)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활동 : 내가 NO한 성관계를 YES하는 법은 즉시 바뀌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성폭력사건의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가해자가 ‘폭행 또는 협박으로’ 피해자를 강간하여야 합니다. 여기서 폭행 또는 협박이란 상대방의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 불가능하게 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동의없이 성관계하면 성폭력’이라는 사회적 인식과는 거리가 멉니다. 일상에서 우리는 누구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 당하지 않고 상호존중되는 관계를 원하고, 그렇지 않을때는 성폭력으로 명명하지만, 현행법에서의 실제 처벌은 괴리가 있습니다. 이것을 다양한 분야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시민들이 모두 인식하고 체감하기에는 더 어려운 현실입니다.

 

상담소는 2019년부터 ‘폭행 또는 협박’ 여부로만 성폭력사건을 바라보고 정작 가해자가 피해자로부터 성행위에 대한 ‘동의’를 구했는지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는 강간죄의 개정을 위해 ‘강간죄개정연대회의’에 함께하며 연대하며 활동해 오고 있습니다. 지난 3월에는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일반시민들이 자신이 판사라는 시각으로 성폭력 사건들에 판결을 내려 보고 실제 사법부의 판결과 비교해보는 게임을 제작했습니다. 아직 못 해보신 분들은 직접 체험해보시면 성폭력 범죄에 대한 현행법의 한계를 느껴보실 수 있습니다.

 

또한 일반시민들이 강간죄 개정이 왜 필요한지 이해할 수 있도록 연속강좌를 진행하였습니다. 강간죄를 둘러싼 형법적 과제와 개정운동의 역사를 다룬 특강은 물론 강간죄개정을 위해 활동해 온 성폭력활동가, 국회의원, 변호사들의 토크콘서트 등을 통해 강간죄를 포함한 성폭력관련법 개정의 과제와 성폭력에 대한 인식 변화를 위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 연대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국회에 발의된 비동의강간죄 입법안은 논의조차 되지 못 하고 21대 정기국회가 끝이 났습니다. 강간죄 개정을 목표로 활동해 온 기관으로서는 국회의 무책임함에 실망감이 들지만 지치지 않고 활동하려 합니다. 올해 UN 인권이사회는 2021년 ‘강간’ 특별 보고서를 채택하고 비동의 강간죄 입법 가이드를 발행하였습니다. 국제인권기구가 대한민국의 강간죄 개정을 권고하고 있고 우리 시민들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고, 동의한 적이 없음에도 폭행 또는 협박의 입증부족으로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 하는 피해자들이 있는 한 강간죄개정을 위한 상담소의 활동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강간죄개정을 위한 2021년의 활동을 다시한번 들여다봐주시고 많은 관심과 독려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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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링크: wonderful-law.korea.wtf

[관련글] 평화의샘 법인신규활동가들도 게임 후 후기를 나눴습니다.

 

– [연속특강] 강간죄, 우리가 바꾸자, 지금 여기에서!

[관련글] [토크콘서트] 강간죄, 우리가 바꾸자, 지금 여기에서!

2021년, 제 2회 치유_자활 프로그램 “같이[가치]그리다!”

2021년 여름,
평화의샘에서는 아름다운 인연으로 아주 특별한 작업을 하였습니다.
씨더썬 선생님들께서 진행하시고, 생활인들이 참여하며 함께 공동작업을 하였는데요.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들을 창작하고, 굿즈 제작까지 하였습니다.
생활인들의 자기표현 및 정서치유 뿐만 아니라 굿즈 제작 과정을 통한 사회적 순환 사업의 참여자로서 자활과정을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총 12회기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는데요. 역동적인 드로잉의 액션페인팅, 우리 마음 속의 우주를 표현하는 우리만의 우주, 은하계 만들기, 개성넘치는 디자인의 점토 트레이 만들기, 스티로폼 판화만들기 등, 생활인들의 예술성을 표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후반부에는 이 멋진 작품들을 굿즈로 만드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씨더썬이 1차로 작품을 선정하고, 생활인들의 최종결정을 하여 핸드타월과 대형타월로 제작하였습니다.

 

 

제작된 굿즈는 아웃리치, 홈커밍데이등의 홍보용품으로 사용되었구요. 생활인들의 개별 작품이 생활에서 사용가능한 제품으로 탄생하였다는 것에 놀라움과 성취감을 가진 시간이었습니다.

 

 

자신을 표현하고, 작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생활인들이 느꼈을 행복과 즐거움 뿌듯함에 절로 미소 짓게 되네요. 씨더썬 선생님들의 전문성 또한 빛을 발했습니다. 친절하게 한 명 한 명 이끌어 주시며 즐거운 만남의 시간을 만들어 주셨어요. 씨더썬 선생님들과 참여한 생활인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다음에도 이 인연이 이어져 뜻깊은 시간을 함께 하길 기도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것은 해소되지 못한 무의식과 과거의 경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며, 자신을 알아차리고 표현함으로써 정서적 해소가 이뤄집니다. 미술치료의 가장 이점이죠. 이 시간을 통해 생활인들의 정서적 치유와 사회경제에 대한 이해, 사회구성원으로써의 소속감을 느끼는 시간이 되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기자회견문] 19세 미만 성폭력 피해자 진술녹화 증거능력 폐기처분한 헌법재판소 규탄한다

[기자회견문] 19세 미만 성폭력 피해자 진술녹화

증거능력 폐기처분한 헌법재판소 규탄한다

 

2021년 12월 23일, 헌법재판소는 19세 미만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진술이 수록된 영상물에 관하여 조사 과정에 동석하였던 신뢰관계인 등이 그 성립의 진정함을 인정한 경우 이를 증거로 할 수 있도록 정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2012. 12. 18. 법률 제11556호로 전부개정된 것)」 제30조 제6항 중 ‘제1항에 따라 촬영한 영상물에 수록된 피해자의 진술은 공판준비기일 또는 공판기일에 조사 과정에 동석하였던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 또는 진술조력인의 진술에 의하여 그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된 경우에 증거로 할 수 있다’ 부분 가운데 19세 미만 성폭력범죄 피해자에 관한 부분(이하 ‘해당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6인(유남석, 이석태, 이은애, 이종석, 김기영, 문형배)은 해당조항이 피고인의 방어권, ‘반대신문권’을 제한하여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리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강력하게 규탄한다. 해당 조항은 19세 미만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경험을 반복해서 진술하는 것을 최소화하고, 법정 진술 및 반대신문을 받는 과정에서 입을 수 있는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그동안 반성폭력 운동을 통해 가해자중심적인 형사사법체계를 바꾸고, 피고인 방어권 보장 뿐 아니라 피해자 보호 및 권리 보장도 중요한 인권이자 국가의 역할임을 강조해온 시대적 변화를 역행했다.

 

사법부는 피고인의 방어권을 명목으로 이루어지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얼마나 더 용인할 셈인가? 이미 우리는 수많은 성폭력 사건들을 상담·지원하면서 가해자가 방어권을 구실로 피해자에 대한 통념과 ‘꽃뱀 신화’를 강화하고, 피해자의 사적 정보를 파헤치고 유포하며, 성폭력범죄의 실체적 진실을 왜곡·훼손하고, 권력적인 위치를 과시하면서 피해자를 겁박하고 처벌의지를 좌절시키며 정의로운 문제해결을 포기하게 만드는 현실을 보아왔다. 아동·청소년 피해의 경우 가해자가 친족, 교육자 등 가까운 관계에 있는 비율이 높아, 피해자의 약점 또는 양가감정을 이용하거나 주변인을 통해 계속해서 회유 또는 압박하는 등 2차 피해를 일으킬 가능성이 더 많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피해자들이 처한 현실을 철저하게 외면한 것이다.

 

이제 19세 미만 성폭력 피해자들은 수사·재판 과정에 반복해서 불려나가 피고인과 피고인 변호사의 공격적인 반대신문에 답변해야 하는 현실에 놓이게 되었다. 아동·청소년이나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수사재판과정에서 발생할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진술을 최소화한다는 그간의 사회적 합의 과정을 뒤로 하고, 성폭력 사건과 무관한 과거 이력에 대한 질문, 피해에 대한 의심, 때로는 폭력적이기까지 한 피고인 측의 반대 신문에 고스란히 노출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과거 영상 진술녹화를 통해 비로소 피해경험을 진술하고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었던 19세 미만 성폭력 피해자들이 가해자가 재심을 청구하면 지난한 수사·재판 과정을 다시 거쳐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위헌 결정에 반대의견을 제시한 헌법재판소 재판관 3인(이선애, 이영진, 이미선)은 “헌법상 재판절차진술권의 주체인 형사피해자가 궁극적으로 그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형사소송절차 진행 도중 오히려 2차 피해를 입는 현상을 방지하여야 할 공익 또한 매우 중대하”고, “2차 피해로부터 미성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마련한 장치가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내용인지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위헌결정의 중요한 근거로 제시된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은 공정한 재판과 재판의 결과적 정확성을 보장하는 도구적 의미를 가질 뿐, 공정한 재판의 절대적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함께 제시했다.

 

성폭력 사건에서의 실체적 진실은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한다고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성폭력 피해의 입증 책임을 피해자에게 묻고, 일관되고 명확한 피해진술 마저도 그 진위여부를 의심하며, 고정된 피해자상에 부합하지 않으면 피해자가 아니라고 규정하는 현실에서 실체적 진실을 어떻게 판단하려는가? 피고인의 반대신문권만을 강조하며 피해자의 권리를 빼앗는 이번 위헌 결정이 피해자에 대한 비난과 공격을 정당화하고 용인해주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 심히 우려스럽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고발로 한걸음 더 나아간 역사를 퇴행시키는 결정이자, 일반 시민의 상식에서도 크게 벗어난 중대한 오점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2021년 12월 23일, 2018헌바524판결을 기록하고 기억하겠다. 헌법재판소는 우리 사회를 해당 조항이 없었던 19년 전으로 되돌려 놓으려 하지만, 우리 삶은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2021년 12월 24일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대구여성회, 대전여성단체연합,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원회, 부산성폭력상담소, 부산여성단체연합,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수원여성회, 장애여성공감,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전북여성단체연합, 제주여민회, 젠더교육플랫폼 효재,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탁틴내일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 포항여성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변호사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한부모연합 (가나다순)

[에세이] 엄마와의 티타임

 

엄마와의 티타임

 

 

땡글이

 

올해 7월 결혼을 했다. 내 기준에서 ‘결혼’이란 말은 아직도 낯설고 나의 상태를 정확히 표현한 단어 같지 않다. 그냥 바라던 대로 나의 오랜 연인을 하우스메이트 삼아 독립한 느낌이 강하다. 최근 내가 겪은 큰 사건을 다시 정확히 말하자면 (결혼이 아니라) 30여년만의 ‘엄마에게서 분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엄마 손에 있다가 떠나면 고생한다고, 특히 딸들은 살림 때문에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고 하지만 그런 면에서는 의외로 괜찮다. 캥거루였던 나와 다르게 기나긴 자취 생활로 단련된 하우스메이트 덕분인지, 요즘 기술의 발달로 살림을 책임지게 된 삼신가전님 덕분인지, 아니면 깨끗한 감성 공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집은 원래 노동의 공간이란 사실을 받아들여서인지 생활에 대한 적응은 잘 되었다. 그럼에도 퇴근 후 저녁, 집에 혼자 있을 때 밀려오는 쓸쓸함엔 엄마의 부재로 인한 그리움이 있다. 앞으로 더 익숙해져야 할 고독 안에서 나는 엄마의 ‘이야기’가 그리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부터, 정확히는 성인이 되어 이제 삶의 실망과 절망을 더 알아가게 됐을 때부터 엄마랑 나는 항상 식사 후 티타임을 가지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의 고민을 얘기할 때도 있었지만, 학교부적응, 진로고민, 취업문제, 직장 내 스트레스 등 “이제 엄마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엄마는 늘 곁에서 들어 주었다. 엄마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나, 할머니에게 들은 옛날 가족들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내 고민과 관련 없는 얘기들을 듣고 생각을 말하다 보면 당장의 힘든 일들에 대한 감정이 해소되기도 했다.

난 엄마의 살뜰했던 돌봄노동 보다, 나와 상관 없는 듯 연결된 엄마의 이야기들이 벌써 그립다. 하지만 이상하게 전화를 하고 싶지는 않다. 전화를 자주 못하는 것에 대한 부채감과 죄책감은 느끼면서 이상하게 자주 안하게 된다. 막상 해야지 마음 먹으면 부담이 되어, 최근 그런 나의 마음이 계속 괴롭고 궁금했다. 혼자 거듭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있다.

 

 

가부장에 충성하며 자라온, 자타공인 ‘현모양처’였던 엄마는 3년전 아빠와 이혼을 했다. 나랑 동생이 완전히 독립할 때까지 안정적인 가계를 꾸리길 원했던 엄마, 원래도 한량끼가 있겠다 이젠 자식도 다 컸으니 있는 돈 펑펑 쓰며 놀겠다는 아빠, 이들 사이에 자주 대립이 있어왔다. 지금이야 아빠를 이해하지만, 그 때는 엄마를 마냥 불쌍히 여기며 아빠에게 분노하는 장녀, 바로 내가 있었고, 서로 얼굴 붉히고 사느니 다같이 편하게 갈 방법을 모색하자는 동생놈이 있었다. 엄마 사전에 가정이 우선이었고, 이혼은 더더욱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 나랑 동생의 심적 안정을 이유로, 아빠에게 설득력 있는 경제적 조건을 제시하고 둘은 합의 하에 헤어졌다.

그간 아빠와 싸우는 와중에도 엄마는 나나 동생이 들을 까봐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하고 목소리를 낮췄기 때문에 내가 박차고 끼어들어 대신 발광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릴 적 사랑을 받은 만큼 아빠에 대한 분노가 더 컸던 것 같다. 당사자인 엄마는 혼자 삭이고 참는 사람이었다. 가정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나중에 엄마가 내게 고백한 것처럼 엄마는 스스로가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이혼녀로 지내는 것이 초라하다고 느꼈을 것이고, 세간의 눈치도 봤었을 것이다. 물론 선택 후 엄마의 인식은 많이 바뀌었다.

 

 

반년 정도 혼란스럽고 힘들었지만 엄마는 본인의 감정이 우리 남매에게 안좋게 영향이 미칠까 우려했고, 무엇보다 이대로면 이 이혼이 의미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오히려 당당하고 재미있게 본인과 아빠의 일을 희화화해서 가족이나 동료에게 털어 놓고 다녔다. 자신감 없어 조용했던 사람이 말이 많아졌고 익살스러워졌다. 숨기기보다 오픈하고 털어놓은 덕분에, 말을 재미있게 해서, 엄마의 곁에는 엄마를 지지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있다. 엄마가 해학으로 가장했어도 그 뒤에 참고 있는 슬픔을 알아보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엄마는 이야기꾼이 되어갔다. 덕분에 엄마의 새 친구들이 늘어, 어느새 우리 집은 엄마 또래이거나 그 보다 나이가 많은 이혼, 사별, 비혼 등 다양한 이유로 혼자가 된 아주머니, 자매님, 이모들이 티타임을 가지러 왔다. 늘어나는 손님들만큼 믹스커피, 알커피, 원두커피, 녹차, 홍차, 보이차, 생강차, 히비스커스, 페퍼민트, 블루멜로우, 루이보스 등등 우리 주방 한켠에 차들도 늘었고, 그것은 따스하게 마음을 녹이며 많은 이야기들을 끌어주었다.

 

 

나 또한 엄마의 이혼 직후 참 갈등이 많았다. 아빠에 대한 원망이 엄마보다 더 격렬했고, 엄마가 내게 의지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감정이 주체가 안될 때도 있었고, 사람들에게 속 없이 떠드는 엄마 때문에 화가 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티타임이 있었다. 서로 의견이 달라 주체 안되는 감정 때문에, 나는 내 방에 들어가 귀를 막을 때도 있었고 연인의 집으로 잠적할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독불장군 같던 내게 계속 차를 권했고 기다렸다. 간식을 나누며 우리는 서로 말하고 듣는 시간을 가졌다. 아빠의 어린시절, 조부모, 우리가 아는 아줌마, 이모, 자매님, 친구들이 최근 겪는 이야기, 그들이 어떻게 현재를 이겨나가는지에 대한 이야기, 내가 평소 읽는 책, 엄마랑 내가 같이 본 영화 등 여러 가지를 나누다 보면 동요되는 감정은 가라 앉고 어긋나던 대화들도 자리를 찾아갔다.

나의 결혼이 오작교가 된 것 같기도 하고, 3년간 엄마가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로서 종속되기 보다 본인의 삶을 다시 채워가고 있었기에, 엄마는 현재 용서를 구한 아빠와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 것이 최근 일이다. 아무리 드라마나 해외에서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커플들을 보았어도 난 무던한 동생놈과 달리 당혹스러움이 컸다. 당장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조금씩 그간 엄마와의 티타임으로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된 낯선 차들처럼, 부모란 틀을 해제하고 엄마, 아빠 각자가 품고 있는 이야기와 정체성 또한 받아들이게 되는 면역이 생긴 것 같다. (이미 생애주기 상 어른이지만) 이렇게 진정 ‘어른’이 되어가는 것인가! 뭐 그런거지.

 

 

큰일을 치르면 철이 든 다는데 올해 결혼도 하고 온전한 나의 일상을 지내며, 나의 혼돈이 적어도 내 안에서 정리가 되어가고 있다. 글을 쓰면서 내가 결혼 후 엄마에게 먼저 전화하고 다가가기 어려운 것은 몇 년간 일로 엄마나 내가 서로 성장해오며 갖게 된 변화들이 어색해서란 생각이 든다. 이 또한 금방 적응하리라 믿는다. 결혼식 날 “나의 유년의 장을 채워주어 감사하다.” 고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알라딘이 지니를 풀어주듯 ‘엄마’를 보내주는 주문이었다. 이젠 엄마가 더더욱 자유롭게 ‘본인’ 그 자체로서 살아가기를 응원한다. 엄마와 나 사이의 애틋함과 달띤 오그라듦은 여기까지이지 싶다. 그냥 해학으로 무장한 이야기꾼의 청자로 계속 남고 싶다. 자~!! 나보다 더 바쁜 윤여사! 이번엔 무슨 차랑 디저트를 가져갈까요?

 

[기자회견] 19세 미만 성폭력 피해자 진술녹화 증거능력 폐기처분한 헌법재판소 규탄한다

[기자회견]
19세 미만 성폭력 피해자 진술녹화 증거능력 폐기처분한
헌법재판소 규탄한다
2018헌바524 구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1조의3 제4항 등에 대한 2021.12.23 헌법재판소 위헌결정에 부쳐ㅇ일시 _ 2021년 12월 24일(금) 10:00
ㅇ장소 _ 헌법재판소 앞사회 _ 최란(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발언 _
1. 이번 헌재 결정의 문제점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변호사)

2. 성폭력 가해자 방어권만 우선하는 국가를 규탄한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3.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가 재판과정에서 겪는 2차 피해 현실 (정희진 탁틴내일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 팀장)
4. 이번 헌재 결정이 일으킬 문제들 (신수경 변호사, 한국여성변호사회)
5. 자유발언
기자회견문 낭독 _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무화 활동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김경숙 상임대표

박아름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공동주최 _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대구여성회,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원회, 부산성폭력상담소,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천주교성폭력상담소, 탁틴내일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변호사회, 한국여성의전화 (가나다순)

[천주교성폭력상담소]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 with 은유

성폭력피해자를 지원하는 활동은 여성주의적 사유 안에서 피해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안에 개인만의 고유한 언어를 찾아 함께 발화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상담소 활동가들은 피해생존자와 깊이 소통하고 함께 치유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활동가 자신을 돌아보고 표현하는 법을 익혀 활동 과정에 녹여내면 좋겠다는 공통된 욕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과 여성주의적 글쓰기를 진행해오신 은유 선생님을 모시고 전 활동가 모두 자기 자신에 대한 자유로운 글쓰기 수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4인 4색 개성 있는 글들을 함께 읽고 나누면서 많이 울고 웃었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교육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각자 홀로 창작에 몰두한 시간이 많은 위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림일기와 글들을 통해 현장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에세이] 내 장례식장에는 ‘누군가에게’를 틀어주세요

내 장례식장에는 ‘누군가에게’를 틀어주세요

_마녹

 

얼마전 뮤지션 이랑님이 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장례를 치르며 언니가 좋아했던 것들로 장례식장을 꾸몄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녀의 언니는 평소 살사댄스를 즐겨추는 특수교사였기에 음악을 틀고 춤을 출 수 있게 장례식장을 꾸몄고, 언니의 친구들 또한 언니를 더 잘 추억하며 인사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도 가끔 나의 장례식을 꿈꾸곤 한다. 내 죽음에 내 장례가 내 바람처럼 될지 모르지만 죽음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장례식장에 대한 바람이 선명해졌다.

 

내가 죽음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은 A로부터 시작되었다. 중학교 3학년 바람이 차가워지던 늦은 가을에 A가 죽었다. 주말이 지나고 희희낙락거리며 학교에 도착했는데 반 아이들이 수군수군대고 있었다. A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그 말을 전하던 친구들은 어디서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죽은 모습을 직접 본 것처럼 생생한 말을 전했다. 놀라고 당황스러운데 표현할 새도 없이 일과가 시작됐다. 선생님들은 A가 존재하지 않던 사람인 것처럼,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어떤 말도 해주지 않았고 오히려 아이들의 수군거림을 막으려는 듯 교실마다 다니며 조용히 시켰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른 채 학교가 끝났다. 학교 교문에서 3분도 안 되는 곳에 있던 친구의 집은 굳게 닫혀 있었다.

 

A가 왜 죽은 것인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낮에 친구들이 전한 A의 죽은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간신히 잠이 들었지만 놀라서 깨기를 반복했고, 온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아팠다. 장례식도 가보지 못 한 채 며칠이 흘렀다. 어느새 학교에서 A의 존재는 지워지고 있었고, 내게 남은 것은 밤마다 꾸는 악몽과 A에 대한 근거없는 소문들이었다. 한 학년에 세 개의 반만 있는 시골마을에서 여중생의 자살은 눈덩이같은 말들로 뒤덮였다. A와 친하지도 않았던 아이들이 A가 죽은 이유를 저마다 다르게 이야기했다. A와 친하게 지낸 우리도 모르는 이야기를 저 아이들은 왜 이렇게 떠들고 다니는 건지 진저리가 났다. A와 인사도 못 하고 갑작스레 헤어져 가슴이 쥐어짜듯 아픈데 어디에도 그걸 이야기할 곳이 없었다. 어느 날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A와 친하던 몇몇이 조촐한 인사의 자리를 만들었다. 어른들의 도움없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운동장 한 켠에 과자 부스러기와 음료를 놓고 묵념을 하는 것 뿐이었다.

 

죽음이 내 안에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2004년이었다. 어느 날 선교사이던 김선일님이 이라크에서 피랍되었다. 김선일님은 주황색 수의를 입고 무장한 사람들에게 총으로 위협을 당하는 모습으로 뉴스에 등장했다. 나는 생면부지인 그가 죽을 위기에 처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고 두려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얼마 후 그는 살해됐다. 그 소식을 전하던 앵커가 ‘이제는 주황색만 봐도 무섭습니다’라고 하던 멘트처럼 나 또한 주황색도, 그 소식을 전하는 뉴스의 시그널도, 그의 이름이 떠있는 검색엔진도 무서웠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밤마다 온 방에 불을 켜놓고 클래식 음악을 틀었지만 잠이 들다가도 한 곡이 끝나면 놀라기를 반복했다. 그 생활이 6개월이 넘어가니 더 이상 혼자 살 수 없을 것 같아 본가로의 복귀를 고민하기도 했다. 어느날 정신과 의사가 쓴 칼럼을 보고 내 증상이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임을 알게 되었다. 내 심리상태를 알게 되었지만 전문가를 찾아갈 용기가 나진 않아 잠드는 방법만 고민하며 클래식 음악만 들었더니 어느새 클래식 애호가가 되어 있었다.

 

다시 십여년이 흐른 어느 날 중학교 친구 B가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암 말기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삶의 마지막을 보내기위해 호스피스로 들어갔다고 하니 죽음이 등뒤로 와 있다는 것이 실감났다. A를 보냈을 때처럼 또 다시 두려움으로, 악몽으로 매일 밤을 지내고 싶지 않았다. 이기적이지만 내 마음에 후회가 남지 않기 위해 B의 병실로 달려갔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B의 몸에 욕창이 생기지 않게 몸을 돌려주고, 입술에 물수건을 대 주는 것뿐이었다. 밭은 숨만 남은 친구 곁에서 그 시골마을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그때는 소중한 줄 몰랐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나의 소소한 일상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처음으로 부끄럼없이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인사했다. 죽음의 그림자처럼 얼굴에 검은 빛이 돌던 친구는 호스피스에 들어가고 꼭 한 달이 되던 날 맑은 얼굴이 되며 눈을 감았다. 그렇게 아파하던 B가 더 이상 안 아프다는 것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죽음은 무섭고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안식과 평안일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A가 죽었을 때 어른들이 나와 친구들이 A와 제대로 이별할 수 있게 해주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지금보다 조금 더 담담하게 죽음을 말할 수 있었을까? 아니다..,두려움을 없애려고 죽음에 대해 늘 고민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덕분에 내 죽음에 대해서는 설계를 다 마쳤으니… 내년엔 다시한번 유언장을 남겨야지.. 그런데 그 전에 내가 갑자기 죽음을 맞게 된다면 하나만 기억해주길 부탁하고 싶다. “내 장례식장에는 김사월의 ‘누군가에게’를 틀어주세요. 그거면 편안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