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앗 “다~물어보살” 교육 프로그램 후기

안녕하세요! 성착취피해아동청소년지원센터 띠앗입니다. 저희의 마스코트 띠용와 함께 인사드려요♥

오늘은 8/9-10일 진행한 띠앗의 NEW 교육 프로그램 “다~물어보살” 후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다~물어보살~” 무엇을? 바로! 청소년 뿐만 아니라 성인도 늘 어려워하는 법률과 의료에 대해서요!

법률과 의료는 늘 가까우면서도 먼 것처럼, 들을 때마다 새롭고 알쏭달쏭한 마음이 들기 쉬운데요.

청소년들이 늘 알고 싶어하던 질문들만 쏙쏙 모아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았어요.

부인과는 왜 가야하는지, 약은 왜 먹어야되는지, 피임은 왜 해야하는지 등등…

해야돼! 라는 이야기는 늘 듣지만 가끔은 의문이 들 때도 있죠? 저도 그럴 때가 참 많아요.

그래서 현직 간호사 선생님을 초빙하여 교육을 진행하고 그 의문을 해소하는 시간들을 가졌어요.

프로그램에 함께한 저희 청소년들도 그 동안 가지고 있던 다양한 궁금증들을 질문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어 교육을 진행해주신 간호사 선생님도 저희도 깜짝 놀랄 정도였답니다.

의료가 우리에게 알쏭달쏭한 느낌이라면, 정말 너무 어렵게 다가오는 내용이 있죠? 바로 법률!

법률은 저도 들을 때 마다 늘 새롭고, 늘 어렵고, 자문을 구해야만 이해가 될 만큼 힘든 부분이었는데요.

청소년들이 느끼기에 더 큰 장벽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전문가를 통해 이야기를 들으면 법률과 관련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여

어렵게! 변호사님을 섭외하였습니다.

법률 용어와 절차, 지원과 관련된 내용들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이 쉽게 노출될 수 있는 범죄들을 사례를 통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신 덕분에

청소년들의 반응이 무지무지! 뜨거웠답니다.

이렇게 반응이 좋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역대급 반응 중 하나였어요♥

1박 2일이란 긴 시간동안 교육만 진행하면 너무 섭섭하니, 각자의 개성을 살려 베어브릭도 만들고

아로마테라피를 통해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을 배우고, 나만의 향수도 제작해보며

청소년들에게 지식과 더불어 재미, 교류의 장까지 마련할 수 있었던 “다~물어보살”

이야기만 들어도 굉장히 만족도가 높은 것이 느껴지죠?

저희는 올해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에 더 알찬! 다~물어보살 프로그램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럼 여러분! 모두 안녕!

저희 띠앗의 활동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2022년 성폭력 피해자 지원 현황

1. 2022년 성폭력상담소에서 지원한 피해자는 35,530명, 241,608건

2022년 전성협에서 지원받은 피해자는 35,530(성폭력 15,416)이며, 심리정서지원(79,314건)을 중심으로 수사법적지원(29,154건), 의료지원(11,719건), 정보제공(20,118건), 기관연계 5%(7,478건), 기타 7%(10,515건) 등 총 241,608(성폭력 158,298)의 통합지원 하였다.

특히 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의 치유회복과 권리확보를 위한 심리정서지원을 중심으로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으며, 피해자의 사법적 대응과정을 조력하는 수사법적 지원도 활발히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일상적인 공간에서의 성폭력 피해 심각

가정, 학교, 직장 등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사람들에 의한 피해 비율이 60%(전체가해자15,751명 중 9,424)안전해야 할 공간 혹은 안전할 것이라는 대상에 의한 성폭력 피해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가해자가 친족 및 친인척인 경우가 10%(1,519명), (전·현)애인·데이트 상대자인 경우가 10%(1,070명)로 나타났다. 피해자와 친밀한 관계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및 삶의 터전 곳곳에서 성폭력 피해가 발생되고 있다는 심각성을 보여준다. 이는 피해자의 현재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내밀한 정보까지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 위협성은 더 치명적이다. 이에 피해자는 성폭력피해에 대해 즉각 신고할 것이라는 사회적 편견과 달리 즉각 대응하지 못 하고 피해가 반복, 지속되는 관계의 구도 속에 놓이게 된다. 성폭력범죄의 처벌강화라는 성폭력에 대한 담론을 성인지적 제도와 법 개정 등 성평등한 사회구현으로 확장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성폭력상담소는 안전한 말하기부터 일상회복까지 전 과정에 연대

 

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의 신고여부에 상관없이 혹은 신고 이전부터 상담을 통해 일상회복 할 때까지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어 국가기관 통계와 피해유형 면에서 차이가 드러났다. 이는 성폭력상담소만의 특장점이라 볼 수 있다. 피해자들은 상담소에서 안전하게 피해를 말하고, 사법적/비사법적 대응과정 및 그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사회적 편견 및 상황에 대해 정보를 제공받고 있다. 신고 이후에는 반성폭력 운동단체의 관점에서 함께 대응하고 조력하여 피해자가 사법적 결과를 떠나 일상을 회복할 때까지 전 과정에 연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4. 결론 및 제언

 

최근 우리 사회는 직장(신당동 스토킹사건), 학교(인하대 성폭력사건), 집(의왕 엘리베이터 성폭력사건), 동네공원(신림동 공원 성폭력사건) 등 일상 곳곳에서 여성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으며 끝내 죽음을 면치 못 하는 경우가 다수 발생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금번 전성협 지원현황 또한 이를 반영한다. 우리가 일상 곳곳에서 만나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 피해는 60%이고, 가정 외에도 학교 및 직장 관계자 등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 의한 피해 비율이 32%에 달한다.

 

성폭력은 경찰의 총이나 장갑차로 예방할 수 없다. 성폭력을 개인의 문제로 사소화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성폭력이 발생하는 구조를 변화시킬 수 없다. 성폭력 예방을 위해서는 성인지적 관점의 법과 정책뿐 아니라 일상 곳곳에서 성차별적 문화를 철폐할 수 있도록 성평등 정책과 추진체계를 공고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전성협은 아래와 같이 제언하는 바이다.

 

첫째, 여성가족부를 성평등 전담부처로 기능하게 할 것을 요구한다.

차별과 폭력이 없는 세상은 법과 제도, 성평등을 위한 사회문화와 시민들의 인식으로 가능하다. 이를 위해 여성가족부가 기능을 강화하여야 한다.

 

둘째, 강간죄의 기준을 폭행·협박에서 동의여부로 개정할 것을 요구한다.

‘폭행·협박’이라는 최협의의 강간죄 기준은 피해자의 사법적 대응을 가로막고,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성폭력 관련법의 보호법익을 무색케 하고 있다.

 

셋째, 성폭력 피해자 권리확보를 위해 지원예산 및 체계를 강화할 것을 요구한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신고 및 처벌유무와 상관없이 자신의 피해에 대해 말하고 연대받길 원하며 지원요청하고 있으나 현재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치료회복프로그램 및 의료비, 무료법률지원사업의 예산은 매우 한정적이다. 사회적 구성원 혹은 시민으로서의 피해자 권리회복은 국가가 가진 책무다. 이를 이행하기 위해 정책 및 예산을 강화해야 한다.

 

 

*2022년 성폭력피해자 지원현황(세부내용) 보기 : 클릭

[성명서] 서울시 일본군‘위안부’ 기억의 터 기습철거 강행 규탄

 

기억의 터 기습철거에 대하여 규탄하는 성명서를 공유합니다.

여러 시민단체들의 연명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9월 5일 기어이 기억의 터를 철거하였습니다.

기억의 터는 성폭력 가해자 임옥상 외에도 여러 작가가 참여하였고 시민들의 모금으로 일본군위안부를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철거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기억의터를 어떻게 꾸려갈지,

권력자.민주인사의 성폭력, 전시성폭력을 비롯하여 여전히 반복되는 성폭력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대한 논의 없이

기습적으로 기억의터를 전부 철거하는 것은 반복된 성폭력의 역사, 여성들의 역사를 삭제하려하는 것이니 비난 받아 마땅합니다.

사단법인 평화의샘 부설 천주교성폭력상담소는 기억의터 철거에 대한 서울시를 규탄하고

가해자 임옥상이 법적, 사회적으로 합당한 처벌을 받을 것을 지켜볼 것이고

이번일을 비롯하여 여성폭력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을 시민들과 지속적으로 연대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터 서울시 기습철거에 대한 성명서] (2023.09.03)

 

성추행 가해자 임옥상을 핑계 삼아 여성폭력을 한일관계에

이용하고 일본군 위안부’ 역사까지 통째로 지우려는 서울시를 규탄한다.

서울시는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기습 철거를 당장 중단하라!

서울시는 남산 일본군 ‘위안부’ 추모공원 ‘기억의 터’에 설치되어 있는 임옥상의 작품 ‘대지의 눈’과 ‘세상의 배꼽’을 9월 4일 철거할 계획이라고 언론보도를 통해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는 민족반역자 이완용과 테라우찌 통감이 한일강제합병조약을 체결한 통감관저 터에 반인도적 전쟁범죄 피해자인 일본군’위안부’피해자를 기억하고 추모하며, 나아가 당당히 평화 인권활동가로 활약하신 피해생존자들의 메세지를 계승하자는 다짐으로, 사회단체, 정계, 여성계, 학계, 문화계, 독립운동가 후손 등이 국민모금을 시작하여, 총 19,754명의 시민들이 참여하여 2016년 조성된 공간이다.

그런데 2023년 8월 17일, 기억의 터 조성에 참여한 임옥상 작가가 강제추행으로 1심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고 서울시는 임옥상이 참여한 작품에 대한 철거 조치를, 문체부는 임옥상 작가의 공공지원 중단을 검토한다고 밝혔고 전태일 재단은 임옥상 작가가 제작 참여한 전태일 동상에 대해 ‘전태일 동상 공론화위원회’를 꾸려 철거 여부를 논의한다고 한다. 성추행 가해자 임옥상 작가의 작품 철거 및 공공지원 배제 검토에 대해 환영한다. 기억의 터의 역사적 의미와 평화와 여성인권을 염원하는 피해자 및 시민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작업에 성추행 범죄에 대한 책임과 반성 없이 감히 참여한 임옥상의 행태에 분노를 참을 수 없다. 임옥상 작가는 성추행 범죄에 대한 법적 책임과 피해자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를 반드시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울시가 임옥상의 작품을 철거한다는 이유로 기억의 터 조형물을 일방적으로 철거하는 것에 반대한다. 성추행 가해자의 작품을 철거한다는 명분으로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지우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서울시가 철거하겠다고 밝힌 2개의 작품은 임옥상 개인만의 작품이 아니다. 이는 조형물 제작 과정에 참여한 수많은 추진위원과 여성작가들 및 모금에 참여한 19,754명의 시민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존경과 ‘아픈 역사를 반드시 기억하겠다’는 다짐이 만들어낸 집단 창작물이다.

우리는 서울시가 수많은 시민들의 존경과 사랑, 다짐, 정성과 노고로 완성된 집단 창작물이 임옥상 개인의 것으로 폄하되고 의미가 훼손되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 서울시가 철거한다는 “세상의 배꼽”에는 윤석남작가의 그림이 새겨져 있고, “대지의 눈”에는 왜 기억의 터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명,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단, 김순덕 할머니의 ‘끌려가는 소녀’ 그림이 새겨져 있다. 서울시가 철거하겠다는 2개의 작품은 기억의 터를 이루는 핵심 요소다. 이것들이 철거되는 순간 기억의 터는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우리는 충분한 논의과정 없이 다급하게 기억의 터 작품들을 철거하겠다는 서울시의 의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서울시가 진정 지우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서울시는 기억의 터 추진위원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기관, 성폭력 피해자 지원 기관 등 이 사안과 관련된 전문가와 단체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한 채, 충분한 정보가 배제된 채 진행한 여론조사만 가지고 철거를 집행하겠다고 한다. 철거 후 재조성하겠다는 서울시의 말뿐인 대책도 믿을 수가 없다. 정말 서울시가 성추행 가해자의 작품을 공공장소에 설치하는 것에 반대하기 때문에 기억의 터 작품을 철거하겠다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고 피해자를 기리는 일과 현재도 일어나는 성폭력 문제에 대한 단호한 대처, 여성인권에 대한 다짐을 담아 기억의 터 공간을 어떻게 재조성할 것인지 로드맵을 먼저 제시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임옥상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모두와 연대한다. 여성폭력에 저항하는 ‘위안부’ 운동에 참여한 민중예술가가 다시금 여성폭력을 행한 이 사태에서 선명한 전선은 ‘반성폭력’이다. 우리는 반성폭력 운동의 일환으로 임옥상의 성추행 사건, 문화계 안의 성차별적인 남성문화, 일본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왜곡, 윤석열 정권의 일본 정부에 대한 아첨의 일환으로의 일본군 ‘위안부’ 역사 지우기 모두에 저항한다. 임옥상의 성추행 사건과 기억의 터 공간의 향방에 대한 논의는 이러한 맥락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서울시는 진정으로 임옥상 성추행 사건을 다루고자 한다면 임옥상의 성추행 사건을 이용하여 여성폭력 피해자 연대를 방해하고 훼손하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

서울시는 기억의 터를 훼손하려는 시도를 당장 중단하고, 임옥상에 대한 준엄한 평가와 심판과 더불어 기억의 터의 장소성과 역사성, 시민 참여, 반성폭력의 가치를 살릴 수 있는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지혜를 모아 제대로 된 해결책을 마련하라.

2023년 9월 3일

 


 

 

[성명서] 서울시 일본군‘위안부’ 기억의 터 기습철거 강행 규탄(2023.09.05)

 

기어이 기억의 터를 철거해 일본군‘위안부’,

반성폭력 운동 역사 통째로 지우려는 오세훈 서울시장 규탄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기어이 일본군 ‘위안부’ 추모공원 ‘기억의 터’를 철거했다. ‘아픈 역사를 반드시 기억하겠다’는 다짐으로 19,754명의 시민들이 마음 모아 서울 남산자락 옛 통감 관저 터에 조성한 여성인권·평화의 터를 짓밟고 깨부수었다. 기억의 터 건립추진위원회를 비롯 2천명이 넘는 시민과 단체가 성급한 철거 전에 임옥상의 성폭력과 일본군‘위안부’ 역사를 모두 기록하고 기억할 수 있는 방안을 공론의 장을 통해 먼저 마련하자고 제안했으나, 오세훈 시장은 결국 철거로 답했다. 수차례의 면담 요청 거부, 새벽부터 모인 100여 명의 시민들의 절절한 제안에 대한 답이 반성폭력 역사 지우기라는 것이 참담하다. 오세훈 시장의 불통과 독단을 규탄한다.

 

우리는 임옥상 성추행 사건을 통해 만연한 여성폭력의 현실을 드러내고, 범죄 이후 그의 파렴치한 행보까지 모두 기록하는 방안을 찾자고 하였으나 서울시는 이를 무시하고 기습적으로 철거를 강행했다. 서울시가 철거한 ‘대지의 눈’과 ‘세상의 배꼽’은 임옥상 개인의 작품이 아니다. ‘대지의 눈’에는 故 김순덕 할머니가 그리신 ‘끌려감’ 작품과 할머니 한 분 한 분의 생애와 말들이 새겨져 있었다. 결국 오세훈 서울시에 의해 그 기록이 지워지고 부숴졌다. 피해자들의 말과 이름이 지워지면 일본의 과오 또한 지워진다. 동시에 임옥상의 성폭력도 제대로 기록되지 못하고 그대로 지워진다.

 

서울시의 기억의 터 철거는 임옥상 지우기가 아닌 일본군‘위안부’ 역사 지우기, 여성폭력 저항의 역사 지우기다. 여성폭력의 역사를 공적 공간에서 끊임없이 기록하고 기억하려는 시민들의 노력까지 지워버렸다. 기억하고 성찰하여 다시는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는 반성폭력 운동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기억의 터가 서울시에 의해 임옥상 개인의 것으로 전락했다. 기억의 터 철거로 일본군‘위안부’, 반성폭력 운동 역사 통째로 지우려는 오세훈 서울시장 규탄한다.

 

기억의 터의 역사적 의미와 평화와 여성인권을 염원하는 피해자 및 시민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작업에 성추행 범죄에 대한 책임과 반성 없이 감히 참여한 임옥상의 행보로 인해 더욱더 큰 상처와 고통을 겪었을 임옥상 성폭력 피해자와 연대할 것이다. 그리하여 임옥상이 제대로 된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평가와 기록 기억이 모두 이루어질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 할 것이다.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오늘 기억의 터를 철거한 오세훈 시장의 잘못에 대해 낱낱이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앞으로 서울시가 기억의 터 공간을 어떻게 재조성할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기억하고 피해자를 기리는 일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똑똑히 지켜보고 말하고 개입할 것이다.

 

2023년 9월 5일

건립추진위원과 단체 및 개인 (9월4일 오후 9시 기준 총 2,227 단체 및 개인)

13일의 지킴이, 5.3합창단, Byung Hee Lee, ENDO KEISUKE, Goo Lee, Jacques Youngmin Jeon, Jeon Insook, Kim Chun-yop, KIN(지구촌동포연대), kt민주동지회, KYC(한국청년연합), Mijn Kim, YAJIMA TSUKASA, 가민채, 가재울녹색교회, 감리교여성지도력서울캐발원, 강경란, 강경석, 강경주, 강금자, 강나라, 강나래, 강남식, 강다현, 강덕임, 강동노동인권센터 이사 김영호, 강동민, 강동주, 강두호, 강명주, 강명지, 강명진, 강문선, 강미, 강미소, 강미연, 강미영, 강민영, 강민지, 강병조, 강서경, 강선미, 강성애, 강성희, 강수빈, 강순자, 강시윤, 강시현, 강연수, 강연실, 강연주, 강영길, 강은비, 강이수, 강전구, 강정원, 강종철, 강주원, 강지수, 강지연, 강진경, 강진경, 강진례, 강철, 강초롱, 강춘심, 강태희, 강한전, 강현숙, 강형구, 강혜정, 강혜정, 강호숙, 강호원, 강홍란, 강희주, 겨레하나, 겹겹프로젝트, 경기여성단체연합, 경남여성단체연합, 경남여성회, 경영애, 경주여성노동자회, 계명주, 고경리, 고경희, 고나경, 고나현, 고봉찬, 고양여성민우회, 고에스더, 고영희, 고요, 고원미, 고율선, 고지혜, 고혁진, 고현젓, 공공연대 노동조합 김영주, 공윤경, 공현정, 곽노진, 곽상열, 곽수진, 곽원비, 곽은주, 곽은희, 곽정신, 곽혜영, 광주여성노동자회, 광주여성의전화, 광주여성인권지원센터,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구경아, 구교용, 구년희, 구민아, 구보경, 구본선, 구순례, 구슬기, 구예린, 구은순, 국현, 군포여성민우회, 권가영, 권경란, 권금상, 권금숙, 권길자, 권말선, 권명진, 권미강, 권미강, 권미경, 권미정, 권미혜, 권민영, 권민주, 권수현, 권수현, 권순자, 권영숙, 권영인, 권영진, 권오규, 권지숙, 권지은, 권춘택, 권태현, 권혁주, 권현정, 권희자, 금문, 금박은주, 금속노조 울산지부 두올지회, 기독여민회, 기지촌여성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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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샘공동체 25주년 새로쓰기 인터뷰] 조금 별난 청소년들과 보낸 특별한 시간

 

5탄. 박주현 전 평화위기청소년교육센터 활동가/현 성매매 피해아동‧청소년지원센터 띠앗 팀장

 

조금 별난 청소년들과 보낸 특별한 시간

 

평화의샘공동체 25년 역사는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게 된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에 대해 다시 질문하면서 다양한 생존자들과 함께해온 과정이다. 평화의샘은 한국사회의 모든 변곡점에 여성/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있음을 보면서 활동가와 생존자로서 깨어나고 성장해왔다. 2023년, 평화의샘 공동체 25년을 맞이해서 다양한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평화의샘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활동을 했으며 활동가들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편집자 주]

 

평화위기교육센터의 시작!

2009년 2월 평화의샘 공동체가 여성가족부 국비 사업인 『성매매 피해 청소년 치료‧재활 사업』을 맡으면서 평화위기청소년교육센터(이하 평화교육센터)가 시작되었다.당시 위기청소년교육센터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에 따라 성매매의 대상이 된 아동청소년들의 성매매 재유입 방지 및 건강한 사회인으로서의 성장을 위한 치료‧재활을 목표로 활동하였다.2020년 아청법이 개정되고 성매매 피해아동‧청소년지원센터가 생기기 전까지 12년 동안 평화교육센터에서 청소년들과 함께했고, 지금은 성매매 피해아동‧청소년지원센터 띠앗에서 활동 중인 박주현 팀장(이하 박주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조금 특별할 수도 있는 청소년들과의 만남

2009년 박주현은 대학에서 청소년학과를 전공하고 청소년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위기청소년교육센터 교육상담원 모집”이라는 구인공고를 보고 막연하게 재밌을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이력서를 제출하였다. 당시만 해도 4일 동안 혹은 18일 동안 청소년들과 함께 합숙교육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성매매’, ‘지적장애’라는 단어조차 익숙하지 않았던 박주현은 12년 동안 현장에서 성매매 피해를 경험한 지적장애가 있는 아동청소년을 만나면서 성매매의 사회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인식과 지적장애 청소년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었다.평화교육센터는 성매매 피해를 경험한 지적장애가 있는 청소년들을 위한 기관이며, 전국에 단 한 곳뿐인 특성화 기관이었다. 전국에 11개 기관으로 존재했던 위기교육센터는 개정 전 아청법을 근거로 성매매 대상 아동·청소년들에 대한 보호처분을 목적으로 했다. 그러나 평화교육센터는 청소년들을 보호처분을 받은 대상 청소년들의 의무교육 제공자로서 머물지 않았다. 성매매의 대상이 됐다는 이유로 청소년을 보호처분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치유와 회복의 내용을 구성하였다. 이를 통해 성착취에 취약하거나 피해를 경험한 지적장애 청소년들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 1819일에서 45일의 여정 청소년 성장캠프

사업을 맡은 첫해에 18박 19일의 청소년성장캠프를 운영한 결과 청소년들과 합숙으로 3주간의 긴 교육을 하며 2번의 주말을 함께 보내는 것이 오히려 교육적인 효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평가되었다. 다음 해부터는 기간을 축소하여 1번의 주말을 함께할 수 있도록 9박 10일로 변경되었다. 그 뒤로도 몇 년간 9박 10일로 진행하다가 주말 동안 발생되는 교육 효과성 저하, 캠프에서의 가출 위험 등 다양한 문제들을 겪은 뒤 장애 청소년의 교육도 비장애 청소년과 동일한 교육 기간으로 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인지적으로 취약하니 반복 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교육 기간이 길었던 것인데 캠프 기간 내에서의 반복보다 횟수의 반복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해서였다. 2015년부터는 평화교육센터의 성장캠프도 4박 5일 40시간의 교육으로 구성되어 안정적인 체계를 갖추었다. 아래상자에는 박주현이 직접 적어준 평화교육센터 프로그램의 흐름과 실제 경험이 들어있다.


청소년들은 1차 교육으로 40시간의 청소년성장캠프를 수료한 후 3개월 이후 ‘희망키움과정’이라는 20시간의 심화교육을 수료하게 된다. 이를 통해 탈성매매를 점검하고 재유입 예방을 위한 사회화 훈련을 진행한다. 이후 두 과정을 모두 마친 청소년들을 위해 일상 생활 유지와 자가점검을 위한 지지모임 등의 과정이 있다. 청소년 성장캠프는 심리검사, 심리치유, 의료지원, 법률지원, 진로지원, 관계형성, 성주체성 확립, 성매매피해 예방교육 등의 분야들로 이루어졌다.

 

캠프 첫날은 전국 각지에서 처음 보는 청소년들과의 만남이라 모두 긴장하고 경계하는 상태로 서로 기싸움도 하고 눈치도 보며 어색함이 흐른다. 캠프 운영자의 입장에서는 참여 청소년 전원 이탈 없이 교육 수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합숙이 시작되는 첫 날 ‘즐겁고 있을 만한 곳이구나’를 느낄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이를테면 교육에 참여하면 제공되는 다양한 생활용품을 교육 참여의 동기화를 위해 ‘감사합니다’라는 프로그램으로 기획하여 전달하였다. ‘감사합니다’라는 프로그램은 오늘 하루 자신이 가장 감사한 점을 음악에 맞춰 발표하고 발표한 청소년에게는 다양한 생활용품을 선물로 증정하였다. 다양한 선물 받는 것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은 합숙 첫날밤 이렇게 매일매일 선물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하루 종일 받는 교육이 지치고 힘들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다음날은 하룻밤을 보낸 사이라 경계도 풀어지고 취향이 맞는 청소년들끼리 친해지기도 하여 ‘우리’라는 집단의식이 생겨 조금 끈끈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좋은 분위기가 지속될까 싶다가도 예민한 순간도 많아서 서로 오해와 갈등, 싸움이 매회기마다 빠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셋째날은 갈등의 최절정일 때도 있는데 마지막 밤은 모두가 다시 각자의 현실로 돌아갈 생각에 아쉬움을 토로한다. 수료식을 하는 마지막 날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건 숙박의 기관과 상관이 없었다.


 

성매매에 대한 인식이나 그동안의 모든 상처와 조건만남 등 위험에 노출되는 행동이 한 번의 교육으로 수정될 순 없지만, 참여했던 청소년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강사나 자원활동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좋은 어른’에 대한 경험을 했던 것은 분명히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 지적장애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성매매

“입싸는 얼마구요, 얼싸는 얼마예요. 2:1은 가격 더블로 받아요. 대실해서 2시간 하는 사람이랑 저녁부터 밤 같이 보내는 사람이랑은 가격이 달라지구요” “모텔값 없다고 해서 저희 집으로 가서 했어요” “만나서 저를 공중 화장실로 데려가서 옷 벗겼어요” “성관계하고 돈 주기로 했는데 현금 없다고 나중에 주겠다고 하면서 모텔에서 먼저 나가더니 연락이 안돼요.”

박주현은 청소년들과 나이 차이도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 청소년 성장캠프를 시작한 첫해 합숙을 하면서 청소년들이 어떠한 경험을 했는지 들었을 때, 굉장히 취약하고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온라인이나 채팅 어플을 통한 가해 남성과의 대화부터 성매매 피해에 노출되는 일련의 과정 또한 그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박주현은 평화교육센터를 통해 청소년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왜 조건만남을 할까? 채팅을 안 하면 안되나?” 청소년 개인행동에 초점을 맞췄었던 것 같다고 한다. 이러한 자신의 시각이 다양한 경로로 오랜 기간 성착취 과정에 노출된 청소년들과의 상담을 통해 점차 청소년에 대한 ‘성매매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으로 변화함을 느꼈다.

“성매매를 ‘성을 사고판다’라는 거래의 의미로만 알았다면, 성은 사고팔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특히 청소년 성매매는 인지적·신체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는 청소년들을 이용한 성착취 범죄라고 규정해야 해요. 성매매에 있어 공정성은 존재하지 않아요.”

성매매는 성인이든 청소년이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자신에게 안전하고 유리한 판단과 선택을 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찾아온다. 청소년성매매를 하는 남성들은 청소년에게 친절하고 따뜻하고 즐거운 것을 제공하는 모습이지만 성적인 착취를 목적으로 찾아온다. 가해자들은 주로 성인이거나 집단적인 또래일 때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성매매/성착취의 공통점은 남성들의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청소년/여성이 이용되는 것에 허용적인 남성중심적인 문화에 있다. 성착취 피해 청소년을 유인하는 알선자, 어플 운영자, 구매자들에 의해 이러한 세계관이 발전하고 성착취 구조는 공고해진다.

“피해 청소년들이 원하는 것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아요. 대인관계의 어려움으로 소외당한 경험들이 있다보니 잘 대해주고 다정하게 다독여주는 관계를 원해요. 그런 관계를 안전하게 할 수 있는 활동가랑 한강 공원 가서 라면을 먹거나 예쁜 카페 가서 커피 마시며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을 원해요.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지만 꿈에 그리는 거예요.”

– 청소년들에게 청소년 성장캠프는 어떤 의미일까?

한 번 캠프를 수료한 청소년 혹은 이미 모든 과정을 마치고 지원받을 수 있는 나이가 훨씬 지난 청소년들에게서도 “선생님 캠프 또 언제 해요?”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듣는다고 한다.

“제가 하는 활동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건, 사각지대에 있는 청소년들을 발견하고 이들이 우리를 만나면서 성피해에 노출됐던 경험을 새롭게 다루면서 사회적 안전망으로 들어오게 되는구나. 비단 서울 지역뿐 아니라 전국 각 지역에 있는 청소년들도 직접 가서 만나서 성인지 감수성 교육이나 치료 지원, 혹은 사회적응능력을 강화하고 삶에 도움이 되는 부분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해요.”

“전국적으로 청소년들을 만나러 가다보니 체력적으로 지치기도 했지만,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청소년들이 인풋 대비 아웃풋이 바로 나오는 것은 아니어서 회의감이 찾아올 때도 간혹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긍정적으로 변하는 청소년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을 때, 너무 감사하구나, 이렇게 아이들이 성장하고 있구나, 우리가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청소년성장캠프는 성매매에 노출된 청소년들이 사각지대 속에서 안전한 사회안전망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하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센터에서 아청센터로의 전환

2020년 드러난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 대한 대응 활동과 아청법개정운동을 통해 같은 해 5월 아동청소년성보호법이 개정되면서 대상 아동·청소년 조항이 삭제되었다. 이를 근거로 성착취의 대상이 된 아동·청소년을 피해자로 인정할 수 있게 되었고 이들에 대한 보호와 통합 지원체계가 마련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12년간 지속되었던 교육센터 사업은 종료되었고 2021년부터 성매매 피해아동‧청소년지원센터(이하 아청센터)라는 사업으로 전환되었다. 평화교육센터 역시 성매매 피해아동‧청소년지원센터 띠앗(이하 아청센터띠앗)으로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였다.

2020년 5월 아청법이 개정된 후 통합지원센터 설치 근거에 따라 전국의 위기청소년교육센터는 2021년에 전국 17개 성매매 피해아동・청소년 지원센터로 새롭게 전환되었다. ‘띠앗’은 그 중 유일하게 지적장애 및 인지적 능력이 한정된 청소년을 지원하는 특성화센터로 만 24세 이하의 청소년들의 통합지원(긴급구조, 상담, 의료, 법률, 사회화, 자립․자활 지원)을 하고 있다.

“아청법 개정 이후, 지원센터는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기존 교육센터보다 통합적으로 1:1 밀착지원을 하고 있어요. 특히 우리 특성화센터는 인지적 능력이 한정된 아동·청소년들이 탈성매매를 할 수 있도록 눈높이에 맞는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진행하고 있고요. 아직까지 지적장애, 경계선 아동‧청소년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안내서들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연간 회기와 수료 인원 등의 실적을 요하는 합숙 교육 형태는 사라졌지만 아청센터띠앗 역시 평화교육센터와 마찬가지로 성인지 교육, 진로‧직업 교육, 사회화 훈련 등 필요한 집단 교육들을 병행한다. 더불어 평화교육센터 시기에는 할 수 없었던 통합적인 사례지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2020년 평화교육센터 사업 종료와 동시에 사례지원을 종결하였던 청소년들 중 아청센터 지원 나이에 해당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아청센터 전환을 알리고 의사 확인 후 초기상담을 통해 현재까지 지속적이고 통합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 청소년과의 긴 호흡은 어디에서 나왔나?

‘성매매’와 ‘지적장애’라는 그 당시 익숙하지도 또 편하지도 않았던 분야 속에서 박주현이 15년이라는 긴 시간을 변함없이 한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어디에서 비롯된 힘일까?

박주현은 먼저 긴 호흡을 함께 한 좋은 동료와의 만남을 손꼽았다. 교육센터는 2인 구조의 체계라 업무를 함께 하는 활동가와의 갈등이 있다면 그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었을 것이다. 평화교육센터 12년을 이끄는 동안 동료 활동가들은 3번 바뀌었다. 활동가와 함께 숙박하고 생활과 교육을 하고 출장 가고 지원을 하는 모든 과정 속에 배려와 존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파트너쉽이 오랜 시간 일을 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다음으로 조직의 특성도 원동력이었다고 한다. 박주현에게 평화의샘 공동체는 배움과 성장, 그리고 사람을 중요시 여기는 곳이다. 사람을 세우고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는 곳,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면 반영되는 곳이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오랜 기간 같은 조직 내 같은 업무, 같은 위치에 있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고, 지적으로 취약한 청소년들과의 반복적인 의사소통이나 밀착지원 구조로 인해 소진이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런 박주현에게 정신적, 신체적, 심리적 돌봄은 필수적이라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에너지가 높은 그는 세계여행을 통해 가보지 않은 곳을 탐험하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소통과 스포츠 활동을 통해 에너지 충전을 한다. 에너지 넘치는 청소년을 만나는 활동은 강인한 체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를 위해 박주현은 아침 운동으로 힘을 얻고 기분전환이나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견딜 수 있었다.

2021년부터 아청센터띠앗은 ‘형제, 자매간 우애로운 사이’라는 의미를 지닌 순우리말 ‘띠앗’이라는 이름으로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다. 활동가와 청소년 간의 우애로운 사이를 기대하며 만든 별칭이라고 한다. 박주현을 비롯한 4명의 활동가들은 아청센터띠앗을 만나는 모든 청소년들과의 우애로운 사이를 희망하며, 모든 아동 ‧청소년의 성착취 피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한걸음 나아간다.

 

 

 

<땡글이가 인터뷰하고, 금잔디가 정리함>

[평화의샘공동체 25주년 새로쓰기 인터뷰] “평화의샘심리상담센터의 흥망성쇠?! 그래도 연대는 계속된다"

4탄. 신경숙 전 평화의샘심리상담센터장

 

“평화의샘심리상담센터의 흥망성쇠?!

그래도 연대는 계속된다"

 

평화의샘공동체 25년 역사는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게 된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에 대해 다시 질문하면서 다양한 생존자들과 함께해온 과정이다. 평화의샘은 한국사회의 모든 변곡점에 여성/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있음을 보면서 활동가와 생존자로서 깨어나고 성장해왔다. 2023년, 평화의샘 공동체 25년을 맞이해서 다양한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평화의샘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활동을 했으며 활동가들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편집자주]

 

평화의샘공동체(이하 평화의샘)는 폭력피해로 고통받는 여성들에게 심적 안정과 치유를 경험하게 하고 싶다는 윤순녀 대표로부터 시작되었다. 생존자들의 심적 안정과 치유를 위해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초기부터 역량 있는 심리상담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의 초기 활동을 기반으로 피해생존자의 트라우마 치유에 더 전문적으로 집중하고자, 2009년 평화의샘심리상담센터(이하 상담센터)를 개소하였다. 비록 법인 운영상의 문제로 2021년부로 사업은 종료되었지만, 여전히 성인지감수성이 높은 오랜 경력의 심리상담사들이 평화의샘과 함께 하고 있다. 그중 상담센터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였던 신경숙 전 평화의샘심리상담센터장(이하 신경숙)을 만나 평화의샘에서 상담센터가 가진 의미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여성폭력의 현실을 마주하고, ‘평화의샘을 만나다

 

신경숙은 본인의 삶을 평화의샘을 만난 2000년 이전과 이후의 삶으로 나누었다.

 

“2000년 이전의 삶. 뭐랄까 그냥 평범하게 여성의 역할, 사회에서 주는 여성이 하는 역할, 결혼해서 아이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고 ‘직장생활하는 여성은 극성맞고 암탉이 울면 집안 망한다.’ 이런 말들이 비일비재했었고. 그런 와중에 거기서 순응하며 살기는 했지만 감히 그걸 뛰어넘을 용기가 없었고, 주변에 지지세력이 없었고, 삶에서 뭔가 불편하고 억울하고 한이 맺히고 우울감에 시달렸었거든요? ”

 

신경숙은 결혼 후 여성을 속박하는 불합리한 가부장적 시스템 안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져 ‘이게 내 삶이 아닌데’라는 우울감과 혼란을 느껴 힘겨운 시기를 보냈다. 우울감이 지속되던 상태에서 성당을 다니며 마음을 돌보던 중 본당 수녀의 권유로 보건복지부와 천주교장상연합회에서 주관한 ‘제1기 가정폭력 전문상담원 교육과정’을 참여하게 된다. 세달 정도 교육을 받으며 가정폭력, 아동폭력, 성폭력, 학대에 대한 불합리한 사회적 병폐와 어둡고 다양한 문제들을 직면하게 되었고, 본인이 이제껏 알고 경험했던 삶의 틀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고통받고 치열하게 생존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들을 알고 난 후 그냥 내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과 뭔가 ‘해야 된다는, 해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교육받는 동안 계속 마음속에서 올라왔어요. 피하고 싶지 않고 맞서 싸우고 싶은 에너지가 분출했던 것 같아요. 이걸, 이 사람들을 만나니까 결은 다르지만 나도 그 고통 속에 있었던 사람이라는 게 더 부연이 되었던 것 같아. 그래서 열정적으로 사회악이나 불합리함에 맞서겠다 하는 게 그런 사람들을 만나니까 힘이 생겼던 거죠. 뛰어들게 되는 거 같아. 삶에 대한 희망? 뭔가 할 일이 생긴 거잖아요. 주어지니까 일상에 대한 활력이 생기더라고요.”

 

교육 마지막 강의가 끝난 후 바로 윤순녀 대표가 나와 평화의샘과 ‘제2기 성교육 전문강사 양성교육’을 소개하였고, 평화의샘과 신경숙의 첫 만남이 되었다. 교육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성문화에 관한 이야기, 성폭력 실태와 대책, 성교육의 필요성과 상담원의 자세 등의 강의를 들으며 ‘난 이제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나를 비롯한 여성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대처하면서 아픔을 함께 치유하겠다.’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교육이 끝난 후, 성폭력에 명확히 초점을 맞춘 평화의샘 활동에 끌려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게 된다.

 

 

자원활동가부터 시작해 심리상담센터장으로 성장하게 되다

 

신경숙은 2000년 10월~11월에 성교육 전문강사 양성교육을 마치고 평화의샘에서 전화상담 자원봉사, 학교와 부모 대상 성교육강사활동을 시작했다. 활동할수록 스스로 더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느껴 배움에 대한 갈망이 커졌다. 이후 2001년 4월~6월에 평화의 샘에서 제4기 성폭력 상담원 교육과 같은 해 8월 저소득층 성폭력피해 어린이 놀이, 미술치료를 위한 방문상담원 교육을 받은 후 성폭력 상담사로 활동영역을 확대하게 되었다. 활동을 확대하게 된만큼 전문심리상담사의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강한 의지로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상담심리사자격을 갖추기 위해선 많은 수련과 자기 성장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나서 내 한계를 마주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내 나이가 40대 후반이고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에 부담이 컸고 자격을 갖춘 상담심리사가 된다는 것은 너무 아득하고 이룰 수 없을 것 같아 망설이고 고민을 많이 했었죠. 그래도 일단 시작이 반이라고 너무 멀리 생각하고 계획 하지 말고 지금 당장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을 시작했어요.”

 

이후 상담심리사 2급 자격을 취득한 신경숙은 어엿한 심리상담사로서 피해생존자 심리상담활동을 천주교성폭력상담소에서 재개하였고 적극적으로 하게 된다.

2008년도 천주교성폭력상담소에서는 피해자 지원에 있어서 심리상담만이 필요한 영역이 아니라 그밖에 법률, 의료, 기관간 연계 등 통합적인 체계 아래서 피해자를 지원해야한다는 문제가 대두되었고 전환의 시기를 갖게 된다. 이에  2009년 3월 천주교성폭력상담소에서는 통합적 지원을 하는 상담소와 전문심리상담을 하는 심리상담센터로 분업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심리상담사들의 인원 감축과 업무조정 등 현실적 문제들이 대두되었고, 성폭력상담원 교육을 받은 역량 있는 심리상담사들과 함께 전문심리상담센터를 구성하게 되었다. 당시 상담소의 박가람, 김미순은 신경숙에게 상담센터의 센터장을 맡아 줄 것을 제안하였다.

 

“박가람, 김미순샘이 센터를 개소하는데 자원활동 차원에서 센터장으로 활동해 줄 것을 제안했을 때, 저는 “평화의샘이 나를 필요하다고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난 무조건 무조건 하고 싶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거면 열심히 하고 싶다. 하지만 내 역량이 그럴 수 있는지 걱정되어 망설여지는 부분도 있다”고 했더니 박가람, 김미순 선생님이 옆에서 도와주겠다고. 혼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고.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말에 용기를 내하겠다고 했지요.“

 

여성이 주체적으로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도록, 함께하는 심리상담센터

 

평화의샘심리상담센터는 “성폭력 피해 여성의 심리적 치유와 회복”이라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목표를 위해 10년간 활동해 온 특성화된 상담센터였다. 그에 따라 상담심리학을 전공하고 여성주의 관점으로 상담하는 전문가 자격을 갖춘 임상경험이 많은 상담심리사들이 활동을 하였다. 신경숙은 평화의샘을 방문하는 여성들이 ‘스스로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평등을 추구하는 여성으로서, 모든 사회 현상과 문제를 직시하고 고민하며 주체적으로 함께 아픔을 치유할 수 있길’ 바랐고 상담센터가 그 계기가 되길 원했다. 그래서 상담센터에서 활동하는 상담심리사들과 함께 꾸준히 스터디와 수퍼비전 등 모임을 통해 역량을 강화하였다.

 

그래서 평화의샘 심리상담센터는 여타 심리상담센터에서 광범위한 주제와 다양한 어려움을 다루는 것과 다르게, ‘성폭력 피해여성’이 피해로 인한 후유증에 집중해 전문적으로 심리지원을 받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였고, 상담사-피해생존자 간 뿐만 아니라 상담사들 간의 깊은 연대를 바탕으로 구성원 변화 없이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담센터의 활동은 천주교성폭력상담소의 안정적인 피해생존자지원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외에도 상담센터 초기 심리상담사 인턴을 양성하여, 인턴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평화의샘에서 함께 활동하는 심리상담사들이 있다. 그밖에도 다양한 기업이나 기관들과 MOU를 맺으며(동작아이존, 성가정입양원, 연대가습기살균제 보건센터, 기업EAP* 등) 연대활동을 지속했다.

*기업EAP: 기업 내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직원에게 전문가 상담을 제공하는 자율복지제도

 

이에 더해 상담센터가 가진 피해생존자 상담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센터의 인지도를 높이면서 수익도 창출할 수 있는 기관으로 발돋움하여 평화의샘 공동체의 외연 확장에 기여할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2015년 평화의샘 공동체가 ‘사단법인 평화의샘’이 되면서 비영리법인의 부설기관 중 하나인 상담센터의 활동은 수익사업에 대한 제약이 생겼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차별과 폭력으로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심리상담이라 할 지라도 상담자들의 역량 유지 및 정당한 처우는 필수불가결하다. 그러나 공익법인의 특성상 공익을 위한 지원사업 외 수익이 창출되는 상담은 지원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오랜 숙고끝에 상담센터는 사업을 종료하게 된다. 신경숙뿐 아니라 평화의샘의 오랜 활동가들은 성인지 감수성과 우수한 전문상담 역량을 가진 심리상담사와 역사를 보유한 상담센터가 사업을 종료하게 된 것에 크나큰 아쉬움을 가졌다.

 

 

평화의샘 심리상담사들의 연대는 계속된다

 

그럼에도 신경숙은 평화의샘 심리상담센터장이라는 역할을 통해 스스로 변화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활동하기 전 그러니까 2000년 전의 나는 왜곡되고 강박적 사고, 편협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 심리적, 정서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지금은 삶에 대한 태도에 유연함을 가질 수 있고 어떤 틀에 갇힌 가치관을 지향하진 않아요.

상담 공부를 하다 보니 저도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자라면서 피해가 많았고 상처 입은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사실 심리학 공부와 상담심리사 수련 과정은 불안정한 저를 치유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또 저를 치유하는 과정이나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활동이 다른 길이 아니라 모두 한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면서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고 그게 저를 성장시키고 성숙한 사람을 지향할 수 있게 한 원동력으로 지금의 나를 여기 이렇게 있게 했어요.”

 

신경숙을 비롯해 상담센터에서 활동하던 심리상담사들은 여전히 평화의샘 공동체 안에서 활동을 계속 이어가며 평화의샘을 찾아오는 다양한 피해생존자들을 만나고 있다. 상담하기에 좀 더 원활한 시스템을 갖춘 곳으로 갈 수 있었음에도 평화의샘과의 끈을 놓지 않고 지속적으로 활동을 하는 것은 평화의샘에 대한 깊은 신뢰와 피해생존자들에 대한 연대의식 바탕이었다고 본다.

 

“비록 센터는 없어졌지만 지금 여기서 상담하고 있는 선생님들까지는 그런 연대가 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한테 (평화의샘은) 큰 의미여서 하나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2000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것 같아요, 새로운 길,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것 같아요.”

 

끝으로, 한해에 여러 피해생존자들이 평화의샘을 방문해 심리상담을 한다. “평화의샘이 인생의 전환점이자 새로운 세계였다”는 신경숙의 말처럼 이곳을 찾아오는 피해생존자들 또한 신경숙과 같이 새로운 경험을 한다면 살짝 귀띔 해주시길 바란다. 상상만 해도 두근거리는 일이다.

 

 

<따오기 · 가온 · 숨su:m 이 인터뷰하고, 땡글이가 정리함>

 

[공원 여성살해 사건 피해자 추모 및 여성폭력 방치 국가 규탄 긴급행동] 성평등해야 안전하다

[공원 여성살해 사건 피해자 추모 및 여성폭력 방치 국가 규탄 긴급행동] 

성평등해야 안전하다

○ 일시 : 2023년 8월 24일(목) 오전 10시~12시

○ 집결 장소: 관악구민방위교육장 앞 (서울 관악구 문성로16다길 135)

○ 순서

10:00-10:10 모두 발언, 이동안내, 출발
10:10-10:30 이동 및 추모의 시간 : 공원 입구 > 사건 발생 장소, 묵념 후 출발
10:30-11:50 행진 (사건 발생 장소 > 신림역 2번 출구 타임스트림 앞)
11:50-12:10 정리집회 발언 (1분 이내, 사전 신청 3-6명), 마무리 및 해산

○ 공동주최 : 90개 여성·인권시민사회단체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가족과성건강아동청소년상담소,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강릉여성의전화, 강북여성주의 문, 강화여성의전화, 공폐단단 : 친족성폭력을 말하고 공소시효폐지를 외치는 단단한 사람들의 모임, 관악공동행동, 관악여성회, 광명여성의전화, 광주여성의전화,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군산여성의전화, 군인권센터 부설 군성폭력상담소, 기독교반성폭력센터, 기본소득당 여성위원회 베이직페미, 김포여성의전화, 김해여성의전화, 꿈누리장애인성폭력상담소, 녹색당, 대구여성의전화, 대전여성단체연합, 목포여성의전화, 백래시공동대책위원회 팀 해일, 복면증언, 부산여성의전화, 부천여성의전화, 서울YWCA, 서울강서양천여성의전화, 서울동북여성민우회, 서울여성회 지부 동서울여성회, 서울여성회 지부 서대문여성회(준),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 서울여성회지부 영등포여성회, 성남여성의전화,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성착취피해아동청소년지원센터 특성화센터, 수원여성의전화, 시흥여성의전화, 안양여성의전화, 언니네트워크, 여성인권실현을위한전국가정폭력상담소연대, 영광여성의전화, 울산여성의전화, 울산여성회, 은평여성회(준), 이레성폭력상담소, 익산여성의전화, 인권운동사랑방, 인천여성연대, 인천여성회,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위한 정의기억연대, 장애여성공감, 전국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여성위원회,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기지부 여성위원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여성위원회,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전국여성연대, 전국이주여성상담소협의회, 전주여성의전화,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중앙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녹지, 중앙대학교 페미니스트 연합 FOF, 진보당 여성-엄마당, 진보당 인권위원회, 진해여성의전화,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창원여성의전화, 천안여성의전화,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천주교인권위원회, 청주여성의전화, 출판사 여성주의, 탁틴내일,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평화의샘, 포항여성회, 한국YWCA연합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인권플러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젠더연구소, 화로, PI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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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8일 신림동 공원에서 한 여성이 출근길에 살해 당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인하대 성폭력 사건, 신당역 스토킹 사건, 금천구 데이트폭력 사건 등에 이어 이번 사건까지, 여성들이 직장 안에서도, 집 앞에서도, 동네 공원에서도 끝내 죽음을 피하지 못한 사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정부의 기조 하에 최소한에 불과했던 성평등 정책은 지속적으로 축소되어왔으며, 국민을 지켜야 했을 국가는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묵살하고, 관련 정책을 축소‧폐지하거나 엉뚱한 대책을 내놓는 행태 끝에 결국 또 다른 죽음을 막지 못한 것입니다. 한편 연이은 흉기난동 및 살인사건에 대한 대책으로 도심 곳곳에 장갑차와 경찰 특공대를 배치하고, 불심검문을 하는 등 ‘특별 치안 활동’이라는 이름의 기행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여성폭력 피해자에게 애도를 표하며 우리 사회에 촉구하고자,  ‘각자 조심해서’, ‘운이 좋아서’ 살아남는 사회가 아닌, 누구나 ‘평등해서’ 신뢰하고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오늘 8월 24일 목요일 10시부터 12시까지 피해자가 희생된 신림 일대를 행진하는 정부 규탄 집회를 열었습니다. 91개 여성·인권시민사회단체가 모였고 상담소도 참석하여 피해자를 추모하고, 두려워하는 여성들과 강하게 연대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발언하였습니다.

아래 발언문 전문입니다.

 


<발언문  전문>

 

◆ 발언.  한선희 (천주교성폭력상담소)

매 순간 최선의 삶을 사셨을 피해자의 안타까운 죽음에 애도를 표합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위험한 순간에 도움을 청하는 용기를 가졌으며, 직장과 집을 오가며 소소한 행복이 있는 일상을 사셨을 평범한 한 여성이 바로 그 일상의 한 부분이었던 장소에서 폭력과 살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평등하고 존중받는 사회가 되길, 폭력없이 안전한 세상이 되길 바랐던 우리의 삶은 분노와 불안, 그리고 무력감으로 참담할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두렵다고, 이제는 혼자 다니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더 많은 여성이, 더 크고, 더 많은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길에서, 공원에서, 대중교통에서, 학교와 직장에서 폭력에 반대하고, 평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넘쳐나길 바랍니다. 차별과 불평등을 용인하는 사회구조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우리의 외침이 계속 되길 바랍니다. 여성가족부가 성평등 전담부처로 기능할 수 있도록 이 정부에 지치지 않고 요구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모두가 안전하고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폭력이나 살해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때까지 우리 모두 서로의 위로가 되고, 지지가 되어, 다른 그 누구로부터도 제약이나 배제당하지 않고, 온 세상에 여성의 목소리가 넘쳐나도록 함께 나아가길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들의 연대가 우리가 가진 힘이고, 자원입니다. 그 어떤 누구도 혼자이지 않도록 끝까지 함께 싸워나갑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폭력, 죽음의 대상이 되지 않는 평등한 세상을 위해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동지가 됩시다.

용감하게 차별과 폭력에 맞섰던 피해자가 평안한 안식을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발언. 이은지 (개인참여자)

안녕하십니까. 저는 안전한 일상을 바라는 한 명의 시민입니다. 제게는 신림동에 사는 친한 동생이 있습니다. 매일 출퇴근을 하는 동생은 얼마 전 출근 준비를 마치고도 두려운 마음에 15분 동안 집을 나서지 못했다고 합니다. 불편함을 무릅쓰고 출퇴근 동선을 바꿨지만, 여전히 외출하기 불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런 동생에게 저는 괜찮을 거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이번과 같은 일이 동생에게, 혹은 저에게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없었으니까요. 그저 나도 무섭다, 조심해야겠다, 이런 답답하고 무력한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대화가, 이런 감정이 낯설지 않습니다. 수많은 여성 폭력, 살해 사건들이 우리 사회에서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을 보아왔으니까요. 이미 공포와 불안은 여성의 일상에 스며들어 우리는 밤길이나 외진 곳은 피하고 서로에게 조심히 들어가라고 인사합니다. 하지만 밤에도 낮에도, 공원 산책로, 출근길, 화장실, 집 앞까지. 점점 갈 수 있는 곳과 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들기만 합니다. 이것이 과연 개인이 노력한다고 피할 수 있는 일입니까? 개인의 문제에 불과한 것입니까?

여성에 대한 폭력은 사회와 구조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국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책임지고 나설 것을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모든 여성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일상을 누릴 수 있는 그날까지 우리는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발언. 박정원 (개인참여자)

안녕하세요. 저는 공원성폭력대응 긴급행동 집회에 발언으로 연대하게 된 평범한 서울 시민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청년 여성이고, 낮 시간대에 출근길을 나서는 노동자입니다. 지난 8월 18일, 저와 같은 평범한 서울 시민인 여성이 바로 이 곳 신림동에서 낮 시간대에 출근길을 나서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국가에서 너무도 자주 일어나 특정 사건을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여성에 대한 성폭력과 살인이, 2023년 지금 또 다시 반복되었습니다.

지금 여기 모인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평범한 여성인 우리는, 이 사건이, 그리고 이전에 수없이 일어난 또다른 성폭력 살인 사건들이 단순히 개별적인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제도 속에,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는 이 사회에서, 그 어떤 여성이든 당할 수 있고, 당해 왔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일들이 결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사건들을 막아야 했던 시점에 작동해야 했던 제도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성에게는 국가가 부재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기 모인 우리가 증인이 되겠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적법한 처벌이 이루어지도록, 당신이 마지막까지 내었던 용기가 훼손되지 않도록, 우리가 지켜보고 외치겠습니다. 단 한명의 여성도 잃지 않는 국가가 될때까지, 우리가 이 세상의 증인이 되겠습니다.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 발언. 박명희 (관악여성회)

안녕하세요 관악여성회 대표 박명희입니다. 

먼저 피해자에 대한 애도를 표합니다.

관악구에서 충격적인 칼부림 사건이 이어 지난 17일 대낮 공원 등산길 산책로에서 성폭행을 당한 30대 여성이 19일 끝내 사망하였습니다. 관악구 주민으로서,여성으로서, 생명이 위협받고 불안은 극도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최인호 국민의힘 관악구의원이 ‘여성안심귀갓길’ 사업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이 알려지면서 최인호 관악구의원 사퇴요구가 하루만에 700건이 남게 관악구청으로 쏟아졌습니다.

정경순 관악구 여성가족과장은 안심골목길이라는 도시재생사업은 지역 전반에 대한 것이지만 여성안심귀갓길 사업은 경찰서와 협업해서 범죄 피해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지역을 선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여성안심귀갓길 사업이 여성만을 위한 사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최인호 관악구의원은 여성안심귀갓길의 경우 남성들이 지원을 받을 수 없으니 포괄적인 단위의 사업을 하는 게 맞지 않나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최인호 관악구의원은 지난해 9월 16일 관악구의회 본회의에서 “양성평등위원회, 관악여성회 등 여성단체의 생태계 조성, 수백억 원대 성인지예산, 여성가족과를 주축으로 한 성파지즘 사업 등이 우리 관악구의 성 위기를 초래하는 데 일조했다” 며 “여성가족부 폐지를 추진하는 정부에 앞서 우리 관악구에서부터 여성가족과를 폐지하고 성평화가족과를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최인호 관악구의원은 여성이라는 단어가 붙은 모든 예산과 정책을 다 공격하고 지우며, 여성혐오에 기반한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이미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시절 여성가족부폐지를 공약으로 걸고 대통령이 되었으며, 지난 1년간 끊임업시 여성가족부 폐지주장과 여성정책의 퇴행을 거듭해왔습니다.

여성가족부는 현존하고 있으나 누더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강력범죄에 불안한 국민들, 안전의 위협에 시달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여성폭력을 방치하는 국가와 정부를 강력히 규탄합니다. 또한 성평등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여성혐오정치를 하는 최인호 관악구의원은 사퇴하라!

관악구는 여성안심귀갓길 예산을 포함해 안전예산을 강화하고 구민과 여성안전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

윤석열 대통령은 여성가족부 장관 교체하고 성평등전담부처 강화하라!

 

◆ 발언. 하윤 (공폐단단) 

안녕하세요! 저는 ‘친족성폭력을 말하고 공소시효폐지를 외치는 단단한 사람들의 모임’의 하윤입니다.

오늘도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처음만나면 늘 그랬듯이 안녕이란 인사로 시작합니다.안녕의 사전적 의미는 ‘무탈하고 걱정이없음’ 입니다.걱정이 많은 우리, 추모를 위해 모인 우리는 요즘 안녕하지 못합니다.서울에서 나고 자란 제게 신림은 지역에서 처음 서울로 올라와 살게된 친구들을 만나는 곳으로 익숙했습니다.신림에서 만났었던 다양한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밥이나 술을 먹자며,자기 집에 놀러오라며,대학이 있고 젊음이 있는 곳이라며 신림의 어느 거리에 마주쳤던 수많은 얼굴들.. 서로의 안부를 묻기위해 신림에서 만나서 시간을 보낸 적이 너무 많아서 셀 수 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공원이라는 곳에서 불안감을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공원은 지쳐있던 제게 휴식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공원 성폭력 그리고 사망’으로 이어진 이번 사건이후 신림과 공원은 제게 더이상 안녕하지 못한 곳입니다.

재발 방지 대책과 법정 최고형이 내려지기를!

‘안녕의 안’은 한자로 ‘여성과 집모양’이 있는 한자입니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요?

친족성폭력의 생존자인 제게 집이라는 장소는 안녕하지 못한 곳이었습니다.집안에서도 집밖에서도 살 수가 없습니다.긴 코로나를 끝내가며 하나,둘씩 집안에서 집밖으로 나오는 생활이 시작되고 있습니다.그러나 집안과 집밖 그 어느 곳도 여성과 청년들에게 편안하지 않습니다.  사망한 피해자에게 이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불안과 아픔없는 그곳에서는 안녕히 계시길.

우리는 서로의 안녕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습니다.오늘도 모두의 안녕을 빕니다.

 

◆ 발언. 진성선(장애여성공감)

안녕하세요. 저는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진성선입니다. 

국가와 언론은 시민들의 공포를 조장하며 성폭력의 본질을 왜곡하는 작태를 당장 멈추십시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장갑차도! 경찰특공대도! 불신검문도 아닙니다! 언론은 사건이 발생한 지역의 여성들을 인터뷰하며 ”혼자 다니면 안될 것 같다”는 기사를 내보냅니다. 국가와 언론은 성폭력 사건이 극악한 폭력에 의해서만 발생한다는 통념을 그래서 당신이 조심할 것을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장갑차가 없어서! 혼자여서! 성폭력이 발생하고 부당한 죽음을 겪는건 아닙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며 성평등, 젠더, 여성을 삭제해 온 국가의 기만적인 행태가 수많은 여성들의 죽음을 이렇게 또! 방치한 것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죽음을 감당해야 합니까? 가해자 악마화를 당장 멈추고 국가의 책임을 직시하십시오! 

피해자가 사망한 사건은 출근길 동네 공원에서, 직장, 학교, 지하철 등 우리 일상의 곳곳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문제는 일상의 차별, 혐오, 불평등입니다. 매일 차별과 불평등에 맞서고 있는 장애여성의 몸, 저의 몸이 그 증거입니다. 우리는 매일 지하철에서 차별받고 배제당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취약한 몸, 돌봄의 대상, 범죄에 노출되기 쉬운 대상으로 호명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상의 성평등과 존엄입니다. 구조적 성차별을 인정하지 않고 젠더 폭력을 막을수 없습니다. 국가는 젠더폭력의 구조를 똑바로 보고 누구든 어떤 공간이든 안전하고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성평등 정책으로 당장 만드십시오! 지금까지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워온 것처럼 다양한 소수자들의 권리를 말하고 계속 싸우겠습니다.

 

◆ 발언. 이효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안녕하세요.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활동가 이효진입니다. 지난 수년 동안 여성들은 거리에서, 일상에서, 일터에서 안전할 권리를 외쳤습니다. 그런데 또 여성이 죽었습니다. 여성이라서 죽었습니다. 그간 대체 정치는 무얼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관악구 의회는 작년, 여성 안전을 위한 ‘여성안심귀갓길’ 예산을 삭감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회의록에는 구체적 근거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의원 개인이 가진 여성에 대한 적대심과 문제를 회피하고 싶은 다수의 침묵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 결과 한 개 구의 성평등 정책이 너무나 쉽게 폐기됐습니다. 

그러나 이는 관악구 의회만의 일은 아닙니다. 정치권은 사회의 불평등과 차별을 해소하는 대신 ‘페미니즘 때려잡기’를 사회 위기의 ‘해결책’이랍시고 내놓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기조하에 각 지역의회는 ’여성’이 들어간 사업은 모두 무화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백래시의 광풍 속에서, 안티페미니스트 정치인들은 일부 청년 남성들의 증오를 양분 삼아 세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평등과 공존을 부정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여성이 안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부패한 남성 정치가 여성의 일상을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트릴 수 있는지를 보고 있습니다. 시민의 안전을 내팽개치는 정치, 여성의 고통과 모욕과 멸시를 외면하는 정당과 정치인은 정치할 자격이 없습니다. 

2024년에는 총선이 있습니다. 총선에서 여성시민들의 힘을 보여줍시다. 감사합니다.

 

◆ 발언.  김남영 (진보당 인권위원회)

안녕하세요. 진보당 인권위원장 김남영입니다.

저는 신림역 근처에서 4년째 거주하고 있는 관악구 구민입니다. 칼부림 사건이 있고 며칠 지나지 않아 또다시 피해소식을 접했을 때 그야말로 설명할 수 없는 참담함과 분노를 느꼈습니다. 피해자가 소생하기를 간절히 기도했지만 끝내 사망했다는 소식 앞에서는 눈 앞이 아득해졌습니다.

분노로 가슴이 터질 듯 뜨겁습니다. 잇따르는 테러와 여성살해사건에 정부가 내놓는 대책은 처참하다 못해 눈을 의심하게 됩니다. 가석방없는 무기징역, 흉악범만 모아두는 교도소, 의무경찰 재도입 검토로 여성과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걸까요? 

여성혐오를 방관하다 못해 앞장서 조장하고 이용해온 정부여당이 여성살해의 공범입니다. 페미니즘이 성파시즘이라고, 여성안심귀갓길 예산을 전액 삭감한게 성과라고 말하는 정치인이 있는 한 여성혐오범죄와 살해는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여성혐오에 기생하는 정치, 여성살해를 묵인하는 국가를 바꾸기 위해 끝까지 함께 싸우고 연대해 참담한 현실을 바꿔냈으면 합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던 고인을 잊지 않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평화의샘공동체 25주년 새로쓰기 인터뷰]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날마다 평화를 꿈꾸다

3. 정미애 청소년지원시설 평화의샘 시설장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날마다 평화를 꿈꾸다

 

 

평화의샘 공동체 25년 역사는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게 된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에 대해 다시 질문하면서 다양한 생존자들과 함께해온 과정이다. 평화의샘은 한국사회의 모든 변곡점에 여성/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있음을 보면서 활동가와 생존자로서 깨어나고 성장해왔다. 2023, 평화의샘 공동체 25년을 맞이해서 다양한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평화의샘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활동을 했으며 활동가들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편집자 주]

 

 

2004년 3월 22일, 성매매방지법은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로 제정되었고 같은 해 9월 23일부터 시행되었다. 청소년지원시설 평화의샘(이하 평화의샘)은 그 중 보호법에 근거해 운영되는 생활시설(쉼터)이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여성 청소년들은 다양한 성착취/성매매/성폭력(조건만남, 디지털성범죄, 그루밍성범죄 등)을 경험했다. 이들은 한 가지 사건만을 겪는 것도 아니고 사회/인지/환경/신체적 조건과 인생의 맥락 안에서 만성적인 성착취 대상이 되도록 유도되곤 한다. 이러한 경험을 하는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평화의샘에 대해 정미애 시설장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보았다.

청소년과 함께 여성폭력을 마주하다

 

정미애 시설장(이하 정미애)은 성매매방지법 제정 및 시행 다음 해인 2005년 3월에 평화의샘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컴퓨터/웹 관련 일을 하던 정미애는 지인의 소개로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성교육센터 홍보기획팀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그간 해오던 일을 상담소 업무에 일정 부분 접목할 수 있겠구나 싶은 막연한 생각으로 접근했는데 이때의 정미애는 여성주의나 여성단체에 관심이 있거나 따로 생각해 본 적도 없는 평범한 30대 여성이었다. 활동할수록 성폭력피해상담과 사회복지를 공부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고 그렇게 자격을 갖춘 뒤 청소년지원시설로 이동했다. 상담소에서는 주로 성인들을 만나다가 지원시설에서 청소년을 만나면서 성폭력과 성매매의 차이를 구분하려는 이성적 시선에 앞서 ‘청소년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더 많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활동가와 시설장으로서 18년 동안 활동해왔다.

 

“평화의샘을 만나기 전 저의 이십대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주도적이거나 주체적 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때로는 세상의 많은 시선에 맞춰 갈등하지 않으려고 숨기도 했었고요. 그러다 청소년을 만나면서 사회적 모순과 부당함이 제 눈에 더 띄더라고요. 안타까웠고 그래서 힘을 더 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이제 보호에서 권리로, 피해자로서의 권리와 권리의 정당성을 이야기하고 교육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하려고 해요.”

 

지금은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권리를 행사하게끔 해야 하나, 어떻게 의무를 지키라고 말하나, 늘 질문을 하고 고민을 하는 이 부분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폭력이다/아니다’라고 판단하고 개입하는 정도였지만 자신도 모르는 채 겪었을지 모르는 일상의 폭력을 자각하기 시작했고 불편함도 많아졌다.

 

“폭력이라는 말은 나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성폭력 피해는 다른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내 주위에서는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깊이 알아갈수록 너무 많은 일들이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나는 그걸 배제하고 살았구나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여기서 저는 처음 접했던 것 같아요.”

 

‘돈이 필요하니까 성을 파는 거고 개인 당사자의 문제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지만, 평화의샘에서 활동하면서 성매매 구조를 알게 되고 청소년이 성착취 경험에 노출되기 쉬운 취약한 환경을 만들어내는 우리 사회를 보게 되었다. 개인의 문제로 보기보다 왜 그렇게 개인이 성착취 경험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지 그 흐름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 물론 여전히 평화의샘은 개인 청소년의 삶에 더 집중하는 것을 우선 가치로 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개인에게 원인을 전가하듯이 청소년 일탈과 취약함에 집중하기보다 전체적인 성매매를 용인하는 사회구조가 문제라는 것을 기본적인 의식으로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성폭력피해자 쉼터에서 선도보호시설로, 선도보호시설에서 성매매피해지원시설로

 

1960년대 윤락행위등방지법에 의해 설치된 부녀직업보도시설의 강제입소와 인권침해 문제점이 방화와 죽음으로 드러나면서, 1990년대에는 인권침해문제와 직업재활/자립에 있어서 비효율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부녀직업보도시설에 대해 헌법소원에서 위법이라고 판시되었으며 시설들이 폐쇄되고 1990년대 후반에는 시설입소절차를 개정하여 선도보호시설이 생겼다. 성매매를 할 우려가 있다고 보여도 강제하지 않게 되었으며 본인이 입퇴소를 결정할 수 있게 되었고 성인보다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입소 비율이 늘었다. 한 발 더 나아가 성인과 청소년들을 분리해 청소년에 대한 충분하고 전문적인 지원을 하는 것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며 이것은 2004년 성매매방지법의 피해자 지원체계 안에 통합되었다.

평화의샘은 선도보호시설이라는 체계 안에 있었지만 위에 설명한 부녀직업보도시설의 흐름과는 다른 맥락을 가진다.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안전기지로서 쉼터를 운영하다가 청소년들의 성폭력/성매매/아동기 학대가 혼재하는 복합적인 경험과 상황을 목격했다. 그러면서 이들에 대해 지원하고 함께 지낼 수 있는 체계로서 선도보호시설을 선택했고 성매매방지법 이후에는 성매매피해지원시설로 정체화했다.

 

“폭력피해여성을 지원하는 단체로서 이용시설 말고 생활시설도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거라서 ‘선도’라는 개념이 있지는 않았어요. 피해 유형 상관없이 사람을 중심에 두고 삶에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에 가치를 두었죠. 원가정에서 지내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의식주와 심리·정서적 지원으로 자연스럽게 확장했어요.”

 

평화의샘에는 오래전부터 인지능력에 한계가 있는 청소년들이 시설 내에 많았다. 한계에 부딪히는 경험과 소통의 어려움이 많았고 도움을 받을만한 지원체계도 전무했다. 발달상의 장애가 있는 청소년들이 가출을 하면 성착취 범죄의 대상이 되는 일이 많았다. 실종 신고를 해서 경찰이 사건 현장에서 구조하는 일도 있었고,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 줄 몰라서 각 지방으로 직접 데리러 가는 일도 많았다.

 

“피해를 인지하지 못하는 정도의 취약한 인지능력의 청소년들이 노년 남성에게 막대 아이스크림을 받고 성착취를 경험하는 걸 보면서 전문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장애인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위기교육센터와 협업을 많이 했고요.”

 

평화의샘에는 갈수록 발달장애를 가진 청소년 비중이 늘고 있고 일반 학교 시스템에서는 소화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학습·또래관계·자기역량강화·진로상담·성인지를 바탕으로 한 자기방어능력강화 같은 것들이 그렇다. 다양한 외부 시스템을 찾아서 청소년의 자원으로 삼기 위해 연대하고 만들어내고 있다. 사단법인 평화의샘에서 인지능력에 한계가 있는 청소년을 위한 아동청소년지원센터 띠앗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성착취 뿐만 아니라 청소년의 삶 전체를 조망하며 만난다

 

평화의샘이 만나는 청소년들은 구조적인 폭력피해의 상황에 놓이고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고 그래서 피해자로서 지원을 받는다. 정미애는 이러한 당사자 청소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자체로서 존엄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과 존중받는 경험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들은 방임과 폭력의 형태로 선택의 기로에 놓여왔고 자기 확신 없는 결정과 안전하지 않은 결과를 견뎌왔다. 청소년들이 폭력의 피해에 놓이지 않도록 기성세대로서 안전기지의 역할에 대해 오래 곱씹는다고 한다. 국가와 사회가 충분히 하지 못한 사회적 안전망을 다시금 세우는 역할을 하는 것이 평화의샘의 몫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청소년들이 성착취의 피해자일 수는 있지만 일련의 삶의 과정에서 늘 피해자로 명명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대외적으로 지칭할 일이 있으면 어떤 때는 피해자라고도 하지만 다른 때는 생활인이나 청소년으로 얘기하는 편이에요. 사건과 관련해 특정한 때가 아니면 가능한 한 피해자라는 말은 안 쓰려고 해요.”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성착취를 경험한 여성이 늘 피해자로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성착취 피해가 중요한 트라우마 경험이기는 하지만 한가지 트라우마가 삶을 온통 잠식하지만은 않는다. 피해를 경험한 누구라도 그 피해 이후의 성장 경험을 할 수 있다. 평화의샘 청소년들도 자기 삶을 꾸려가는 한 사람의 주체이자 주인공으로서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생활시설은 성적 피해 관련만 지원하는 게 아니라서 의료/법률/치료회복 프로그램 같은 피해지원 사안에 따라 종결하지 않는다. 학교도 다니고 생활하는 전반에 걸쳐서 24시간의 일상을 함께 지내기 때문에 청소년으로서의 발달과정까지 보다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다보니 사회적인 보장이나 피해자에 대한 지원 시스템 외에도 그 청소년 한 사람의 부모, 공교육, 지지체계를 포함해서 직접 소통하고 일을 추진하기 마련이다. 신뢰 있는 관계 형성을 통해 정서적으로 마음을 읽고 빈틈을 메우고 다지는 것도 주된 일이다. 지자체나 복지체계에서는 지원대상자라는 표현도 하겠지만, 평화의샘이 청소년들을 복지 시혜의 대상자로 명명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평화의샘이 성착취 피해 청소년들과 연대하기

 

N번방 사건 이전에도 가출한 지적장애 청소년이 성인 남성들에게 성폭력을 당했으나 성매매 ‘대상’ 청소년으로 판결이 나면서 십대여성인권센터를 중심으로 성매매/성폭력단체들이 움직인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들의 심각성이 공론화되면서 형법에서는 의제강간 연령이 상향되고 아청법에서는 ‘대상’ 청소년을 삭제하고 모든 성매매의 상대가 된 청소년들을 피해자로 인정하는 개정이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시스템 안에서 성착취는 더욱 만성화되고 은밀해지고 있으며, 일반 대중이나 법조인들의 인식 변화는 더디다고 느낀다.

 

“우리 사회가 거대한 공모 구조이다 보니까 청소년과 성인을 연결하는 채팅 앱을 제제하고 사용을 불편하게 하는 일이 어려워요. 성착취가 산업형에서 디지털로 변모하면서 개인 대 개인의 사적인 문제처럼 인식하는 것도 가장 큰 문제구요. ”

 

성매매 방지법이 2004년도에 만들어지고 현재 20년이 지나가면서 성산업 구조나 청소년 성착취 방식 등 모든 현상들이 변화하는 상태에서, 젠더 폭력 유형마다 다른 특성이 있고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데 피해자지원시스템도 예전의 지원체계 그대로 법 개정이 되지 않다 보니 답답함을 느낀다. 한국 사회는 큰 사건이 있을 때만 반짝하고 청소년에 대한 성착취 문제에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한다. 청소년을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여기고 성착취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여가부를 폐지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고 재정 지원의 열악함이 이렇게 심각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청법이 개정됐지만 성매매 된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해서 청소년의 성매매가 곧 성착취라는 인식이 아직도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청소년 성착취 피해는 여러 문제들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현상인데 그 현상을 단편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이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우리 활동에 있어 걸림돌이죠.”

특히 지원시설은 직접 지원과 시설 운영 실무에 치여서 어떤 시스템을 그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펼치기에 역부족이고, 개개인의 특성에 맞춰서 다양한 방식으로 상향지원으로 가는 복지여야 하는데 예산에 대한 불안정은 심화되고 있다는 걸 체감한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복지 재정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의샘은 기본적으로 의식주를 비롯한 생활, 교육, 안전을 도모하는 역할을 한다. 또 워낙 제때에 돌봄 받지 못해서 혹은 착취적인 경험들에서 비롯된 질병이나 신체적/정신적 어려움들을 해결하기 위해 의료지원을 한다. 법률 지원과정에서는 활동가가 어떤 인식을 가지고 조력을 하느냐에 따라 감정·자존감·사건에 대한 해석들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전문적인 조력가에 의한 법률지원이 필요하고 그렇게 진행하고 있다.

개인들은 저마다 다른 정도의 정서적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데, 생활 안에서도 개별마다 정서적 접근이 달라지고 세밀하게 접목시키려 한다. 개별 욕구에 맞는 교육이나 심리상담, 성인지교육, 여행, 자기방어훈련, 자신을 탐색하는 집단 프로그램, 여가 활동들이 그렇다.

 

“평화의샘 청소년들에게는 다정하게 놀아주는 것, 친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대상이 되어주는 것이 가장 채워야 할 부분이고 가장 원하는 것이기도 해서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의료든 법률이든 치료회복이든 피해지원체계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관계형성이 기본이어서 여기에 많은 힘을 쏟고 있어요.”

 

성인이 되어서 바로 독립적인 생활을 하거나 성공적인 자립생활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지는 않다. 그래도 사회화와 관계형성이 잘 될 때 자활에 가까워질 거라고 한다. 스스로 하찮지 않은 존재감을 느끼고, 서로 도움을 받아야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나도 도울 수 있는 존재라는 감각을 가지고 평화의샘을 떠난다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것이다. 청소년이 지지받기 열악한 환경에서 ‘혼자는 아니다’라는 생각이라도 들게끔 하는 데 힘을 쓰고 있다.

한편, 활동가로서 청소년들에게 피해 경험을 들을 때, 그들이 말하는 상황과 장면들이 정미애 개인의 상상 이상일 때 많이 힘들다고 한다. 모욕적이고 무력하게 무차별적으로 당한 것들을 폭력이라 생각하지 못하는 걸 볼 때,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도 크지만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청소년들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예전에는 그 청소년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폭력인지 모르고, 계속 피해를 당하는지도 모르고 당하는 청소년들에게 더 많은 질문을 했다면, 이제는 질문 대신 그 청소년의 마음과 감정을 읽어내고,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교육을 하고,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요. 이 일이 숨겨지거나 피해지는 일이 아니고 성매매 피해도 말할 수 있고 당사자가 당당할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어요.”

피해 정도의 크고 작은 문제로 보기보다, 청소년들이 불쾌한 감각이나 원하는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는 감수성/자기방어 훈련을 위해서 어떤 것이 필요할까가 가장 절실하다고 한다.

 

 

나는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해 이런 상상을 한다

 

관계나 사회 집단에 적응하기 어려운 청소년들에게는 홈스쿨링 하듯이 학업체계가 인정되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고 상상한다고 한다. 작은 사회화 훈련을 할 수 있는 장으로서 생활 시설이면서 대체학력이 인정되는 시스템이다. 또한 다양한 형태의 청소년지원시설이 있어서 저마다 게스트하우스 형식, 학력 인정되는 형식, 자활을 특성화한 형식 등을 특화하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은 여러 경험을 해봐야 하는 시기인데 경제적인 자활 시스템 안에 묶이면 본인의 가능성을 찾기 어려울 수 있고, 자신의 특성과 개성과 재능을 발견할 수 있도록 실컷 놀면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청소년에게는 자활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센터나 하자센터 같은 시스템도 생활시설과 접목해보고, 경제적 자활을 유예할 거라면 기본소득도 필요하다 싶다.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품위 유지와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경제기반을 보장하는 것도 방법이다.

최근 평화의샘은 지원시설로서 지금처럼 생활시설·자활지원센터·상담소 등 성매매방지법이 처음 생길 때처럼 이 형태대로 지속할지, 생활시설이라는 틀을 깨고 주거/일상 지원도 하면서 이용시설로서 새로운 활동으로 전환할지 고민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는 평화의샘 청소년들을 보면서 여전히 생활시설의 보호와 지원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아주 오래전에 생활했던 이들이 올 곳이 있는 것도 의미 있고요. 이번 홈커밍데이 때 오래전에 있었던 전 생활인이 왔는데, 내 흰머리를 보자마자 나를 껴안고 우는 거예요. 너무 놀랐어요. 성매매를 하고 안 하고가 아니라 삶의 태도가 상대를 공감하는 방식으로 변화되고 성장했구나 라는 게 느껴지니까 너무 많이 놀랐어요. 아직은 생활시설로서 충분히 성매매피해 청소년들을 지원하고, 그 청소년들에게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정미애는 지난 18년간 활동가를 채용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정말 하고 싶은 마음 없이 단순히 직업으로 삼기에는 성매매 영역은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현장에서는 성인지 감수성이나 성매매에 대한 관점을 계속 훈련해야 하는데 그 훈련의 과정이 체화되지 않으면 불편해서 오래 있을 수가 없다고 한다.

제일 힘든 것은 생활인 청소년들과 부대끼면서 서로에게 내상을 입히는 자잘한 상처다. ‘지나가는 과정이구나’하고 소화시키고 넘어갈 때도 있지만 컨트롤이 안 될 때는 자신도 모르게 자괴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여기저기 기웃기웃 하지만 그 마음을 가장 알아주는 사람은 동료 활동가들이다. 빨리 마음을 읽어주고 얘기를 풀어내면서 괜찮아지고 힘이 생긴다. 돌봄노동의 가치에 대한 건강한 인정과 투자는 활동가 사이에서 먼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몸을 움직이는 여러 활동, 수영·등산·요가를 하면서 생각을 멈추는 작업을 좀 많이 해요. 끊어내는 작업, 비우는 작업. 우리가 하는 일에서는 당장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그럴 때는 그냥 비워야 다시 세울 수 있어요. 정말 출근하기 어려운 날에는 동료 활동가들이 이해해줄 때가 있어요. 서로에게 그런 유연성은 좀 발휘되어야 오래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정미애는 성착취가 단기간에 근절되거나 청소년 치유와 자립이 마음먹은 대로 금세 이루어지는 게 아니기에 비우고 내려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러다 보면 조그만 변화를 보아도 가능성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고 한다.

하찮아 보이지만 작디작은 일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것,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재하고 살아가는 것을 긍정하는 것, 이것이 생활시설의 의미이지 않을까.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날마다 작은 평화를 꿈꾸고 만들어내는 것이 평화롭지 않은 폭폭한 세상에서 우리가 승리하는 방법이라고 믿고 싶다.

 

 

<마녹 · 봄봄 · su:m 이 인터뷰하고, su:m이 정리함>

공원 여성살해 사건 피해자 추모 및 여성폭력 방치국가 규탄 긴급행동

8월 18일 공원에서 한 여성이 출근길에 살해 당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인하대 성폭력 사건, 신당역 스토킹 사건, 금천구 데이트폭력 사건 등에 이어 이번 사건까지, 여성들이 직장 안에서도, 집 앞에서도, 동네 공원에서도 끝내 죽음을 피하지 못한 사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정부의 기조 하에 최소한에 불과했던 성평등 정책은 지속적으로 축소되어 왔으며, 국민을 지켜야 했을 국가는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묵살하고, 관련 정책을 축소‧폐지하거나 엉뚱한 대책을 내놓는 행태 끝에 결국 또 다른 죽음을 막지 못한 것입니다.

 

한편 연이은 흉기난동 및 살인사건에 대한 대책으로 도심 곳곳에 장갑차와 경찰 특공대를 배치하고, 불심검문을 하는 등 ‘특별 치안 활동’이라는 이름의 기행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여성폭력 피해자에게 애도를 표하며 사회에 촉구하고자 합니다. ‘각자 조심해서’, ‘운이 좋아서’ 살아남는 사회가 아닌, 누구나 ‘평등해서’ 신뢰하고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이에 뜻을 같이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으고자 8월 24일, 피해자 추모 및 긴급행동을 개최하오니 함께해주시기 바랍니다.

 

■ 일시_ 2023년 8월 24일(목) 오전 10~12시

■ 장소_ 서울 공원 여성 살해 사건 발생 장소 및 신림역

 

■ 참여 및 공동주최 신청

링크 _ bit.ly/여성폭력방치국가규탄

(https://docs.google.com/forms/d/1PirwO_WTxh4SYyxpw99YlKFk0Dr8X2FRwd2S5CSSlSc/viewform?edit_requested=true)기한 _ 2023년 8월 23일(수) 오후 4시

 

■ 제안단위 _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 문의 _ 한국성폭력상담소(ksvrc@sisters.or.kr, 02-338-2890) / 한국여성의전화(hotline@hotline.or.kr, 02-3156-5400)

 

 

매 순간 최선의 삶을 사셨을 피해자를 애도합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위험한 순간에 도움을 청하는 용기를 가졌던 피해자께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모두가 평등하고 폭력 없는 세상을 바랐던 우리의 삶에 오히려 무력감이 찾아 듭니다.

채혜원 작가의 책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지금 나를 맞잡아준 이 따스한 손이,
나를 혼자 두지 않으려고
일정표를 짜는 그 뜨거운 마음이,
그들이 말한 연대구나.
어떤 여성이 차별과 폭력으로 인해 힘들 때
당장 필요한 건 법과 정책의 변화가 아니라
그저 곁을 지켜주는 ‘동지애’구나.”

 

이런 때일수록 우리 모두 끝까지 연대하면서
우리의 일상을 다른 그 누구로부터도 제약 당하지 않고, 배제 당하지 않으며
서로의 위로가 되고, 서로의 지지가 될 수 있도록 살피면 어떨까요?
그것이 우리들이 가진 힘이고, 자원입니다.

천주교성폭력상담소는
모든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자신 그대로의 일상을, 각자의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해 함께 연대하겠습니다.
우리의 자리에서 함께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며 그 어떤 누구도 혼자이지 않도록 끝까지 함께 싸워나가겠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폭력, 죽음의 대상이 되지 않는 평등한 세상을 위해 곁을 지켜주는 동지가 되겠습니다.

다시 한번 피해자의 평안을 빕니다.

[평화의샘공동체 25주년 새로쓰기 인터뷰] 혐오와 배제의 시대 너머 페미니즘의 대항해로!

2탄. 김미순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전 소장

 

“혐오와 배제의 시대 너머 페미니즘의 대항해로 !”

 

평화의샘 공동체 25년 역사는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게 된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에 대해 다시 질문하면서 다양한 생존자들과 함께해온 과정이다평화의샘은 한국사회의 모든 변곡점에 여성/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있음을 보면서 활동가와 생존자로서 깨어나고 성장해왔다. 2023평화의샘 공동체 25년을 맞이해서 다양한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평화의샘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활동을 했으며 활동가들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편집자 주]

<2023년 현직장 사무실에서>

 

천주교성폭력상담소호를 바다에 띄우다!

<천주교성폭력상담소(이하 상담소)>는 1980년대에 시작된 한국 사회의 반성폭력 운동 및 천주교 안에서 성폭력예방 및 피해자 지원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필요성에 의해 1998년에 개소하였다. 성직자와 신도들의 후원으로 개소에 도움을 받았으나 상담소는 공식적인 ‘천주교’ 내의 단체도 아니고, 정부의 지원없이 운영되다 보니 재정상의 문제로 소장을 포함하여 모두 반상근 활동을 하다가 2000년이 되어 상근활동가가 있는 단체가 되었다. 이에 개소 초기 상담소는 성폭력상담원 및 성교육강사양성교육을 수료한 10여명의 자원활동가들이 지원상담에 대한 훈련을 병행하며 전화상담 위주로 활동하였다.

김미순 전 소장(이하 김미순) 또한 2002년 성폭력상담원교육을 받은 후 김미숙 소장과 박가람의 삼고초려로 청소년지원시설 활동가로 입사하였다. 김미순은 청소년지원시설에서 활동하면서도 상담소 활동을 겸하며 반성폭력 활동에 대한 관심을 놓치 않았고 2008년 4월 소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김미순의 부임 기간 동안 상담소는 정체성 및 활동 방향에 대한 개편과 변화를 맞았고 2019년 4월 퇴사한 뒤 상담소의 가장 큰 지지자로서 자리하고 있다.

평화의 샘이 상담소도 그렇고 생활시설도 그렇고 후원금이 그렇게 넉넉하지도 않았을 거고 어려웠겠죠.. 그때 당시 임금이 그랬어요. 그런 와중에도 내부의 어떤 시스템을 갖추려고 했던 게 초반에는 꽤 재미가 있었고, 더 지나면서는 같이 활동했던 우리 활동가들이 사업을 어마무시하게 벌렸거든요. 그러한 변화를 위한 노력들이 실은 평화의샘이 더 커지게 되고 자리를 잡게 된 계기도 되죠.”

상담소는 국고보조금을 지원받는 단체가 되었지만 후원금이나 운영비는 늘 넉넉치 못 했다. 상근활동가들을 충원하여 사업을 확장하기에는 재정적 부담이 컸던 상담소는 비상근 활동가나 자원활동가 인력풀을 활용하여 사업을 확장해 나간다.

일반적으로 성폭력상담소에서는 외부 상담기관에 사례를 연계하거나, 성폭력피해자 치료회복프로그램으로 사례를 의뢰한다. 그러나 초기 천주교성폭력상담소는 상담심리를 전공한 상근활동가나 상담을 전공한 비상근 활동가들이 활동의 주축을 이루며 상담소에서 직접 피해자의 심리치유를 위해 활동하였다. 그 방법 외에도 저소득층 성폭력피해 어린이 놀이‧미술치료를 통한 방문상담, 보호시설 내 성폭력피해 청소녀 방문상담, 가출.성매매 청소년 치료재활 프로그램 등 저소득층 아동.청소년 대상의 심리상담을 특성화한 사업이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피해자를 지금처럼 의료지원 법률지원 심리지원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도록 제도권에서 보장하고 있었지만 실은 그 개념이 확실하진 않았던 것 같아 . 어떤 측면에서는 두 부류로 나뉘지 않았을까 싶어요.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법제도 변화는 보통 운동단체에서 했었죠, 그리고 나머지 단체에서는 피해자의 역량 강화를 시키는 지점 한 꼭지로 트라우마, 치유에 집중하는 파트가 동시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초기 시작했던 분들 중에 운동단체로 가서 법제도를 변경하는 활동을 하시는 그룹이 한 그룹 있었던 거고, 그런 지향에 동참하면서 피해자의 심리 치유, resilience에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그룹으로 이렇게 2000년도 초까지만 해도 있지 않았나 싶은데, 저희들은 후자에 가까운 정체성을 가지게 된 거죠.”

상근활동가들과 심리상담가들은 성폭력 피해 아동 및 청소년들을 피해자라는 공통된 상황 외에도 교차 되는 다양한 정체성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수퍼비전을 강화하였고, 상담자 역량 및 인권 감수성 향상을 위한 교육을 다양하게 실시하였다. 이러한 지원 경험과 역량강화 활동이 축적되어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조력하고자 하는 상담소의 정체성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두 걸음 내딛고, 한 걸음 뒤로 하며 조금씩 나아가다

성폭력피해 아동.청소년 대상의 심리치유 사업은 상담소에 새로운 질문을 던져주었다. 성폭력피해자의 치유 및 회복만큼이나 성폭력 없는 세상을 위한 예방 활동과 인식의 변화를 추동하는 것이 반성폭력 활동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것이었다.

이에 상담소는 두 가지 프로젝트 사업을 시작하여 상담소 활동을 확장해 나갔다. 그 중 하나는 아동성학대에 대한 개념을 알려 예방하고, 성학대피해아동을 발견했을 때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아동성학대 대응능력 강화사업’을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저소득층 아동・청소년을 위한 성인지교육’을 통해 성폭력을 예방하는 것이다. ‘아동성학대 대응능력 강화사업’의 경우 아동성학대 실태조사에서부터 정책 제안, 지침서 제작 및 배포, 성학대 지킴이단 활동 등이 다양하게 진행되었고, ‘저소득층 아동.청소년을 위한 성인지교육’은 대규모 집체교육의 틀에서 벗어나 주양육자의 돌봄이 어려운 아동・청소년, 성폭력 및 성매매 피해 청소년, 가출 청소년, 비혼모 청소년 등 아동・청소년의 특성에 따른 집단상담식 성교육으로 진행되었다.

“2002년도 지나고 2005년도 까지는 천주교성폭력상담소가 사업을 굉장히 확장하는 시기에요. 그때 당시에는 여성폭력에 대한 관심도들이 어느 정도 형성되고 관심을 가 지는 시기거든요. 여러가지 사업들 내에서 천주교성폭력상담소가 가야 될 방향들을 계속 논의했던 것 같아요. 교육도 하고 심리상담을 하면서도 심리상담만 해서 되겠 , 하는 고민이 있었지요.”

이러한 활동은 지역사회 내에서 성폭력 피해아동 및 청소년을 조기에 발견하고, 지역 내 유관기관들과의 협력으로 통합적 지원을 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가며, 상담소의 활동을 확장해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사업의 확장만큼 활동가들의 업무량이 증가하는 것에 비례하여 활동가의 소진을 예방하거나 안정적인 인건비를 충당할 수 있을 만큼의 후원 및 운영비 확보는 지속적으로 어려웠다. 결국 이 사업들은 불꽃같은 3년의 활동을 끝으로 마감하게 된다. 수많은 고민과 논의를 통한 결과였다.

보통은 피해자가 들어오면 어떤 사정으로 들어오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그런 것들을 봐야 되는데 그런 것들이 (체계적으로) 되지 않는 지점에 대해서 계속 얘기를 하다가 2007년도 김미숙 선생님이 아프셨고 그때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만들어보자는 작업들을 2007년도 시작으로 2008년도에 개편을 했었죠.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의 의미,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은 어떤 절차로 어떻게 가는지, 그리고 피해자를 전반적으로 지원하는 과정에서 심리상담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지만 전부가 아니라 일부다 라는 것들을 하면서 그 과정들을 만들어갔죠.”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심리치유 위주에서 성폭력 예방으로 확장했던 성폭력상담소의 활동은 김미순의 부임과 함께 재정비의 시간을 갖는다. 각 프로젝트 사업의 종료와 함께 성교육센터를 대폭 축소하고, 방문상담을 위주로 활동했던 심리상담가들은 심리상담센터라는 별도의 활동으로 조직화한다. 상담소의 사업 또한  ‘성폭력피해자를 위한 치료회복사업’만은 남겨두고 과감히 정리하였다.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통합지원을 강점으로 하는 상담소로 거듭나기 위한 결단이었다.

당시 제가 전달체계를 수립하면서 했던 작업 중에서 하나가 피해자 지원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두 영역만 빼고 나머지 프로젝트 사업은 하지 않는다 라는 원칙을 세웠거든요. 예산이 부족하니까 여기저기 사업 예산을 가지고 오지만 인건비를 지원해주지 않는 이상은 오히려 계속해서 피해자 지원 업무에 소홀해지는 결과를 낳거든요. 그래서 정부가 지원하는 치료회복사업으로 심리상담 지원하고 나머지는 의료법률지원과 같은 것들은 기존 성폭력상담소가 해야 하는 기본 업무잖아요. 그것에 역량을 계속 강화시킨거죠.

심리상담 중심의 기존 활동이 성폭력피해자의 상황 및 특성에 맞는 통합적 지원이 되지 않았다는 반성은 상담소의 정체성과 활동가의 역할을 재구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상담소는 통합적 사례지원 시스템을 구성하기 위해 사례지원자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지원의 폭을 넓혀갈 수 있도록 역할을 강화해 나간다.

 

상담소의 역할을 고민하고 우리만의 길을 만들기 위해 변화를 꾀하다

이때부터 상담소는 통합적인 피해자 지원을 목표로 개개인 활동가들의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한 활동이 주를 이루었다.

활동가 각자 사례지원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공통의 가치를 바탕으로 각각 혹은 함께 역량 강화를 위한 활동을 하며 피해자를 지원한다. 정기적인 사례회의나 동료사례수퍼비전, 외부전문가 사례수퍼비전, 사례지원자와 심리상담가가 함께 참석하는 심리상담 수퍼비전, 여성폭력에 대한 민감성을 높이는 스터디 등을 통해 피해자의 피해 경험을 여성주의적 시선으로 해석하고 치유와 회복의 시간에 조력하고자 하였다.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지원기관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에 대한 표본을 보여주는 게 천주교성폭력상담소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만들려고 애를 썼고. 그래서 지금도 계속해서 활동도 더 확장시키고 피해자를 더 포괄적으로 확대해서 지원하려고 하는 것들이 저는 굉장히 뿌듯하게 생각하고 제가 그 기관에서 일했다는 것도 되게 좋고

상담소와 분리되어 조직화된 심리상담센터의 심리상담자 또한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정기적인 수퍼비전을 의무화하고, 피해자의 긴박한 상황에 대해서는 담당 사례지원자와 소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활동가와 심리상담가가 때로는 피해자 지원을 위해 서로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조력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사례지원 과정의 영역이나 역할을 점검케하는 수퍼바이저가 되기도 하며 서로의 성장을 도왔다.

제가 이렇게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저의 동료와 선배와 리더들이 있기 때문이지 않았겠어요? 제가 업무를 처음부터 잘 했을리 만무하고 고집과 아집과 이런 생각을 가 질 때 어떻게 피해자를 바라봐야 하는지 얘기해 주고, 조직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어떤 시각을 가져야 되는지도 아마도 은연중에 계속해서 얘기해 줬을 거고 그런 것들 이 저한테 영향을 미치는 거죠.

외부적으로는 여성폭력에 대해 이해가 깊은 의료기관이나 변호사를 발굴하고, 피해자 통합지원을 위해 유관기관 사례회의, 자문상담 등을 구조화하였다. 피해자의 연대자와 지지자로서 조금 더 조응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변호사와 함께 하는 집단상담을 진행하기도 하고, 비슷한 지원 경험을 가진 상담소들과의 수퍼비전을 진행하기도 했다.

성폭력피해자 통합지원을 위한 체계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던 2012년 상담소는 또 다른 변화를 맞게 된다. 김미순이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이하 전성협) 대표(공동대표 2년, 상임대표 4년)로서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6년의 전성협 대표활동은 외부적으로는 전성협 사무국으로서 시대의 흐름을 조망하고 정책을 제안하며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내부적으로는 활동가들이 변화하는 정책 및 제도, 각 지역의 상담소들의 특장점을 수용하여 내실의 강화를 꾀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 시간은 상담소가 단순히 외양만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반성폭력 단체로서의 정체성과 연대 활동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MeTooWithYou하며 반성폭력의 물결에 함께 하다

2018년 우리 사회는 매일매일 낯설고 긴장되는 말하기와 연대하기가 지속된다. 2017년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운동이 대한민국의 법조계, 연극계, 학내, 정치계 등에 끊이지 않고 제기되었다. 당시 성폭력피해자 통합지원을 목표로 피해자가 치유.회복될 때까지 지속지원을 하던 상담소에도 미투운동의 흐름에 힘입어 여러 단체와의 공동 대응을 요청하는 피해자들이 찾곤 했다.

전성협 대표활동을 통해 연대 및 공동대응의 중요성을 알게 된 상담소에서는 2018년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에 집행단위로 활동하였고, 그 외에도 수많은 공동대책위원회에 연대단위로 함께하며 피해자들의 용기에 함께 할 수 있는 반성폭력 단체로 활동하고자 하였다. 특히 안희정성폭력사건 공대위의 경우 반성폭력 활동을 하는 다양한 법률가, 학자, 상담소들간의 연대가 가지는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권력형 성폭력의 유의미한 법적대응과정을 함께 하며 활동가들 또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운동이라는 것은 계속해서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제도나 정책이 주고 있는 건 한 발자국 늦을 수 있어요. 하지만 상담소가 한 걸음 늦지 않게 더 많이 고민하고 지원하려고 하는 것들, 이런 것들이 굉장히 뿌듯하죠.

예를 들어 준강간 공대위 사건 다루면서도 어떤 한 사건을 그렇게 끈질기게 꾸준히 피해자 편에 서서 동고동락을 한다는 것 자체도 그게 바로 운동이죠. 중간에 일정부분 지원할 거 지원했으니 끝. 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고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어떤 문제로 작동되는지.. 큰 문제거든요.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실은 피해자를 더 많이 지원하고 추동하고 같이 연대하고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거잖아요. 향후에 준 강간 피해를 안 입으면 좋겠지만 어떤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를) 입었을 때는 더 나은 환경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고, 그런 것들이 천주교성폭력상담소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이 활동에 힘입어 2019년에는 보통의준강간사건이라 불리는 ‘준강간사건의정의로운판결을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공동대응하기도 하였다.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통합지원과 더불어 필요하다면 다른 단체들과의 연대, 언론을 통한 공론화 등을 통해 공동대응하는 것 또한 통합지원의 한 부분일 수 있다는 고민의 결과였다. 미투 운동의 흐름 속에 시작된 공동대책위원회 활동은 2023년까지 이어져 활동가들이 피해자 지원이라는 민감하고 세밀한 전문영역뿐 아니라 법과 사회의 변화를 추동하는 운동가로서 이미 활동하고 있었음을, 앞으로도 그렇게 활동할 것임을 각성할 수 있었다.

 

혐오와 배제의 시대 너머 페미니즘의 대항해로!

상담소 활동가들이 생각하는 우리 기관의 정체성은 사례지원은 잘 하지만 적극적으로 운동을 추동 혹은 지향하는 단체는 아니었다. 그러나 반성폭력 운동이 성폭력이라는 낯선 개념을 알려내고, 피해자에게 드리운 편견과 통념을 깨기 위한 인식 변화를 도모하고, 이제는 협소한 성폭력의 법을 개정하기 위한 활동으로 변화해 왔듯이 피해자 지원 또한 반성폭력 운동의 일환으로 역할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피해자 심리치유 중심의 지원에서 교육을 통해 성폭력을 예방하는 활동,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통합지원을 통해 피해자가 가진 내면의 힘을 믿고 조력하는 활동으로 넓혀온 지난 시간은 성폭력 없는 세상을 위한, 성폭력 피해에도 피해자의 일상적 삶을 추구하는 치열한 반성폭력 운동이었다.

이 일(반성폭력 활동)에 빠져들다보면 자연스럽게 페미니스트가 되야 되는 거 같고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그래서 그렇게 저는 페미니스트가 된 것 같고. 그런 의미에서 삶이나 가치관은 계속 변화했죠.

활동가는 움직이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현재에 안주하기보다는 계속 창의로운 사, 즉 변화를 위하고자 하는 지향을 가지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천주교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활동을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지 여전히 고민 중이다. 더구나 여성, 장애인, 이주여성, 성소수자, 노인 등이 더 큰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고,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가해자들의 백래쉬가 넘쳐나는 작금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성평등을 위한 활동을 지향하며 나아갈지 매 순간 고민한다. 그 정답은 알 수 없으나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고 확언할 수 있다. 김미순의 말처럼 우리 모두 활동가로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지향해야 한다. 차별과 혐오, 배제의 시대를 너머 우리는 성평등한 세상으로, 페미니즘의 대항해로 나아가고자 한다.

 

<금잔디・라나・숨su:m이 인터뷰하고, 따오기가 정리함>